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커버스토리 > 2010년
     
“누구나 기꺼이 세금 더 내자!”
[Cover Story]벼랑 끝 사회복지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이상이 economyinsight@hani.co.kr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의대 교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한 ‘경제적 자유주의’ 정책 패키지의 작동으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시작한 지 벌써 13년이다. 엄청나게 변했다. 공기업과 은행은 수없이 민영화됐고, 금융자유화와 생산체제 양극화에 따른 노동시장의 양극화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됐다. 이에 따라 소득과 소비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양극화와 민생 불안은 우리 국민의 행복 수준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로 묶어두고 있다. 이대로는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대한 희망이 없어 보인다.
 
 ‘범불안 시대’에 접어든 한국 경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였다. 이명박 정부 집권 초반기에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 항거’에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최근 40여 년을 돌아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역동적이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단기간에 이뤄낸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은 가히 눈부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독립국가가 생겨났고, 각기 다양한 방법으로 경제사회의 발전을 추구해왔지만, 성공한 사례는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도시국가와 대만을 제외하면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1970년대 본격화한 중화학공업 중심의 압축적인 경제발전, 1987년 민주항쟁의 성공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 완성,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사회복지 인프라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이런 역동성의 경제적 배경에는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을 추진했던 ‘발전국가론’이 있다. 발전경제학이 군사독재와 인권유린이라는 엄청난 비용을 초래했음에도 유치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한 국가 주도형 투자라는 측면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민주화운동의 성공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그런데 1990년대 중·후반 이래,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의 전면적 수용으로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을 지속하게 되었다.
   
지난 11월16일 야 5당 서울시 당대표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2011년 무상급식 예산 ‘0원’ 배정에 항의하며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들은 감세를 통해 정부의 재정 능력을 축소하고, 각종 경제·사회적 규제를 완화 또는 철폐함으로써 자본과 시장에 대한 정치와 국가의 제도적 개입을 최소화했다. 또 현실의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체제로서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를 출현시켰는데, 금융이 생산에 봉사하는 고유한 기능에서 벗어나 생산자본의 우위에 서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립화했다. 이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비판받아왔는데, 실제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로 그 위험이 현실화됐다. 신자유주의는 그 원리가 ‘자유시장 지상주의’이므로 본질적으로 양극화 성장 체제다. 이로 인해 노동자와 서민의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고, 중산층까지 경제·사회 생활의 불안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는 이른바 ‘범불안 시대’를 맞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를 민생의 ‘5대 불안’으로 정리했는데 △일자리 △보육·교육 △주거 △노후 △의료 불안이 그것이다. 우리 국민은 만성적 불안 속에서 개인주의·자기책임·경쟁지상·시장만능을 강조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원리에 따라 개별적으로 시장에서 불안 회피책을 찾느라 분주하지만, 날이 갈수록 불안은 깊어지고 민생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는 사람들이 생존본능에 따라 안정을 추구하게 되는데, 여기서 창의적 사고와 기업가적 도전정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므로 경제사회의 역동성이 급속하게 줄어든다. 가령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장래가 불확실한 이공계를 기피하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의대나 법대를 앞다퉈 진학하거나 고용 안정성이 보장된 공공부문 등에만 몰리고 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사회 구조와 보편적 사회안전망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잔여주의적(Residual) 선별적 복지 체제 탓이다. 세상은 정글처럼 약육강식 사회로 변해가는데, 제도적 복지는 미약해 개인과 가족의 안정적 삶을 보호해주지 않는 조건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피동적 자기보호’뿐이다. 이의 집합적 결과로 경제사회의 역동성이 저하되며, 사회 전반과 민생의 불안이 심화된다.
그런데 이 속에서 희망의 싹도 함께 자라나고 있었다. 불안과 위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난 6·2 지방선거를 통해 확인되었다. 정치는 표를 먹고사는 생물인 만큼 정치권은 민심의 변화를 포착해 기민하게 ‘좌클릭’을 단행했다. 정치적 수사에 머물지도 모르지만, 민주정부 10년의 신자유주의 양극화에 책임이 있는 민주당이 당헌에 ‘보편적 복지’를 박아넣었다. 더 나아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정동영·천정배 의원 등은 복지국가를 위한 재원 확보 방안으로 부유세나 사회복지목적세의 증세 프로그램을 공약했다. 손학규 대표도 민주당의 진보적 방향 설정을 인정하고, 행보를 함께하고 있다. 이런 민주당의 좌클릭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한나라당도 예외는 아니다. 차기 대선의 유력주자로 꼽히는 박근혜 의원은 ‘복지국가 건설’을 아버지의 유훈으로 받들고 있고, 안상수 대표는 ‘70% 복지’를 국회 본회의장에서 선언했으며, 정두언 의원 등은 더 나아가 현 정부의 정책 기조인 부자 감세 철회를 주장했다. 한나라당이 실제로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하거나 ‘70% 복지’를 추진할 가능성은 전혀 없음에도, 기존 노선에서 일정한 좌클릭은 정치적으로 불가피할 것이다.
이제 국민의 다수가 보편적 복지를 원하고, 우리나라가 장차 미국식의 신자유주의 시장국가가 아니라 스웨덴식의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하길 바라고 있다. 이런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는 ‘토종’형 복지국가를 추구하려는 세력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위기를 올바르게 극복하고 미래의 진보를 제대로 열려는 모든 진보개혁 세력과 지지자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은 △존엄 △연대 △정의를 3대 가치로 삼고, 4개 원칙을 기둥 삼아 구축되는데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가 그것이다.
 
