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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로 돌아온 왕자 이제 대중과 싸워라
[People] 위기의 마크롱- ① 추락한 인기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율리아 아말리아 하이어 economyinsight@hani.co.kr

율리아 아말리아 하이어 Julia Amalia Heyer <슈피겔> 기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아내 브리지트 마크롱이 파리 엘리제궁에서 웃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균형 잡힌 윤곽, 반듯한 코, 각진 턱을 가진 남성이 항상 나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 그는 마치 우편주문 책자 모델인 것처럼 어디서나 포즈를 취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싫어하는 프랑수아 뤼팡이 쓴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마크롱을 향한 혐오감을 찾으려면 굳이 행간을 읽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생각이 문장에 직설적으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뤼팡은 마크롱에 대한 혐오를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생리적인 것’이라고 표현한다. 마크롱에게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뤼팡에 의하면 이 증오는 정치적 사실로 굳어졌다.
다큐멘터리 작가이자 감독인 뤼팡은 마크롱보다 두 살 많고, 마크롱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북부 아미앵 출신이다. 최근 출간한 <당신이 모르는 이 나라>(Ce pays que tu ne connais pas)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에서 뤼팡은 마크롱과 자신의 약력을 엮어 풀어냈다. 2017년 마크롱이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됐을 때, 뤼팡은 급진좌파정당 ‘복종하지 않는 프랑스’(France Insoumise) 소속 의원으로 국회에 들어왔다. 이전에도 두 사람은 계속 마주쳤다. 뤼팡은 2016년 파리 공화국 광장에서 밤새워 토론했던 ‘밤샘시위’(Nuit-debout) 운동의 대부가 됐다. 밤샘시위는 2018년 11월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의 효시로 인식된다.
마크롱을 싫어하는 뤼팡의 과장된 방식은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청사진처럼 보인다. 프랑스는 지금 무언가를 원천적으로 증오하고 있다. 증오 대상은 부자이거나 경찰, 유대인, 국회의원, 마크롱일 수도 있다.  
현재 프랑스는 제5공화국 최연소 대통령이 선출된 지 2년여가 흐른 시점이다. 마크롱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던 날 저녁, 사회 통합을 재차 약속했다. 하지만 그가 하나로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분열됐다. 어쩌면 이전보다 더 분열됐을지도 모른다. 
전임 대통령과 모든 것을 달리하려 한 마크롱은 현재 자신이 언제라도 부서질 수 있는 얇은 살얼음판 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잘 안다. 그가 측근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반론을 제기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든 것이 항상 저절로 자기 손안에 굴러오는 것으로 인식했던 그가, 이제는 전심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마크롱을 알던 사람들은 그가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마크롱은 상황이 어려울 때 특히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2년을 앞두고 위기에 봉착했다. 발단은 2018년 11월 유류세 인상 발표를 계기로 촉발된 '노란 조끼' 운동이다. REUTERS

