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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확대로 중간층 불만 유가 인상이 폭발 ‘방아쇠’
[Issue] 프랑스 노란조끼 운동- ② 근본 원인
[106호] 2019년 02월 01일 (금) 뱅상 그리모 economyinsight@hani.co.kr
뱅상 그리모 Vincent Grimault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2019년 1월12일 프랑스 파리 개선문 부근에서 노란조끼 시위에 대비해 출동한 경찰들이 경계 태세를 하고 있다. REUTERS
생활방식에 따른 환경 영향 격차는 통계학적으로 거의 연구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학자 장밥티스트 콤비가 2015년 저서 <기후문제: 공공문제의 기원과 탈정치화>에서 설명한 것처럼 지금까지 ‘일상 속 실천’과 개인의 책임 문제에 집중돼 있다.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과 관련한 공적 논의에서 사각지대가 생긴 것이다. 이를테면 화석에너지 비용을 올리는 방법으로 개인의 난방·이동 방식을 더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목표인 유류세만 봐도 계층 간 생활방식 차이는 반영되지 않는다.
 
노란조끼 운동은 누구나 차량 이외의 다른 이동수단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과 함께 다른 소비세와 마찬가지로 탄소세도 역진세(과세 물건의 수량·금액이 늘어남에 따라 세율이 낮아지는 것)임을 온전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평가에 따르면, 가계 지출에서 탄소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부유층보다 소득 하위 10% 가구에서 4~5배 높다. 에너지바우처, 노후 경유차 교체 수당, 난방 교체 지원금 등 여러 보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보상 메커니즘은 현실적으로 온난화 방지와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암울한 중산층의 미래
노란조끼 시위 참가자들을 보면 회사원, 자영업자, 간호사, 숙련노동자 등 뜻밖의 사람이 많다. 소외 계층보다 중산층과 서민층 가운데 그런대로 안정적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이 주도한 시위다. 아래로 떨어지는 프랑스라는 바구니 윗부분에 있는 사람이 시위를 이끌었다는 뜻이다. 이들은 가난하지는 않지만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게다가 중산층 열망과 현실 간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중산층 대부분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이른바 ‘영광의 30년’(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 전까지 서방 선진국들이 복지국가로 안정적 성장을 지속하던 시기 -편집자) 시대다. 임금노동자가 생활 안정을 누리고, 대학 졸업장이 사회적 지위를 보장하며, 계층 이동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다시 말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루이 쇼벨이 2016년 저서 <계층 추락의 나선>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상향의 모든 기둥이 와르르 무너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모되고 부스러지고 있다. 특히 고용 양극화와 장기 실업은 이전까지 그런대로 잘 돌아가던 사회적 장치를 부숴버렸다. 일자리 불안정이 커지고 저숙련 일자리와 고숙련·전문직 일자리는 늘어나는 반면, 단순 사무직 같은 중간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대표적 현상이다. 오늘날 대학 졸업장의 수익성은 예전만 못하다. 그렇다고 졸업장 없는 사람들의 운명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없다. 중간 일자리 임금은 점진적이지만 확실한 추세를 보이며 아래쪽과 가까워지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계층 이동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멈춰버린 계층 이동
통계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는 사회계층이 고정된 사회가 아니다. 2014~ 2015년 30~59살 인구 가운데 아버지가 중간직 노동자였던 사람의 4분의 1이 전문직과 관리직에 속했다. 그럼에도 사회계층 재생산은 여전히 강력하다. 관리직 아버지의 아들은 2명 중 1명꼴로 관리직이 된다. 노동자 아버지의 아들이 노동자가 될 확률도 비슷하다. 게다가 이 자료는 이미 나이 든 세대에 만 해당된다. 조사 대상이 1984년 이후
출생자에 국한됐기 때문이다.
 