보편적 복지는 기업가 정신 활성화해
보편적 복지는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고용보험 등 사회적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과 의료·보육·교육·요양 등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확립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는 중산층을 포함하는 모두가 복지의 주체가 되는 제도적 복지를 말하는데, 이런 복지 체계는 자신의 처지와 무관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물적 조건을 모두에게 제공하고 기회 평등을 보장해준다. 이를 통해 삶의 안정성뿐만 아니라 기업가적 도전정신이 확보되는 효과까지 거두게 된다.
적극적 복지는 국민 개개인의 잠재 능력을 극대화하는 조치를 말하는데, 이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강화를 가져온다. ‘맞춤형 특성화 교육체계’의 확립과 아동·여성·노인·장애인 등 대상별 능력 개발 시스템이 중요하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 안정화, 이를 통한 사회·경제적 계층 이동성의 증대도 적극적 복지 범주에 포함된다. 공정한 경제는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화, 공정한 대기업·중소기업 관계 구축, 산업자본에 조응하는 생산적·장기적 금융자본 체계, 금융의 공공성과 중소기업 지원체계, 협력적 노사관계와 노동권 신장, 연대적·누진적 조세제도 확립 등을 포함한다. 이는 신자유주의에서는 결코 달성될 수 없으며, 시장과 경제제도에 대한 사회적·민주적 개입과 유능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혁신적 경제는 창의성·다양성· 유연성을 중시하고 혁신적 중소기업을 강조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제도적으로 시행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평생교육 체계가 요구된다.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에서 중요한 것은 이 네 가지 원칙이 긴밀하게 연계돼 상호작용을 미치고 있으므로 어느 하나를 떼어낼 수 없다는 점이다. 가령 영국의 실패에서 보았듯이, ‘보편적 복지 없이 적극적 복지만을 강조’해 이를 ‘사회투자국가’라는 이름으로 수사적으로 강조한다면 이는 더 이상 진보가 아니다. 누진적 조세와 적극적 재정정책이 포함된 공정한 경제나 혁신적 경제 또한 보편적 복지나 적극적 복지와 뗄 수 없는 유기적 통합체다. 그럼에도 보수정치 세력은 그동안 경제와 복지를 ‘성장이냐 분배냐’의 대립적 이분법으로 구분해 이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프레임을 구축해왔다. 국민을 속인 것이다. 성장과 분배는 결코 뗄 수 없는 일체로서 유기적 통합체다.
 
