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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입김 막는 집단경영체제
[집중기획] 마윈 은퇴 - 배경과 지배구조
[103호] 2018년 11월 01일 (목) 취윈쉬 economyinsight@hani.co.kr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이 용퇴를 선언했다. 젊은 날 거듭된 실패를 딛고 중국 인터넷업계를 대표하는 얼굴로 우뚝 선 마윈은 전성기인 50대 중반에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공익사업 투신 의사를 밝힌 그는 퇴진에 대비해 ‘파트너’로 불리는 그룹 핵심 인사들의 집단경영체제를 구축했다. 마윈의 용퇴 배경과 알리바바의 진로를 살펴본다.  _편집자

취윈쉬 屈運栩 <차이신주간> 기자
 
   
▲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2018년 10월1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연례회의의 세미나에 참석해 얘기하고 있다. REUTERS
마윈에게 다시 한번 이목이 집중됐다. 그는 ‘교사의 날’이자 자신의 54번째 생일인 9월10일 공개 편지를 통해 1년 뒤 알리바바 이사회 주석(회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후임자로 장융 현 알리바바 최고경영자(CEO)를 지목했다. 알리바바를 102년이 지나도 살아 있을 ‘백년가게’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던 마윈이 회사를 설립한 지 겨우 19년 만에, 그것도 아직 젊은 나이에 권력을 넘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알리바바는 외부에서 마윈의 ‘권력 이양’을 은퇴로 해석하는 것을 경계했다. 자리에서 물러나지만 은퇴하지는 않겠다는 말은 마윈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사명을 바꾸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용퇴’를 결정한 배경과 논리는 시장의 끝없는 상상력을 자극했다.
 
알리바바 경영진과 가까운 관계자는 알리바바의 파트너 38명(명예 파트너 2명 포함)이 해마다 한 번씩 여는 파트너십회의를 2018년 8월 말 일본에서 열었다고 전했다. 이 회의 주요 안건은 마윈의 이사회 주석 사퇴와 이후의 경영승계였을 것이다. 이 관계자는 “마윈은 기업에서 개인 색채를 줄여야 한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며 “그는 개인의 과도한 영향력이 가져오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말했다.
 
민영기업이 개인 리스크와 기업 경영을 분리하는 것은 최근 시장에서 주목하는 현상이다. 계획적이고 단계적으로 기업 경영권을 넘기려는 마윈을 시장 관계자들은 ‘지혜롭고 기민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업인이 자신이 설립한 회사의 지배권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거대 인터넷 플랫폼으로 성장한 알리바바의 막대한 이익을 포함해서 말이다.
 
   
▲ 알리바바그룹의 후계자 장융 최고경영자가 2018년 9월18일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알리바바 클라우드 컴퓨팅 회의에 참석했다. REUTERS
복잡한 지배구조 
마윈이 ‘퇴위’를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후임자 장융이 있다. 그는 이미 충분한 성과로 능력을 입증했다. 더 중요한 것은, 8년 전 마윈이 직접 만든 파트너 제도다. 파트너들이 마윈을 중심으로 한 핵심 집단으로 성장해 이사회 의결권의 절반 이상을 확보함으로써 알리바바를 확실히 장악했다. 
 
파트너에게 마윈의 영향력은 충분히 강하다. 알리바바의 투자를 받은 회사 창업자는 “알리바바는 물론 중국 기업인들에게 마윈은 신적인 존재”라고 했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마윈은 장기적 안목으로 인력을 배치하고 제도를 마련해 자신과 알리바바의 경영을 분리했다. 하지만 알리바바를 지배하는 지위와 능력, 이익은 잃지 않았다.”
 
마윈은 공개 편지에서 2019년 이사회 주석에서 물러나 교육과 공익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날 소셜미디어에 마윈의 새 명함 사진이 퍼졌다. 명함에는 ‘중국 저장성 항저우 사나이’ ‘알리바바 001호 직원’ ‘알리바바 파트너’, 공익단체 설립자, 의장 또는 고문을 포함해 11개 직함이 쓰여 있었다.
 
