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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과의 전쟁’ 10월이 분수령
[Cover Story] 지금은 페이 시대- ③ 일본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박중언 parkje@hani.co.kr
     
     


도쿄(일본)=박중언 부편집장 

 

 
▲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자주 찾는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라옥스 매장 입구의 안내 간판에 사용 가능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등이 표시돼 있다. 박중언 기자

4월 초 찾은 일본 도쿄 시내 전자제품의 메카 아키하바라 상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으로 북적거렸다. 깃발을 든 중국인 여행 가이드는 익숙한 듯 크고 빠른 목소리로 쇼핑 요령을 설명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시간에 쫓긴 관광객들이 넓은 점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전자제품을 잔뜩 주워 담은 이들이 내민 것은 다양했다. 빳빳한 1만엔 지폐와 신용카드 그리고 스마트폰이었다. 이 일대 대부분 가게에는 일본과 중국의 모바일 페이와 구글·애플페이를 쓸 수 있다는 안내문이 정보무늬(QR코드)와 함께 계산대 등에 붙어 있었다.
가전제품과 디지털 기기, 피규어를 파는 에디온아키바의 다카하시 매니저는 모바일 페이 사용자 대부분이 중국인이라고 밝혔다. 일본인 고객들은 2018년 12월 이른바 ‘페이페이 대란’ 때만 반짝 사용하는 데 그쳤다고 한다. 페이페이 대란이란 일본 대표 정보기술(IT) 기업인 소프트뱅크와 야후재팬이 설립한 간편결제 업체 페이페이가 ‘100억엔(약 1천억원) 환원 캠페인’을 벌였을 때 일어난 큰 소동이다. 

고강도 마케팅
모바일 페이 후발 주자인 페이페이는 사용자를 늘리기 위해 자사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결제하면 25만엔까지 결제액의 20%를 돌려주는 ‘통 큰’ 마케팅에 들어갔다. 빅카메라, 야마다전기 등 대형 가전매장의 값비싼 제품들이 동나다시피 했고, 포장도 뜯지 않은 상품이 중고 사이트에 넘쳐났다. 소비자로선 10% 안팎의 가전매장 자체 포인트와 합쳐 30%가량 할인받는 셈이어서 쇼핑 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캠페인 자금 100억엔은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소진됐다.
페이페이의 이런 ‘고강도 충격요법’은 거대 디지털 플랫폼의 전형적 마케팅 방식이다. 소프트뱅크가 일본 3대 통신회사의 하나로 발돋움할 때도, 야후재팬이 일본 포털업계를 장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국민 모바일 메신저’ 라인을 기반으로 한 라인페이 등 경쟁업체도 페이페이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보상환급(페이백) 마케팅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페이페이의 2단계 100억엔 마케팅은 한결 정제됐다. 캠페인 기간에 한 사람이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을 20만엔에서 5만엔으로 줄이고, 1회 구매 때 환급 상한도 크게 낮췄다. 이와 함께 충전식 페이페이 계좌, 야후 전자지갑, 등록된 신용카드 등 결제에 쓰이는 계좌에 따라 보상에 차등을 뒀다. 돈 흐름이 페이페이 계좌를 통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도쿄 중심가 히비야파크 위워크 공유사무실에서 만난 마에다 마사시 페이페이 홍보 담당자는 “넉 달 만에 400만 명이 회원 등록을 했다”며 “야후재팬 전례에 견줘 마케팅 결과와 진행 상황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1단계 목표는 모바일결제와 함께 페이페이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2단계는 페이페이가 일상으로 파고들도록 하는 데 있다. 보상환급 한도 대폭 제한도 그런 취지다. 모바일결제 열풍은 식었지만, 결제가 많이 되는 장소는 대형 가전매장에서 로손·패밀리마트 등 편의점으로 바뀌었다.   

 

 
▲ 도쿄 시내 빅카메라 유라쿠초점에서 무선 이어폰을 산 일본 여성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대금을 내고 있다. 박중언 기자