세금 더 내야  ‘복지국가 혁명’ 가능

‘신자유주의 양극화 시대’라는 하나의 자본주의 시기를 마감하고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자본주의 시기를 열어야 할 시대적 과제가 요구된다.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지국가 전략은 보편주의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특정 사업장이나 지역별 구분을 넘어 국가 수준에서 제도적으로 복지를 보장받는 방식을 요구하고 성취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복지의 계층화가 극복된다. 이를 위해서는 연대적 조세재정 전략이 요구된다. 누진적 조세제도 확립은 그 자체로서 시장임금의 차이를 보정해주고, 이를 통해 확보된 재정은 진보적 산업정책과 보편적 복지의 제도화를 위해 지출됨으로써 산업과 경제의 양극화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수출경제와 내수경제의 통합적 발전에도 기여하게 된다. 또 충분한 재정 능력을 갖춘 큰 정부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기존의 파행적인 기업별 노사관계가 아니라 노동권의 보편적 신장에 근거한 협력적·생산적인 새로운 노사관계로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가 보편주의 복지국가라는 ‘한 배’를 타려면 누구나 자신의 소득과 능력에 합당한 세금을 부담해야 한다. 세금 없는 복지국가는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시장만능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복지국가 혁명’을 필요로 한다. 누진적·연대적 방식으로 세금을 기꺼이 더 내겠다는 ‘깨어 있는 시민’이 늘어나고, 이들이 다수가 될 때 마침내 복지국가라는 ‘배’는 출항할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의 ‘일반정부 재정’(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재정과 비시장적 공공기관의 재정을 합한 것으로 국제비교 기준으로 사용됨) 규모는 2010년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1% 정도다. 북유럽 국가의 평균은 55%고, 유럽연합 국가 평균은 51%, OECD 국가 평균은 45% 정도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14%포인트가 더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2010년 GDP를 약 1100조원으로 보면, 2010년 일반정부 재정은 약 340조원이 되고, OECD 평균에 도달하려면 약 150조원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이 막대한 돈을 조달하려면 세원 포착 및 탈세 방지와 함께 일반조세와 사회보장기여금을 획기적으로 늘리려는 투쟁이 요구된다. 우리나라의 2010년 조세부담률((국세+지방세)/명목GDP)은 19.3%로 추정되는데, OECD 평균인 26.6%(2008년)에 비해 7.3%포인트 낮다. 우리 국민은 지금보다 세금을 약 37%를 더 내야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률에 도달한다. 또 우리나라의 사회보장기여금 부담률(사회보장기여금/명목GDP)은 5.8%인데, OECD 평균이 9.1%이므로 우리나라는 현재보다 사회보장기여금을 56% 정도 더 내야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한다.
보편적 무상급식 의제에 이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가 추진하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은 복지국가를 위해 기꺼이 공적 부담을 감수하려는 ‘깨어 있는 시민’을 확장하려는 중요한 시도다. 이것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보편적 복지’도 ‘복지국가’도 모두 수사적 구호에 불과하게 된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는 시민들에게 지금 내고 있는 국민건강보험료의 34%를 더 내자고 설득한다. 이 경우 고용주도 정부도 지금보다 34%를 더 부담하게 된다. 이렇게 확충된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입원 무상의료와 연간 본인부담의료비 100만원 상한제를 실현할 수 있고, 이는 의료비 불안을 개인 단위의 시장적 방식으로 해결하는 실손 민간 의료보험 가입의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전국적 수준에서 풀뿌리 참여 방식의 보편적 의료복지 쟁취 운동을 통해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는 경로를 제시하자는 것이다. 이제 신자유주의를 넘어 역동적 복지국가로 향하려는 ‘복지국가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이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고경태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윤종훈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