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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놀이’ 열중해 기업가정신 실종
[FINANCE]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화
[110호] 2019년 06월 01일 (토)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세계 금융의 중심지 미국 뉴욕 월가에 있는 증권거래소 부근 거리 표지판. 월가는 자본주의 금융화의 상징이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핵심 기업, 즉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에 속한 기업의 매출이익률 변화를 보면 놀라게 된다. 매출이익률이란 세전 순이익을 순매출액으로 나눈 값이다. 기업의 영업활동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를 평가하는 유용한 지표다. S&P 500 기업의 매출이익률은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익률이 가장 낮았을 때는 1991년으로, 1달러 매출에 이익이 0.03달러에 그쳤다. 2018년 말엔 0.11달러 이익을 냈다. 지난 30년 동안 매출이익률은 3%에서 11%로 급등했다. 어려운 때도 있었지만 미국 기업들은 꾸준히 더 나은 성과를 내놓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국 기업들이 거두는 빛나는 성적은 치열한 기업가정신의 결과물이 아니다. 열심히 투자해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높여 이익률을 올린 게 아니란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핵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파괴에 있다. 투자와 제품 개발 등 치열한 경쟁으로 이익률을 높이는 게 자본주의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래도 이런 자본주의 전통이 살아 있었다. 오늘의 기업은 어떤가. 그렇지 않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의 기업과 현재 기업의 이익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기업들은 대체 어떻게 30년 전보다 3배, 10년 전보다는 2배나 되는 이익을 내는 걸까.

놀라운 기업 이익률
지난 30년 동안 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했다. 기업 생산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수익도 늘어난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제로 보인다. 기업은 기술로 업무를 개선해왔고 생산성을 늘려왔다. 컴퓨터와 공장 자동화는 기업의 생산능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그 결과 같은 매출을 올리고도 더 많은 이익을 내게 됐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노동생산성이 나날이 향상되던 시절에는 기술이 기업 이익률 제고에 큰 기여를 했다. 이 기간에 기업 이익 증가의 동력은 기술이었다.

현재도 기술 발전이 기업 이익률 제고에 가장 큰 동인인 걸까.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아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이상 큰 폭으로 늘어난 기업 이익률은 더는 기술과 생산성 향상의 결과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기술과 설비 그리고 공장에 투자한 기업가정신의 산물이 아니란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이익률을 높인 걸까. 바로 ‘돈놀이’, 즉 ‘금융화’를 통해 얻은 것이다. 든든한 중앙은행이 ‘쉬운 돈’을 천문학적 규모로 공급해줬고, 정부는 감세와 규제완화로 금융화의 길을 열어줬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익 창출에 있다. 쉽게 그것도 위험부담 없이 이익을 낼 수 있다면 그 길을 가는 게 ‘경영’이다. 금융화는 이미 시대정신이 됐다.

금융화(Financialization)란 한 국가의 금융 부문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는 현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에서 일어난다.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보다 금융 부문(인수·합병·파생·기타 금융기법)이 우위에 선 현상을 뜻한다. 2000년대 들어 미국에선 금융계 수익이 제조업 부문 수익의 2~3배에 이르렀다. 영국 금융계는 연수익 20%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금융이 실물경제보다 구조적 우위에 선 것은 1990년대 말 시작된 규제완화 덕분이다. 이때부터 금융화는 금융계를 넘어 경제 전 분야에 퍼진다. 금융이 단순히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그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이제는 하다못해 ‘리스크’까지 돈으로 사고판다. 기업의 금융 부문이 생산 부문을 지배하는 것은 일상이 됐다. 기업가치는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각종 금융기법을 이용한 기업가치 부풀리기가 횡행한다. 금융자본주의가 된 지 오래다.

금융화가 기업 이익의 원천이 됐다는 것은 그저 ‘주장’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고 계속 높아진 미국 기업의 매출이익률과 달리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추락한 노동생산성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노동생산성 상승세는 멈췄다. 미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전년 대비 노동생산성 성장률은 2011년 이후 기껏해야 1%를 웃도는 정도다. 그마저도 박스권에 갇혀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다.