7월27일 발표한 알리바바의 2018 회계연도 사업보고서를 보면, 마윈이 알리바바의 전체 조직에서 한 걸음 물러났음을 알 수 있다. 사업보고서에서 알리바바는 가변이익실체(VIE·지분 관계 없이 기업을 지배하는 조직 -편집자)의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며, 2019년에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3월31일 기준으로, 알리바바는 국내에 약 500개, 국외에 420개 자회사 또는 계열사를 갖고 있다. 타오바오(淘寶)와 티몰(天貓), 알리바바클라우드(阿里雲), 차이냐오(菜鳥), 유쿠(優酷)를 포함한 6개 회사는 케이맨제도와 영국령 버진제도에 등록된 5개 VIE 회사가 지배하고 있다. 이 가운데 4개 회사는 마윈과 셰스황이 절대다수 지분을 갖고 있다. 셰스황은 알리바바 공동창업자인 ‘십팔나한’의 한 명으로, 마윈과 함께 알리바바그룹 영업허가증을 보유한 인물이다. 알리바바가 참여한 대형 인수·합병마다 셰스황 이름이 마윈과 함께 나와 시장에선 그를 ‘마윈의 그림자’라고 한다.
 
조직의 구조조정이 완료되면 5개 VIE 회사는 중국 내 유한책임회사가 지배한다. 이 회사는 두 합자회사가 각각 50%씩 지분을 갖고, 알리바바 파트너와 경영진이 이들 합자회사를 관리한다. 이 조처는 ‘핵심 인물의 위해 요소’를 차단하고, 마윈과 셰스황이 갖고 있던 회사 지배권을 알리바바 파트너와 경영진 집단으로 넘기기 위한 것이다.
 
2014년 9월 알리바바는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그때 이미 CEO 자리에서 물러났던 마윈은 유럽과 미국, 남미 등 해외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알리바바는 마윈이 유럽 국가의 정상과 만났을 때 나눈 외교적 표현을 홍보했다. 예를 들어 2015년 전자세계무역기구(EWTO) 설립을 제안했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주요 국제회의에서 이 개념을 설명했다. 마윈의 국제적 영향력은 알리바바 상장 뒤 더 커졌다. 과도한 마윈의 행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알리바바그룹 관계자는 최근 마윈이 각별히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사퇴 계획을 발표하고 사흘이 지난 9월12일, 마윈은 러시아를 방문해 러시아 기업 세 곳과 합자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네 번째 러시아 방문으로, 마윈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알리바바의 러시아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는 마윈 한 사람의 것이 아니지만 마윈은 영원히 알리바바의 것”이라고 마윈은 말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마윈의 이름 앞에 붙은 직함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이고 끊임없는 그의 장악력이다. 
 
   
▲ 알리바바그룹이 상장한 2014년 9월19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 주식중개인들이 이날 40% 이상 급등한 알리바바 주식 거래 현황을 지켜보고 있다. REUTERS
파트너 제도 도입 
마윈은 알리바바 이사회 주석 자리를 장융에게 물려주기로 결정했지만, 회사를 개인이 아닌 집단에 맡겼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파트너다. 마윈은 공개 편지에서 “10년 전 우리는 마윈이 떠난 뒤에도 알리바바가 건전하게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우리는 제도를 만들고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인재를 육성하고 단련하는 후계자 시스템을 만들어야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의 파트너 제도는 경영승계는 물론, 점진적 권력 이양의 여건을 만들어줬다. 마윈은 “우리가 만든 파트너 체제는 회사의 혁신력과 경영승계, 미래 경영 능력, 문화 계승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해줬다”고 말했다.
 
알리바바의 주요 사업부문 경영진으로 구성된 이 집단은 알리바바 이사회 뒤에서 실질적인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린다. 파트너 권리는 개인 지분과 관련 없다. 이것이 알리바바의 파트너 체제가 일반 합자회사 제도와 다른 점이다. 알리바바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7월 기준 소프트뱅크가 지분 28.8%로 최대주주, 알타바(야후가 핵심 사업을 매각한 뒤 바꾼 회사명)가 14.8%로 2대 주주다. 알리바바 경영진과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 회장을 제외한 이사들의 전체 지분은 9.5%다. 이 가운데 마윈 지분이 6.4%, 차이충신 부회장 지분이 3.2%, 나머지 지분은 1% 미만이다. 지분에 비례해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알리바바 경영진은 회사 지배권이 없다.
 
