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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도시, 떠나는 스타트업
[Business] 중국 최초 경제특구 선전의 현주소
[104호] 2018년 12월 01일 (토) 안카트린 네지크 economyinsight@hani.co.kr

서구의 끝없는 전자제품 수요는 중국 선전을 부유한 도시로 만들었다. 이제 메트로폴리스 선전은 단순한 모방도시가 아닌 발명도시임을 입증하려 한다.  

안카트린 네지크 Ann-Kathrin Nezik <슈피겔> 기자
 
   
▲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 선전의 상징 킹커우 국제금융센터. 선전은 전세계 전자제품 수요와 맞물려 40여 년 만에 인구 2천만 명의 국제도시로 성장했다. REUTERS
캐나다 출신 섀넌 후버(44)가 처음으로 중국 선전 땅을 밟았을 때, 잿빛 도시를 상상했다. 휘황찬란한 금융 메트로폴리스인 홍콩을 경유해 국경을 지나 선전으로 넘어갈 때만 해도 입국심사 공무원이 마치 군인처럼 보였다. “사회주의국가는 으레 이런 풍경이려니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홍콩 국경 반대편에 있는 선전의 실제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국경을 지나 펼쳐진 선전 모습은 상상과 180도 달랐다. 하늘에서 바라본 선전은 미국 뉴욕 맨해튼을 방불케 했다. 도심 곳곳에 공원이 있고 전기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선전은 중국 경제발전의 결정판이다. 후버는 선전의 미래를 만드는 창업자센터 한 곳을 방문했다. 복도에는 최근에 바른 콘크리트 냄새가 풍겼고, 곡선으로 된 목재 조각이 진열돼 있었다. 그는 16번째 선전을 방문했다. 
 
선전오픈이노베이션랩 설립자인 데이비드 리는 “전세계 어디에서든 전자제품을 판매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선전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선전의 전자 부문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선전 북부에는 수백 개 공장이 도심을 반지처럼 빙 둘러싸고 있다. 애플에 주문자제작방식(ODM)으로 납품하는 대만의 대기업 폭스콘(Foxconn)이 운영하는 아이폰 조립공장도 이곳에 있다. 
 
값싼 전자제품을 향한 전세계의 끝없는 수요가 과거 시골이었던 선전을 부유한 메트로폴리스로 탈바꿈시켰다. 현재 선전은 전세계 사업가와 행운을 찾는 이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이고 있다. 명실상부한 ‘꿈꾸는 자들의 도시’다. 
 
전자제품 생산기지
대학에서 정보학을 전공한 후버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오랫동안 항공사 정보기술(IT) 부서에서 일했다. 이후 그는 아내 마리아 엘레나와 함께 미술 갤러리를 열었고, 패션과 기술 융합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1년 전 가장자리에 반짝거리는 LED 장식이 달린 스커트와 사람이 밀착하면 색깔이 변하는 배낭 등 누구나 초현실적인 옷을 만들 수 있는 키트를 개발했다. 일명 ‘웨어러블 테크놀로지’(Wearable technology)다.
 
그의 아이디어는 인터넷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후버는 크라우드펀딩으로 약 2만유로(약 2600만원)를 모았다. 그가 개발한 키트를 구매하려는 200여 명이 펀딩에 참여했다. 그가 선전을 다시 찾은 이유는 키트 생산자를 찾기 위해서다. 후버가 전자제품 시장에 가기 위해 창업자센터 앞에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는 절반쯤 지어진 고층건물이 늘어선 선전 거리의 교통체증을 힘겹게 뚫고 지나갔다.  
 
개혁가 덩샤오핑 전 중국 주석은 40년 전 중국에 자본주의를 도입하기로 결심하면서 습지대 한가운데 있는 인구 3만 명의 선전을 경제특구로 낙점했다. 덩샤오핑은 낙후한 중국을 발전시키려면 “일부 지역이라도 부유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개혁·개방 정책의 하나로 선전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만들었다.
 
선전에서 전자산업이 발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전과 인근 지자체는 세계의 공장이 되어 세계시장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생산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시작으로 이후 DVD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을 생산했다. 선전 지방정부는 수차례 도시 규모를 늘려나갔다. 새 주거지와 공장이 빠른 속도로 선전 주변 지역으로 뻗어나갔다. 현재 선전은 인구 2천만 명에 상장기업 100개가 위치한 명실상부한 메트로폴리스로 거듭났다.
 
