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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준비해야 할 것은
[세계의 창] WTO 존립 위기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김종덕 jongduk.kim@kiep.go.kr

김종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무역투자정책팀장

 

   
▲ 2019년 1월24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호베르투 아제베두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연평균 약 7%에 이르던 한국 경제성장률은 4%대로 추락했다. 약 10년 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다시 한번 경제성장률 감소를 경험했다. 이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이 지났으며, 많은 경제학자가 위기를 논하고 있다. 단순히 10년 주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 세계경제의 앞길에 다양한 위기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중국의 경기 경착륙 가능성,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EU) 경제권의 불확실성 확대 등 여러 위기 요인 중 무역을 전공한 필자 눈에 가장 크게 띄는 것은 세계무역기구(WTO·World Trade Organization) 기능 정지 가시화다. 
2019년 9월까지 분쟁해결기구(Dispute Settlement Body) 상소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면 더는 새로운 분쟁 해결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분쟁 해결은 WTO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며 지난 70년간 전세계 무역이 보호주의 파고를 피해 순항하는 근간이었다. WTO 분쟁해결기구 기능 정지와 함께 지금까지 전세계 국가가 협력해 만들어온 다자통상 체제가 종언을 고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30년대 무역전쟁과 세계경제 갈등 상황을 언급하며 극단적인 경우 현재의 무역갈등이 국가 간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는 점에서 다자통상 체제의 중요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WTO 체제 성과와 한계
WTO 체제의 가장 큰 의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와 달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참여하는 국제 통상 질서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WTO 시작과 함께 서비스 규범과 지식재산권 규범의 확립, 분쟁해결기구와 무역감독 기능이 강화됐다. 정보기술협정(ITA)이나 정부조달협정(GPA), 무역원활화협정(TFA)은 무역 자유화 확대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이 성과의 대부분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유산으로 볼 수 있으며, WTO 체제는 새로운 다자 차원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 
총의(Consensus)와 일괄타결원칙(Single Undertaking Principle)이 중심이 된 WTO 지배구조는 결국 회원국 증가(현재 164개국)와 함께 다자통상 체제의 경직성 문제를 초래했다. WTO 출범 뒤 지속적으로 늘어난 분쟁(2018년 말 기준 574건)은 내용이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판결에 따른 갈등과 불만도 심화됐다. 이와 더불어 개도국과 선진국의 이해관계 대립이 심화되면서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 협상은 지난 18년간 타결되지 못했다.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WTO 체제 개편과 개혁 논의가 지금 이 시점에 주목받는 이유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 기조 변화에 기인한다. 미국은 ‘2018 무역정책 어젠다’ 보고서에서 다자통상 체제에 대한 불만을 구체적으로 표출하는 동시에 WTO 탈퇴를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미국의 WTO 탈퇴 의사 표명은 WTO 개혁 논의를 재촉발했다. 

WTO 개혁 논의 재점화
유럽연합·캐나다·일본 등을 중심으로 WTO 개혁안을 제출하고 있다. 제안서는 분쟁해결기구 개편, 보조금을 중심으로 한 투명성 강화, 중국 등 거대 신흥시장에 대한 개도국 특혜(special and differential treatment) 부여, 디지털경제 확산 등 글로벌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새 규범 확립 등 미국이 제기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문제 역시 기존 WTO 문제와 마찬가지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과 중국과 인도를 대표로 하는 개도국 사이 첨예한 이해 대립으로 논의가 진전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제기된 이슈를 해결하고 다자체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여 오히려 WTO 시대 종언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국의 대응 방향
한국은 1967년 GATT 체약국이 되었으며, 1995년 WTO 원년 멤버다. 1960년대 이후 수출 중심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한 한국에 세계경제 대국과 양자협상보다는 정해진 규범에 따른 다자협상이 세계시장 진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은 자타 공인 다자통상 체제의 최대 수혜국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자통상 체제 존립 위기를 마주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 다자통상 체제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현재 제기되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규범 중심 WTO 체제의 지속은 한국 경제의 미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WTO 존립과 관계없이 현재 제기된 주요 이슈는 대부분 계속 한국 경제가 마주할 도전 과제이므로, 해당 주제에 대해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국가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고 논의 과정을 모니터링해야 한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경제 수준에 부합하는 역할에 세계 각국의 기대가 커진다는 점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높은 수준의 협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향후 다자통상체제 변화를 준비하는 한 방안이다. 동시에 개도국과 지속적인 지역무역협정을 추진해 한국에 보호무역주의 조치를 할 유인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더 나아가 WTO 개혁 논의로 미뤄보건대 통상 문제가 점점 국내 경제와 제도에 직접 영향을 줄 것이므로, 글로벌 이슈를 다룰 수 있는 전문 인력 확보와 시스템 구축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마지막으로, 대외적 충격에서 사회 구성원이 잘 버텨나갈 수 있도록 적절한 사회안전망을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를 생각하면 한국의 위기대처 능력이 크게 향상됐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늘 그렇듯 최선의 대비가 늦은 후회보다 낫다. 

* 남·북·미 관계 개선, 점차 심화되는 보호무역주의와 미·중 통상 갈등,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제구조 변화 등 세계경제 환경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 제시와 선제적 정책 대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글로벌 경제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 인력을 갖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세계의 창’을 통해 전세계 경제 이슈와 해법을 보여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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