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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가 먼저다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08호] 2019년 04월 01일 (월)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이미지 투데이
한국 영화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깜깜한 밤 가로등 밑에 사랑하는 연인이 서 있다. 두 사람은 빤히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랑해.”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을 생각해보자. 깜깜한 밤 공원에 차가 주차해 있다. 차 안에는 사랑하는 연인이 타고 있다. 남자가 말한다. “아이 러브 유.”(I love you.)
 
한국 남자와 미국 남자가 한 말을 서로 바꾸면 어떨까? 한국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면? “나는 너를 사랑해.” 어색하다. 마찬가지로 미국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Love.” 미국 여자는 헷갈린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지,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지를 이 동사 하나로 알기 힘들다.
 
이 사례에서 우리말과 영어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우리말은 동사가 먼저다. ‘먼저’라는 건 동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동사 위주로 발달했다는 거다. 반면 영어는 ‘명사’가 먼저다. 명사 위주로 발달했다. 우리말이 동사 중심인데 영어는 명사 중심 언어라는 거다. 
 
우리말 순서는 ‘주어+목적어+동사’고, 영어 순서는 ‘주어+동사+목적어’다. 이 순서의 차이는 의외로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영어는 대개 ‘I like you’처럼 문장 처음과 끝이 주어와 목적어로 돼 있다. 주어와 목적어는 거의 다 (대)명사다. 목적어인 명사를 꾸미는 말이 많이 발달된 게 영어다. 예를 들어 영어에선 “She gives me a cup.”으로 끝난 문장에도 “which he likes”를 덧붙여 “She gives me a cup which he likes.”라고 쓸 수 있다.
 
영어에서는 명사가 중요해 주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주어로 자주 쓰이는 품사는 명사와 대명사다. 영어는 “나는 너와 함께 학교에 가고 싶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말은? “학교에 같이 가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와 함께 학교에 가고 싶어”는 영어식 표현이다. 영어는 반드시 주어가 나와야 한다. 주어를 세워 책임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게 영어식 표현이다.
 
이처럼 영어에서는 주어와 목적어가 중요하다. 주어와 목적어가 되는 게 바로 명사 또는 대명사다. 영어는 명사 중심 언어인 것이다. 반면 우리말은 동사 중심 언어다. 영어는 문장 안에서 다양한 위치에 명사가 반드시 나타난다. 반면 우리말은 명사를 동사로 바꾸는 게 자연스럽다.
 
다음 두 문장 가운데 어느 문장이 우리말다울까?
1.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답은 2번이다. 
 
1번은 명사를 살린 영어식 표현이다. ‘주말’이라는 명사를 ‘즐거운’이라는 관형사(영어에선 형용사)가 꾸며주는 형식이다. 영어는 일상생활에서도 명사 중심 표현을 자주 쓴다. “Good morning!”(좋은 아침!) “Marry Christmas!”(즐거운 성탄절!) Good과 Marry가 각각 명사 morning과 Christmas를 꾸며주는 형식이다.
2번은 주말보다 ‘즐겁게’라는 부사를 강조했다. 부사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그렇다. 동사를 꾸며준다. 이처럼 우리말에는 동사가 들어가야 자연스럽다. ‘좋은 저녁!’ 이렇게 하면 뭔가 어색하다. “잘 가” “편히 쉬어” 이런 표현이 더 자연스럽다.
 
하나만 더 문제를 풀어보자.
1. 내 가슴엔 그녀를 향한 많은 사랑이 남았습니다.
2. 내 가슴엔 그녀를 향한 사랑이 많이 남았습니다.
이번엔 정답이 뭘까? 역시 2번이다.
 
1번은 영어식 표현이다. ‘사랑’이라는 명사를, ‘많은’이라는 관형사(영어에선 형용사)가 꾸며준다. 명사가 강조되는 것이다. 2번은 ‘많이’라는 부사가 ‘남았습니다’라는 동사를 꾸민다. 동사가 강조되는 셈이다.
 
명사문을 피하자
우리말은 서술어가 다양하게 변신한다. 영어나 중국어는 서술어 변화가 크지 않다. 단어를 배열하는 순서나 억양 높낮이로 뜻을 보충한다. 우리말은 서술어를 잘 살려야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다. 우리말 서술어에 흔희 쓰는 품사가 ‘동사’와 ‘형용사’다. 동사와 형용사를 잘 활용하면 이해하기 쉬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우리말은 서술어 품사를 기준으로 문장을 분류할 때 동사문, 형용사문, 명사문으로 나뉜다.
 
그가 간다.(동사문)
그는 착하다.(형용사문)
그는 학생이다.(명사문)
 
명사문은 명사에 서술격 조사 ‘이다’가 이어진 문장을 말한다. 명사문은 주어와 서술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 중언부언하기 쉽다.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해 쓴 책이다.” 이 문장을 한번 보자. ‘이 책은~ 책이다.’ 주어를 똑같이 설명해주는 데 그쳤다. 동어반복이다. 이런 잘못된 표현을 자주 본다. “이 뮤지컬은 소설 <레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이다”처럼 주어와 서술어가 같은 경우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명사문을 동사문으로 바꿔보자. “이 책은 글쓰기를 다루고 있다.” “이 뮤지컬은 소설 <레미제라블>을 원작으로 한다.”
 
또 다른 문장을 보자. “시급한 것은 높은 사교육비 부담을 감소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이다.” 이 문장도 주어(시급한 것)와 서술어(정부의 대책이다)가 명사 위주로 돼 있다. 
 
먼저 ‘높은 사교육비 부담을 감소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 부분에서 ‘~위한’을 빼자.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사를 활용하자. ‘감소하기 위한’을 ‘줄이는’으로 바꾸자.
 
이렇게 ‘높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정부의 대책’으로 고치면 ‘~위한’이라는 번역투를 안 써도 된다. ‘정부의 대책’에서 일단 정부를 빼면 ‘의’도 안 쓸 수 있다.
 
다음에는 주어(‘시급한 것’)를 고쳐보자. 지금은 어깨에 힘이 꽤 들어가 있다. 멋있게 쓰려고 했거나 강조하려고 썼다. 문장은 자연스럽게 쓰는 게 좋다. 주어는 ‘정부’로 하는 게 자연스럽다. “정부는 높은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처음 문장이 주어와 서술어가 명사로 끝난 명사형 문장이라면, 다듬은 문장은 주어는 명사, 서술어는 동사로 끝난 동사형 문장이다. 훨씬 우리말답다. 이처럼 명사문은 되도록 동사문이나 형용사문으로 고치는 게 좋다.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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