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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금융 내몰린 혁신의 아이콘
[국내이슈]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110호] 2019년 06월 01일 (토) 박종오 pjo22@edaily.co.kr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 2019년 3월28일 제3의 인터넷은행 예비인가 신청을 한 ‘토스뱅크’ 이승건 대표가 서울 강남구 비바리퍼블리카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업 소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챌린저스’는 요즘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목표 달성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아침 7시 일어나기, 주 3회 책 읽기, 매일 헬스장 가기 등 목표를 정해 일정 기간 이를 지키고 인증하면 포상을 받는다. 챌린저스 앱 이용자가 미리 돈을 걸었다가 목표 달성률이 85% 이상이면 건 돈을 모두 돌려받고, 100% 달성하면 앱 운영회사로부터 건 돈 이상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포인트를 받는다.

신생 기업의 참신한 아이디어 같지만, 법 규정을 따져보면 이런 영업 방식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부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가 원금 보장과 그 이상의 혜택을 약속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금지하는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은행·저축은행·상호금융조합 등 금융회사나 특정 목적으로 등록된 조합·공제회가 아니라면 나중에 이자 등을 주겠다며 다른 사람 돈을 걷고 보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이처럼 혁신과 불법의 경계는 모호하다. 사금융 업체로부터 일반인의 돈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의 불똥이 금융 혁신의 대표 주자인 핀테크(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업체에도 튀었다. 간편 송금·결제 서비스를 앞세워 이른바 ‘페이 전쟁’을 벌이던 회사 여럿이 정부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금융위원회는 2019년 4월 말 카카오페이·토스·핀크·쿠팡 업체 실무자를 불러놓고 “소비자의 충전금 잔액을 기준으로 이자나 포인트를 계산해서 주는 것은 유사 수신으로 볼 소지가 있다”며 각 회사에서 이런 영업을 자제해달라고 전달했다.

   
▲ 하나금융그룹과 SK텔레콤이 합작한 핀테크 업체가 운영하는 앱 ‘핀크’(Finnq)는 인터넷 전문은행 서비스 기능 대부분과 소비 습관, 지출 규모 알림 등 금융생활 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연합뉴스

핀테크 선불 충전금 이자 지급 ‘제동’
네 개 업체는 올해 초부터 이용자의 충전금에 포인트·리워드 등 사실상 이자를 주는 고객 유치 경쟁을 벌였다. 간편 송금·결제 업체인 카카오페이·토스·핀크는 이용자가 미리 현금을 내고 각 회사에 가상의 돈을 충전하면 충전금 한도 안에서 송금이나 결제를 할 수 있다. 물건을 사면서 결제하거나 소액 송금 때마다 이용자 계좌에 있는 돈을 핀테크 업체 계좌로 옮길 수도 있지만, 목돈(최대 200만원)을 핀테크 회사에 맡겨놓고 그 금액 안에서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는 셈이다.

충전금 이자 지급 경쟁에 불붙인 것은 비바리퍼블리카가 운영하는 토스다. 휴대전화로 공인인증서 없이도 간편하게 송금하는 서비스를 하는 토스는 올해 1월부터 한 달에 최대 100만원을 충전하면 충전액의 연 10%를 다시 토스머니로 지급하는 머니백 행사를 시작했다. 예를 들어 토스 이용자가 100만원을 비바리퍼블리카 법인 계좌에 예치하면 매일 최대 273원씩 토스머니를 적립해 최대 10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과 연계한 카카오페이도 4월부터 이용자의 선불 충전금 잔액(최대 50만원)에 연 1.7% 이자를 주는 혜택을 제공했다. 하나금융그룹과 SK텔레콤이 만든 핀테크 회사인 핀크 역시 이용자가 충전한 핀크머니에 연 1.5~2% 캐시백을 줬다. 이처럼 각 사가 적립·환급한 포인트 등은 가상의 돈이지만 모두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현금이나 마찬가지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쿠팡도 이자 지급 경쟁에 뛰어들었다. 올해 2월부터 쿠팡에 예치하는 현금인 로켓머니에 연 5%의 쿠팡캐시 적립 혜택을 준 것이다. 쿠팡캐시는 원금을 자유롭게 넣고 뺄 수 있는데다 쿠팡에서 물건을 살 때 현금처럼 쓸 수 있어서 이용자의 호응이 높았다.

