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특집
     
장융, 광군제 발판 후계자 낙점
[집중기획] 마윈 은퇴 - 권력승계
[103호] 2018년 11월 01일 (목) 취윈쉬 economyinsight@hani.co.kr
취윈쉬 屈運栩 <차이신주간> 기자
 
   
▲ 2017년 11월12일 상하이에서 장융 알리바바그룹 최고경영자가 전날 열린 세계 최대 온라인쇼핑 축제 광군제의 매출을 보고하고 있다. REUTERS
파트너 구성을 보면, 알리바바 전체에서 전자상거래사업부인 알리바바그룹 다음으로 중요한 사업부는 앤트파이낸셜(개미금융)그룹이다. 지급결제서비스 등 금융을 담당하는 이 그룹이 현재 파트너 구성원의 20%를 차지한다. 세 차례 자금조달을 했지만 앤트파이낸셜 지배주주는 여전히 임직원이다. 앤트파이낸셜은 2018년 6월 라운드C 자금조달로 140억달러를 확보했고, 기업가치는 1550억달러(약 175조원)로 늘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비상장기업이 됐다.
 
정부 등록 자료에 따르면, 앤트파이낸셜은 임직원 지분을 운용하는 항저우쥔한(杭州君瀚)과 항저우쥔아오(杭州君澳) 지분투자합자회사가 대주주로 모두 72.73%의 지분을 갖고 있다. 21개 외부 투자자의 지분은 27.27%다. 전국사회보장기금의 지분이 4.43%고 다른 투자자의 지분은 3%가 넘지 않는다.
 
가장 비싼 비상장기업
지분 구조에 따라 앤트파이낸셜 이사회에는 외부 이사가 없다. 현재 이사회 구성원은 5명으로, 펑레이 전 회장과 징셴둥 회장 겸 CEO, 인사 업무를 맡은 부사장 정숭바이, CTO 겸 국제사업부 COO 청리, 알리바바그룹 출신이자 국제화 업무를 맡은 자오잉이다.
 
알리바바 관계자는 “알리바바그룹이 파트너 제도를 도입한 것과 달리 앤트파이낸셜은 주주총회와 이사회, 경영진으로 구성된 단순한 의사결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 체제를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앤트파이낸셜의 실질적 주주는 임직원 지분을 운용하는 두 회사와 알리바바 경영진, 그리고 마윈이다. 앤트파이낸셜 임직원이 두 회사의 지분 90% 이상을 가졌고, 두 회사 경영진은 앤트파이낸셜, 알리바바그룹, 그룹 계열사의 책임자를 포함한다.
 
한 투자자는 앤트파이낸셜 지분 구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마윈은 아주 적은 지분으로 앤트파이낸셜 지배력을 확보했다. 임직원 지분 비율이 높지만 경제적 수익권에 그치고 의결권을 경영진에 양도한 것과 같다. 경영진에 대한 마윈의 절대적 영향력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마윈의 지배력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2014년 알리바바가 상장하기 전에 앤트파이낸셜과 체결한 계약에 따라 알리바바그룹 지분은 33%까지 늘릴 수 있다. 2018년 2월 알리바바는 이 계약 사항을 집행하기로 결정했다. 앤트파이낸셜 관계자는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른 주주 지분이 이 비율에 따라 희석될 것이라고 했다. 시장에서는 앤트파이낸셜이 최근 사모펀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것을 ‘프리 기업공개(IPO)’로 간주했다. 임직원 지분 관리회사 지분에 알리바바그룹 지분을 더하면 알리바바 계열 지분이 81.73%까지 늘어난다.
 
마윈이 사퇴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앤트파이낸셜은 경영승계를 끝냈다. 2018년 4월 알리바바의 원로 펑레이 회장이 물러나고 징셴둥 CEO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장융과 마찬가지로 징셴둥도 CEO 출신이다. 이에 따라 앤트파이낸셜이 기업공개를 하리라는 기대가 더욱 높아졌지만, 징셴둥 회장은 지금은 구체적인 IPO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 투자기관 책임자는 앤트파이낸셜이 중국 내 A주 시장에 상장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항저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마윈이 정부 지도층에 앤트파이낸셜을 국내에서 상장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지원을 얻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펑레이 당시 앤트파이낸셜 회장이 임원진을 거느리고 증권감독관리위원회를 방문해 3시간 동안 비공개 회의를 했지만 A주에 상장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앤트파이낸셜의 혁신적 금융상품이 아직 관리·감독의 회색지대에 있고 법규를 위반한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내 상장을 허용하면 이런 상품의 합법성을 승인하는 것과 같다. 앤트파이낸셜은 라운드C 자금조달의 중심을 해외사업부로 옮겼다. 이 투자기관의 책임자는 앤트파이낸셜이 결국 홍콩을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투자자는 앤트파이낸셜이 투자계약을 체결하면서 대강 상장 계획을 안내했는데 2019~2020년에 상장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앤트파이낸셜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새롭게 추진하는 ‘전략신흥판’이나 A주 모두 앤트파이낸셜 상장에 호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운드C 자금조달 주체가 국제사업부였고, 달러화 자금을 들여온 것은 해외사업 확장에 쓰기 위해서였다.
 
