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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폴 스미스
[김미영의 브랜드 읽어주는 여자]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김미영 kimmy@hani.co.kr

김미영 부편집장 

 
▲ 폴 스미스, 멀티스트라이프 패턴의 반바지와 신발. 폴 스미스 제공

갈색, 노랑, 분홍, 청록, 주황, 검정, 빨강, 하늘, 회색…. 24가지 색상의 굵기가 다른 선 86개가 반복되며 독특한 조합을 이루는 ‘멀티스트라이프 패턴’은 버버리, 비비안웨스트우드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폴 스미스’(Paul Smith)를 언급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다. 멀티스트라이프 패턴은 넥타이, 가죽류(가방과 지갑 안쪽), 셔츠, 향수 등에 쓰이면서 ‘영국 정통 스타일에 위트와 유머를 가미한’ 폴 스미스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양이기도 하다. 

완벽한 우연
1997년 영국의 유명한 소형차인 로버미니(Rover MINI)로부터 협업을 제안받고 차를 장식할 패턴을 찾던 중 우연히 막대기에 실을 감다가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레인보(무지개) 패턴’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데,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폴 스미스가 직접 수작업으로 이 패턴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강렬한 원색과 차분한 무채색이 독특한 조합을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베이식한 스타일을 고집하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표현하고 싶은 이들이 즐겨 찾는다. 1997년 폴 스미스 남성 컬렉션에서 셔츠에 처음 이 패턴을 적용한 뒤 메신저백, 지갑, 티셔츠 등 다양한 패션 아이템에 응용하고 있다. 폴 스미스는 2년 뒤 멀티스트라이프 패턴을 곡선으로 응용한 스월(소용돌이) 패턴까지 고안했다. 
브랜드 설립자인 폴 스미스가 패션에 입문한 계기는 우연이었다. 1946년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난 그는 15살에 학교를 그만둔 뒤, 계획 없이 보내다 이듬해부터 아버지에게 떠밀려 인근의 작은 의류창고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프로사이클 선수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일은 영 관심 밖이었다. 하지만 그는 17살에 겪은 끔찍한 자전거 사고로 꿈을 접게 된다. 
6개월 입원 생활이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이때 새로 사귄 친구들과 펍에서 자주 어울렸는데, 우연히도 만남의 장소가 예술학교 학생에게 인기가 많았던 곳이었다. 자연스레 피터르 몬드리안, 앤디 워홀, 오스카어 코코슈카, 데이비드 베일리에 대해 토론했고, 롤링스톤스, 마일즈데이비스 등 여러 음악을 함께 들었다. 이때 폴은 자신이 이 화려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 세계의 일부분, 특히 패션디자인 열정을 키우고 싶다는 것을 확신했다. 이후 의류창고에서 일하며 자신만의 패션 사진을 만들었고, 밤에는 재단 수업을 들으며 본격적으로 패션 공부에 매진했다. 

디자이너로 변신
1967년 고향을 떠나 런던의 고급 수제 양복점 거리로 유명한 정장 스타일인 새빌로에 있던 ‘링크로프트 킬고어’(Lincroft Kilgour)에 취직했다. 이를 계기로 인생과 패션의 동반자이자 뮤즈를 만나는데, 왕립예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폴린 데니어(현재 부인)에게서 폴은 패션에 대한 많은 영감을 받는다. 1970년 약혼한 두 사람은 600파운드를 함께 투자해 노팅엄에 ‘남성을 위한 정장’(Veste Pour Homme) 간판을 단 첫 부티크를 열었다. 폴 스미스 브랜드의 시작이다. 

독특한 디자인
초창기에는 일본 패션디자이너인 다카다 겐조와 영국 디자이너 마거릿 하월의 의상 등을 수집해서 팔았다. 4년 뒤인 1974년부터 자체 패턴과 색상을 적용한 남성복을 제작했다. 그 인기에 힘입어 1976년 자기 이름을 딴 ‘폴 스미스’라는 남성복을 파리 패션위크에서 처음 선보였다. 3년 뒤 런던 플로럴가에 폴 스미스의 첫 번째 브랜드 매장을 열고, 1982년에는 애버리로에 두 번째 매장을 여는 등 이후 영국 내 매장을 연이어 열며 유통망을 꾸준히 확장했다.
“나는 절대 패션잡지를 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보는 걸로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 않다.” 다시 말해, 엉뚱함과 기발함, 독특하면서도 창의적인 것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이는 폴 스미스 브랜드가 가장 영국적인 스타일에 창의성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이유기도 하다. 폴 스미스는 이런 ‘최고의 테일러링과 단 하나의 앤티크’를 결합한 절충적인 디자인 철학을 옷에 반영했다. 모던하고 베이식한 디자인의 슈트에 화려한 원색을 대담하게 가미하거나, 독특한 소재를 활용하고 포켓·버클 등 디테일을 변주해 독특함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그래서 전형적인 영국의  정장 스타일인 새빌로 패션을 추구하는 폴 스미스의 디자인은 ‘클래식 위드 트위스트’ ‘클래식의 변형’ ‘위트 있는 클래식’ 등의 키워드로 해석된다.
40여 년의 브랜드 역사를 자랑하는 폴 스미스는 전세계인에게 최고의 영국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일본에서 성공이 주효했다. 1984년 글로벌 시장 중 일본에 가장 먼저 진출했는데, 영국 패션디자인의 대명사로 알려지며 큰 성공을 거뒀다. 현재 일본에 200여 개 매장이 있다. 일본은 해외 매출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폴 스미스에 중요한 시장이다. 일본 시장은 현재까지 폴 스미스가 직접 매장과 디자인 콘셉트, 매출 전략을 챙길 정도로 정성과 애착을 쏟는 곳이다. 폴 스미스는 일본 시장 성공에 힘입어 영국(17개 매장) 외에 미국 뉴욕,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중국 베이징, 홍콩, 싱가포르, 타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한국 등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에 진출했다. 

일본에서의 성공
사업 영역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1990년대 들어 남성복 외에 아동복(‘폴 스미스 주니어’)과 여성복(‘폴 스미스 우먼’) 브랜드를 론칭했고, 안경·시계·신발·액세서리·향수·생활용품(카펫과 자기) 등을 선보였다.
브랜드에서 창업자 폴 스미스의 존재감은 매우 크다. 옷을 디자인하고, 원단을 고르고, 매창 위치를 선정하는 등 회사의 모든 안건을 총괄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실제 브랜드 성장에는 패션뿐 아니라 대중문화 트렌드를 예상해 만들어가는 폴 스미스의 탁월한 사업 감각이 크게 작용했다. 브랜드 폴 스미스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 ‘94학번’으로 1990년대 중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유분방하고 개성을 추구하던 동시대의 문화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추구하던 ‘X세대’ 문화를 직접 겪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처럼 신세대의 마음가짐으로 젊고, 멋스럽게 나이 들기를 바란다.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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