중산층 상황이 최악인 건 아니다. 하지만 중산층 구매력 저하는 미래 전망을 갉아먹고, 계층 추락 공포를 부추긴다. 계층 추락 공포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교육개혁으로 더 강화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파르쿠르스업(Parcoursup·학생들의 성적과 활동내역이 담긴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학은 파르쿠르스업을 열람해 기준에 맞는 학생을 선발함 -편집자) 도입을 계기로 대학입시제도가 사실상 선발제도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바칼로레아 점수가 일정 수준만 넘으면 몇몇 그랑제콜을 제외하고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결과 중산층의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또 중산층은 일반적으로도 자신들이 정부 정책 수혜자가 아니라고 느낄수 있다. 특히 위기가 오면 정부 정책의 초점이 주로 빈민층과 부유층에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두 계층 사이에 낀 중산층은 자신들이 잊힌 존재라는 원망을 키웠다. 이들의 요구가 오늘에야 정치적 주목을 받은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탄생한 노란조끼 운동 덕분이다. 그러나 과연 이 상황이 얼마나 갈 것인가.
 
노란조끼 시위는 이른바 ‘변두리 프랑스’의 반항일까? 지리학자이자 시사평론가인 크리스토프 길루이는 역동적이고 세계화된 대도시와 주변부로 밀려난 도시 변두리·농촌 지역의 대립으로 노란조끼 운동을 분석한다. 이런 대립 구도는 노란조끼 운동을 다룬 여러 분석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시각이다. 실제 노란조끼 시위는 도시 변두리 지역에서 활발했다. 특히 과거 잘나갔으나 제조업 쇠퇴로 위기를 맞은 공업도시 변두리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으로 판단된다.
 
   
▲ 2019년 1월12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노란조끼를 입은 시민들이 정부의 유류세 인상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REUTERS
도시 변두리와 농촌
유력 일간지 <르몽드>는 2018년 12월 한 달 동안 노란조끼 시위 여파로 휴교령이 내려진 고등학교 분포도를 조사했다. 학교들은 대부분 중소도시와 대도시 주변 도시에 집중됐다. 이런 분포를 봐도 노란조끼 시위가 전통적 시위와 뚜렷이 구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태풍의 눈이던 숙련노동자, 회사원, 소상공인 같은 일반 서민들이 도시 변두리 지역에 더 많이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각에는 정확한 분석이 빠졌다. 대도시가 아닌 곳은 빈민들이 사는 낙후 지역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이 큰 지역이다. 도시학자 다니엘 베아의 지적처럼, 프랑스 국민의 이동성 덕분에 도시-농촌 이분법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유효한 분석법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볼 때 프랑스 대도시에 40년 전부터 일자리가 집중됐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툴루즈·몽펠리에·낭트·보르도·렌·리옹 등 몇몇 대도시의 성과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실제 생테 티엔·루앙·니스·릴 같은 도시는 계속 뒤처진 상태였다.
 
같은 시기에 대도시가 아닌 지역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잘 이겨냈다. 이는 특히 사회보장제도 덕분이었다. 사회보장제도는 소득재분배로 지역 간 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인구 순유입 증가로 나타나는 주거지 측면의 매력도 이제는 확고하게 갖췄다. 도시학자이자 인구학자인 피에르 메를랭 계산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450만 명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노란조끼 시위의 성공과 ‘변두리 프랑스’ 개념을 설명하는 불안정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마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대대적인 ‘주변부 도시화'때문일 것이다. 일반 서민가구는 대도시에서 멀어짐으로써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 확장과 자동차 이용의 일반화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도시 변두리 주민은 에너지에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다. 에너지 취약성이란 한 가구의 난방·연료비 지출이 전체 가구의 지출 중간값보다 2배 이상 많은 것을 말한다. 지리학자 사뮈엘 드프라에 따르면, 주변부 도시화의 진전은 농촌 주민에게 삶의 물질적 조건이 바뀌는 데 민감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권력자의 무시
무관심과 경멸도 도시 변두리와 농촌 지역 불안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변두리 주민의 호칭은 다양하다. ‘이기주의자’ ‘꽉 막힌 사람’ ‘환경오염자’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농촌주민에겐 ‘보수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에리크 샤름이 최근 저서 <마을의 복수: 주변부 프랑스 연구>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배 담론은 일반적으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역사가 제라르 누아리엘은 노란조끼 시위자도 자신이 느끼는 불만을 말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결국 존엄성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래서 권력자의 무시에 대한 불만이 거의 언제나 대규모 시민투쟁에 나오는 것이다. 노란조끼 시위는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이런 규칙을 증명하는 사례다.” 근본적이고 상징적인 불만이지만 그렇다고 해소에 비싼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 2019년 2월호 종이잡지 87쪽에 실렸습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9년 1월호(제386호)
Les cinq fractures françaises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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