강호 무협문화를 숭상하는 알리바바에서 마윈은 자신을 ‘풍청양’(風清揚)이라고 한다. 김용 무협소설 <소오강호>에 나오는 ‘화산파’ 검종(劍宗)으로 무공이 뛰어난 검술의 신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그를 ‘마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장융에게는 ‘소요자’(逍遙者)라는 이름을 붙였다. 역시 김용의 무협소설 <천룡팔부>에 나오는 ‘소요파’ 창시자로, 평소 겸손하고 각종 무림 비급을 수집하는 인물이다. 직원들은 친근하게 ‘라오샤오’라고 부른다. 장셴둥 별칭은 중국의 정치개혁가 왕안석이다. 앤트파이낸셜 직원들은 무협소설과 관련 없는 이 이름 대신 영어 이름 ‘에릭’으로 부른다. 좀처럼 외부에 나서지 않았던 라오샤오가 전면에 등장했고, 개혁가 에릭은 자본시장 검증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앤트파이낸셜이 상장하는 날, 가장 관심이 집중되는 주인공은 마 선생님일 것이다. 
 
경영승계의 길
마윈은 공개 편지에서 후임자 장융을 이렇게 소개했다. “장융은 알리바바그룹 CEO에 취임한 뒤 13분기 연속 알리바바의 실적 성장을 이끌어 탁월한 사업적 능력과 지도력을 보여줬다. 또 2018년 중국에서 가장 훌륭한 CEO로 선정됐다. 장융에게 알리바바 경영을 맡기는 것은 내가 지금 해야 하는 가장 올바른 결정이다.”
 
장융과 마윈은 공개 장소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마윈은 ‘전도’에 능하고 명언을 쏟아내는 반면, 장융은 논리정연하게 말하되 자극적 표현을 쓰지 않는다. 마윈이 한 말이 모두 금과옥조는 아니었다. 예를 들어 과거에 “CFO 출신이 CEO가 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 말했다. 재무책임자인 CFO는 점검과 통제가 업무여서 CEO가 됐을 때 미래를 내다보는 식견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융은 업무를 이야기할 때 같은 개념을 다양한 장소에서 거듭 설명한다. 소매유통에서 고객과 제품, 결제 과정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통합해야 한다는 개념을 2014년 인타이백화점을 인수할 때 처음 제기했다. 이후 소매유통업의 ‘사람·제품·장소’를 분석하는 틀을 만들었다. 그는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소매유통은 사람(소비자와 판매자), 제품(선정과 진열 주기 포함), 판매 장소(전자상거래 또는 오프라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세 요소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해 온·오프라인 판매 과정에서 똑같은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장융이 지속적으로 주장한 결과 온·오프라인 소매유통업계에서 이 논리를 받아들였다.
 
2017년 7월 알리바바 창립 18주년을 기념하는 ‘성인식’에서 마윈과 장융은 가죽 견장이 달린 군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해 11월11일 ‘광군제’ 현장에 몰린 기자들은 마윈 대신 장융의 인사말을 보도했다. 장융은 그렇게 자신이 만든 광군제 행사에서 주인공이 됐다. 
 
2007년 8월 알리바바에 합류한 장융은 타오바오 CFO를 맡았다. 그전에 다국적 컨설팅업체 아서앤더슨과 PWC에서 10년 넘게 회계감사 업무를 맡았다. 중국 1세대 정보기술(IT) 기업인 성다그룹(盛大集團)에선 CFO로 창업자 천톈차오에게 직접 보고했다.
 
장융이 알리바바로 옮겨왔을 때는 내부 인사이동이 가장 많은 시기였다. 그가 입사 4개월 만에 타오바오의 초대 사장이자 십팔나한의 한 명인 쑨퉁위가 외국으로 유학을 갔고, 루자오시 알리페이 사장이 타오바오 CEO로 자리를 옮겼다. 송나라 태조의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처럼 마윈이 쑨퉁위의 권력을 거둔 내막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타오바오가 개인 간 거래(C2C) 시장에서 이취(易趣)를 물리쳤고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 상황에서 쑨퉁위가 물러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광군제로 도약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세계경제에 연쇄반응이 일어나자 수출에 의존했던 중국 제조업체들이 타격을 받았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내수로 방향을 돌렸고, 타오바오는 브랜드가 없는 이들 제품의 판로를 열어줬다. 타오바오 입점 기업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타오바오는 중요한 기회를 잡았다. 알리바바는 그해 4월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플랫폼 티몰의 전신인 타오바오상청(淘寶商城)을 만들고 우수한 중소기업을 선별해 입점시켰다. 이는 알리바바가 소매유통을 C2C와 B2C로 분리하는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2008년 말 타오바오상청 담당팀에 20여 명만 남았고, 업무 책임자가 회사를 떠났다.
 
