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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하는 세계화 내수시장 잡아라
[ISSUE] 독일 기업들의 귀향 행렬
[110호] 2019년 06월 01일 (토) 미하엘 자우가 economyinsight@hani.co.kr

아시아 국가들의 저임금은 세계화를 촉진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의 임금수준이 높아지면서 국제무역은 침체되는 상황이다. 독일 기업들이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다.

미하엘 자우가 Michael Sauga <슈피겔> 기자

   
▲ 세계화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복지를 가져다줬지만, 그 이유로 이제 추진력을 상실하고 있다. 중국의 임금이 동유럽 수준까지 오르면서 중국에 진출했던 기업이 독일로 되돌아오고 있다. REUTERS

랄프 리첸베르크(Ralf Litzenberg)가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조건은 거의 다 갖춰져 있었다. 1880년 건립된 이 공장의 2008년 매출액은 4분의 1이 줄어들었다. 작센주 욀스니츠에 자리잡은 이 기업은 당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리첸베르크는 일부 생산라인을 저임금 국가로 이전하려고 했다. 루마니아와 몰도바의 기업을 둘러보고, 불가리아와 벨라루스에 있는 직조공장도 면밀히 조사했다. 하지만 품질이 너무 떨어져서 번번이 실망한 채 귀국했다.

리첸베르크는 생산라인을 욀스니츠에 그대로 둔 채, 사무실과 호텔용 양탄자를 집중적으로 생산했다. 규모는 작지만 이익이 쏠쏠했다. 이 업체의 반달표 양탄자는 현재 40개국에 수출된다. 200명에 이르는 직원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된 리첸베르크는 생산 공정의 국외 이전을 전혀 검토하지 않는다. “만약 그때 해외로 나갔다면 회사는 끝까지 버티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고 회사 관계자는 단언한다. “요즘엔 2~3주 안에 제품 납품을 요구하는 주문이 많은데, 중국에서 생산했다면 그 시간에 맞춰 제품을 공급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출발했던 원지점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비단 욀스니츠에서만 필요한 구호는 아니다. 전세계 여러 곳에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동일한 형태로 진행돼왔다. 아시아 개발도상국들이 저가로 생산된 장난감과 섬유·전자 제품을 서구에 납품하고, 자동차·비행기 등 고전적인 공업 분야 일자리는 역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중국·베트남 같은 나라에서는 수백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났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중산층이 축소되고 있다는 좌절감이 커졌다.

오랫동안 이러한 세계화는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기업가, 경제 전문가, 통계학자는 얼마 전부터 이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세계화 과정이 주춤하는 것이다.

국경을 초월한 상품 교역은 전세계 상품 생산보다 느린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서비스와 데이터 사업은 세계적으로 번성하고 있지만, 국외 투자는 줄어들고 있다. 전세계 국민총생산에서 각국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몫이 줄어드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 독일 하노버에 있는 음악 전자기기 콘체른 젠하이저사는 최신 헤드폰을 중국 대신 루마니아 브라쇼브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는 운송비를 절약할 뿐 아니라 핵심 판매시장을 가까이에 두는 장점이 있다. REUTERS

세계화 속도 주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9년 세계 교역량이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이코노미스트>가 세계화 대신 ‘저속(低速)화’라고 지칭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컨설팅회사인 매킨지 역시 한 연구에서 “세계화는 2000년부터 2010년 중반 이미 변곡점에 도달했다”고 결론 냈다. 이후부터는 하향길이라는 것이 이 연구의 분석 결과다. 이 하향화는 각국 정부의 관세 부과를 비롯한 무역 제한으로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킬(Kiel)의 세계경제연구소장 펠버마이르는 “과도한 세계화 시대는 지나갔다”고 단언한다. “이제 우리는 세계화 속도가 대거 둔화되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세계무역 시장에서 승자로 꼽히는 독일 경제 측면에서 이것은 좋지 않은 소식이다. 수출 저하가 단기적 현상에 머물지 않고 많은 독일 기업이 사업모델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 자체 생산하는 공업 제품을 버리고, 대신 데이터와 서비스 업종으로 이동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공업 제품 생산기지를 유럽으로 옮기는 게 유리하다. 섬유 등 사양 산업으로 잘못 간주된 분야에 속한 독일의 몇몇 기업에는 그야말로 새 기회가 열리는 셈이다.

