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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덫에 걸린 경제성장
[Finance] 금리 인하의 역설
[107호] 2019년 03월 01일 (금)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2019년 1월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했다. 그는 최근 글로벌 경기 둔화에 따른 ‘경제적 폭풍’이 몰아닥칠 가능성을 경고했다. REUTERS
2019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어둡다. 저성장 국면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도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IMF는 1월21일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수정치에서 2019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3.5%로 내다봤다. 2018년 10월 전망치(3.7%)보다 0.2%포인트 내린 수치다. 선진국으로 범위를 좁히면 저성장 국면은 더욱 확실해진다. 2.1%에서 2.0%로 하향 조정됐다. 특히 유로존은 1.9%에서 1.6%, 그 맹주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은 1.9%에서 1.3%로 크게 내렸다.
 
저금리가 작동하지 않는 이유
국제 경제기구들은 무역 갈등에 따른 긴장과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예상을 뛰어넘는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금융시장 심리 악화 등을 성장률 전망치 하향의 이유로 든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저성장 현상을 분석한 것일 뿐 저성장 고착화의 근본 원인을 푸는 해답은 아니다. 사실 저성장, 특히 선진국 저성장은 하루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유로존의 1995~2018년 분기별 성장률은 평균 0.39%에 불과했다. 일본은 1980~2018년 분기별 성장률 평균이 0.49%였다. 이 정도면 수십 년에 걸친 저성장의 만성화다.
 
어찌된 일인가?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와 마이너스금리, 그것도 모자라 양적완화란 핵폭탄까지 투하한 상태다. 유례없는 저금리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전통적 이론에 따르면 저금리가 기업 투자를 일깨우고 소비를 촉진해 경제는 성장해야 한다. 이쯤 되면 주요 선진국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저금리는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했어야 한다. 
 
그러나 선진국 경제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희미한 회복 기미가 보이자마자 다시 주저앉을 모양새다. 가장 큰 회복세를 나타냈던 미국마저 긴축 기조를 철회할 태세다. 세계, 특히 선진국은 만성적 저금리 체제에 젖어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어느새 저금리는 선진국의 운명이 되어가고 있다.
 
2019년 1월, 세계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이 반드시 봐야 할 신선한 연구보고서가 발표됐다. 경기주기 판단에서 권위적 기구인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저금리, 시장 지배력, 생산성 성장’이란 보고서다. 이 연구는 저금리가 의외로 저성장의 촉매제가 된다는 점을 밝힌다. 전통적 이론에 반해 저금리 폐해를 고발한다. 선진 중앙은행들이 지속하는 저금리 체제가 저성장을 만들어낸다는 역설을 얘기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장기적인 저금리 체제는 기업 지배력 집중을 부르고 생산성 성장을 저하시키며 성장을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선도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커지고 강화되는 현상은 금융위기 이후 전 산업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특히 제로금리와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시행한 수년 동안 선진국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시장지배력 집중은 대부분 인수·합병으로 이뤄지는데 이것이 가능한 이유가 있다. 인수·합병 주체는 대기업이다.초저금리는 대기업에 유리하다. 자금조달을 중소기업에 비해 훨씬 유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는 대기업의 풍부한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한다. 이들 대기업은 자금력을 토대로 인수·합병에 나서 덩치를 더욱 키운다. 시장지배력 집중이 가속화한다. 그 부작용으로 느린 생산성 성장과 그것에 발목 잡힌 경제 둔화 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은 전통적 이론에 반대되는 주장이다. 
 
   
▲ 독일 라슈타트 메르세데스벤츠 공장에서 직원이 자동차 바퀴를 조립하고 있다. 독일은 2019년 경제성장 전망치가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REUTERS
기업 집중 촉매제
일반적으로 저금리는 경제의 생산 측면을 자극해 확장 기제로 작용한다고 여겨졌다. 투자 결정을 앞둔 기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금리가 낮아지면 미래 현금흐름의 순현재가치는 늘어난다. 순현재가치란 미래 특정 시점의 현금흐름을 이자율로 할인해 현재 시점 금액으로 환산한 것을 말한다. 1년 뒤 100만원의 현금흐름이 발생할 때, 그것의 현재가치는 이자율에 따라 달라진다. 금리가 10%라면 현재가치는 약 90만9천원이지만, 금리가 5%라면 95만2천원 정도 된다. 따라서 금리가 낮을수록 기업들의 투자 욕구는 높아진다. “금리가 낮아질수록 기업들의 투자 욕구는 커지며 이는 성장률 제고로 이어진다”는 것이 전통적 이론이자 개념이다.
 