임기 2년차 살얼음판을 걷다
마크롱은 임기 2년차를 맞으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대통령직을 인수할 때만 해도 그는 예전부터 오랫동안 꿈꿔온 현대 영웅의 서사시처럼 임기를 시작했다. 평균 이상의 재능을 지닌 젊은 남성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모든 저항을 이겨내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2017년 5월 승리의 순간, 39살 에마뉘엘 장미셸 프레데리크 마크롱은 파리 루브르박물관 안마당에 마련된 연단에 서서 “여러분에게 언제나 진실만을 말할 것”이라며 “프랑스인이 다시 자기 자신과 화해하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가능해 보였지만, 지금 현실은 다르다. 마법은 사라졌고, 그는 이제 싸워야 한다. 2019년 2월 마크롱이 탄 리무진이 부르드페아주 다목적홀 앞에 멈추었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뒤였다. 이곳은 발랑스의 떼제베(TGV)역 뒤편에 위치한 변두리로 프랑스 사회의 굴절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지난 몇 개월간 마크롱을 궁지에 몰아넣은 시위, 노란 조끼 운동의 원인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노란 조끼 운동 참여자가 다양한 요구를 쏟아냈지만, 무엇보다 이들은 대통령 마크롱을 반대한다. 다목적홀 안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과 대화하는 상황을 알지 못한 채 행사에 참여했다. 몇몇 사람은 노란 조끼를 입었다.
노란 조끼 시위가 격화되자, 2018년 12월 마크롱은 프랑스 국민에게 2개월 동안 전국적으로 진행하는 ‘국가 대토론’을 제안했다. 그는 연금 수령자, 청소년, 시장, 주지사와 대화하고 전국의 지식인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새벽 2시까지 ‘서사적 정체성’과 ‘응고된 정체성’의 차이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부르드페아주뿐 아니라 에탕쉬르아루, 그랑 부르트룰드, 수야크 등을 방문했다. 마크롱은 지속적으로 시민과 만나고, 대화를 나뤘다. 토론은 마크롱의 무기다. 국가 대토론은 노란 조끼 운동의 해독제이이자, 마크롱을 증오하는 이들을 겨냥한 진정 명령인 셈이다. 부르드페아주에서는 마크롱의 이 치료법이 효과를 나타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를 맞이한 시민이 행사 마지막에는 큰 박수로 그를 떠나보냈다. 심지어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들도 박수를 치며 만족해했다.
마크롱이 반대자와 눈을 마주치는 상황이라면 이미 그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했다. 마크롱은 “여기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 헌법은 수백만 명이 조금씩 끄적이는 것을 연습할 수 있는 글쓰기 연습장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나는 여러분의 분노에 귀 기울이고 있다” “여러분의 분노를 존중한다”고 여러 차례 수위 조절을 했다. “그럼에도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거나 “나는 마법 지팡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로 대화 주제에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마크롱이 노란 조끼를 입은 한 남성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그는 (마크롱에게) 투표하지 않았으며, 투표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마크롱은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갑자기 불만족스럽다고 도로 교통을 차단하는 것은 절대로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위버퍼포머, 무대 위 왕자’, 마크롱이 돌아온 것이다(원문은 ‘der Überperformer(위버퍼포머), die Rampensau(무대조명 암퇘지)’, 즉 일반적인 연기자를 뛰어넘은 초연기자, ‘무대조명 속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자’라는 뜻 -편집자). 다음날 파리 일간 <르몽드>는 헤드라인 제목으로 ‘마크롱이 선거기간으로 돌아갔다’고 게재했다. 칭찬이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그렇듯, 마크롱에게도 승리의 여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승리 이후 패배가 뒤따르기도 한다.
3월16일, 그의 ‘대토론’이 종결된 다음날 폭력 사태가 새로운 정점에 이른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위대의 방화로 샹젤리제 거리의 신문 가판대 여러 곳이 불길에 휩싸였고, 수많은 상점이 약탈당했다. 과거 니콜라 사르코지가 선거 승리를 축하했던 고급 레스토랑 푸케는 재난영화 세트장 같은 모습으로 변했다. 대토론이 시작된 뒤 노란 조끼 운동이 잠잠해지고,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줄어들었지만 폭력은 한켠에 남았다.
다른 한편에서는 프랑스 국민 수만 명이 사회 참여, 온난화 대책, 에너지 전환에 대해 몇 주간 평화롭게 토론했다. 이들은 프랑스 사회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지, 국민을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지를 놓고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다. 마크롱의 대토론은 성공했다. 마크롱 본인에게도 성공적이었다. 그가 전 국토를 누비며 국민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지율은 상승했다. 
소설가 에마뉘엘 카레르는 마크롱 인물평에서 “그는 의자마저도 유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한쪽에서는 그를 향한 반감이 크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감탄이 그칠 줄 모른다.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전임 대통령 때도 그랬다. 다른 점이라면 호불호가 너무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사람들이 마크롱에게 물어보면 그 자신은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일차적 원인은 마크롱 본인에게 있다. 

* 2019년 5월호 종이잡지 102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13호
Kind des Zorns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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