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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변모 이끈 바스크 전통
[Culture & Biz] 빌바오 재생의 비결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김윤지 yzkim@koreaexim.go.kr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 빌바오 전경. 빌바오는 제조업 도시에서 문화관광 도시로 변신해 재생에 성공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REUTERS

최근 도시재생에 관심이 크게 늘었다. 도시재생이란 산업구조 변화로 쇠퇴한 도시에 새 기능을 추가해 부흥을 꾀하는 도시사업을 뜻한다. 개항기 건축물과 일본식 가옥 등을 살려 근대문화유산 관광도시로 거듭난 전북 군산이나, 폐공장을 카페로 바꾸고 수제화 가게들을 거리 테마로 엮어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자리잡은 성수동 등이 도시재생 성공 사례로 꼽힌다. 선진국에서는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한 도시 확장 과정에서 생겨난 도심 공동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도시재생이 추진됐다. 옛 동독 지역의 낡은 건물을 박물관과 클럽 등으로 바꿔 가장 ‘힙한’ 도시로 변모한 베를린, 항구 산업 쇠퇴로 인구가 줄던 낙후 도시에서 유럽의 문화 수도로 재탄생한 영국 리버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도시재생 성공 사례에서는 ‘문화’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도시의 경제·산업적 기능만 커지고 주민은 소외돼온 현상을 바로잡는 것이 도시재생 목적에 담겼기 때문이다. 사람이 도시에 모이고, 관계 맺고, 소통하고, 공감하게 하려면 일자리뿐 아니라 문화가 필요하다. 그래서 도시재생 과정에서는 흉물로 변해버린 낡은 공장, 발전소, 기름탱크, 항만 등을 박물관이나 카페, 문화시설로 재활용해 가치를 높이는 ‘문화 업사이클링’이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도시재생이 화두가 되면서 많이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가 빌바오다. 스페인 북부에 있는 빌바오는 인구가 약 100만 명인 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다. 인구로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야 다음으로 많다. 한국으로 치면 대전이나 광주, 울산쯤 된다. 

한국인의 연수 성지 
빌바오가 도시재생 분야에서 주목받는 것은 ‘빌바오 효과’ 때문이다. 한 도시의 건축물이 그 지역 전체를 발전시키는 현상을 일컫는다. 빌바오는 한때 조선업과 제철업으로 번성한 공업도시였지만, 1980년대 이후 경쟁력을 잃으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1997년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구겐하임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면서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났다. 이후 세계적 건축물이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을 ‘빌바오 효과’라고 한다. 
낡은 도시를 살려내야 하는 도시재생의 과제에서 빌바오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성공 설화다. 특히 빌바오는 현재 우리가 힘겹게 부여잡고 있는 조선업, 철강업의 영광을 이미 거쳤던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쩌면 우리 미래도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실마리를 주기에 한 번 더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덕분에 빌바오는 최근 몇 년간 한국인의 연수 성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도시계획이나 문화관광을 고민하는 사람치고 한 번쯤 빌바오를 들여다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유력 대선 주자부터 전·현직 시장, 군수, 문화연구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까지 모두 빌바오를 방문해 성공 비결을 배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사람이 거쳐갔음에도 성공 이야기 사이사이 빈틈은 잘 메워지지 않았다. 유명 미술관을 들이기만 하면 도시를 바꿔낼 수 있을까. 구겐하임미술관이 아니라 작은 박물관 정도였으면 어땠을까. 제조업 도시를 관광 도시로 바꾸는 게 순조로웠을까. 일자리를 모두 서비스업으로 대체하는 데 문제는 없었을까. 자동차 공장이 폐쇄돼 을씨년스러운 한국의 지방 도시도 빌바오처럼 될 수 있을까. 
빌바오 시의원이자 도시계획 디렉터인 아시에르 아반자 로블스의 설명을 듣고 대화하다보니 몇 가지 의문이 쉽게 풀렸다. 먼저 빌바오 효과라고 알려진 것과 달리, 구겐하임미술관은 빌바오 도시재생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빌바오는 1970년대 중반부터 산업 경쟁력을 잃으면서 실업률이 30%까지 치솟았고 격렬한 파업도 잇따랐다. 1983년 대홍수로 시를 관통하는 네르비온강이 범람하면서 도심이 수몰된 탓에 급박하게 도시계획을 세워야 했다. 
이때 역사 보전, 강 생태 복원, 차별화된 문화도시 건설이라는 3대 목표를 세우고, 25년 동안 25개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계획을 세워 2010년까지 추진했다. 피폐해진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이라 초반에는 주거와 인프라 환경 개선이 중심이었다. 오염된 강을 살리고 항만시설을 확장하면서 도로와 옛 도심을 정비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 싶은 도시 환경을 만드는 것이 1차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1990년대 초 미국의 구겐하임재단이 악화된 재정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할 도시를 알아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겐하임재단은 미술관을 지어주면 미술품을 대여해주겠다며 일본 도쿄와 오사카, 러시아 모스크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등을 접촉했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때 후보지가 아니었던 빌바오시가 이 사실을 알고 구겐하임재단과 접촉했다. 도시 재건 과정에서 도시 상징으로 삼을 건축물을 지으려던 계획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조선업과 철강업이 떠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진 때라 일자리 창출이 시급했다. 그 상황에서 시정부가 미술관 유치에 1억유로(약 1283억원)를 들이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게다가 구겐하임재단은 유치 조건으로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 수준이 되어야 하고, 미술관에 전시할 다른 현대작품을 새로 사들이도록 요구했다. 시민 95%가 문화 종속과 예산 낭비를 우려하며 구겐하임미술관 유치에 반대했다.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로블스 디렉터는 “옳은 정책이라면 때로는 반대가 있더라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문화 투자가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하지만 바스크 국민당이 주축이 된 빌바오시 정부는 문화도시로 변모하려면 외부인을 끌어들일 랜드마크가 필요하다며 시민을 설득했다. 도시 자체를 완전히 탈바꿈하려면 새로운 ‘문화 브랜드’를 입혀야 한다는 논리였다. 