현금 사랑 유전자
일본인의 현금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선진국 가운데 현금결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3천조원이 넘는 가계지출에서 카드결제 비중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90% 가까운 한국과 정반대다. 일본 정부가 ‘현금 없는(캐시리스) 사회’라는 구호를 내걸고 ‘현금과의 전쟁’에 나선 이유다. 2025년까지 무현금결제 비중을 40%로 높이는 것이 1차 목표다. 애초 2027년으로 정한 목표 달성 시한을 2018년 봄에 2년 앞당겼다. 일본 정부는 탈세 방지와 소비 촉진 효과를 기대한다.
모바일결제 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은 뿌리 깊은 현금 사용 습관이다.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장롱 현금’이 대표적이다. 특히 자산이 많은 고령자들은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있는 신용 거래는 물론 은행도 꺼린다. 이자를 기대하기 힘든 초저금리와 문턱이 높은 일본 은행의 카드 발급 관행도 여기에 한몫한다. 
또 일본인들은 빚을 두려워한다. 카드 사용이 ‘빚내서 하는 소비’라는 인식이 강하다. 소비대국인 미국에서 흔한 카드 파산이 반면교사다. 한 달 지나 결제되는 신용카드는 꼼꼼히 챙기지 않으면 정확한 사용 규모를 알기도 쉽지 않다. 현금이 역시 가장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금인출기가 곳곳에 있고, 치안이 좋아 현금 사용에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 결제 습관을 바꿀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셈이다. 전철역, 동네 음식점, 주점(이자카야) 등 도쿄 시내 여기저기를 다녀보면 정장 호주머니에서 동전지갑을 꺼내는 회사원도 적잖이 눈에 띈다. 동전 거래가 필요한 곳이 여전히 많고 지방에선 더 심해 신용카드 확산이 더딘 것이다.
일본인 고객이 많이 찾는 도쿄역 부근 빅카메라 유라쿠초점에선 모바일 페이 사용자를 이따금 볼 수 있었다. 유에스비(USB) 메모리를 구입한 20대 중반 스즈키는 “6개월 전쯤부터 애플페이를 쓰고 있다”며 “손에 든 휴대전화로 처리할 수 있는데 지갑에서 돈을 넣고 빼는 건 귀찮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이페이나 라인페이를 잘 쓰지 않는 데 대해 △아직 덜 알려져 있고 △운영체제(OS) 내장형인 구글·애플페이에 비해 불편하고 △해당 계좌에 돈을 충전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JR동일본의 모바일스이카로 결제한 30대 후반 고바야시는 전용 모바일 페이로는 교통 요금을 내지 못해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페이페이 관계자도 돈을 일단 계좌에 충전하고 나면 현금으로 되찾지 못하는 점을 가장 큰 고객 불만으로 꼽았다. 대금 지급과 계좌 송금은 가능하지만 현금 인출은 불가능한 것이다. 기부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간편결제 목적을 벗어난 불법 자금 이동이나 돈세탁 등을 막기 위한 조처가 모바일 페이 확산에는 장애 요소다.   

경쟁과 협력의 이중주 
페이페이 진입 이후 일본 모바일 페이 업계의 경쟁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자상거래의 대명사인 라쿠텐페이와 라인페이가 앞선 상황에서 페이페이가 맹렬한 추격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통신회사 엔티티도코모의 디(d)페이와 스타트업 오리가미페이 등도 있다. 간편결제 업체들의 기술과 서비스에선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결국 사용자를 늘리는 마케팅에서 승부가 갈릴 전망이다. 
사용자와 거래금액 1위를 목표로 내건 페이페이의 움직임이 가장 눈길을 끈다. 자금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벤처 자본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실탄’을 얼마든지 쏟아붓겠다는 태세다. 손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는 한국에서도 연간 영업적자가 1조원에 이르는 쿠팡에 3조원 넘게 투입했다. 소프트뱅크와 야후재팬이 가진 수천만 명의 사용자 인프라,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영업망과 영업 노하우도 페이페이의 무기다.  
하지만 사용자를 장악한 현금의 강고한 아성을 무너뜨리는 싸움이 우선이다. 페이페이의 마에다는 “지금으로선 각사가 총력전을 펼쳐 사용자의 지급 습관이 모바일로 옮겨오도록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체 결제시장의 80%’라는 거대한 미개척 영토가 있으니 경쟁자보다 동업자 인식이 더 강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2020년 공동으로 같은 서비스를 내놓을 1300여 개 은행·신용금고와도 상당 기간 협력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금 사용 습관이 뿌리 깊지만 시장 전망은 어둡지 않다. 업계에서는 모바일 페이가 자리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본다.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젊은이들이 현금과 동전지갑을 갖고 다니는 불편을 언제까지 감수하면서 모바일 페이를 마다하겠느냐는 것이다. 여느 플랫폼 사업이 그렇듯이 아무리 많은 적자가 나더라도 사용자 기반만 확보하면 나중에 웃을 수 있다. 신용카드 비중도 낮아 모바일결제가 대세가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페이 업계는 기대한다.

소비세 인상 이후? 
업계에선 무엇보다 2019년 10월 소비세 인상을 손꼽아 기다린다. 10월1일부터 소비세가 8%에서 10%로 오른다. 정부는 소비 위축을 우려해 중소 소매점에서 스마트폰이나 신용카드 등 현금 이외 수단으로 결제할 때 구매액의 최대 5%를 돌려주기로 했다. 이 정책은 9개월 동안 지속된다. 세금 환급이 모바일 페이 확산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10% 안팎의 포인트가 흔한 대형 가전매장과 달리 동네 생필품 가게에서 5% 할인은 적지 않은 혜택이다.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이면 일단 모바일 페이를 쓸 것으로 보인다. 가게들 또한 손님을 놓치지 않으려면 페이 가맹점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금전적 혜택이 사라졌을 때, 사용의 편리함이 일본인의 현금 본능을 넘어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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