사라진 생산성 증대
노동생산성이란 투입 노동 단위당 산출물 양을 말한다. 노동생산성이 정체됐다는 것은 결국 노동자 한 명이 생산하는 산출물의 양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기업 이익은 늘어나고 있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기업 이익이 공장을 짓고 설비투자를 늘리고 혁신 기술을 개발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누르고 승리한 것은 생산성 향상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가의 이익 추구를 공개적으로 장려한다. 정상적 상황에서 이익을 늘리는 방법은 생산성 향상뿐이다. 생산성 향상은 자본주의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기업과 국가가 추구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그래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세상이 바뀌었다. 금융화가 일반화하면서 기업 행태가 달라졌다. 애써 공장과 설비에 투자해 불확실한 이익을 기대하는 대신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부의 세금 감면 혜택이 커졌고, 중앙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자금조달 비용은 급락했다. 이익 개선을 위해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아도 대차대조표는 개선됐고 매출이익률은 호전됐다.

역사상 유례없는 완화적 통화정책이 기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도 쉽게 돈을 빌리고, 또 그 돈을 본래 목적 이외의 곳에 투자해 이익을 낼 수 있게 됐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당 이익을 늘리거나 인수·합병으로 쓸 만한 회사를 산 뒤 되파는 것도 유행이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기업의 투자 의욕을 끌어내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금리를 내려줬지만, 반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 재무 상황은 개선됐지만 기업가정신은 사라졌다. 기업은 자생력을 잃고 온실 속 화초가 되어가고 있다. 금융화를 통한 이익 추구는 오늘의 시대정신이 돼버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경영자가 된다 해도 위험이 가득한 투자보다는 편하게 이익을 내는 길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자사주 매입 ‘마법’
기업들은 감세와 금융화로 얻은 초과 이익을 생산성 향상에 투자하는 대신 주식을 사들였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주당순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화장술이자 대표적인 금융공학이다. 이익은 그대로라도 주식 수가 줄면 주당이익은 늘어난다. 대주주에겐 이보다 좋은 일이 없다. 경영자도 생색을 낼 수 있다. 이익을 내는 기업만이 바이백(되사기)을 하는 게 아니다. 심지어 빚내어 자사주 사들이기를 하고 있다.

미 증권위원회가 기업 자사주 매입 규제를 완화한 것은 1982년이었다. 이때 S&P 500 기업은 이익의 단 2%를 자사주 매입에 썼다. 2018년 말 기준으로는 이익의 59%가 바이백에 쓰였다. 2018년 4분기 S&P500 기업의 바이백 규모는 모두 2230억달러(약 266조원)였다. 전년 대비 63%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화는 정치와 중앙은행을 등에 업고 오늘의 시대정신이 됐다. 선악을 따지는 건 어렵다. 긍정적 측면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금융화가 발전할수록 그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극단적 금융화로 기업은 맹렬한 기업가정신을 잃었다. 기업은 원하면 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이 상황에서 어떤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려 할까. 불확실한 미래의 실질 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되고 있다. 싼 금리로 언제든 돈을 빌릴 수 있는데 왜 위험한 실물 투자를 감행하겠는가. 금융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전통적 자본주의는 쇠락하고 있다.

최근 지나친 금융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기업 바이백을 제한하기 위해 세금을 부과하는 법안이 제출됐다. 자본주의 궤도 이탈에 대한 성토의 바람도 분다. 자본의 이익 추구는 당연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가장 큰 동력이다. 다만 그것은 기업가정신이 발휘된 창조적 파괴로 이뤄져야 한다. 돈놀이로 얻는 기업 이익은 다른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오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이 추구해야 하는 건 건강한 이익이어야 한다. 기술과 투자로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분투가 기업과 기업가의 본질이다. 여기서 벗어난 기업 이익은 신기루일 뿐이다. 금융자본주의 득세는 전통 자본주의 쇠락의 한 징후일 수 있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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