빌바오 성공의 배경
빌바오시도 무턱대고 덤벼든 것은 아니었다. 먼저 수요 기반을 계산했다. 구겐하임미술관은 현대미술 작품만을 전시한다. 관람 수요를 지속해서 유지하려면 외부 관람객이 필요하다. 현대미술 기호로 볼 때 프랑스라는 세계 최대 시장을 빼놓고는 수지가 맞지 않았다. 다행히 빌바오는 파리에서 직항으로 1시간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파리의 현대미술 관람객은 물론 프랑스 수학여행 학생들을 유치하기에 적당한 거리다. 버려진 토지를 빌바오시가 제공해 건축비를 줄이고, 각계각층에 재정을 분담하는 운영 계획을 세웠다. 
빌바오의 도시재생 과정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경제 전통이 흐르는 바스크 민족주의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 예로부터 분리주의가 강했던 바스크 지방은 19세기 말 산업혁명 때부터 영국에서 자본이 들어오고 공업과 금융을 발달시켜 경제 수준이 매우 높다. 현재 스페인에서 분리독립을 강하게 주장하는 카탈루냐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을 정도다. 민족적 차이도 있지만 이런 경제력 때문에 유럽에서 가장 과격한 투쟁을 하며 분리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다. 덕분에 바스크 지방은 카탈루냐도 갖지 못한 세금 자치권을 가졌다. 바스크에서 거둔 세금을 자체적으로 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장사로 번 돈을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함께 향유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기업가정신’도 강하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경제가 바스크 지방에 뿌리내린 것도 이런 전통 덕분이다. 그 영향으로 민관 파트너십, 경제문제 해결 때 사회 화합을 강조하는 성향도 다른 지방보다 강하다. 
빌바오시는 이런 전통 위에서 도시재생과 미술관 유치에 필요한 재원을 민간과 적극적으로 분담하고 계획도 함께 세웠다. 사실 미술관은 건립보다 운영이 더 어렵다. 세계 유수 미술관도 부자들의 재정 지원 없이는 생존이 쉽지 않다. 스페인에는 이런 지원을 할 독지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빌바오시는 바스크 지방 기업들이 구겐하임미술관 운영비의 25%를 지원하도록 합의를 끌어내 수익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1997년 프랭크 게리의 아름다운 건축물로 탄생한 구겐하임미술관은 반짝이는 티타늄 외관만큼 성과도 눈부시다. 먼저, 개관 3년 만에 건설비를 회수했다. 1991년 당시 투자금 회수를 위한 연간 관람객 수를 50만 명으로 추정했는데, 현재 130만 명이 방문한다. 방문객 85%는 외부인이다. 숙박·요식업에서 연간 2조원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호텔 건립과 크루즈 방문, 컨벤션 유치가 늘면서 일자리도 4천여 개 생겨났다. 철강업 전성기 시대 수준이다. 
번듯한 건축물 하나가 있다고 모두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시설이 계속 생명을 유지하도록 재정 구조를 갖춰야 하고, 도시를 브랜드화하는 마케팅 능력도 필요하다. 민간의 힘도 적극적으로 빌려야 하고, 주민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정치력도 필요하다. 빌바오를 다녀간 수많은 한국 정치인과 연수단은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역시 중요한 건 많은 조감도와 화려한 사업 전·후 비교 사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 김윤지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한 경제주간지 <Dot21> <Economy21>에서 산업부·경제부 기자를 했고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대기업 종속성과 관련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서 정보기술(IT) 산업, 문화콘텐츠 산업, 중소기업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연재를 통해 문화산업을 경제학의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하고 접근해갈 계획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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