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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함께 빚는 콘텐츠 세상
[Culture & Biz] 기술이 바꾸는 공간
[104호] 2018년 12월 01일 (토) 문동열 rabike0412@gmail.com
문동열 레드브로스 대표
 
   
▲ 2014년 4월18일 부산시가 도시재생 차원에서 진행한‘산복도로 프로젝트 기획전'의 마을 모형을 관람객이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새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 제작자로 오랜 기간 지내다보면 직업병 같은 것이 생긴다고 한다. 세상 모든 게 콘텐츠로 보인다는 것이다. 심할 때는 망상 가까운 증세도 나타난다. 일상에서 재미있는 사람을 만나면 곧바로 시트콤과 예능 프로그램의 새 캐릭터가 연상된다. 지하철을 타거나 거리를 걸어갈 때 관찰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표정에 자막이 붙어 보인다. 어떤 상황을 지켜보면 머릿속에서 배경음악이 흐르기도 한다. 필자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수련이 부족한지, 내공이 모자란지는 모르겠다. 모든 종류의 문화적 개념과 형태를 담은 게 콘텐츠라고 한다면, 세상 모든 게 콘텐츠로 보인다는 제작자의 ‘편집증적’ 직업철학도 이해받을 만하다. 
 
최근 우리가 말하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콘텐츠로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콘텐츠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콘텐츠산업이 전문적이고 특수한 성격을 가진 사업에서 복잡한 일상을 반영하는 소통 수단으로 발전하는 시대적 흐름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미디어 기술의 기여가 크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콘텐츠 제작은 전문적 영역이었다. 일부 훈련받은 전문가만이 제작할 수 있다고 여겼다. 경험 많은 선배가 갓 입문한 후배에게 도제식 훈련을 하는 구조는 일종의 진입 장벽을 만들기도 했다. 실제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전문 지식과 기술은 긴 시간과 경험을 요구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콘텐츠 제작 과정은 파격적으로 간소화됐고, 누구나 쉽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가 열렸다. 
 
최근 ‘1인 미디어’라는 개인화된 미디어가 여러 동영상 플랫폼을 휩쓸고 있다. 미디어 기반의 콘텐츠 제작도 전문 영역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으로 번지고 있다. 여러 부류와 연령대의 사람들이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 다양성이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 밥 먹는 게 ‘먹방’이라는 콘텐츠 장르가 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인데 말이다. 콘텐츠산업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세분화하면서 그 영역과 영향력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미디어에서 콘텐츠로
과거 일부 전문가들의 폐쇄된 제작 환경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주제의 콘텐츠가 잇달아 생산된다. 콘텐츠 전문가들이 다양성을 자신의 시스템으로 수용해 기존 산업에 연결하는 재생산 과정도 이제는 흔히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이 콘텐츠’라는 트렌드와 함께 다양성이 콘텐츠산업의 전반적 구조를 역전시키고 있다. 
 
2010년대 초반 ‘세상의 모든 것이 미디어’라는 구호와 함께 ‘공간미디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생활하고 의사소통하는 공간이 미디어로 작용한다는 개념인데 당시 트렌드를 이끌었다. 이 개념은 인터넷이 급속도로 발전하면 모든 것이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현실과 가상공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 데서 시작한다. 사물인터넷(IoT)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추상적인 개념이다. 사람들 인식 속에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 실제 생활하는 공간이 미디어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멀리서 정보 인식이 가능한 무선주파수인식장치(RFID) 같은 기술로 공공장소에서도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공공 인터넷망 확대로 공공형 단말기는 공중전화를 대체할 전망이다. 공간미디어 개념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되는 사례가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 나온 미래 도시의 광고 시스템이다. 사람이 지나가기만 해도 그의 신상을 읽어 맞춤형 광고를 제시한다. 앞으로 커뮤니케이션은 집 안 컴퓨터를 벗어나 옥외광고·옥외미디어·디지털 사이니지 같은 기기로 옮겨간다. 이 기기들은 생활공간 곳곳에 있어 언제 어디서든 네트워크에 접속된 환경에서 광범위한 소통을 제공한다.
 
