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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없던 곳에 신용생태계 만들다
[Cover Story] 지금은 페이 시대- ① 중국
[109호] 2019년 05월 01일 (수) 정혁준 june@hani.co.kr

항저우·선전(중국)=정혁준 편집장 june@hani.co.kr

 

 
▲ 2019년 4월2일 중국 항저우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손님이 모바일 페이로 커피값을 결제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4월2일 오전 11시 중국 항저우시 중심업무지역(CBD)에 들어선 대형 쇼핑몰 ‘래플스(Raffles)시티’. 이곳 2층에 있는 일식집 ‘와사비야’에선 점심시간을 앞두고 직원 10여 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 음식점을 찾는 손님 가운데 97%가 모바일 페이로 결제하고 있어요. 음식값을 내는 고객 100명 가운데 3명만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쓰는 거죠.” 음식점 점장 우션은 이곳을 찾은 기자에게 모바일 간편결제(페이) 현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션이 점장을 맡기 시작한 해인 2016년에는 모바일결제율이 70% 정도였으나, 매년 그 비율이 늘어나고 있단다. “현금을 쓰는 손님은 40~50대, 신용카드를 쓰는 손님은 30대가 대부분이에요. 20대 손님 가운데 현금이나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볜리성(便利性).” 이렇게 모바일 페이를 쓰는 사람이 늘어난 이유를 묻자, 우션은 “편리성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국에서는 휴대전화만 있으면 모든 게 가능하죠. 택시를 부를 때, 지하철을 탈 때, 음식점에서 밥 먹을 때, 차를 마실 때,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살 때, 현금이나 신용카드가 필요하지 않아요. 휴대전화로 결제하면 되니까요.”
이 음식점에서 모바일로 결제하는 고객 가운데 70%는 ‘알리페이’(중국 이름 즈푸바오·支付宝)를 쓴다고 했다. 알리페이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이 서비스한다. 알리바바는 항저우에서 마윈이 세운 회사다. 알리바바는 티몰·타오바오 같은 자사 온라인쇼핑몰을 이용하는 고객을 위해 2004년 알리페이를 내놓았다. 처음에는 온라인 서비스만 제공했지만, 2009년부터 오프라인 상점으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중국서 모바일 페이가 뜬 이유
“신용카드는 부자를 위한 것이고, 모바일결제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2019년 1월24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한 말이다. 이 발언은 중국에서 모바일결제가 신용카드를 이겼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 말에서 한국·미국·일본과 달리 중국에서 모바일결제가 큰 폭으로 성장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통신과 신용카드 인프라가 중국에서 제대로 깔리지 않아서, 또는 위조지폐 거래를 막기 위해 모바일결제가 활성화됐다는 분석은 단편적이다. 
중국에서 모바일결제가 활성화한 이유는 중국인과 중국문화 특성을 잘 분석해 사업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선 현금거래를 선호해왔다. 중국인은 모르는 사람과 거래하기를 꺼린다.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관시(關係) 사회여서다.
신용카드는 이런 중국문화를 뚫지 못했다. 중국인은 현금이 아닌 신용을 바탕으로 한 카드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신용카드를 발급하려면 개인신용을 평가해야 하는데, 10억 명 넘는 사람을 신용평가하기란 그리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2008년 중국에서 유학한 최성진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항저우무역관 과장은 “10여 년 전 유학할 때,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신용카드로 결제할 곳도 거의 없었죠. 지금도 중국 신용카드 보급률은 1인당 0.4장에 그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윈은 알리바바 쇼핑몰에 에스크로(Escrow) 서비스를 중국에서 처음 선보였다. 에스크로는 고객이 쇼핑몰에서 결제해도 대금이 곧바로 판매자에게 가지 않고, 쇼핑몰에서 돈을 보관하다가 고객이 구매를 확정하면 판매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레이철 보츠먼 영국 옥스퍼드대학 경영대학원 교수는 저서 <신뢰 이동>에서 “관시의 중국 사회에서 모르는 사람과 온라인에서 거래하게 만든 건 마윈이 IT 기술을 통해 중국을 ‘불신사회’에서 ‘신뢰사회’로 전환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 2019년 4월5일 중국 선전에서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QR코드를 내걸고 장사하는 거리 가게.

