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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들과 장미들’이 어색한 이유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03호] 2018년 11월 01일 (목)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이미지투데이

‘빵과 장미’(Bread and Roses)는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이 1911년에 쓴 시다. 1900년대 여성 노동자의 파업에 영감을 얻어 이 시를 썼다.

1900년 초반은 미국 자본주의가 발달하던 때였다. 1909년 “일하고 있지만 우리는 굶주리고 있다. 파업을 해서 굶어도 마찬가지다”라는 구호를 내건 뉴욕 의류 여성 노동자 파업이 있었다. 1년 뒤인 1910년에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시카고 의류 여성 노동자 파업도 벌어졌다.
 
묻힐 뻔했던 이 시가 세상에 다시 드러난 건, 1912년 일어난 ‘로런스 파업’ 때문이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런스 공장은 여성 노동자를 주로 고용한 섬유 생산업체였다. 노동자는 주급 9달러를 받으며 주 60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이에 주정부는 여성과 어린이의 주당 노동시간을 56시간으로 제한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공장주는 곧바로 노동자 임금을 깎는 것으로 맞섰다. 생산에 사용하는 실과 바늘, 노동자가 앉는 의자까지 값을 물렸다. 형편없는 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공장 환경 속에서 참다 못한 여성 노동자들이 실을 끊고 유리창을 깨뜨리며 노동시간 단축, 아동노동 금지, 안전한 노동조건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처음에 파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들은 여성 노동자와 함께할 수 없다며 외면했다. 오펜하임이 쓴 시에서도 이를 비꼬는 내용이 나온다. 시 두 번째 절 “남자를 위해서도 싸운다네”다. 마지막 절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또한 그렇다.
 
실패할 듯한 이 파업은 반전을 가져온다. 여성 노동자들이 든 팻말 속 구호 “빵뿐만 아니라 장미를 원한다”가 그 시작이었다. ‘빵’은 육체를 위한 양식을, ‘장미’는 정신을 위한 양식을 뜻했다. 즉 ‘빵’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장미’는 존엄성을 찾고 싶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파업 투쟁은 ‘빵과 장미의 파업’으로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지배층은 파업이 공장주 개인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여겼다. 미 정부는 파업을 폭력적으로 짓밟았다. 주지사와 공장주는 민병대를 조직하고 인근 도시 경찰까지 불렀다. 수백 명이 체포되거나 다쳤다.
 
하지만 헬렌 켈러 등 지식인들이 파업 지지에 나서면서 상황은 변했다. 수백 명으로 시작한 파업은 10주가 되자 1만 명을 넘어섰다.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지지자가 늘어났다. 미 의회가 로런스 공장의 노동환경 조사에 들어갔다. 두 달 동안 이어진 파업에서 결국 여성 노동자들은 승리했다. 노동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 투쟁은 미국 노동운동 역사상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후 빵과 장미는 여성 노동운동의 상징이 됐다. 
 
포크송 가수 주디 콜린스는 오펜하임 시를 가사로 한 <Bread and Roses>를 불렀다. 이 노래는 <빵과 장미>로 번역됐다. ‘빵들과 장미들’로 번역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노래 제목이어서 좀더 신경 썼을 것이다. 만약 문장으로 나왔다면 ‘빵들과 장미들’로 번역됐을지 모른다.
 
빵과 장미가 나은 이유
우리말은 영어 복수(s)에 많이 오염돼 ‘들’을 많이 쓴다. 서양 언어에서는 단수와 복수를 엄격히 구별한다. 소유 구분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 것과 네 것에 구별을 둔다. 하지만 동양, 특히 우리나라는 소유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그 때문에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라고 여긴다는 비판도 받는다. 우리나라에선 소유보다는 공유 개념이 강해,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구체적으로 보자. 우리말은 단수와 복수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다. “냉장고에서 귤 서너 개 가져오렴” “네다섯 시에 만날까?”처럼 정확한 숫자 표현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먹자골목에는 많은 식당이 늘어서 있다’에서 굳이 ‘들’을 붙일 필요가 없다. ‘국민들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에서도 ‘들’을 빼는 게 낫다.
 
소유 개념이 발달한 영어는 단수와 복수를 철저하게 따진다. ‘신사숙녀 여러분’이라고 할 때, 영어는 ‘Ladies and Gentlemen’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면 ‘숙녀분들과 신사분들’이다. 사람이 1명이 아니기에 복수를 쓴다. 우리말로는 어색하다. 그냥 ‘신사숙녀, 여러분’처럼 단수로 쓰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복수에 익숙지 않은 우리말
영어에선 복수를 나타내는 접미사 ‘~들’은 앞말에 자유롭게 붙는다. 반면 우리말에선 군더더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은 학생들이…’ ‘모든 시민들이…’ 같은 표현이다. ‘많은 학생이’ ‘모든 시민이’로 충분하다. 
 
‘이들 단체들은…’ ‘이들 학교들은…’ 같은 표현도 많이 쓰는데 ‘들’을 이중으로 쓰는 거다. ‘이들 단체는’ 또는 ‘이 단체들은’이라 하면 된다. ‘들’은 굳이 붙이지 않아도 될 자리라면 쓰지 않는 게 글을 간결하게 해준다.
 
몇 가지 예를 더 보자. ‘경기장에 나온 선수를 보고 관중들이 환호했다.’ ‘관중’은 그 자체로 집합명사다. 한자어로 무리를 뜻하는 ‘중’(衆)이다. 복수형 조사를 다시 쓸 필요가 없다. ‘스타디움에 나온 선수를 보고 관중은 환호했다.’
 
‘우리학교에는 세 명의 국어 선생님들이 계신다.’ 앞에 복수를 보여주는 ‘다섯 명’이 있기에 뒤에 다시 복수를 뜻하는 ‘들’을 쓸 필요 없다. ‘우리 학교에는 세 명의 국어 선생님이 계신다.’
 
추상적이거나 질량을 나타내는 말에는 ‘들’을 더더욱 안 쓰는 게 좋다. 가령 ‘그 정신들을 모아…’ ‘많은 비들을 뿌리고…’ ‘이런 행복들을 찾기 위해…’ 같은 표현은 어색하다. 복수를 단수로 고쳐주는 게 좋다. ‘물질들’ ‘식품들’에 쓰인 ‘들’도 마찬가지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포크송 가수 주디 콜린스가 부른 노래 <빵과 장미>(youtube.com/watch?v= HKEr5U8ERgc)를 한번 들어보시길. 머리를 식혀야 하기에.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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