마윈이 알리바바 지배권을 잃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2005년 알리바바는 야후 투자를 받으면서 지분 35%를 내줬다. 이사회에서 소프트뱅크와 야후가 각각 1석, 알리바바 경영진이 2석을 확보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이 구도는 2010년 균형이 깨졌다. 투자계약 약정에 따라 야후의 의결권이 39%까지 올라가면서 경영진이 확보한 31%를 초과했고, 야후의 이사회 자리가 2석으로 늘었다.
 
이런 배경에서 파트너 체제가 탄생했다. 2010년 마윈과 공동창업자 17명은 ‘원로’ 신분을 버리고 파트너 제도를 도입했다. 시장에선 파트너와 원로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알리바바가 주요 의사결정 집단에 장융을 포함한 전문 경영인을 흡수하려는 것으로 해석했다.
 
2011년 마윈은 제3자 지급결제회사인 알리페이가 금융사업 허가를 받으려면 국내로 복귀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대주주인 소프트뱅크와 야후 지분의 재매입을 추진했다.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자 마윈은 2009년 6월과 2010년 8월에 이들의 동의 없이 알리바바그룹 자회사인 알리페이 지분을 저장알리바바로 넘겼다. 마윈과 셰스황이 지분 80%와 20%를 보유한 회사였다. 매각액은 상징적 수준인 3억3천만위안(약 540억원)이었다.
 
이것이 시장에서 논란을 일으킨 알리페이 분사 사건이다. 마윈은 ‘책임감’ 있는 태도로 알리페이 주주 신분의 합법화를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주주는 내국인이어야 사업허가권을 받을 수 있다고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조처를 강행해, 마윈과 알리바바의 계약 이행의 신의성실 의무에 우려가 생겼다.
 
진정한 의사결정권자
결국 마윈은 알리바바 상장을 조건으로 두 대주주의 양보를 얻어냈다. 2014년 알리바바가 상장하면서 알리페이를 지배하는 앤트파이낸셜그룹과 알리바바그룹의 지분 구도가 알려졌다. 양쪽 계약에 따라 알리바바는 앤트파이낸셜 지분을 33%까지 늘릴 수 있었다. 소프트뱅크와 야후는 보유한 알리바바 지분을 기준으로, 각각 앤트파이낸셜 지분 9.5%와 4.88%를 간접적으로 확보했다. 사회보장기금을 비롯한 앤트파이낸셜의 외부 주주에서 보유한 지분을 초과한 비율이다. 알리바바는 2018년 2월부터 계약을 이행해 지분을 늘리고 있지만 구체적인 시간표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앤트파이낸셜이 상장하기 전, 작업을 끝낼 것으로 전망했다.
 
‘알리페이 국내 자본화’는 경영진이 알리바바 지배권을 견고하게 하려는 중요한 조처였다. 이때 파트너 체제도 합의했다. 소프트뱅크와 야후는 이사회에서 한 자리씩만 남기고 절반이 넘는 의결권을 경영진 이익을 대표하는 파트너 집단에 양도했다.
 
손정의 회장은 알리바바에 모두 8천만달러를 투자했다. 알리바바가 기업 간 전자상거래(B2B) 사업부를 홍콩 증시에서 철수하고 야후차이나를 합병하는 등 여러 거래가 성사되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는 알리바바가 미국에서 상장하기 전 지분 34%를 가졌고, 100배 넘는 투자수익을 얻었다. 손정의 회장은 알리바바 상장 뒤 여러 차례 지분을 매각해 100억달러 넘는 자금을 확보했고, 지금도 지분 28.8%를 갖고 있다. 알리바바 시가총액 4300억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200억달러 가치가 넘는다. 알리페이 분사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강경한 태도를 보인 손정의 회장은 풍성한 수익을 거둔 뒤에는 마윈과 심하게 대립하지 않았다. 최근 10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은 야후는 2016년에는 핵심인 인터넷사업을 매각했다. 야후로선 알리바바가 ‘캐시카우’(수익창출원)임이 분명하다. 알리바바에서 1석의 이사 자리를 가진 야후는 알리바바 상장 뒤 독립이사로 변모했다.
 
