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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귀족’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Book]
[1호] 2010년 05월 03일 (월) 로쟈 (본명 이현우) 서울대 강사 economyinsight@hani.co.kr

로쟈 (본명 이현우) 서울대 강사·서평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 운영자

   
 

“세상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화려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놈들은 다른가? 그들이 하는 짓거리가 멋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이 세상에 합법적인 사업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1920년대 미국 ‘암흑가의 대통령’ 알 카포네의 말이다. 합법적인 사업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자신의 ‘불법적인 사업’ 또한 죄가 되지 않는다는 변론이겠지만, 일본의 반핵운동가이자 논픽션 작가 히로세 다카시는 거꾸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합법적인 사업’이란 ‘합법을 가장한 사업’이며, “화려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놈들” 또한 카포네와 마찬가지로 불한당일 뿐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재벌가문 모건과 록펠러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세계를 조종했는지 추적하는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은 말하자면 이 ‘불한당들의 세계사’다.

‘사자’ JP모건-‘구렁이’ 록펠러

거슬러 올라가면 시작은 미국의 남북전쟁이었다. 모건 가문의 원조 JP 모건은 아서 이스트먼이란 사람이 북군으로부터 구식 카빈소총을 구입하여 되파는 수상한 거래를 할 때 자금 지원을 담당했다. 북군이 무기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스트먼은 소총 5천 정을 한 정당 3.5달러에 사들여서 중개인에게 12.5달러에 팔았고, 이 중개인은 북군의 프레몽 장군에게 한 정당 22달러를 받고 다시 팔아넘겼다. 문제의 소총이 정부의 무기고에서 나와 다시 정부의 군대로 돌아가는 데 불과 3개월이 걸렸지만, 이 거래는 6배의 차익을 남겼다. 보기에 따라선 대단한 사업수완이겠지만, “한마디로 영악하기 짝이 없는 사기꾼 일당”이다. 이때 JP 모건의 나이 24살이었고, 그는 남북전쟁에서 마련한 사업자금을 바탕으로 JP모건사(社)를 설립해 키워나간다.
모건 가문의 전모를 파헤친 <금융제국 J.P. 모건>(플래닛, 2007)의 저자 론 처노에 따르면,  남북전쟁 당시 소총거래에 모건이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논란거리라고 한다. 하지만, 론  처노도 인정하는 것은 모건이 남북전쟁을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아니라 돈 벌 기회로 보았다는 점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이후에 모건 또한 징집을 받았지만 그는 부유층의 관례대로 300달러를 주고 다른 사람을 사서 군대에 보냈다. 대신에 전황에 따라 가격이 급하게 등락하던 금을 대량으로 매집해 당시 화폐로 16만달러를 벌어들였다. 히로세 다카시의 환산으론 2천억원이 넘는 액수다. 이를 바탕으로 모건은 부자 은행가로 등장했고 ‘귀족 자본가 시대’를 열었다. 금융시장이 부실하고 원시적인 상황에서 은행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며 사업을 확장해나갔고 한 지역의 ‘영주’처럼 군림했다. ‘강도 귀족’(robber baron)이란 말은 그래서 생겨났다.
1901년 당시 백수의 왕 ‘사자’라고도 불린 JP 모건에게 필적할 만한 거대한 구렁이 ‘아나콘다’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석유사업가 록펠러였다. 남북전쟁 때 군수물자의 운반과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록펠러는 “타인에게 결코 이익을 나눠주지 말 것”이란 철칙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모건이 철도왕 밴더빌트로부터 거대 철도회사를 넘겨받은 시점에 록펠러는 스탠더드오일이라는 회사의 정유탱크에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빨아들였다. 이 유례없는 독점의 이면에는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교활한 수법이 숨어있었다. 스탠더드오일의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서 지역의 여러 석유업자들이 다른 회사로 힘을 모아주고보니 그 회사가 스탠더드오일의 자회사더라는 식이다. 가히 ‘자본주의자의 원형’(막스 베버)이라 부를 만한 초상이 아닐 수 없다. 
론 처노가 <부의 제국 록펠러>(21세기북스, 2010)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록펠러와 모건  두 사람은 마치 금욕주의자와 향락주의자 혹은 의회파와 왕당파처럼 정반대되는 성향을 지녔다. 록펠러가 보기에 모건은 자만과 사치, 오만 등 모든 죄악의 화신이었고, 모건이 보기에 록펠러는 너무 무미건조하고 점잔이나 빼는 인물이었다. 둘은 서로를 싫어했지만 그런 사적인 감정이 이익을 키우기 위한 거래에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19세기말까지 미국의 주요 산업을 장악한 양대 자본가 가문은 그리하여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미국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골드 핑거’가 된다.