하지만 공간미디어는 몇 년 지나지 않아 큰 변화를 만난다. 바로 아이폰의 출현이다. 전화와 컴퓨터가 결합된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공간미디어가 이야기하던 공공형 기기의 의미가 무색해졌다. 손바닥이 하나의 미디어가 됐다.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벗어나 공공 공간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지만 정반대 상황이 됐다. 사람들은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업무를 보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영화·TV 시청과 쇼핑, 야식 주문, 결제를 한다. 전화기와 컴퓨터에 이어 지갑, 다이어리, 명함집 등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가방 속은 예전처럼 복잡하지 않게 됐다. 스마트폰 하나와 배터리가 떨어질 때의 불안을 고려해 보조 배터리를 하나 가지고 다니는 정도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지금 생각해도 혁명에 가까운 사건이다. 우리가 현재진행형으로 살아서 그 위대함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산업혁명 시대에 증기기관차를 처음 본 사람들이 시끄럽고 연기만 뿜어대며 마차보다 조금 빠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며 무시했던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급속히 진행된 미디어의 개인화로 공간미디어 개념은 한때의 트렌드로 흘러가버리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빅뱅이라 할 만한 콘텐츠 다양화 흐름과 결합돼 다시 한번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 공간미디어 사례로 미래 도시의 광고 시스템을 잘 보여주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콘텐츠 결합형 공간
요즘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공간과 콘텐츠의 결합이다. 콘텐츠 결합형 공공 공간이나 공간형 콘텐츠, 또는 플레이스 플래닝 등 학자와 업계마다 자신에게 맞게 만들어 쓰기 때문에 아직 확실한 용어나 개념이 정해지진 않았다. 도시계획을 이야기할 때 많이 나오는 도시재생 같은 것도 넓은 의미에서 공간형 콘텐츠로 보기도 한다. 이전의 공간미디어처럼 우리가 사는 공간을 기반으로 한 현실 생활을 콘텐츠와 결합해 재구축한다는 개념만은 일맥상통한다.
 
공간 재구축은 거주민들의 삶에서 질적 향상을 목표로 한다. 본질적으로 관광산업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옛 시가지를 효율적으로 개발해 도시의 균형발전도 꾀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외부 관광객이나 외부 자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공간과 콘텐츠를 결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관광자원이 빈약한 곳일수록 콘텐츠 결합형 공공 공간의 필요성이 크다. 지금은 콘텐츠 결합형 공간의 대부분이 관광 자원화를 목적으로 한다. 부산의 복잡한 산복도로를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꾸미거나, 한옥마을을 전통 보전 지역으로 단장하는 등 일차적 형태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사물인터넷 등 다양한 기술을 접목해 현실 공간을 거대한 콘텐츠로 만들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중국의 한 지방정부에선 관할 지역 전체의 관광자원을 한데 묶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한 여행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 미디어의 지원 외에 방문자들의 여행 글과 사진, 영상을 모아 소셜네트워크화하고 다양한 채널에서 콘텐츠로 내보내는 개념까지 포함한다. 단순한 개인적 차원의 여행 경험을 콘텐츠화하는 일종의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에 불과한 구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공간미디어와 달리 지금은 누구나 콘텐츠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콘텐츠산업의 큰 흐름이 뒷받침되고 있다. 5세대(5G) 통신 인프라의 발전, 인공지능이 결합된 콘텐츠 제작 도구의 등장 등을 비롯해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있는 배경은 충분히 조성돼 있다. 이 때문에 콘텐츠 결합형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가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콘텐츠 결합형 공간을 통해 누구나 콘텐츠 제작자가 되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수익까지 창출하는 진정한 콘텐츠 결합형 공간미디어를 경험하는 시대가 다가온다. 관념적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고 할 수 있다.

* 문동열은 영상콘텐츠 스타트업 레드브로스 대표로 저비용·고효율의 한국형 영상콘텐츠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미디어마케팅을 전공했고 SBS 콘텐츠허브에서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또한 IBK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에서 콘텐츠 금융과 콘텐츠 기업 컨설팅을 맡았다. 방송 제작과 금융에 모두 정통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전문가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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