토마스 린트너는 4대째 이어진 가족기업 대표다. 작센주 호엔슈타인에른스트탈에 자리잡은 그의 공장에는 100대에 이르는 자동 직조기가 나란히 서 있다. 과거 이 회사의 대표적 생산품은 당뇨 환자용 양말, 붕대, 울혈 방지용 양말 같은 의료용 직물이었다.

이후 린트너는 스포츠용 양말 분야에 뛰어들었다. 현재 그는 근육 보호 양말을 만들어 전문점과 온라인 시장에서 판매한다. 고객은 스포츠클럽이나 육상부 로고가 인쇄된 제품을 주문할 수도 있다. 린트너는 “개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을 짧은 시간에 생산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한 생산지로는 독일이 최적”이라고 말했다.

   
▲ 아디다스는 아시아 지역 공장에서 생산했던 운동화 등 스포츠 용품을 독일 프랑켄 지역에서 로봇를 이용한 최첨단 기술로 만들고 있다. REUTERS

독일로 돌아오는 공장
섬유업계는 지난 수십 년간 기업의 일터를 아시아로 이전했다. 처음에는 중국으로, 그다음엔 베트남이나 방글라데시로 공장 터를 옮겼다. 하지만 요즘에는 다시 고향(독일)으로 돌아오는 기업이 늘고 있다. 그중에는 대기업도 있다. 다양한 스포츠 용품을 생산하는 아디다스의 경우, 독일 프랑켄 지방의 안스바흐에 로봇이 수놓는 고속 작업 공장을 세워 운동화를 생산하고 있다. 명품패션 업체인 후고보스 역시 뮌헨에서 남성 양복을 재단한다.

켐니츠에 있는 작센 섬유연구소 영업소장 이브지몬 글로이는 이런 ‘귀향’ 현상이 더 이어질 것으로 본다. 그는 얼마 전 아디다스의 시험생산 프로젝트에서 미래 섬유 생산 공정이 어떻게 변할지 시연한 적이 있다. 고객이 컴퓨터에서 직물 색깔과 무늬를 선택하면 컴퓨터 스캐너가 치수를 잰다. 그다음에 디지털 직조기가 옷을 제작한다. 두세 시간 뒤면 고객은 자기가 주문한 폴로셔츠를 배달받을 수 있다. 글로이는 “몇 년 후에는 이런 공정으로 작업하는 최초의 직물공장이 생겨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요즘 고객들은 인터넷에서 상품을 주문해 받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한발 더 나아가, 상품을 도안하는 과정에도 참여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 주문 상품을 택배로 받기를 원한다. 이는 독일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 즉 저 멀리 아시아에서 배에 실려 오지 않는 회사의 제품이어야 실현 가능하다.

세계화 속도가 둔화된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에서 나타난다. 뮌헨 이포(Ifo)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세계무역량은 2000년 전후로 전세계 국민총생산의 두 배가 넘는 속도로 빠르게 증가했다. 반면 현재 두 성장 곡선은 거의 비슷한 기울기로 변화하고 있다.

독일의 금속·전자 산업 분야에서 산업시설 일부를 외국으로 이전하는 기업이 1990년대 이래 절반 이상 줄어든 반면, 자국으로 돌아오는 기업은 늘고 있다.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로벤타(Rowenta)는 중국에 있던 생산시설을 원래 공장이 있던 헤센주 에르바흐로 다시 옮겨왔다. 과거 지멘스(Siemens) 자회사이던 기가세트(Gigaset)는 현재 보홀트에서 스마트폰을 만든다. 하노버에 있는 음악 전자기기 콘체른 젠하이저(Sennheiser)는 최신 세대 헤드폰을 중국 대신 루마니아 브라쇼브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의 공동대표인 다니엘 젠하이저는 “현지 생산이 운송비를 절약하고 핵심 판매시장을 근거리에 두는 장점이 있어, 회사의 독립성이 보장된다”고 했다.

