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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해결책 없어 속수무책
[Focus] 커지는 도시 빈부 격차- ① 현황
[107호] 2019년 03월 01일 (금) 알렉산더 융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인이 얼마만큼 삶의 질을 누리는지는 전적으로 거주 지역이 어디인가에 달려 있다. 재정이 풍족한 도시에서는 시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누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반대로 가난한 도시에서는 공공시설 이용 요금을 올린다.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알렉산더 융 Alexander Jung <슈피겔> 기자
 
   
▲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공업도시 하겐은 중공업 활황 시절 경제적 풍요를 누렸지만 현재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했다. ‘국민 애도의 날’ 기념비 앞에 화환 하나 놓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다. 화물열차가 주차된 하겐역. REUTERS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장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한 가족’이라는 말이다. 얼핏 상당히 목가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이 담고 있는 이미지는 현실과 괴리돼 있다. 독일 도시는 확연하게 두 계급으로 나뉜다. 이렇게 양분화된 도시는 2058곳에 이르고, 그 사이의 간극은 해마다 더 벌어지는 양상이다.
 
한쪽은 과거 몇 년간 경기 호황 덕을 톡톡히 봤다. 브라운슈바이크, 예나 등의 도시는 그 덕분에 부채를 청산하고 여유 자금을 확보해 시민 복지를 증진하는 데 사용했다. 무료 어린이집, 현대식 디지털 네트워크, 잘 관리된 공원 등이 그 예다. 이런 도시에서는 살기 좋다.   
 
중공업 활짝 피던 호경기
하겐은 정반대 상황에 놓여 있다. 재정 압박이 아우구스트 프렌첼 추모비 등 사소한 것에서도 드러난다. 프렌첼은 1876~1900년 독일 루르 지방의 남단 지역인 하겐에 중공업이 활짝 꽃피던 시절의 시장이었다. 추모비의 매끄러운 대리석 표면에는 “이 도시 번영에 대한 감사로 하겐시에서 우리 시장님께 드립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제 그런 감사의 시절은 지나갔다. 최근 하겐시는 ‘국민 애도의 날’(특히 옛 서독에서 나치의 희생자와 전몰장병을 추도하는 국가 기념일 -편집자) 기념비 앞에 화환 한 개를 바치는 것조차 포기해야 하는 형편이다. 다른 추모비 앞에도 꽃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하겐시는 지금 절약해야 한다. 그것이 설령 1년을 통틀어 고작 1700유로(약 215만원)밖에 들지 않는 사안이라 해도 말이다. 
 
하겐시 행정 담당 책임자인 크리스토프 게르버스만은 “시민 모두가, 필요하다면 이미 땅속에 묻힌 시장까지도 다 함께 절약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강업과 금속업이 하겐의 대표 산업이지만, 하겐에는 가난한 주민과 실업자 수가 다른 도시보다 많다”고 했다. 현재 하겐시가 안고 있는 부채 총액은 약 11억유로(약 1조4천억원)다. 과거 부채액이 이보다 2억유로 정도 더 많았던 적도 있다. 13년째 이 도시의 행정을 맡고 있는 게르버스만은 지금 막대한 재정난을 해소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공중화장실 서너 곳, 공공시설인 어린이 놀이터들이 문을 닫았다. 버스 노선과 운행량도 현저히 줄였다. 연극 지원비를 150만유로 감축했고 각종 민간단체에 주던 보조금도 삭감했다. 시민대학과 시립도서관 이용 요금은 물론 보건소 발행 진단서 비용 등도 모두 인상했다. 하겐시는 반려견에도 연간 180유로의 세금을 부과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내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액이다.
 