후버가 전자제품 시장에 도착했다. KFC 매장을 지나 고층빌딩에 들어선 그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매장에서 USB 케이블 50개를 구매할 참이다. 후버는 마치 정육점에서 육질을 품평하듯 판매상에게 “품질이 좋네요”라고 말했다. 젊은 판매상이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은 내가 개발한 키트에 들어가는 특수한 부품이 필요했는데, 시중에서 팔지 않는 것이었다. 전자제품 시장의 한 판매업자에게 연락했더니, 30분 만에 그 부품을 찾아놓아 놀란 적이 있다.”
 
후버의 경험담처럼, 선전의 전자제품 시장은 세계 전자제품 트렌드의 리트머스시험지다. 여기서는 어디서도 찾기 힘든 특이한 제품뿐 아니라 누가 봐도 뻔한 짝퉁 제품들까지 판매한다.
 
‘산자이’에 눈뜨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이디어 도용을 중대한 범죄로 여긴다. 중국에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중국 고대 철학자들은 ‘완벽’도 타인을 ‘모방’해서 가능해진다고 믿었다. 전자제품 모조품은 중국어로 ‘산자이’다. 수십 년간 해외 기업의 용병처럼 일했던 선전 공장들이 돈이 되는 비즈니스 모델인 산자이에 눈뜨기 시작했다. “산자이는 가능성에서 최상을 만들어내는 예술이자 뻔뻔함과 비즈니스 감각의 중간 어디쯤 있다.” 
 
‘모방의 황제’로 불리는 로빈 우(34)는 선전의 한 고층빌딩 23층에 자신의 제국을 만들었다. 구석에 빔프로젝터로 용도가 변경된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다. 벽은 장식품들로 둘러싸여 있다. 로빈 우는 빔프로젝터 앞에서 젤리 슈즈를 신은 채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 커크 선장 포즈로 앉아 있다.
 
그는 “애플 아이패드 짝퉁을 만드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아이패드의 마지막 부품 하나까지 낱낱이 분해해 다시 조립해봤다고 한다. 현재 그는 선전 전자제품 시장에서 이 짝퉁 아이패드를 원조 아이패드의 3분의 1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지금까지 1만 개를 팔아 50만달러(약 5억6675만원)를 벌었다. 심지어 미국 방송 <CNN>에 출연도 했다.
 
로빈 우는 이제 짝퉁 사업에서 손을 뗄 참이다. “짝퉁으로 쉽게 돈을 벌 수는 있지만, 사회적 존경은 돈으로 사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그가 컴퓨터에서 에티오피아와 르완다에서 찍은 사진 폴더를 클릭했다. “요즘 아프리카에서 돈을 벌고 있다. 아프리카의 생산비용은 아시아보다 저렴하다.”
 
   
▲ 2015년 4월28일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GMIC(Global Mobile Internet Conference)에서 관람객들이 유비테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지능형 로봇 ‘알파'의 사진을 찍고 있다. REUTERS
선구자 정신 무장
과거 중국인은 위대한 발명가였다. 종이와 나침반도 중국에서 발명됐다. 하지만 19세기 유럽과 미국에 추월당했다. 중국의 엄격한 학교 시스템,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 가르치는 유교 문화가 원인이다. 어쨌든 서구에서 산업화가 진일보하는 동안, 중국은 타인의 지적재산을 도용하는 카피캣(소비자에게 인기가 있거나 잘 팔리는 제품을 그대로 모방해 만든 제품 -편집자)에 만족해야 했다. 
 
중국에서 이제 새로운 발명가 시대가 열리고 있다. ‘중국제조 2025’(Made in China 2025)는 중국을 10대 핵심 부문에서 선도적인 반열에 올려놓는다는 산업 고도화 전략을 가리킨다. 미국은 중국의 이 전략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전쟁은 중국이 신흥공업국에서 기술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선전은 오래전 기술선진국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전 시민 누구나 아이디어로 돈 벌 궁리를 한다. 폭스콘의 전직 엔지니어는 전자발찌를 개발 중이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젊은 남성의 티셔츠에 “트렌드를 복제하지 마라, 창조하라”(Don’t copy trends, create them)고 적혀 있다. 과거 ‘산자이 부서’를 운용했던 산업디자인 전문업체는 지금은 직접 디자인한 제품만 선보이고 있다. 
 
