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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고용 안전망’ 야단법석 떨어야
[Issue]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최영미 economyinsight@hani.co.kr

최영미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사무처장
 
1997년 말에 터진 외환위기는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라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이 모습을 드러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2008년 10월, 10년 만에 또다시 우리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국제 금융질서가 서민의 삶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나락에 빠뜨리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구자와 시민사회단체는 ‘실업’이라는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 고용보험이 이런 위기 과정에서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지 본격적으로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관리자가 자꾸 여자애들을 툭툭 건드리고 장난을 치기에 점장님한테 항의했더니 실업급여를 받게 해줄 테니 그만두라고 하더라고요. 싫다고 하니까 다른 지점으로 이동시키고 일도 이상한 걸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치사해서 요즘 취직이 어려울 줄 알면서도 그만두었는데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퇴사했다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거예요.”(대형마트 직원 C씨)
“지난해 12월부터 날씨가 안 좋아서 올해 3월까지 놀았어요. 그러다 지난 3월20일부터 일을 했는데 그래봤자 평균 보름 정도고, 여름에 또 날씨가 안 좋았잖아요? 7월에는 일한 날짜가 보름도 안 되고 그나마 8월에는 22일 일했으니까 많이 한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날짜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건설일용직 J씨)
   
지난 9월 한양대에서 열린 ‘2010 한양 잡 디스커버리 페스티벌’(Job Discovery Festival) 취업박람회.

 
가입기간 축소하고 지급기간 연장해야
고용보험 가입자이더라도 많은 실업자들이 ‘자발적 이직자 제외’ ‘180일간 가입’이라는 실업급여 지급요건 조항에 묶여, 실직한 상태에서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아예 고용보험에 가입조차 못하는 사람이 취업자 2천만 명의 절반인 1천만 명에 이른다는 점이다. 학원을 다니며 한 달 평균 50만원 이상을 구직활동비로 쓰고 있지만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청년실업자, 장사가 안 돼 직업훈련을 받든지 다른 일을 찾든지 하고 싶지만 문을 닫으면 당장 하루 생계가 걱정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돈만 까먹고 있는 자영업자, 간병인·가사도우미로 일하다가 본인이 몸이 아파 당분간 쉬어야 하는 여성 돌봄노동자들….
너무 엉성한 ‘고용안전망’ 제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실직→모아놓은 돈 까먹기→신용불량자 되기→기초생활보장법상의 수급자 신청’이라는 빈곤화 과정에 거의 직선적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몇몇 연구자와 노동시민사회단체(민주노총·한국노총·청년유니온(준)·한국여성노동자회·참여연대 등)가 중지를 모아 ‘고용보험 확대와 실업부조 도입을 위한 연대회의’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이 조직을 기반으로 지난 11월4일 국회에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민주당 홍영표 의원 외 10명 공동발의)했다.
발의된 고용보험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구직촉진수당’ 제도의 도입이다. 대상은 주로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실이 없는 실업자, 폐업 자영업자, 가입했지만 피보험 단위기간 미충족으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업자다. 본인 및 배우자의 소득·재산 조사를 거쳐 최저임금의 80%를 6개월 한도에서 지급하며, 수급자는 직업안정기관의 직업훈련·교육·취업알선 등에 성실히 응할 의무를 진다. 즉, 되도록 많은 국민을 고용보험 제도 안에 끌어들임으로써 고실업 시대에 명실상부하게 ‘전 국민 고용안전망’ 기능을 갖추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고용보험 가입기간 축소 및 실업급여 지급기간의 연장이다. 먼저 이직일 이전 18개월간 180일 이상 가입할 것을 ‘120일’로 완화했다. 지금 취업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특히 일용직은 월급제 정규직과 달리 하루 단위로 가입 일자가 계산되기 때문에 180일을 채우려면 실제로는 8∼10개월을 지속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다음으로 현 제도에서는 최대 6개월, 평균 4개월밖에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가 늘어나고 재취업에 걸리는 기간은 그 이상이라는 점을 볼 때 급여 일수를 최대 1년으로 연장했다. 이는 이미 1980년대부터 실업이 만성화한 외국에서는 일반적인 조항이다.
셋째, 자발적 이직자에게도 실업급여를 지급하게 했다. 자발적 이직이라 해도 이직 뒤 창업이나 재취업이 어려워 사실상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빠진 경우, 형식적으로는 자발적 퇴사여도 내용상으로는 외부 압력이나 업무 조정에 의해 불가피하게 그만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감안해 이직 뒤 3개월이 지나도 실업 상태라면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했다.
넷째, 국가예산 투입을 의무화했으며, 특히 구직촉진수당은 일반예산에서 부담하도록 했다. 현재 실업대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예산은 고용보험 가입자의 보험료에서 충당되고 있다. 실업급여, 직업훈련, 하다못해 노동부 고용지원센터 건립비까지 보험 가입 노동자와 사용자의 호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다. 정부는 고용보험기금의 0.25%(2007년)만 부담한다. 고용을 책임지는 고용노동부의 예산을 보아도 2009년 현재 40%가 고용보험기금, 50%가 산재보험기금과 장애인고용촉진기금 등 각종 기금이고 일반회계 예산은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국민을 실업의 위험에서 보호해야 할 책무를 지닌 정부가 실제로는 국민의 세금을 이 분야에는 거의 투입하지 않고 국민이 내는 보험료에만 의존한다. 이에 따라 이번에 제출한 개정안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구직촉진수당에 정부 일반예산을 투입해 책무를 다하도록 의무화했다.
 
재원은 정부의 의지와 우선순위 문제
그렇다면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쯤일까? 국회 예산정책처는 구직촉진수당의 도입, 급여액 인상 및 급여 일수 연장, 가입기간 축소 등을 따졌을 때 2011년 3조2천억원을 시작으로 2015년까지 향후 5년간 총 18조2천억원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과연 지금도 어렵다고 하는 우리 국가재정은 막대한 신규 예산을 감당할 수 있을까?
요즘 상황을 보면 이 정도 예산쯤은 ‘막대’하다는 말을 붙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다. 여당 안에서조차 한창 논란이 되고 있는 ‘부자 감세’는 2012년부터 향후 3년간 법인세 11조5846억원, 소득세 2조6463억원으로 총 14조2천억원에 이른다. ‘일자리 창출 효과’라는 말은 쑥 들어간 채 효과도 불분명하고 소모적인 논쟁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무려 9조428억원에 달한다. 결국 재정은 정부의 정책 의지와 정책적 우선순위의 문제이며, 정부가 지금 시기에 국민의 삶을 위해 무엇을 우선하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답게 국제노동기구(ILO)의 협약을 떠올려보자. “모든 근로자의 85% 이상이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되, 비준시 특별선언이 있는 경우에는 전체 근로자의 50% 이상 또는 경제개발 단계에 따라 특별히 정당한 경우에 20인 이상을 고용하는 제조업 부문 사업장에서 모든 근로자의 50% 이상이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ILO 협약 제168호 제11조) “모든 근로자에게 고용보험이 적용되어야 한다.”(ILO 권고 제44호 제4조) “회원국은 실제적으로 상시근로를 원하는 시간제 근로자에게도 고용보험을 적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ILO 협약 제168호 제10조) 갖은 야단법석 속에서 열린 G20이 신자유주의 금융질서 규제를 둘러싸고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지금, 그 이상으로 야단법석을 떨어야 할 것은 오늘도 실업과 빈곤의 고통 속에서 애면글면하는 서민을 위한 ‘전 국민 고용안전망 확대’ 논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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