   
▲ 재정이 넉넉한 뒤셀도르프에서는 유치원 교육이 무상이다. 시내 중심부를 흐르는 라인강 주변에 우뚝 선 타워. REUTERS
공공시설 서비스·예산 축소
시청은 강제집행 위기에 처한 채무자에게 해당 사실을 통보할 때 소요되는 우편 요금까지도 전부 채무자에게 부과한다. 이 목적으로 2만8천 부의 편지가 발송됐다고 가정하면 수입은 2만유로(약 2500만원)에 육박한다. 게르버스만은 “예산안을 조목조목 다 검토하는 일이 전혀 재미있지 않다”며 “무엇보다 다른 도시의 시청에서 아무 걱정 없이 돈을 쓰고 있는 것을 볼 때면 화가 난다”고 말했다. 
 
재정이 넉넉한 뒤셀도르프에서는 유치원 교육이 무상이지만 하겐에서는 부모가 최대 672유로(약 85만원)를 내야 한다. 게르버스만은 “우리 하겐 시민이 뒤셀도르프 시민보다 재정적으로 훨씬 열악한 상황임에도 교육비를 내고 있다”고 했다. 
 
소득이 쾰른과 뒤셀도르프 중간쯤에 있는 몬하임의 경우 시장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재정에 숨통을 틔웠다. 시장이 그 지역을 세금회피처로 변모시켜 인근 지역 기업들을 통째로 끌어모으고 있다. 게르버스만은 “그것이 공정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현상이야말로 독일 내 각 도시에서 재정 상태의 중요성은 물론 도시 간 빈부 격차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하겐 같은 지자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부채를 일부 갚아나가고 있다. 그나마 이들 지역이 낮은 이자율, 고용 증대, 안정된 세수입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가장 유리한 지역에 있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 상태가 앞으로도 일정하게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독일 호황은 눈에 띄게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 예견되는 대로 경기 침체가 닥쳐올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의 이분화는 더 가속화할 것이다. 도시 간 재정 격차로 양극화 역시 점점 심해질 것이다. 과도하게 많은 사회복지 비용을 책임지는 가난한 시의 경우, 은행 이자마저 올라간다면 재정 압박이 훨씬 늘어난다.
독일 헌법 제72조에는 전 국민에게 동일한 삶의 질을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현실은 여기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다. 오늘날 독일에선 거주지가 어디냐에 따라 사회참여 가능성과 개인의 출세 기회가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독일 연방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최근 연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베른바르트 퀴퍼는 향후 몇 주간 이 주제에 관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할 연구원이다. 그는 잘레 인근에 있는 나움부르크의 시장이자, 지방자치단체연합 부회장이다. 퀴퍼는 위원회 조직 당시 “도시 간 이분화 현상은 독일 내부의 국민 유대를 위태롭게 한다”며 “현 상황이 확대되면 사회·정치적 논란의 소지가 커지므로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만 쌓이는 시민들
독일이 다른 나라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다수 독일 국민에게 이것은 그저 한 귀로 흘려들을 만한 이야기다. 퀴퍼가 말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많은 사람이 그다지 혜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정치가들이 서민에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재정적으로 열악한 도시에 사는 주민의 목소리는 점점 더 거칠고 공격적이 되어간다. 우리 사회는 날로 와해되고 있다.”
 
이 양극화는 비단 상·하위 계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위 계층 역시 이제는 더 이상 시민 다수의 균등한 삶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 못한다. 디지털화되고 세계화된 현대사회에서는 유희하듯 자기 길을 가면서 출세한 사람들이 대체로 중산층에서 나온다. 반대로 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에서 불안해하고 절망하는 실패자 역시 이 계층에서 나온다. 많은 시민은 일목요연하게 삶의 질을 파악할 수 있었던 과거 독일 연방공화국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그때는 자신 의견이 정당을 통해 발표된다고 여겼고, 그렇기에 국가와 일체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로부터 소외당한다는 감정을 더 받는다. 어쩌면 이 문제는 이들이 거주하는 도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유치원에서 학교, 공설운동장에서 시내 교통수단, 종합병원에서 요양원을 거쳐 무덤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업무 수행이 개인 일상에 미치는 변화를 직접적으로 깨닫는 계기는 시정을 통해 발현된다. 다시 말해 도시 단위 삶에서다. 도시 행정 부서가 시민에게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줄인다면 시민들은 실망한다. 서비스는 그대로인데 요금만 자꾸 올라가는 것 역시 실망하는 요소다. 
 
