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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출현에 대비하라!
[Finance] 심상치 않은 자산시장
[105호] 2019년 01월 01일 (화)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18년 11월30일 외채 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민들이 “외채 상환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REUTERS
연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자산시장 얘기다. 사실 2018년 시장은 매도세가 장악했다. 신흥시장은 파열했고, 그 균열이 마침내 선진시장으로 번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1월25일 인용한 도이체방크 자료에 따르면, 2018년엔 모든 자산군의 90% 이상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무려 70개 자산군에서 90% 수익률이 마이너스다. 사상 최대다. 1920년엔 37개 자산군에서 84%가 마이너스 수익을 기록한 적이 있다. 2017년에는 조사 대상 자산군 1%만이 자산을 까먹었다. 
 
자산시장이 호황에서 불황으로 바뀌는 데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글로벌 자산시장에서 정규분포를 벗어난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른바 ‘테일 리스크’ 출현이다. 실제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 무시되기 일쑤지만 한 번 일어나면 충격이 엄청난 리스크가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칠면조 우화 
나심 탈레브가 저서 <블랙 스완>에서 언급한 ‘칠면조 우화’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가정에 입양된 칠면조는 안전한 삶을 누린다. 좋은 사료를 공급받고 넓은 사육장에서 편안히 산다. 단, 추수감사절까지만이다. 칠면조에게 위기는 갑자기 찾아온다. 추수감사절, 칠면조는 목이 베인다. 아이러니하게 칠면조는 죽는 순간까지 죽음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안락함이 계속될 거라 믿었다. 하나, 실제론 추수감사절이 다가올수록 칠면조의 리스크는 증폭돼온 것이다. 칠면조가 최고로 안락했을 때는 리스크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다. 
 
이것이 칠면조 세계만의 일일까. 익숙하고 평온할수록 다가올 위기의 충격은 크다. 그런 위기는 오늘의 경제시스템에선 반드시 온다. 우린 ‘평균’과 ‘정상’이란 용어에 매몰돼 있다. 그 결과 정규분포를 너무 신뢰하게 됐다. 어쩌면 당연하다. 사회와 자연현상 대부분이 정규분포 속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극히 예외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다. 정규분포를 벗어난 사건이 수많은 피해를 낳았다. 이상기후로 일어나는 재난이 대표적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95%의 시간 동안은 평온하다. 이를 ‘정상’이라 부른다. 하나, 나머지 5% 극히 예외적 시간에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우린 예외적 사건, 예외적 시간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지난 100년의 금융시장, 아니 10년의 역사만 돌아봐도 정규분포를 벗어난 예외적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린 파괴적인 변동성을 목격했다. 정규분포, 평균이란 함정에 매몰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상한’이란 형용사로 정규분포를 벗어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민스키의 세 가지 국면
현대 경제체제는 금융화폐자본주의다. 하이먼 민스키는 현대 경제가 화폐경제임을 주장하면서 ‘금융 불안정성’ 가설을 제시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대부분 경제주체는 부채로 자금을 조달한다. 부채 크기는 금융시장 조건과 미래 기대수익으로 결정된다. 미래 수익에 대한 낙관적 기대와 금융시장의 조건 완화는 더 많은 부채 차입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업과 가계의 금융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모래성과 마찬가지로 부채에 의존한 금융과 경제 구조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진다. 금융위기가 주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금융구조 자체가 불안정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위기는 필연이라는 얘기다.
 
민스키는 소득 대비 부채 비율에 따라 경제를 세 가지 국면으로 분류한다. 헤지(hedged) 국면은 리스크가 거의 없는 단계다. 경제주체의 현금흐름이 양호해 언제든 이자와 원금을 충분히 갚을 수 있다. 전체 채무보다 현금과 현금성 자산이 더 많아 매우 안전한 단계를 말한다. 투기적(speculative) 국면은 리스크가 중간 정도다. 경제주체는 이자를 낼 수 있을 정도의 현금흐름을 유지한다. 물론 부채 만기가 도래하면 원금 상환은 불가능하다. 만기 연장을 해야 한다. 폰지(ponzi) 국면은 리스크가 가장 높다. 경제주체는 현금흐름으로 이자도 내지 못한다. 빚을 갚기 위해 새롭게 더 많은 빚을 내야 한다. 이는 지속 불가능하며 마침내 폭발하게 된다. 빚을 갚기 위해 모든 것을 내다 팔아야 하는 거대 청산이 발생하기도 한다. 디플레이션적 침체와 자산시장 붕괴가 일어난다.
 