자영업에 매력적인 모바일 페이
모바일 페이도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모바일결제를 하려면 계좌에 잔고가 있어야 한다. 외상거래를 하기 힘들다. 신용 없는 중국 시장에서 정보기술(IT) 힘을 빌려 신용을 만들어낸 게 모바일 페이인 셈이다.
4월5일 아침 8시, 중국 남부 도시 선전. 홍콩과 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이곳은 ‘중국 개혁·개방 1번지’로 불린다. 마천루가 즐비한 이곳에서도 번화가인 선전 지하철 1호선 ‘회의전시센터’(Convention&Exhibition Center)역 주변에는 아침 출근길 종종걸음의 회사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은 거리 가게에서 유타오(밀가루 반죽을 발효해 기름에 튀긴 꽈배기 모양 빵)와 더우장(중국식 두유)을 포장해 가곤 했다. 이 가게에서도 현금을 주거나 받지 않았다. 대신 QR코드가 내걸려 있었다. 결제는 대부분 휴대전화로 진행됐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은 모바일 페이를 어떻게 여기는지 궁금했다. 선전 중심가에서 ‘마포갈매기’라는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택용 사장을 만나 얘기를 들었다. 그는 국내 대기업 중국지사에서 일하다 10여 년 전에 퇴사한 뒤, 중국에서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 “손님 가운데 60%가 위챗페이, 20%가 알리페이, 20%는 현금과 신용카드를 씁니다. 신용카드를 쓰는 사람은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분이 대부분이에요. 현금은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쓰세요.”
‘자영업 사장님’에게 모바일 페이는 신용카드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결제 수단이었다. “신용카드는 고객이 결제한 금액을 최대 90일이 지나야 받을 수 있었는데, 모바일 페이는 바로바로 결제할 수 있어 현금흐름을 유지하는 데 더 유리해요.”
수수료 역시 더 선호할 만했다. “수수료는 알리페이가 0.35% 정도예요. 신용카드가 1.5%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저렴하죠.” 한국에선 수수료(연매출 8억원 이하)가 신용카드 0.8∼1.4%, 직불카드 0.5∼1.1%, 제로페이 0%다. 손님이 모바일 페이를 많이 쓰면서 매장 계산대 직원 수도 줄었다. 신용카드 결제율이 높았을 때는 계산대 직원이 2명이었으나, 지금은 1명이 그 일을 한다.
이 가게 손님은 텐센트가 내놓은 모바일결제 서비스 ‘위챗페이’(중국 이름 웨이신즈푸·微信支付)를 알리페이보다 더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위챗페이를 서비스하는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 본사가 선전에 있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텐센트는 2011년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모바일 인스턴트 메신저 서비스인 위챗을 선보인 뒤, 2013년 위챗페이를 내놓았다.
빅데이터 업체 이관(易觀)에 따르면, 2018년 4분기 중국 간편결제 서비스 시장점유율은 알리페이가 53.78%를 기록해 선두 자리를 지켰다. 위챗페이는 38.87%로 점유율 2위였다. 알리페이가 압도적인 우위를 지켰으나, 위챗페이가 무서운 속도로 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2015년만 하더라도 알리페이 68.4%, 위챗페이 20.6%였다.

알리페이·위챗페이, 결이 다른 전략
두 회사는 중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외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2017년 2월 알리페이를 서비스하는 앤트파이낸셜은 카카오페이에 2억달러(약 2258억원)를 투자했다. 위챗페이 역시 네이버와 전략적 제휴를 하고 위챗페이·네이버페이·라인페이 이용자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페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쟁의 결이 다른 점도 보였다.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경쟁은 우리나라에서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의 경쟁과 비슷한 모양새다. 네이버가 온라인에 무게중심을 두고 오프라인으로 넓혀가려고 한다면, 카카오페이는 모바일에 강점을 둔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온라인으로 확장하고 있다. 알리페이 역시 계열 쇼핑몰 타오바오·티몰 등을 바탕으로 오프라인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위챗페이는 개인 소액결제를 기반으로 온라인으로 사업을 넓혀가고 있다.
정준규 코트라선전무역관장은 “알리페이와 위챗페이는 단순한 결제 기능을 넘어 문화·금융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바일 플랫폼으로 거듭나려고 준비한다”고 말했다. 단순 결제 서비스를 비롯해 예약·티켓 구매·공과금 납부·금융·배달·여행 등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속속 선보이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를 위해 은행·보험·배달·운송 등 기업과 함께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처럼 금융과 기술이 융합한 핀테크(Fintech)는 중국에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진화할까. ​전수경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 연구원은 “그동안 중국 정부는 은행권의 반발에도 IT와 전통산업 융합으로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만드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며 “핀테크 산업에 대한 중국의 기본정책 방향은 먼저 산업을 발전시키고 문제가 일어날 경우 규제나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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