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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지도로 행군하라!
[박중언의 노후경제학]
[104호] 2018년 12월 01일 (토)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2017년 11월7일 이성호 국가인권위원장(오른쪽)과 허용범 국회도서관장(가운데)이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명함을 교환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 직장인들 관례다. 업무와 관련된 자리는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 만남도 비슷하다. 이런 관행을 두고 개인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우선한다며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서로 인사하면서 소개한다고 해도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상대 이름과 하는 일, 연락처 등을 ‘입력’하는 가장 효율적인 통로가 명함인 것은 분명하다. 
 
명함이 없어 난처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볼 때가 가끔 있다. 당사자는 “난 명함이 없는데…” 하면서 말끝을 흐리기 일쑤다. 명함이 ‘당당한 일과 사회적 지위’를 증명하는 징표라도 되는 것처럼.
 
직함 금단현상
전문직이나 사업가, 자영업자가 아닌 대다수 중장년은 이미 명함이 없어졌거나 없어질 날이 머지않았다. 직업과 직위라는 수식어가 없어지고 온전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게 아직은 참 부담스럽다. 한국 사회, 특히 남성 사회의 호칭은 직함으로 통일되다시피 한 게 현실이다. 국장님, 부장님, 박사님 등등. 여기에는 ‘(성년이 된 사람을) 높이거나 대접하여 부르는 말’인 ‘씨’가 동료나 아랫사람에게 쓰는 호칭으로 ‘평가절하’된 탓도 있다. 영어의 ‘미스터’ ‘미세스’ 같은 범용 호칭이 없고 마땅한 대체재를 찾기 힘들다. 
 
우리 사회에선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전과 같은 호칭을 사용하는 게 일상화돼 있다. 상대방이 가장 잘나갈 때의 직함을 붙여 부르는 게 배려로 받아들여진다. “호칭에는 그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신분이나 지위를 뜻하는 ‘지체’가 압축되어 있으므로, 호칭이야말로 서열 인정의 리트머스시험지 노릇을 한다. 강력한 서열 문화 속에서 마땅한 호칭으로 대우받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서열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만과 모욕감을 느낀다.”(<나는 이렇게 불리는 것이 불편합니다>)
 
중장년 남성에겐 명함과 지위가 없어지는 게 그만큼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심리학자 김정운은 “정년 이후에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며 “그래서 한국 남자들은 명함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로 나타냈기 때문에 그것이 실종되는 순간 헤매게 된다는 것이다.
 
‘직함 금단현상’은 한때 잘나갔던 사람일수록 더 심하다. 그럴듯한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은퇴 뒤 사회생활이 순탄치 않다. 현직에 있을 때와 사뭇 다른 주변 사람들 눈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며 지위가 낮아 무시당하는 것을 불안의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가부장과 체면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에서 중년 남성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주변의 눈이다. 남들이 자신을 뭐라 부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소득원 못지않게 직함이 떨어져 나가는 게 무서운 것이다. 
 
직함에 대한 집착은 퇴직 이후 삶을 개척하는 데 장애물이 되기 쉽다. ‘왕년’을 잊지 못하는 터에 남의 눈까지 의식하다보면 선택지가 크게 제한된다. 대기업 그룹 부회장에서 호텔 웨이터로 변신해 신선한 충격을 준 사람도 있지만 예외적인 사례다. 퇴직 이후 이웃 눈을 신경 쓰느라 바깥나들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행동반경이 대폭 줄어든 남성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들은 무심한데도 그 자신은 되도록 사람들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스며들려고 애쓰기 일쑤다. 
 
무슨 포럼이니 연구소니 모임이니 하는 게 끊임없이 생겨나는 것도 이사장·소장·회장 등 ‘포장용’ 직함을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내면이 충만한 삶이 가능한데도 ‘낙하산’ 자리에 목매는 것도 이런 이유다. 그 밑바닥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이 자리잡고 있다. 
 
김정운은 한국 남성들이 행복하지 못하고 나이 들수록 우울해지는 데 대해 “끝없이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이라며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는 것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데 “그들의 눈길을 두려워하니 정말 희한한 현상 아닌가?”라고 묻는다. 
 
충만한 퇴직 이후 삶을 위해 ‘잘나갔던 과거를 잊으라’거나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는 충고는 전혀 새롭지 않다. 마음을 다진다고 쉽사리 되지 않는 게 문제일 뿐. 현직에 있을 때부터 시간을 갖고 직함을 바라보는 시각을 교정하고 명함과 직위의 부재에 익숙해지는 게 바람직하다.
 
자기주도 나이듦
‘60살 정년 법제화’로 정년이 연장되면서 임금피크를 도입한 회사가 많이 늘었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사람들 대다수는 임금이 줄어들고 주요 보직에서 제외된다. 임금이 지나치게 많이 깎이는 것은 문제지만, 퇴직 뒤 ‘연착륙’을 생각하면 너무 실망할 일은 아니다. 맡은 일의 중요도가 떨어지고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높은 곳까지 올라가지 못한 게 오히려 내려오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이 시기를 인생 2라운드로 접어드는 ‘이행기’로 받아들이면 훨씬 보람차게 지낼 수도 있다.
 
창의적 인재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중고생 자녀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자기주도 학습이다. 입시 맞춤형에서 벗어나 스스로 목표와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것이다. 대학입시와 취업이라는 거대한 관문을 눈앞에 둔 수험생만큼이나 중장년에게 이런 자세가 요구된다. 
 
퇴직 이전에는 ‘먹고사니즘’에 쫓겨 원치 않는 일도 하는 수밖에 없다. 마음속에 늘 사표를 넣고. ‘어떻게 충만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자기성찰의 기회가 별로 없다. 노후생활 길잡이 서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답이나 교과서·수험서·학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을 위한 ‘나만의 지도’는 스스로 그려야 한다. 노후야말로 ‘자기주도 나이듦’이 절실한 시기다.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는 삶 말이다.

* 한국 베이비붐세대의 막내(1963년생)인 박중언은 노년학(Gerontology)과 함께 고령사회 시스템과 서비스 전략을 연구 중이다. 나이의 구속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편안하게 늙어가기를 지향한다. 블로그 ‘에이지프리’(AgeFree)를 운영했고, 시니어사업에도 몸담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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