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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살부터 누리는 경제적 자유
[Life] 돈 있는 히피- ① 배경과 이유
[105호] 2019년 01월 01일 (화) 안네 자이트 economyinsight@hani.co.kr

40살에 은퇴할 수 있도록 소득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절약 팁과 삶의 지혜를 교환한다. 그들에게 이런 생활은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과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안네 자이트 Anne Seith <슈피겔> 기자
 
   
▲ 젊을 때부터 절약해 40대부터 급여에 의존하지 않는 재정적 독립을 쟁취해 여행 등 자유롭게 살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REUTERS
집은 처분했다. 자가용은 겨울에 팔기로 계약돼 있다. 이제 바퀴 달린 트렁크 두 개, 작은 배낭 세 개만 남았다. 알렉스 피셔와 보볼리 피셔 부부, 7살 딸 레니만이 지금까지 이 부부 삶에 남겨진 것이다. 가방 안에는 이들의 옷과 레니가 방금 생일 선물로 받은 스케이트보드가 들어 있다. 보볼리에게 부족한 것이 없냐고 묻자 “전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볼리는 다시 한번 “전혀 없다!”고 힘줘 말했다.
 
가르다호수가 위치한 이탈리아 페스키에라델가르다에서 만난 피셔 가족은 여느 관광객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피부는 갈색으로 그을려 건강해 보였다. 파란색 뜨개옷을 걸친 아내 보볼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묶어 늘어뜨렸다. 남편 알렉스는 티셔츠 위에 앞이 트인 청재킷을 입었다. 딸 레니는 목과 팔목에 알록달록한 목걸이와 팔찌를 찼다. 피셔 가족이 이곳을 찾은 관광객과 뚜렷한 차이점은, 그들은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셔 가족은 2018년 7월부터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 처음엔 자동차로 유럽을 돌았다. 해안선을 따라 동쪽으로 지구를 돌아, 겨울에 아시아로 넘어갈 예정이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딸이 학교에 다니는 일도 없는(레니는 부모가 가르친다) 이 가족의 삶은 말 그대로 ‘히피의 삶’이다. 
 
40살에 연금 수령하다
피셔 가족의 삶은 독특한 재정 계획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10여 년에 걸쳐 히피의 삶을 목표로 저축해왔다. 피셔 부부는 두 사람 수입 중 절반 이상을 매달 주식 구입 자본을 마련하는 데 쏟아부었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이 현재 이들이 지출하는 돈을 충당해주고 있다. 이전까지 보볼리는 통신회사에서 주당 60시간을 일했다. 알렉스는 인터넷에 금융 블로그를 개설해 추가로 돈을 벌었다. 피셔 부부가 중노동에도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40살을 갓 넘은 지금 이미 연금 수급 자격이 생겼기 때문이다.  
 
피셔 부부는 많은 사람이 꿈꾸는 것, 요즘 들어 점점 더 많은 사람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을 이루었다. 바로 젊은 나이부터 절약해 재정 독립을 되도록 빨리 쟁취해 직장에서 받는 월급에 의존하지 않는 생활이다. 
 
‘재정의 자유, 조기 은퇴’(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이른바 ‘파이어’(FIRE)라고 하는데 최근 독일에서도 참여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 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프루갈리스트’(Flugalist)라고 한다. ‘자족하는 이’란 뜻의 영어 단어 ‘frugal’에서 따왔다. 인터넷 발달에 힘입어 이들 모임은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페이스북 그룹에서 정기적으로 만나거나, 자체적으로 주최하는 행사에서 절약 노하우를 서로에게 알려주고 ‘연금계산기’를 고안해내는가 하면, 나름의 투자 전략을 두루 알리기도 한다.
 
파이어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자신들이 이 운동에 참여하는 동기에 대해 숙고한다. 이런 삶은 단순히 구두쇠로 사는 것 이상을 뜻한다. 오늘날 소비 풍조에 대한 사회 비판, 끝없이 새로 출시되는 스마트폰 모델과 (환경을 해치는 -편집자) 일회용 커피, 하루 14시간 노동 등의 이슈에 대한 답변으로서 이들 스스로 이런 생활양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깨달으려는,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로서 말이다. 열렬한 프루갈리스트 중에는 화장실 변기 물을 내리면 얼마만큼 물이 소비되는지 계산해 절약을 실천하는 이들까지 있다. 이들은 1유로(약 1300원)를 지출할 때마다 이 돈이 자신에게 얼마큼의 기쁨을 가져다주는지 일일이 자문하고 계산한다. 
 