세계화는 아시아 여러 국가에 복지를 가져다줬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것 때문에 세계화는 이제 추진력을 상실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나 광둥에서는 그새 임금이 동유럽과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다. 그곳에서 상품을 배에 실어 독일로 운송하는 것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중국에 있는 독일 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많은 독일 기업이 중국에 더는 투자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이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각국 정부가 자국 내수시장 문을 닫아거는 것도 이 경향을 촉진한다. 관세에 역관세를 부과하고 자국 기업에는 할당제를 면제하는가 하면, 중국 화웨이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외국 기업에 투자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그 결과 동유럽과 서유럽, 북미, 중국과 인접 아시아 국가들의 지역 내 교역은 강화되는 반면 멀리 떨어진 국가와의 교역은 감소하고 있다.

각국 보호무역 조처
전문가들은 이런 ‘공급 체인의 지역화’가 새 기술의 발달로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항공과 선박 교통의 발달은 오랜 기간 상품이 신속하게 전세계에 공급될 수 있도록 기여했다.

반면 오늘날 기술혁신은 세계화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로봇과 3차원(3D) 프린터를 투입하면 노동력이 절약되고 그 결과 임금 비중이 줄어든다. 상품 교환 역시 디지털 데이터 서비스로 대체된다. 한 예로,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포털이 CD와 DVD의 교역을 대신한다. 구글 맵이 생긴 뒤에는 지도를 살 필요가 없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적인 데이터 교환은 상품 교역의 몇 배 속도로 성장했다.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주식회사’ 같은 고전적인 산업 기업조차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디지털 서비스 업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발도르프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인쇄기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지만 몇 년 전부터 매출액이 정체 상태에 있다. 사장 라이너 훈츠되르퍼가 회사를 일종의 ‘산업 관련 아마존’으로 변모시키려고 계획하는 이유다. 그는 “기계 건설 분야의 인쇄 관련 사항을 인터넷으로 운영하는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말로 청사진을 예고했다.

그 준비 작업의 하나로, 현재 전세계에 퍼진 수천 개 하이델베르크 공장 센서가 정기적으로 본부에 보내는 주요 데이터를 모두 차출할 계획이다. 훗날 제품 생산과 인쇄기계 시설 풀가동을 계획하는 전세계 인쇄 공장을 돕기 위해서다.

훈츠되르퍼는 5년 뒤에 전세계 하이델베르크 인쇄기 수가 지금보다 약 2천 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대신 정보와 서비스 분야는 지금의 몇 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쯤이면 하이델베르크는 거대한 데이터 대기업이 되어 있을 것이다.”

매킨지-파트너사 에크하르트 빈트하겐은 현재 일어나는 변화가 독일 경제에 아주 중대한 결정 근거가 될 것으로 본다. “독일 산업은 지금 변화 앞에 서 있다. 1980년대 일본이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변화를 시도해야 했던 그때에 이어 두 번째 계기가 독일에 온 것이다.”

기업 경영자는 세계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조금씩 파악해가는데, 전세계 정치권은 여전히 그들에게 익숙한 눈금판 속에 갇힌 것 같다. 특히 교역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두 국가만의 오랜 싸움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일례로 중국은 전세계 지역에 기차 선로와 항구 시설을 새로 건설하고 싶어 한다. 상품 운송의 필요성이 갈수록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데도 말이다. 미국 도널트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부과해 산업계 일자리 수백만 개를 미국으로 되찾아오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시도는 아무리 잘돼도 로봇이 투입될 일자리를 잠시나마 얻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독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진영에 상관없이 경제 분야 정치인들은 아직도 독일 경제는 오로지 공업 제품을 수출하는 것으로 강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 속도가 느려지는 시대에는 독일 내수 시장을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와 관련해 펠버마이르 킬 세계경제연구소장은 세금 인하, 공공투자 확대, 디지털 인프라 건설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도 독일은 수출국으로 계속 남겠지만, 외국과 교역할 때는 고정된 시각에서 한 걸음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2019년 6월호 종이잡지 88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19호
Neue Heimatliebe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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