이번 연구는 전통적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동시에 현재 저금리 통화정책의 토대가 되는 기존 연구에도 물음표를 던진다. “전통 모델들은 전략적 경쟁과 시장구조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장기금리의 유의미한 하락이 산업 경쟁력에 충격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가?”라고 묻는다. 
 
전통적 이론에서 간과한 게 있다. 기업 간 경쟁력 차이를 무시하고 저금리가 단순히 기업 투자를 늘려 성장에 기여한다는 측면만 강조했다. 저금리가 기업 자금조달을 쉽게 하고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저금리 상황이라도 모든 기업에 자금조달이 쉬운 것은 아니다. 기업의 자금조달 능력은 그 규모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연구자들은 산업 내부의 경쟁을 모델에 포함했다. 이는 저금리가 경쟁 속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기금리 축소는 산업 내부의 시장구조를 덜 경쟁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이유는 선도기업과 추종기업 둘 다 금리 인하에 반응해 투자를 늘리는 반면, 투자 규모 자체는 항상 선도기업이 더 크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선도기업과 추종기업 간 격차는 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가중된다. 이는 산업 내 경쟁 약화로 이어지며 특정 기업의 집중도를 높이게 된다.” 
 
성장은 경쟁의 부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연구·개발이 촉진되고 생산성 향상에 몰두하게 된다. 그 결과 성장이 촉진된다. 그런데 저금리는 기업들의 순간적 투자를 늘리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선도기업과 추종기업 간 격차를 벌리는 촉매제로 작용한다. 이는 집중을 낳게 된다. 
 
선도기업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거나 과점한다. 반면 나머지 추종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고 시장에서 낙오하게 된다. 저금리는 의외로 산업 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전체적 성장 둔화를 가져온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 영향이 저금리로 인해 성장이 촉진되는 긍정적 효과를 압도했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낮은 장기금리는 선진국 경제에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글로벌 성장 둔화의 요인이 되고 있다. 산업 지배력과 독점 강화는 글로벌 경제의 일반적 현상이다. 오늘날 경제를 보면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천문학적 자금 동원력을 기반으로 점점 더 큰 공룡이 되어가고 있다. 자동차, 도소매업, 반도체, 정보기술(IT)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소수의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시장 집중이 강화되고 소수 기업이 시장지배력을 높일수록 생산성과 경제의 성장은 그만큼 하방 압박을 받는다. 
 
무기력한 중앙은행
전미경제연구소의 연구는 매우 흥미롭다. 중앙은행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금리 하방 압력 시대에, 무엇보다 그것의 정당성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저금리 체제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희박하다. 마이너스금리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유로존의 현재 상황이 그 한계를 말해준다. 그 지역의 경제 둔화는 어떤 전통적 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20년 이상 실질적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일본은 그동안 몇 차례 침체를 겪었다. 현재까지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흔히 저금리 정책의 성공 사례로 미국을 들지만 그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억제 정책은 작동 여부가 불명확하다. 금리 정상화에 실패해 다시 저금리 체제에 안주할 조짐을 보이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성장 둔화는 세계적 현상이다. 개도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성장 둔화는 2008년 시작된 대침체 이전에 이미 나타났다. 21세기 들어 본격화한 것이다. 이는 저성장과 성장 둔화가 2008년 위기의 결과물이 아님을 말해준다. 생산성 둔화는 강고한 흐름으로 이미 1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전통적 이론에 집착한 중앙은행들은 여전히 저금리 체제가 유일한 해결책인 듯, 만병통치약인 듯 별 고민 없이 거기에 매달리고 있다. 
 
모든 것은 흐름이다. 경제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요소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흘러간다. 인간은 모든 요소를 분석할 만한 능력이 없다. 따라서 인위적 개입은 불완전한 결과를 낳는다. 특정 현상을 일시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지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금리도 마찬가지다. 순간적 회복을 이끌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경제를 결정짓는 수많은 요소도 거기에 적응하게 된다. 그 적응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허약해진다. 저금리는 경쟁을 인위적으로 지운다. 경쟁이 사라진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그것이 오늘의 경제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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