현재 알리바바 이사회를 구성하는 11명 가운데 독립이사 5명과 손정의 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5명은 알리바바 경영진이다. 이사회 주석 마윈과 집행부주석 차이충신, CEO 장융, 해외전략사업과 미주·유럽 홍보 업무를 맡은 마이클 에반스 그룹 사장, 징셴둥 앤트파이낸셜 회장 겸 CEO다. 알리바바 경영진이 이사회를 주도하고 알리바바 파트너가 이사회를 통제하는 구조다.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한 그룹 정관에 따르면, 알리바바 파트너들은 이사 후보를 지명할 수 있고 그들이 지명하거나 임명한 이사 수가 과반을 차지하도록 할 권한이 있다. 이 규정은 알리바바 파트너가 회사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도록 보장한다. 정관은 또 이사회를 9명 이상 이사로 구성하되, 소프트뱅크가 1명을 지명할 수 있게 했다. 이사 수는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이사가 일정 나이가 되면 퇴직하도록 강제하지는 않았다.
 
더 중요한 내용은, 그룹 정관에서 알리바바 파트너 위에 최소 5명의 파트너로 구성된 파트너십위원회를 설치해 파트너 선출과 연도별 상여금 배분 방안을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파트너십위원회 구성원은 임기가 3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 마윈과 차이충신은 영구적으로 자격을 지닌 구성원이다. 현재 마윈·차이충신·장융·펑레이·징셴둥, 이렇게 5명으로 구성된 파트너십위원회가 알리바바의 진정한 의사결정권자다. 마윈이 이 위원회에서 은퇴하지 않는 한, 그가 알리바바의 핵심 인물과 돈을 통제할 수 있다.
 
   
▲ 중국 항저우 출신인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2018년 9월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겔로라 붕 카르노 주경기장에서 진행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폐회식에 깜짝 등장해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를 안내하고 있다. REUTERS
파트너는 누구?
보통 합자회사는 파트너들이 보유한 지분에 따라 이사 지명권을 배분하고 그에 상응하는 이익과 책임을 부담한다. 이와 달리, 알리바바 파트너는 경제적 조건과 관련 없다. 파트너 제도를 도입하고 3년이 지난 2013년, 마윈은 공개 편지에서 파트너 수가 28명이라고 공개했다. 알리바바 파트너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은 △알리바바에서 5년 이상 일하고 △우수한 지도력을 갖추고 기업문화를 인정하며 △회사 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회사의 문화와 사명을 계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마윈이 파트너 제도를 소개한 것은 알리바바 상장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미국과 홍콩 증권거래소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알리바바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홍콩거래소는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알리바바 파트너 제도는 전형적인 내부자 통제 조직인데 중소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우려됐다. 결국 마윈은 회사 지배구조 요건이 관대한 미국을 선택했고, 2014년 9월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알리바바는 투자설명서에서 처음 파트너 명단을 공개했다. 애초 밝힌 28명에서 한 명 줄어든 27명이었다. ‘십팔나한’ 창업자 가운데 7명이 포함됐다. 9명은 10년 넘게 근속한 임원이고, 11명은 ‘낙하산’ 임원이었다. 2004년 이후 알리바바에 입사해 그룹의 재무와 법무, 기술 등 전문 분야를 이끄는 임원들이다.
 