   
▲ 대도시 프랑크푸르트는 주민에게 걷는 세금만으로도 재정이 넉넉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이곳에선 초고층 건물이 끊임없이 세워지고 있다. REUTERS
거리 개·보수 비용도 시민 부담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동부에 있는 도시 뷘데의 클루스가 모습은 그야말로 참담하다. 차도에 구멍이 숭숭 파여 있고, 보도와 맞닿은 양쪽 가장자리는 제대로 고정돼 있지 않다. 뷘데시는 차도를 보수해 보도를 넓힐 계획이다. 재개발 보수비 일부는 이 도로 면에 거주하는 시민이 부담해야 한다.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시민도 있어 그만큼 해당 시민의 납부액은 더 커진다. 귄터 빌레의 경우, 부담금이 20만유로에 이른다. 클루스가를 따라 한쪽에 길게 뻗은 대지는 그의 가족 소유다. 연금 수급자인 빌레와 아내는 이곳에서 농장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뷘데시가 우리에게 돈을 내라고 하는 건 미친 소리다. 불공정하고 반사회적이다.” 빌레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민을 속이는 짓이다.”
 
오늘날 독일의 여러 도시는 거리를 보수하는 경우 주민에게 부분적으로 비용을 부담시킨다. ‘거리 확장 회비’라는 이름의 공과금이다. 시민이 부담해야 할 몫은 해당 거리를 주로 일반 통행자가 이용하는지, 아니면 주민이 주이용자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시행 방침에 시민의 반대 목소리가 크다. 곳곳에서 시민운동 조직이 결성되는데, 뷘데에서는 빌레가 저항운동을 이끌고 있다.
 
빌레는 2018년 11월 뜻을 함께하는 약 150명의 투쟁 참가자와 보행자 전용 구역 한가운데를 지나 시청까지 행진했고, 그곳에서 클루스가 확장과 관련해 교통위원회와 토론을 벌였다. 빌레에게는 이 일이 그의 인생을 통틀어 최초의 시위였다. 참가자들은 “차도 보수, 주민 파멸” 구호가 쓰인 팻말을 높이 쳐들고, 교통위원회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야유를 보냈다. 항의와 시위가 있었음에도 주민이 보수비를 내야 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었다. 빌레는 이 사안을 법정으로 가져갈 계획이다. 
 
뷘데 시청이 시민들 반대에도 이 방침을 고수하는 이유에 의아할 수도 있다. 거리 확장 비용을 주민에게 징수하는 안을 거부하는 자치단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나 바이에른 같은 부유한 주의 도시에서는 시민에게 징수하는 비용을 기꺼이 포기할 것이다. 반면 뷘데처럼 재정이 어려운 도시는 시민에게 포기를 요구한다. 
 
재정 측면에서 볼 때, 독일 도시들은 모나코와 모잠비크 국가만큼이나 경제적 격차가 크다. 재정 상태가 가장 좋은 도시와 최악인 도시 사이의 세금 수익 차이를 측정해보니, 지난 10년 동안 명목소득 격차가 두 배나 됐다. 베르텔스만재단에서 자치단체 재정 관련 전문가로 일하는 레네 게이슬러가 계산한 결과를 보면, 프랑크푸르트암마인 같은 대도시는 현재 주민 1인당 바이마르의 3배가 되는 토지세를 거둬들였고, 영업세의 경우 액수가 프랑크푸르트안데어오더의 11배에 달했다. 게이슬러는 “이 자료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지역과 실패한 지역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명쾌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2019년 3월호 종이잡지 59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9년 4호
Ratlos im Rathaus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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