새 사업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마윈은 중국 인터넷에서 방문자가 가장 많은 바이두를 포기하고 바이두에서 타오바오 제품 검색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사용자가 검색엔진을 이용해 제품을 찾는 습관에 익숙해지면 상품 검색 광고에 의존하는 타오바오 전략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9년 3월 당시 타오바오 최고운영책임자였던 장융이 타오바오상청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장융이 한 일은 전혀 신선하지 않았다. 재고가 쌓인 판매자를 모아 ‘땡처리’ 방식으로 재고를 처분하도록 도운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연말이 되면 비슷한 할인행사가 많았다. 장융은 이 전자상거래 할인행사에 ‘광군제’라고 이름을 붙였다. 첫해 27개 업체가 참여해 5200만위안의 판매고를 올렸다.
 
첫 번째 광군제는 기업들이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능력을 확인하고 타오바오상청 이름을 알리는 기회였다. 오프라인 소매유통업계 관계자는 2014년 기자에게 “광군제가 없었다면 오프라인에만 의존하던 기업들이 ‘가짜 상품’이나 팔던 타오바오의 가치를 몰라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군제를 처음 진행한 2009년 타오바오는 설립 6년 만에 처음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 광군제는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이 방문자 수와 마케팅 능력을 겨루는 중요한 지표가 됐다. 판매업체들은 이날 하루를 위해 앞뒤 일주일, 길게는 6개월까지 상품을 준비했다. 2017년 광군제에선 1682억위안(약 27조5천억원)어치가 팔려 첫해 매출의 324배를 기록했다. 2010년 마윈이 파트너 제도를 도입했고, 장융은 ‘낙하산’ 임원으로 파트너가 됐다.
 
소매유통 주력
2011년 알리바바는 최악의 위기를 겪었다. 업계에서 ‘10월 포위’라고 부르는 이 사건의 당사자는 장융이었다. 그해 알리바바는 타오바오를 타오바오, 타오바오상청, 이타오왕으로 분리했다. 타오바오상청의 사장인 장융은 10월10일 판매업체 계약 규정을 조정해 기술서비스 이용료와 보증금을 올렸다. 이 때문에 사실상 입점이 막힌 중소 판매업체들이 알리바바 본사를 둘러싸고 항의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압박을 견디던 장융은 그해 실적으로 시장의 ‘입’을 막았다. 광군제에서 타오바오상청이 37억위안어치를 팔았다. 알리바바 핵심 사업부인 타오바오왕의 전체 거래 규모 52억위안에 육박하는 실적이었다. 타오바오상청은 이듬해 티몰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5월 마윈이 CEO에서 물러났다. 5개월 동안 고른 후임자는 루자오시 타오바오 CEO였다. 이때 장융은 티몰 사장이었다. 그해 텐센트의 위챗이 중국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떠올랐다. 10월이 되자, 마윈은 “펭귄이 남극에서 탈출했다”며 위챗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11월에는 위챗에서 타오바오 상품 페이지로 넘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바이두 차단과 비슷한 이유다. 마윈은 방문자 트래픽이 알리바바 시스템 안에 머물기를 원했다. 텐센트도 알리바바의 의도를 파악해 타오바오 연결을 차단했다. 이때부터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전자상거래로 이어지는 통로를 막았다.
 
그때 루자오시는 타오바오에 자신의 SNS 계정을 만들지 않고 알리바바의 소셜 앱 ‘라이왕’(來往)을 도입했다. 마윈도 라이왕 보급에 애썼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컴퓨터 시대에 바이두 차단의 성공을 재현하지 못했다. 2014년 라이왕의 실패는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관련 직원들은 기업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딩토크’로 편입됐다. 한편 알리바바는 상장을 준비했다. 모바일 분야에서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자 루자오시는 가오더지도와 UC브라우저 인수를 주도해 모바일 위치기반서비스(LBS)와 브라우저를 확보했다.
알리바바는 새 이야기가 필요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소매유통의 통합이 가장 훌륭한 성과였고, 장융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는 인타이백화점에 투자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와 함께 알리바바는 모바일로 방향을 바꿔 모바일 타오바오를 전면에 내세웠다. 
 
2015년 5월7일, 47살이던 루자오시가 알리바바 CEO에 취임한 뒤 2년 만에 물러났고 장융이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해 알리바바의 모바일 사업이 성과를 거두기 시작해 모바일 총거래액(GMV)이 크게 늘었다. 물론 전체 트래픽 비용도 함께 올랐다.
 
장융이 CEO에 취임한 뒤 알리바바는 소매유통 본연의 업무에 더욱 충실해졌다. 적극적으로 오프라인 소매유통 기업에 투자하는 한편, 고객서비스에 편중된 조직을 중간 지원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 인사이동도 단행해, 알리바바의 원로급 인물인 장펑도 기술의 뒷받침이 중요한 중간 지원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11월호 종이잡지 23쪽에 실렸습니다.

ⓒ 財新週刊 2018년 제37호 
馬雲再“退位”
번역 유인영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취윈쉬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