마윈과 차이충신은 알리바바의 종신 파트너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 예일대학을 졸업한 차이충신은 마윈과 동갑이다. 1999년 연봉이 수십만달러에 이르는 투자회사 임원 자리를 버리고 마윈의 ‘사명과 비전’에 반해 알리바바에 합류했다. 공동창업자 18명 가운데 가장 훌륭한 외모와 배경을 갖춘 인물이다. 차이충신은 2013년 5월까지 알리바바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았고, 지금은 그룹 이사회 부주석(부회장)으로 전략적 인수와 투자 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알리바바가 투자한 온·오프라인(O2O) 연계 생활서비스 플랫폼 커우베이(口碑)와 외식배달서비스 어러머(餓了麼), 물류회사 차이냐오(菜鳥), 증강현실(AR) 기술업체 매직리프의 이사를 겸하고 있다.
 
현재 알리바바 파트너 수는 36명으로 늘었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 명예 파트너 2명을 포함하면 모두 38명이다. 알리바바 관계자는 “갈수록 새 파트너가 나오기 어려워졌다. 파트너 4분의 3 표를 얻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에도 겨우 1명 늘었다”고 말했다.
 
40대가 주력
의사결정 참여 파트너 36명이 소속된 사업부를 기준으로 보면, 알리바바그룹 경영진이 가장 많은 21명을 차지한다. 이들은 그룹의 전략, 기술, 인사, 법무, 재무 등 각 부서에 포진해 있다. 이와 함께 B2B 사업군과 티몰, 알리클라우드, 기업용 무료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딩토크(釘釘), 지도서비스 가오더(高德), 어러머의 경영진이 한 명씩 이름을 올렸다. 후반부에 합류한 파트너는 전문 경영인은 물론 위융푸 UC브라우저 책임자 등 알리바바가 인수한 기업 대표도 있다. 알리바바 계열로 분류되는 핵심 사업부문 경영진은 모두 파트너다. 앤트파이낸셜, 알리바바픽처스(阿里影業), 알리헬스(阿里健康) 임원들도 파트너에 임명됐다. 앤트파이낸셜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다.
 
명단에는 2016년 퇴직한 명예 파트너 루자오시와 장펑도 있다. 이들은 알리바바 초기 창업자로 각각 1999년과 2000년 입사했다. 루자오시는 알리바바의 2인자로 평가받았고 마윈에 이어 그룹 CEO에 올랐지만 곧 장융으로 교체됐다. 파트너 제도에 따르면, 파트너 나이와 알리바바 근속연한을 합쳐서 60이 넘으면 퇴직을 신청해 명예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명예 파트너는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지만 상여금을 받는다. 종신 파트너인 마윈과 차이충신은 퇴직 규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
 
2008년 이후 알리바바에 합류한 ‘낙하산’ 임원 가운데 4명이 파트너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술을 책임지는 왕 과 플랫폼 지배구조를 맡은 정쥔팡, 투자 부서로 자리를 옮긴 위융푸와 앤트파이낸셜의 정숭바이다. 근속기간이 가장 짧은 위융푸는 2014년 UC블라우저가 인수되면서 합류했다.
 
나이대를 보면, 1970년대 출생이 27명으로 가장 많다. 1960년대 출생이 7명, 1980년대 출생이 2명이다. 2015년에 합류한 4명 가운데 티몰사업부와 앤트파이낸셜 출신 파트너가 1980년대에 태어난 젊은 피다. 경영진의 나이대를 낮추겠다는 알리바바의 의지를 보여준다.
 
미국 증권거래소에서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2018년 새롭게 지명된 파트너는 알리헬스에서 알리바바그룹으로 돌아온 왕레이(王磊) 어러머 CEO다. 2018년 4월 알리바바는 앤트파이낸셜과 함께 95억달러를 투입해 어러머를 인수했다. 8월 말 3분기 실적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장융은 O2O 생활서비스 사업부문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어떻게든 이 분야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8월 말 한 기관투자자는 커우베이에 투자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알리바바는 반드시 O2O 생활서비스 사업을 일으킬 것”이라며 “지금은 커우베이의 내부 정비가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지만 곧 대대적으로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리바바의 사업 방향에 따라 파트너 명단도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11월호 종이잡지 16쪽에 실렸습니다.

ⓒ 財新週刊 2018년 제37호 
馬雲再“退位”
번역 유인영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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