한 핀테크 업체 관계자는 “선불 충전액을 많이 적립할수록 소비자의 서비스 이용을 유도할 수 있고 결제나 송금 건마다 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계좌 이체 수수료도 줄어들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이자 지급으로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유치 경쟁에 나선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융 당국이 문제 삼은 것은 선불 충전금이 본래 목적인 간편 송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핀테크 업체의 고객 유치와 이용자의 재테크(돈벌이) 수단으로 변질했다는 점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핀테크 업체가 송금이나 결제 서비스를 하려면 어느 정도 자금이 필요한 만큼 그 목적에 맞게 돈을 모으는 것은 허용하지만, 그 외의 이자 지급 등을 앞세워 자금을 모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 쿠팡은 2019년 2월부터 쿠팡에 예치하는 현금인 로켓머니에 연 5%의 쿠팡캐시 적립 혜택을 줬다. 쿠팡캐시는 원금을 자유롭게 넣고 뺄 수 있는데다 쿠팡에서 물건을 살 때 현금처럼 쓸 수 있어서 이용자 호응이 높았으나, 금융 당국의 지적을 받고 혜택을 없애기로 했다. 연합뉴스

“핀테크 이용 소비자 보호 강화해야”
경고장을 받은 각 업체는 해당 판촉을 중단하거나 이용자에게 이자가 아닌 다른 혜택을 주는 것을 검토 중이다. 토스와 카카오페이는 이전과 같은 방식의 사이버머니 제공 행사를 더는 하지 않고 있다. 핀크와 쿠팡도 금융 당국의 지적을 받은 이용자 혜택을 없애기로 했다.

문제는 정부의 이런 조처가 미봉책이라는 점이다. 적용 대상이 넓은 유사수신행위 규제법을 가져와 특정 회사의 판촉 행위를 금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기존 금융 법령의 사각지대에 있는 핀테크 업체의 수신(예금) 기능이 초래하는 문제를 예방하는 근본적인 소비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예로 카카오페이와 토스 이용자가 회사에 맡긴 선불 충전금 등 예수금은 2018년 말 현재 약 1885억원으로, 전년보다 141%(1104억원) 급증했다. 중소형 저축은행의 예금액에 맞먹는 규모다.

토스는 2015년 간편 송금 서비스를 내놓아 3년여 만인 2018년 말 누적 가입자 수 1천만 명을 돌파하는 등 국내 핀테크 업계 최초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신생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에 이은 제3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도 추진 중이다.

최근 출범 2주년을 맞은 카카오페이도 현재 가입자 수 2600만 명, 월간 거래액은 3조원을 넘어서며 금융 투자, 보험 판매 등 금융업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단순 벤처기업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종합 금융회사 수준으로 덩치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은행, 저축은행 등 기존 금융회사가 파산하면 정부가 고객이 맡긴 예금(1인당 최대 5천만원)을 대신 지급하는 것과 다르게, 핀테크 업체에 선금으로 맡긴 돈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곽범국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이 2017년 “카카오페이 충전금 등 전자화폐도 예금자 보호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논의해야 한다”고 화두를 던졌지만, 2년간 전혀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 금융업 혁신을 이끈다는 핀테크 업체가 정작 법상 금융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규제의 회색지대에서 유사 수신을 하는 불법 사금융 업체 취급을 받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로 핀테크 업체를 차리거나 경영하는 정보기술(IT) 업계는 창업 활성화와 핀테크 육성 등을 위해 기존 규제를 확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금융은 그 파급력을 고려할 때 다른 분야와 같이 취급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금융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선불 전자 지급 서비스를 하는 핀테크 업체에도 자본금 규제 등 진입장벽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2019년 하반기부터 핀테크 업체의 선불 충전금 한도를 지금의 200만원에서 최대 500만원으로 올리는 대신 관리를 대폭 강화할 예정”이라며 “올해 중 관련 법을 개정해 충전 방식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판매자 계좌 간 직접 송금과 결제가 가능한 ‘지급 지시 서비스업’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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