2018년 5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선전을 방문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아주 귀여운 놀이용 로봇 ‘알파’(Alpha)와 악수를 했다. 알파를 만든 저우지안(42)은 7살 때부터 로봇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성인이 된 그는 상하이에서 선전으로 이주해 수년간 조종 로봇 개발에 매달렸다. 저우지안이 2016년 중국 국영방송 <CCTV>에 출연하면서 그의 로봇기업 유비테크(Ubtech)는 전환점을 맞았다. 신년 특집 방송에서 알파 로봇 540개가 춤을 추는 진귀한 기록을 세운 것이다.
 
저우지안은 현재 40개국에 로봇을 수출한다. 직원 1천여 명이 근무하는 유비테크는 2019년 상장할 계획이다. 그는 로봇이 조만간 청소, 요리, 어린이 학습 도우미 등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일을 대신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가정에 유비테크의 로봇이 있을 것이다.”
 
저우지안을 비롯한 선전의 창업자들은 기존 전자산업을 인터넷·인공지능 등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신세계와 융합했다. 지난 몇 년간 창의적인 연구개발로 선전에는 텐센트, 화웨이, DJI, BYD 등 각 분야에서 세계 최고에 속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중국 전기자동차기업 BYD(Build Your Dreams)는 독일 경쟁업체들이 지금까지 실패했던 전기버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영국 런던시는 명물 2층 버스가 노후화되자 BYD에 전기버스를 주문했다. 선전의 성공 스토리 중 하나인 드론 전문기업 DJI는 기술광들만 이해했던 비행기기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기성제품으로 만들었다. 
 
전자제품 활황은 선전을 변화시켰다. 허름한 주거용 건물이 있던 자리에 쇼핑몰이 들어섰다. 선전 전역에 하이테크 공원과 공유 오피스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이곳이 선전인지 브루클린인지, 베를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과거 도떼기시장이던 전자제품 시장도 깔끔하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바뀌었다. 새롭게 포장되고 꽃이 심어진 보행자 도로를 교통경찰이 순찰한다.
 
젠트리피케이션 
불행하게도 지금의 선전을 만든 선구자 정신이 대자본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선전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독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낙후된 구도심 지역이 활성화돼 중산층 이상 계층이 유입됨으로써 기존 저소득층 원주민을 대체하는 현상 -편집자)이라고 부를 것이다.
 
구름이 잔뜩 낀 어느 날, 젊은 여성이 선전의 호화찬란한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 객실에서 샌들을 신고 셔츠를 입은 채 앉아 있다. 책상 아래에서 3D 프린터기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무언가를 출력하고 있다. 바닥에는 공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이 여성의 이름은 아일랜드어로 ‘자유’를 의미하는 세어셔다. 
 
23살 때 집에서 독립한 세어셔는 몇 달 전부터 이 호텔에 거주한다. 결혼 전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중국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전제적 학교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세어셔는 학교를 중퇴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번호를 부여했고, 어느 순간부터 그런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다.”
 
세어셔는 이때부터 전자제품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친구에게서 3D 프린터를 빌려 선전 창업자센터에 사무실을 차렸다. 언젠가부터 임대료를 감당할 여력이 없게 됐고, 결국 호텔 객실에서 전자제품을 조립하고 있다.   
 
최근 세어셔는 U자 형태 플라스틱 파이프를 발명했다. 양쪽 끝이 핸드백처럼 가죽끈으로 연결돼 있다. 파이프에는 대기 중의 온도, 습도, 먼지를 측정하는 센서가 부착돼 있다. 그녀가 개발 중인 이 기기는 완성 전 단계지만 작동에 문제가 없다. 기기는 센서가 위치한 곳의 대기질을 측정한다. “이동형 대기질 측정기가 중국 대기오염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바란다.” 이 기기를 계기로 세어셔는 기업을 설립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선전에서는 오로지 비즈니스만 중요하다. 나는 더이상 이것을 견딜 수 없다.” 
 
세어셔는 자신의 아이디어로 무언가 변화시키고 사회에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현재 선전을 떠날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미국이나 독일로의 이주도 고려한다. “중국은 언뜻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규정을 준수하는 한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 2018년 12월호 종이잡지 76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43호
Stadt der Träumer
번역 김태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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