깊은 침체를 겪은 뒤 경제는 헤지 국면에서 다시 출발한다. 시장은 안정적이고 대중은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믿는다.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점점 더 많은 부채를 얻게 된다. 자산시장은 가격이 오르고 이자 부담은 별것 아닌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경제는 점차 투기적 국면으로 향한다. 반면 경제는 둔화된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이자조차 돈을 빌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늘어난 빚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빚을 내야 한다. 빚으로 빚을 갚는 폰지 국면이 시작된다. 설상가상으로 금리는 올라간다. 채무자에겐 치명적이다. 곧 침체가 온다.
 
   
▲ 2018년 11월21일 서울 시내 한 은행의 대출 상담 창구 모습. 이날 한국은행은 가계빚이 사상 처음으로 1500조원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잔치의 막바지
현재 상황은 어떤 국면일까. 현금흐름으로 빚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 아니면 새롭게 더 많은 빚을 내야 하는 가. 개인 가처분소득은 충분한가. 그것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있나. 만약 가처분소득이 부채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없다. 그 반대라면 앞으로 경제침체가 불가피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데이터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 경제는 이미 투기 국면 막바지에 이르러 폰지 국면으로 진입 중이다.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이자 지급액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반면 가처분소득은 줄거나 변화가 없다. 지난 10년 동안 투자자와 소비자 대부분은 저금리의 ‘쉬운 돈’에 길들여져왔다. 원하면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 있었다. 그릇된 자신감에 사로잡혀 겁 없이 차입했다. 결과는 자산시장 폭등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재 금리가 오르고 있다. 불행하게도 가처분소득은 늘지 않았다. 파티는 막바지다.
 
민스키는 거품의 생성과 소멸 원리를 알고 있었다. 경제 활황과 폭발이 어떻게 정밀한 시계장치처럼 작동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일종의 인과론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주류 언론과 경제연구소는 이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가끔 부정적 경제 뉴스가 보도되지만 개별적으로 다뤄지기 일쑤다. 위기 징후라는 것을 파헤치지 않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지난 세월 이어진 저금리 정책으로 소비자는 마음껏 부채를 늘려왔다. 그 결과 한국 가계부채의 규모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고공행진했다. 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은 감소하지만 한국은 계속 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보면,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과 엇비슷하다. 금융 불안정성 가설에 비춰보면, 이미 폰지 국면에 들어갔다고 할 수 있다. 연이은 가계부채 규제 대책에도 2018년 10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10조원이나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죄자 신용대출 등 기타 대출이 2008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1100조원에 이르는 자영업 대출과 전세보증금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티핑 포인트
책 <블랙 스완>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이 말하려는 것은 비슷하다. 현대 경제에서 평화와 고요함의 시기는 미래의 혼란과 혼돈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현대 경제가 부채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시기, 대중은 안정감을 느끼면서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려 한다. 빚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나, 위험을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는 만성 불감증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위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일이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극적인 변화의 순간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 한다. 어떤 상황이 처음에는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변하는 순간을 말한다. 리스크 수용에서 회피로 변화하는 시기를 ‘민스키 모멘트’라고 한다. 이때 리스크가 큰 자산시장의 붕괴는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다.
 
이런 순간은 반드시 온다. 안정이 계속되는 상황은 오늘의 경제시스템에서 있을 수 없다. 현대 화폐경제에서 시장의 평온함은 칠면조의 안락감과 같다. 칠면조의 안전이 영원하지 않듯 시장의 안정 또한 그렇다. 오늘의 정상은 비정상의 씨앗이다. 중앙은행이 만든 인위적 정상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자산시장이 왜 필연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린 매번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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