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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국민 설득 협상 정치 통했다
[People] 위기의 마크롱- ② 위기를 기회로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율리아 아말리아 하이어 economyinsight@hani.co.kr

율리아 아말리아 하이어 Julia Amalia Heyer <슈피겔>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압둘팟타흐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REUTERS

2019년 1월27일 이집트 나일강변에 위치한 호텔 ‘소피텔 카이로 나일 엘 게지라’는 온통 프랑스 국기 색깔 조명으로 빛났다. 이집트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그의 아내 브리지트가 이곳에 투숙했다. 이날 저녁 한 작은 방에 마크롱이 기자 10여 명을 앞에 두고 앉아 있었다. 그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대화할 기회를 갖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원래 마크롱은 대동한 기자들에게 외국 방문 배경을 잘 설명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언론 앞에서 말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 취임 이래 그의 모토였다. 하지만 언론 접촉을 줄이려 했던 그가 이제는 점점 더 빈번하게 설명해야 하고, 외부에 보이는 자신의 이미지를 수정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지난 몇 달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시간은 ‘모든 것이 저절로 손안으로 굴러오는 행운의 소년’쯤으로 치부됐던 마크롱을 ‘작은 성공을 위해 기꺼이 투쟁해야 하는 투사’로 바꿔놓았다. 한 기자가 물었다. “대통령님,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폴리크라테스의 반지’를 아십니까?”(운이 좋은 폴리크라테스를 마크롱에 빗대어 그의 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노란 조끼 운동이 나타난 것 아니냐는 뉘앙스를 담은 질문으로 보인다 -편집자)
마크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질문을 좋아한다. 교통 속도 제한이나 주거세에 대한 질문보다 훨씬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마크롱도 책에서 읽은 명언을 인용하는 것을 즐긴다. 
“마크롱, 노란 조끼는 신들의 복수인가요?”
마크롱이 몸을 앞으로 구부리고 손을 무릎 위에 놓으며 답했다. “아니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걷어낸 그가 말했다. “지금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사태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고, 다양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싸워야 변혁이 일어납니다.” 
이 분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을 해석하는 방식으로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당신 자신과 통치 스타일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마크롱 얼굴에 얼핏 분노가 스쳤다. 누군가 그에게 계속 캐묻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해서 괴롭게 되는 것에 익숙지 않은 듯 보였다. “아니요.” 마크롱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어서 조금 유화적인 태도로 말했다. “나 또한 대선 승리로 무너뜨리려고 했던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프랑스 사람은 매우 정치적인 민족이고, 지금 프랑스에 필요한 것은 차분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휴식 시간입니다.”

행운의 소년에서 투사로 변신
다음날인 1월28일, 마크롱은 이집트 대통령궁의 화려한 원형 홀에 서서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집트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거론했다. “국가 안정은 인권과 분리될 수 없다”며 “이집트 인권 상황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말에 대한 시시 대통령의 표정을 읽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지막으로 기자들에게 질문 두 개가 허용됐다. 한 이집트 기자가 비아냥대는 어조로 물었다. “프랑스의 안정은 어떻게 된 것이냐?”
‘노란 조끼’가 헬리오폴리스(이집트 고대도시)까지 그를 쫓아온 것이다. 언론 자유에 대한 그의 발언에 프랑스 기자석에서도 신랄한 말이 터져나왔다. 마크롱과 프랑스 언론의 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마크롱 경호원이 경찰 진압 장비로 시위에 참가한 시민을 폭행했을 때, 마크롱은 “기자들이 더는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 사건은 수개월간 계속된 마크롱의 정치적 위기를 예고하는 서막이었다. 마크롱은 자신이 오만하다고 인식되는 이유가 대부분 언론의 잘못 때문이라고 믿는다. 언론이 그를 그렇게 묘사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르몽드>와는 예전부터 적대적인 관계였다. 대통령선거 때부터 <르몽드>가 마크롱을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언론 시스템 밖에서 활동하는 ‘아웃사이더’로 지칭한 당사자는 마크롱 자신이다. 
대선 과정에서 마크롱의 급부상에는 역설적이게도 언론이 한몫했다. 2년간 전임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경제장관으로 일하면서 그는 다른 장관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마크롱도 그것을 원했다. 당시 정부 지지율이 매주 최저치 기록을 경신하는 중에도 마크롱의 인기는 계속 올라갔다. 

 

 
▲ 2019년 2월7일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에탕쉬르아루에서 '국민 대토론'의 하나로 청소년과 토론했다. REUTERS