미 각료 79% 모건·록펠러 수족

사실 미국을 지배하는 ‘제1권력’이라면 미국 패권주의 하에서 전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이기도 하다. 일본인 저자가 이들의 숨겨진 지배를 폭로하는 데 발 벗고 나선 이유일 것이다. 히로세 다카시의 주장은 간명하다. 이 양대 자본가가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각료직에 자신의 충견들을 앉혀서 암암리에 미국을 지배해왔으며, 이 구조는 현재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그는 20세기의 첫 대통령 올린 매킨리부터 레이건까지 내각의 366개 각료 자리를 면밀하게 조사하여 그 중 290개 자리, 즉 79%가 모건-록펠러 연합의 수족이라는 사실을 든다. 그가 보기에 미국 대통령은 국민의 눈을 속이기 위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덧붙여 1983년 기준으로 미국의 매출 10위권 기업, “1위 액슨, 2위 GM, 3위 모빌, 4위 포드, 5위 IBM, 6위 텍사코, 7위 듀폰, 8위 인디애나 스탠더드오일, 9위 소칼, 10위 GE” 순위도 각 기업의 진짜 주인으로 바꿔서 나열하면 “1위 록펠러, 2위 모건, 3위 록펠러, 4위 모건-록펠러, 5위 모건, 6위 모건-록펠러, 7위 모건, 8위 록펠러, 9위 록펠러, 10위 모건”이 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모건과 록펠러의 천하라는 것이다.
   
 

비록 자본의 인맥도를 꼼꼼하게 제시하고는 있지만 히로세 다카시의 주장 역시 유대자본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결사체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음모론의 재판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의 강점은 석유파동처럼 중동석유의 이권을 미리 장악한 상태에서 오일머니를 긁어모은 모건-록펠러연합의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를 제시할 때 더 잘 발휘된다. 가령 1920년대에 미국과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의 금융가와 파시스트는 대연합을 이루고 있었다. 공산주의라는 악에 맞서기 위해서 “미국은 독일 군국주의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였다. 그래서 2차 세계대전이 터진 이후에도 모건-록펠러연합은 미국의 참전을 막았다. 하지만 1941년 12월 예상치 못하게도 일본군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미국의 참전이 불가피해졌고 미국 자본가와 파시스트의 대오는 무너졌다. 물론 모건-록펠러연합은 곧바로 반히틀러주의로 돌아서서 전쟁기간 동안 막대한 이익을 챙겼지만 그들이 애초에 기획했던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베트남전 숨은 승자

1950년대 매카시즘 광풍의 종말도 모건-록펠러 연합의 본질을 알게 해주는 사례다. 모건과 록펠러의 하수인으로 ‘빨갱이 사냥’에 앞장섰던 조셉 매카시는 당시 육군장관 로버트 스티븐스마저 빨갱이로 몰아붙이다가 역공을 받아 몰락을 자초했다. 흔히 미국 사회가 마침내 양심에 눈을 떴기 때문이라거나 매카시에게 염증을 냈기 때문이라고 이해하지만 히로세 다카시는 다르게 본다. 문제는 스티븐스가 모건-록펠러연합의 중심인물이었다는 점이고, 따라서 매카시가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매카시는 빨갱이 사냥꾼으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한 파시스트였지만 모건과 록펠러 같은 ‘투기꾼’에게 빨갱이 사냥 자체는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필요로 한 건 ‘빨갱이’의 위협을 조장해서 전쟁을 고무하고, 그를 통해서 자기 소유의 기업이 거대한 이익을 올리는 것뿐이다(저자는 심지어 원폭과 수폭 예산을 끌어내기 위해 미국에서 기획한 것이 한국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파시즘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그것은 단지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카포네는 알카트라즈 감옥에 투옥되고, 히틀러는 자살하고 무솔리니는 총살되고 오펜하이머는 해고되고 매카시는 추방당했지만, 그들을 교사한 자들, 무엇보다 모건과 록펠러는 점점 비대해졌다. 파시스트나 행동대원은 투기꾼들에 의해 교묘하게 이용당할 뿐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히로세 다카시는 그런 시각으로 케네디의 암살과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도 다시 들여다보며,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서 모건과 록펠러의 손길을 감지한다. 베트남전에서도 미국이라는 국가는 패배했지만 모건-록펠러연합은 떼돈을 벌었다. 그것이 그들의 ‘전쟁 비즈니스’이다. 때문에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전쟁의 범인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군산복합체’도 아니고, ‘월가’도, ‘재벌’도, ‘죽음의 상인’도, ‘미제국주의’도, ‘대기업’도, ‘독점자본’도 아니다. 이러한 추상적인 언어의 범람이 결국 우리 머릿속에서 범인의 모습을 지워내고야 말았다. 따라서 이제 고유명사를 사용해서 말해야 한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고유명사는 물론 ‘모건과 록펠러’이다.
히로세 다카시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재산이 계속 불어나는 사람과 아무리 일해도 돈이 없는 사람이다”(<미국의 경제 지배자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럴 듯하게 들린다면 록펠러 2세의 유명한 경구가 섬뜩하게 다가올 것이다. “최고로  아름다운 장미는 주변의 어린 봉오리들이 희생되어야만 비로소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됩니다” 참고로, 그 장미의 이름이 ‘American Beauty Rose’이고, 미국 수도 워싱턴의 상징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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