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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 준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06호] 2019년 02월 01일 (금)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 국민체력센터에서 열린 학교보안관 체력 측정에서 참가자가 제자리앉아서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골든타임(황금시간). 위급한 환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하는 의학용어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는 가장 효율이 높은 시간, 시청률이 가장 높은 방송 시간대를 뜻하는 말이다. 노후 준비에도 계획 수립과 실행이 좀더 쉬워지는 때가 있다. 
 
준비를 일찍부터 튼실하게 해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절실하지 않으면 작심이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 젊을 때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언제까지 직장에 다닐 수 있을지, 안정적 소득이 계속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결혼, 자녀 교육, 전세금과 내 집 마련 등 눈앞의 숙제가 많다. 먼 노후에 앞서 현재 삶을 누리거나 버티는 것도 벅차다. 생계 곤란으로 몇 년씩 부은 보험과 연금을 깨서 보험사의 배만 불려주는 일이 숱하게 일어난다. 보험협회 등의 자료를 보면, 가장 왕성하게 일하는 30~40대에 생명·종신보험과 퇴직연금 해지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게다가 노후에 저당 잡혀 많은 것을 미루며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것이 작은 행복의 지름길이다. 너무 먼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더 막막하다. 금연, 살빼기, 저축 같은 구체적 목표도 달성하기 녹록지 않다. 은퇴 뒤 일자리와 주거, 건강, 관계 등은 훨씬 광범위하고 손에 잡히지 않는 과제다. 생각하면 골치부터 아프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이 쳇바퀴를 맴도는 막연한 생각에 머문 채 퇴직 시기를 맞는다. 주변 50대에게 들어보면, 몇 년 전이나 요즘이나 노후 준비 수준이 대부분 비슷하다. 정년이 임박한 사람도 별로 다르지 않다. 만사가 닥치면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준비된 노후가 한결 알차고 평온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5년 앞두고
그럼 언제쯤 노후 준비를 본격화하는 것이 좋을까? 보통 직장인이라면 퇴직 5년 앞뒤가 적기라고 생각한다. 불확실성이 너무 클 때는 장기 계획과 준비가 실효성을 갖기 어렵고, 임박하면 딱히 손쓸 방법이 없다. 이즈음이면 노후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직장에서 큰 변동이 생기기 어렵고, 정해진 궤도를 따라간다. 
 
정년이 60살로 연장된 회사라면 대개 5년 전부터 임금피크에 들어간다. 퇴직까지 예상되는 수입과 퇴직금 등 노후자금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자녀의 대학 진학이 끝나 대부분 부모의 1차 책임도 완수했을 것이다. 내게 맞는 노후 모습을 그려보고, 필요한 준비 작업을 차근차근 실행하기에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시점이다. 물론 사람마다 사정이 다르고 편차가 있을 수 있다.
 
노후자금부터 살펴보자. 대체로 저축하고 있고,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 몹시 힘들 터이다. 그래도 달마다 100만원을 추가로 저축한다면 어떻게 될까? 5년 동안 원금만 6천만원이 쌓인다. 집값이 수억원 올랐거나 억대 연봉을 받는 사람에겐 대수롭지 않은 액수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월 100여만원인 퇴직자에겐 다른 소득 없이 5년을 지낼 수 있는 돈이다. 노후 생활비가 평균 월 200만원 남짓이므로.
 
중견기업 P부장은 정년을 5년 앞둔 지난해부터 월 200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다. 반은 노후생활비, 반은 여행자금 용도다. 세계일주 경험자들에 따르면, 혼자 1년 동안 외국을 다니는 데 3천만원은 부족하지 않다. 별일이 없다면 P부장은 정년퇴직 때 해외에서 2년은 지낼 수 있는 자금을 손에 쥔다. 세계일주는 은퇴자들의 꿈이지만, 이렇게 ‘꼬리표’를 달아 돈을 모으지 않으면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퇴직하면 마땅한 수입이 없다. 국민연금이 나오기까지 몇 년이 더 필요하다. 그냥 여행에 큰돈을 쓰겠다고 하면 무책임하다고 비난받는다. 마지막 목돈인 퇴직금 사용도 가족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일정 기간 지출의 짜임새를 높여야 의미 있는 금액을 채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란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간다.
 
노후 일거리도 마찬가지다. 온 나라가 일자리 부족으로 몸살을 앓는데 퇴직자가 새 일을 발견하는 게 쉬울 리 없다. 시도한다고 곧바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내게 맞는 것도 있고, ‘이 길이 아닌가보다’ 하고 돌아설 때도 생긴다. 퇴직 뒤에야 일을 찾겠다고 나서면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통장 잔고가 나날이 줄어갈 테니.
 
지난해 경찰 간부로 퇴직한 K씨는 서울 시내 초등학교 보안관으로 채용됐다. 월급은 200만원이 못 되는 수준이지만 주 40시간 근무에 5년 고용이 보장된다. 평소 배우기를 좋아하는 그가 따놓은 안전, 소방 관련 자격증이 합격에 한몫했다. 쓸모없는 ‘장롱 자격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건 우리 사회의 문제다. 그럼에도 막상 뭔가를 하려면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노후 연착륙
주거, 건강, 관계 또한 그리 다르지 않다. 은퇴하면 시간이 넘칠 테니 그때 생각하지 할 수도 있다. 사람은 쉽게 흔들리는 존재다. 퇴직 뒤 여러 가지를 새로 하려면 이런저런 고민이 얽히고설켜 초조함에 쫓긴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말처럼 뭐부터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만 부산해진다.
 
노후 취미생활로 그림을 그리고, 악기를 연주하고, 외국어를 배우는 것조차 간단치 않다. 처음 입문 단계는 모르지만 조금 지나면 좀체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시기가 찾아온다. 열정이 넘치는 이는 다르겠지만 웬만한 사람은 ‘이걸 꼭 해야 하나’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내가 뭐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가 무시로 찾아온다. 이에 비해, 생활이 비교적 안정된 퇴직 이전에 궤도에 올려놓고 이어나가는 것은 한결 손쉽다.
 
우리말에 ‘사부작’이란 낱말이 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다’는 뜻이다. 퇴근 뒤와 주말, 휴가 등 활용할 시간은 많다. 사부작거리며 쉬운 것부터 하나씩 해보자. 노후 준비 부담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이것이 노후 연착륙의 비결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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