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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은 ‘갑질’하지 않는다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간결한 문장은 독자에게 ‘갑질’하지 않는다. 다음 문장을 보자. 우리나라 ‘헌법 전문’이다. 헌법을 만든 목적과 과정을 밝히는 대목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어떤가? 여러 좋은 뜻을 담은 글이긴 한데, 읽기가 여의치 않다. 헌법정신이 없어 그런 건 아닐 거다. 헌법정신을 가진 보통 사람도 눈을 돌리게 하는 글이다.
그 이유는 글이 너무 긴 데 있다. 헌법 전문은 원고지 2.1장 분량. 글자는 433자, 낱말은 93개가 들어가 있다. 이게 한 문장이다. 마침표가 단 하나 있다. 어떤 이는 헌법의 영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최악의 만연체라는 비판을 받는 글이다. 다음 글은 어떤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이다. 글이 간결하니 쉽게 눈에 들어오고 단숨에 익힌다. 헌법 전문과 헌법 제1조를 보면서, 어떤 글을 써야 할 것 같나? 그렇다. 간결한 글을 써야 한다. 간결한 글을 쓰는 게 더 쉽고, 다른 사람을 더 이해시키기 쉬워서다. 문장을 쓰는 제1법칙, ‘간결하게 써라’다. 꼭 기억하자.

남을 배려하는 글쓰기가 필요해
누가 헌법 전문처럼 길게 쓰냐고? 이렇게 쓰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다. 공식적인 글에서 이런 긴 문장을 심심찮게 본다. 다음은 충청남도에서 만든 보도자료다. 헌법 전문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정도로 문장이 길다.

충남도는 물가안정을 위해 상반기 중 공공요금 동결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서민 생활과 밀접한 지방공공요금을 상반기 중 동결한다는 원칙하에 인상하기로 심의 결정이나 조례개정 등으로 1월 사용분부터 인상이 불가피한 경우도 인상 시기를 하반기로 조정 결정하여 물가안정에 기여함은 물론 서민가계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와 道의 지방공공안정 방침에 따라 ▲공주시는 상·하수도료 인상(1월 사용분부터 상수도료 8.5%, 하수도료 6.5%)을 심의 결정(2010. 10.28)하였으나 조례개정시 보류 결정(2011. 1.26) ▲논산시는 하수도료 인상(1월 사용분부터 38.0%) 조례개정 공포(2010. 12.30)하였으나 인상 보류하고 하반기 적용 결정(2011. 1.17)했고, ▲태안군은 상·하수도료 인상(2월 사용분부터 상수도료 55.3%, 하수도료 43.8%) 조례개정 공포(2010. 12.31)하였으나 인상 보류하고 하반기부터 적용키로 결정(2011.2.11)했으며, 기타 시·군에서도 인상 요구에 대해 상반기 불가 방침을 정하고 지방공공요금 안정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이 보도자료가 충분한 설명을 해주는 친절한 보도자료가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이 보도자료를 만든 사람은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내가 보도자료를 쓴다면, 1차 독자는 기자다. 기자가 어떤 문장을 쓰는지를 꼼꼼히 분석해야 한다. 만약 그랬다면 이런 보도자료를 만들 생각은 못했을 거다. 기자의 글쓰기는 간결체다. 짧게 쓴다. 이 보도자료는 1차 독자가 원하는 것과 거꾸로 가고 있다. 2차 독자인 도민에게도 마찬가지다. 이런 보도자료를 읽고 싶은 도민은 없을 것이다. 인내하며 읽더라도 무슨 뜻인지 곧바로 다가오지 않는다.
먼저 문장을 짧게 써야 한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너무 길다. 그러다보니 어떤 지자체가 상수도료를 내리는지, 어떤 지자체가 하수도료를 내리는지 한눈에 와닿지 않는다. 
내가 중요한 것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남을 배려하는 글쓰기가 필요하다. 이 보도자료에는 ‘인상을 심의 결정했으나 조례개정시 보류 결정했다’는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기자와 도민에게 필요하지 않는 내용이다. 공무원으로선 이런 심의 의결 사항이나 조례개정 사항이 중요하지만 독자는 그런 내용보다 올리는지 내리는지가 더 중요하다.
언론 문법에 맞춰 쓰는 것도 부족하다. 각 단체마다 글 쓰는 방식이 다르다.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보고서는 주로 ‘개조식’(個條式)으로 쓴다. 한자 의미를 보면, 낱 개(個), 가지 조(條)다. 가지를 하나하나 치는 방식이란 뜻이다. 개조식 글쓰기는 글을 쓸 때, 앞에 번호를 붙여가며 짧게 끊어서 중요한 요점이나 단어를 나열하는 방식이다. 개조식으로 쓸 때는 조사, 접속사, 접미어, 형용사 등을 최대한 쓰지 않는다. ‘~함’ ‘~임’ ‘~됨’과 같이 끝난다.
하지만 기자 글쓰기는 또 다르다. 명사로 글이 끝나는 게 아니라 문장으로 글을 맺는다. 표현 방식도 다르다. 연도를 쓸 때 개조식은 ‘2018.5.10.’ 이렇게 쓴다. 하지만 기자는 ‘2018년 5월10일’이라고 쓴다. 이 보도자료는 개조식에도 어긋나 있다. 날짜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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