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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불균형 해법 찾아야
[Special Report] 글로벌 금융위기 10년 뒤 한국 경제
[103호] 2018년 11월 01일 (목) 장보형 jangbo@hanafn.com
장보형 KEB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
 
   
▲ 서울 시내 제2금융권 앞에 대출안내문이 붙어 있다. 2018년 15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저소득층과 노인, 청년 등 취약계층과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실화할 조짐을 보인다. 연합뉴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참사를 불러온 글로벌 금융위기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우리에게는 너무도 낯설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저신용 주택담보대출)나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현란한 개념이 난무하는 가운데, 세계경제는 극심한 침체 늪에 빠져들었다. 당시 기억을 오늘날 역사 교과서는 대공황의 악몽에 빗대어 ‘대침체’라고 기록한다.
 
직접적 충격은 가셨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에도 심각한 충격이었다. 위기 진원이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관련된 국내의 직접적 손실은 미미했지만, 또 다른 전염 고리가 작동했던 것이다. 문제는 2000년대 중반 급증세를 보이던 금융권의 외국자본 차입이었다.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로 직접적 손실은 물론 미국에서의 대규모 자금조달에 따른 상환 압력 등 이중 충격에 시달리던 유럽계 은행들을 중심으로 국내 외자 차입이 2008년 4분기에만 500억달러가량 빠져나갔다. 그 결과 한국은 심각한 외화유동성 위기가 닥쳤고, 외환위기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던 환율 폭등이 일어났다. 
 
다행히도 ‘한국의 펀더멘털은 견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만 해도 경상수지가 일시 적자를 보였지만 환율 급등과 맞물려 이내 대규모 흑자로 돌아섰고, 외환보유액도 외환위기 직전의 73억달러(가용 외환보유액 기준)와 비교가 안 되는 2천억달러를 지켜냈다. 미국 경제가 2008년 -0.3%, 2009년 -4.2% 등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2009년 세계경제도 조금이나마 침체(국제통화기금 기준 -0.1%)에 빠졌음에도, 한국은 2009년 0.7% 성장률로 선방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국내 외채 상환 능력이나 국가부도 위험과는 무관하게 단기적 외화유동성 문제에 국한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의 정책 방향은 국내 경제의 취약 고리인 외환건전성 개선에 맞춰졌다. 특히 외환건전성 부담금 부과,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등 이른바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도입해 외자 차입 의존성을 대폭 낮출 수 있었다.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때 빠져나갔던 외자 차입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되지 않았다. 물론 외국인 채권 자금이 대규모 들어왔지만, 상당 부분 한국의 대외신인도 향상과 맞물려 외국 국부펀드나 중앙은행의 공공자금이 들어온 결과다.
 
본래 외국인 자금이라고 다 위험하지는 않다. 가장 위험한 것은 국내 은행시스템과 연계된 외자 차입이며, 흔히 말하는 ‘시스템 위기’는 외자 차입의 급변동에서 비롯된다는 게 정설이다. 반면 주식이나 채권 등 ‘포트폴리오 투자자금’ 유·출입은 관련 투자자에게는 고통일지 몰라도 대부분 시스템 위기일 가능성이 크지 않다. 최근 국제사회에선 한국을 더 이상 신흥경제가 아니라 선진경제로 간주하는 움직임이 지배적이다. 막대한 외자 차입 의존성, 다시 말해 ‘신흥시장의 원죄’를 탈피한 덕분이다. 
 
‘저성장 시대’ 생존법 찾아야
외환건전성 개선은 대외 금융 불안에 대한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완화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유럽 재정위기나 긴축발작, 지금도 계속되는 신흥시장 불안 등 여러 차례 금융 불안이 고조돼왔지만, 국내 경제나 금융시장에 미친 충격은 비교적 제한적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50%를 넘나들던 단기외채 비율(총외채 대비)이 30% 이하로 떨어지고, 외환보유액이 4천억달러를 넘어서는 등 국내 외환 부문의 건전성 개선이 나름 면역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마냥 좋아진 것은 아니다. 가령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5%대에 이르던 국내 경제성장률이 2010년대 들어 3%대로 떨어지고 이제는 3%도 버거운 처지다. 급속한 인구고령화를 고려하면 2020년대에는 2%대도 자신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성장력 저하는 한국에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연평균 4.5% 성장을 구가하던 세계경제도 2012년 이후에는 3.5% 안팎의 성장에 머물고 있다. 한국의 성장 둔화폭이 크지만, 선진경제로 갈수록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 다른 나라의 희생을 대가로 독주하는 미국조차 잠재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성장률이 떨어진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잠깐, 일본의 경험에 주목하자. 1990년대 초 거품 붕괴 이후 일본 경제는 20여 년의 장기 불황에 허덕였다. 2012년 말 다시 총리에 오른 아베 신조의 지휘 아래 경제 부활을 꿈꾸지만 아직 2% 성장률도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나 장기 불황에 시달리는 일본이 여전히 세계 수위의 경제력을 누리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은 더 이상 실패 사례가 아니라 저성장 함정에 빠진 오늘날 세계경제의 생존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지금 일본이 장기 불황 생존법을 해체하면서 새로운 위험을 무릅쓰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내부 불균형에 관심 필요한 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일반화한 저성장 시대를 맞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런 식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과연 한국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도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한국 경제의 안정성이나 내구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외환건전성 측면에선 상당한 면역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 측면에선 아직 숙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한국 경제의 안정적 성장 방향과 관련해 두 가지 측면의 불균형이 주목을 끈다. 우선, 실물 부문의 불균형이다. 특히 국내 경제성장률이 1980년대 평균 8.8%에서 2010년대에는 3.4%까지 떨어졌지만, 수출의 성장 기여도는 3%포인트 안팎에서 비교적 안정적이다. 성장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에서 80%까지 올랐다. 이를 두고 수출이 버텨주면서 그나마 한국 경제의 급속한 하강을 억제해왔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수출 제조업을 지탱하느라 소비나 서비스 등 다른 부문이 망가지고 그 결과 전체 성장력이 후퇴한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반복되던 ‘수출 총력전’을 생각해보면 후자의 해석이 더 설득력 높아 보인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원 배분의 왜곡이 극심한 것이다.
 
금융 불균형도 문제다. 수출 성과에 힘입어 기업소득은 견조한 성장세를 보여왔지만, 임금이나 가계소득은 뒷전으로 밀리면서 분배 불평등이 심화돼왔다. 그 탓에 국내 내수 기반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외부 악재에 민감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속성이 강화되고 있다. 결국 내수 확충이나 소득 보전은 다른 수단에 의존해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국내총생산(GDP) 대비 73.9%에서 2018년 1분기 말 95.2%로 꾸준히 늘어난 가계부채가 그것인데, 이를 통해 소득 부진에 따른 소비 여력의 저하를 메우고 부동산 가격 부양으로 자산 효과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득 부진과 부동산 가격 상승, 가계부채 누증의 악순환이 한국 경제의 고질병 혹은 취약 고리로 자리잡은 연유다.
 
이제 성장률이나 수출 경쟁력 제고, 부동산 활성화 등에 치중된 시선을 거두고 한국 경제를 둘러싸고 달라진 ‘리스크 조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경제 안정을 이끌 수 있을지, 가계부채나 부동산시장과 결부된 취약성을 극복하고 탄탄한 내수 기반을 세우기 위해 무엇을 할지 진지한 고민이 요구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미-중 무역분쟁 등 대내외적으로 역경이 쌓였지만 힘들게 떼낸 신흥경제의 딱지를 고집하기보다는 오늘날 경제 체질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실험이 필요한 때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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