대중과 언론 회피… 지지도 하락 결정타 
대선 후보 마크롱은 사생활이 사적인 일이라면서도 아내, 손자 그리고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홈스토리를 위한 사진 촬영을 했다. 대통령이 된 지금은 오직 전속 사진사만 동행하게 하고, 악명 높은 파파라치 여왕 미미 마르샹의 에이전시에 초상권 관리를 맡겼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에 설치된 엘리제궁 본관 기자실을 폐쇄하고, 기자실을 별관으로 내보냈다. 
그가 대통령이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마크롱은 많은 것을 전임자와 다르게 처리했다. 자신이 계획했던 것과도 다른 방식이었다. 그는 대통령직을 어떻게 수행할지 많이 숙고했을 것이다. 문제는 더 계층적이고, 더 거리감 있게 승자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판단하는 데 있다. 위계질서를 강조하고, 국민에게 친근한 모습이 아닌 위화감을 지닌 귀족적인 태도로 군림하려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그는 올랑드 정부 시절보다 과묵하고 단단한 모습을 보여줘야 높은 인기를 이어갈 수 있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통령 임기 2단계, 즉 위기의 서막을 알린 건 마크롱이 아니었다. 그를 반대하거나 증오하는 이들이었다. 첫해는 열광 속에 지나갔다. 마크롱은 슈퍼스타였고, 그는 유럽의 미래 또는 다자주의의 미래에 관한 길고 엄숙한 연설로 이에 부응했다. 그가 새로운 시각으로 설명해야 할 이슈가 항상 있었다. 마크롱의 통치는 신이 하는 것 같아야 했다. 절대로 그 이하이면 안 됐다. 처음에는 전세계 사람이 그의 스타일에 호감을 표했다. 연설할 때 큰 제스처를 보이는 이 젊은 남성은 이전 대통령보다 더 자주 프랑스 국민과 전세계의 관심을 받았다.  
전임 대통령들이 수년 걸려도 못하던 일을 마크롱이 불과 몇 개월 만에 해냈다는 것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는 프랑스를 현대적인 국가이자 훌륭한 아이디어를 지닌 유럽의 지도자 국가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미국 외교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마크롱이 샤를 드골, 프랑수아 미테랑에 필적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모든 면에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도 “프랑스가 모든 기대를 넘어섰다”며 “거의 단독으로 전반적인 쇄신에 성공했다”고 칭찬했다. 
모든 것이 너무 많았다. 칭찬도, 그의 연설도 너무 많았다. 프랑스 시민은 마크롱이 과거와 단절을 약속했기에 그를 지지했다. 그의 주장은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백지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가 ‘앙마르슈’(En Marche·전진) 운동을 주창하고 대선 입후보 의향을 노골적으로 내보인 것을 두고, 시민은 마크롱을 여전히 자신의 수양아들이라 칭했던 굼뜬 전임자와 단절을 의미한다고 여겼다. 마크롱은 기존 지도체제를 쓸어버릴 디스럽터(Disruptor·새로운 발상과 신기술로 기존 시장 판도를 뒤흔든 기업)였다. 마크롱은 변화, 참여, 일자리를 약속했다. 반대로 그와 프랑스 시민이 원치 않았던 것은 대기업 경영자처럼 말하고 전제군주처럼 행동하는 남자를 우두머리로 세우는 것이었다.   
현재 프랑스 국민 3분의 2가 마크롱이 변하길 바란다. 그의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성격이다. 마크롱은 또 다른 아이디어와 연설을 이어가면서, 독일 외교관들조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변덕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대신 그를 향한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마크롱이 할 일은 충분하다. 그가 실시했던 전국적인 대토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구체적인 결과를 도출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시민이 제안한 수천 개 발의안을 수용하고, 토론 참가자 수만 명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인가 말이다.  
마크롱을 혐오하는 프랑수아 뤼팡은 자신이 만든 마크롱 증오 전단에서 대통령 얼굴이 여전히 젊어 보인다는 것이 놀랍다고 표현했다. “다크서클이나 주름은 고사하고 여드름도 하나 없다”며 “마크롱 얼굴에선 보통 사람 얼굴에서 보이는 실망과 고통의 흔적, 즉 인간적인 어떤 것을 찾을 수 없다”고 평했다. 하지만 뤼팡은 이제 안심하고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대통령직은 마크롱 얼굴에 흔적을 내지 않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집권 2년차에 국정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당사자는 마크롱 본인 말고는 없다. 대중은 그가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지지자로만 이뤄진 집단 안에서 국가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주변에 둬야 한다는 것을 마크롱도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선 시절부터 가장 가까운 측근이던 보좌관 두 명을 물러나게 한 것이 한 예다.
얼마 전까지 엘리제궁 사람들이 마크롱 대통령이 워낙 훌륭해서 인기가 높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야 이런 관점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국가수반이 하는 일에 국민도 동의한다면 충분히 인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월의 어느 날, 에마뉘엘 마크롱이 땀에 젖은 셔츠의 소매를 접은 차림으로 부르고뉴 지방의 한 체육관 안에 서 있다. 그 주위에 청소년 수백 명이 모여 있다. 3시간 이상 직업교육 과정과 원자력, 대의민주주의 가능성과 국민 투표의 장점을 토론한 직후라 장내 사람들이 매우 지쳐 있었다. 한 사람만 빼고 말이다. 보좌관이 손짓으로 마크롱에게 이제 끝낼 시간이 되었다고 알리자, 그가 보좌관에게 이렇게 외쳤다. “조금만 더 계속해도 될까요? 가능하죠?” 
그에게는 항상 많은 행운이 뒤따랐다. 이제 그는 싸울 줄도 안다. 

* 2019년 5월호 종이잡지 105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13호
Kind des Zorns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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