   
▲ 조기 은퇴해 경제적 자유를 누리려는 이들은 절약과 저축, 주식투자와 삶의 방식 등의 정보를 인터넷에서 공유한다. REUTERS
피셔 부부의 목돈 마련 비결
미국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이 절약 운동이 형태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불린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극단적’ 절약주의, ‘조금 덜 단호한’ 절약주의, ‘바리스타’ 절약주의로 구분한 기사를 냈다. 바리스타 절약주의란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짬짬이 일해 이곳에서 건강보험료를 지원받는 부류를 말한다. 이들은 대개 미국 기술공업 분야에서 일하던 남성으로, 탈진할 때까지 일하는 노동형태에서 이런 삶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피셔 부부는 원래부터 잘살았다. “무언가를 피해 선택한 삶이 아니다. 바이에른에 정원이 딸린 100㎡짜리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풀밭과 숲, 호수로 둘러싸인 아주 전원적인 마을이었다. 2000년 초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베를린에서 이사 왔다.” 아내 보볼리가 말했다.
 
알렉스의 첫 근무처인 그 지역 주택은행은 당시 면접시험에 온 지원자에게 지중해 요리를 제공하는 구내식당과 매월 초 급여를 이체해준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피셔 부부는 독일 전역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평범한 소시민 가족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피셔 부부는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집 장만을 위해 담보대출을 받은 뒤 수십 년을 원리금 상환에 매진하는 주변 동료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부터 ‘여행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딸 레니가 태어났을 때, 아이를 독일 교육 시스템 안으로 밀어넣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 잘 배운다는 것이 보볼리의 지론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장기 여행에 대한 욕구가 커졌다. 돈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자금 마련을 위해 다른 것을 모두 희생하는 것은 아니다 싶었다. 보볼리는 “우리는 절대적으로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알렉스는 세계일주 결정을 내리기 훨씬 전인 2003년부터 가계의 금융 관리를 도맡았다. 재정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우선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검사했다. 지난 몇 년간 은행의 상담 전문가 말에 솔깃해 가입했던 온갖 보험과 펀드를 해지했다. 
 
그다음, 조심스레 직접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별 주식 몇 주와 상장지수펀드(ETF), 다시 말해 주식 인덱스를 반영하는 펀드들을 매입했다. 인덱스에 들어 있는 주식들은 이미 선별되고 가치가 확고하게 나와 있는 것이어서 굳이 펀드 매니저 상담을 받기 위해 돈을 따로 낼 필요가 없었다. 알렉스는 점점 ‘투자’라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요즘엔 나름의 대담한 투자 전략까지 개발해 인터넷에서 상품으로 팔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그가 벌어들이는 수입은 현재 “여섯 자리 숫자의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한다. 주식배당금과 주가 상승에서 얻는 이익으로 알렉스는 가계 지출의 3분의 1을 너끈히 충당하고 있다. 나머지 지출금은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벌어들인다. 
 
피셔 부부는 남들이 보통 전 생애에 걸쳐 모을 수 없는 목돈을 15년 만에 확보했다. 두 사람이 모두 고수입자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늘 절약하며 살았다. 한 사람이 받는 월급은 원칙적으로 모두 투자 통장으로 들어갔다. 월급이 오르면 그 역시 올라간 몫으로 당장 적금을 부었다.
 
돈을 모으려면 어느 정도 원칙이 있어야 한다. 피셔 가족은 1년에 한 번씩 다음해 예산을 세운다. “우리는 한 달 평균 2500유로(약 321만원)로 살았다”고 알렉스는 떠올렸다. 지출은 적었지만, 이들은 자가용 두 대를 굴렸고 해마다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할 수 있던 비결은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식할 때면 요리를 2인분만 시켜서 셋이 먹었고, 음료는 1인분만 주문했다. 먹다가 부족하면 추가 주문을 했는데, 그런 경우는 많지 않았다.” 
 
시간부터 투자하라
“돈을 아끼려면 이것저것 찾아볼 시간부터 투자해야 한다.” 프루갈리스트들의 조언이다. 여행지에서 저렴한 숙박시설을 찾고, 유리한 휴대전화 요금제를 검색하며, 전기와 가스 업체를 활용하는 전략을 짜려면 시간 투자가 필수적이다. 전화와 인터넷 등은 계약 직후 첫 12개월 동안 특별할인이나 보너스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꼼수를 쓰면 실제 월간 지출이 현저히 줄어든다. “가계 지출 관리를 직접 하면 독일 내 평균적인 가계에선 연간 2천유로가 절약된다.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독일 <파이낸셜 어드바이스 닷컴>(Finanztip.de) 편집장 헤르만요제프 텐하겐이 계산한 결과다. 전력업체만 바꿔도 연간 300유로가 절약된다. 전화와 인터넷 계약 관리만으로 연간 550유로를 덜 낼 수 있다. 난방요금과 자동차보험 등도 입출금 통장을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절약이 가능하다.  
 
젊은 나이에 재정적 자유를 확보하는 일은 고소득자일 때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꼭 평탄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 25살 청년이 자신이 번 돈을 주식에 투자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소득은 세후 연간 4%다. 청년은 45살에 직장을 그만둘 계획이고, 그때부터 40년 동안 다달이 3천유로의 연금을 받으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매달 2천유로씩 저축해야 한다. 저축 목표액과 생활비를 합친 것보다 수입이 더 많아야 가능하다. 
 
* 2019년 1월호 종이잡지 27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46호
Hippies mit Geld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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