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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자유시장 반란자’가 되자”
[Interview]‘더 나은 자본주의’ 주창하는 장하준 교수
[8호] 2010년 12월 01일 (수) 조계완 kyewan@hani.co.kr

장하준 교수(47·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가 최근 펴낸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23 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이하 <그들이…>)가 국내 출판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출간 보름 만에 7만5천 부 판매를 돌파했다. 장 교수가 새 책 출간 즈음에 한국에 왔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지난 10월27일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장 교수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며 2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다. 장 교수는 <이코노미 인사이트>의 ‘편집·기획자문 및 필진 네크워크’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장 교수는 한겨레신문사가 12월15~16일 여는 국제 심포지엄(‘2010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요 연사로 참석할 예정이다(이 인터뷰 글은 인터뷰 다음날 장 교수가 출판담당기자 간담회에서 말한 내용을 일부 포함한다).

조계완 국내편집장

이번 새 책이 나온 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영국 노동당 당수에게 “장 교수에게 점심 한번 대접하라”고 했다는데 연락이 있었는가? 또, 한국 정부 등으로부터 경제자문 역할을 요청받았는가?
영국 보수자유당연립정부에서 나를 몇 번 불러 얘기를 듣긴 했지만, 정당 당수가 나 같은 사람을 초대하겠는가? 아직 그들과 점심은 먹지 못했다.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산업화를 어느 정도 하겠다는 나라의 정부에서 나를 초청하면 가끔 강연해주고 코멘트도 해준다. 남미 에콰도르에서는 그 나라 대통령이 나를 좋아해서 새로운 산업발전 계획에 대해 조언해준 적이 있다. 내 전공 주특기가 개도국의 중간 정도 되는 나라들의 산업·무역 정책이라서, 많이 초청해주는 나라가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남아공 등이다. 물론 전속으로 자문계약을 맺은 건 아니다. 한국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에 이정우 교수 등이 스티글리츠 교수를 위원장으로 해 나도 한 자리 끼는 국제경제자문위를 구성하려고 했는데, 그때 당선자 캠프 내부에서 스티글리츠를 얼굴마담 시키면 국제자본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이견이 제기돼 무산된 바 있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면 한나라당에도 영국 보수당에도 가서 강연할 용의가 있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대학)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요즘의 세계경제 회복세를 어떻게 보는가?
심장마비 일으켜 죽을 뻔한 환자를 영양제 줘서 살려놓으니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는 형국이다. 죽어갈 때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이제 식습관을 바꾸고 운동도 많이 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지뢰가 많다. 지금 미국은 실업률이 독일보다 높고, 집값이 계속 떨어지고 있고, 대규모 상업용 부동산 대출상환도 돌아오고 있다. 영국은 복지를 축소하고 재정지출을 크게 깎겠다면서 더블딥을 우려한다. 상황 종료라고 하는 건 오산이다. 미국은 가라앉던 주택시장이 주춤하고, 주택가격이 조금 회복되는 양상이다. 이는 위기 초반에 집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든 버텨보려 하고, 정부가 집 사려는 사람에게 세금을 깎아주는 정책을 도입하고, 사람들이 20주 넘게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버텨온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약효가 다 끝나고 다시 경제가 나앉기 시작하면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주택가격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물론 경제를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영국 노동당 당수와 아직 점심 못 먹었다”
이번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와 경제학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가?
그동안 자유시장을 설교하던 미국과 영국 같은 나라들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 경제학계에서는 나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조금 세진 것 같다. 그러나 영미권이 학계와 세계경제의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경제를 보는 관점이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바뀌기는 어렵다. 미국과 영국 모두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처음에 충격받고 한 대 크게 얻어맞았지만, 빨리 재정 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금 다시 커지고 있지 않은가. 곳곳에 주류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가 워낙 깊이 퍼져 있다. 물론 앞으로 세계화 추진력은 어느 정도 제어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영미식 기업 지배구조와 금융 위주의 자유시장이 이번 위기로 일단 제동이 걸린 건 맞다. 그러나 진짜 힘을 받아서 그동안의 진행 방향을 돌려놓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금융개혁법에 따라 예전보다 투자은행의 행동반경이 줄어들 것이고, 점점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면 자유시장(이주노동 등)에 대한 통제 요구가 커지고, 보호무역 주장 등이 계속 나올 것이다. 조지 소로스가 펀딩하고 미국의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와 영국의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가 주도하는 ‘새경제사상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가 지난해 만들어져 경제학을 좀더 현실에 맞게 바꾸자고 제안하는데, 이번 새 책을 본 스키델스키가 나에게 이 연구모임에 참여해달라고 요청해왔다(워릭대학 로버트 스키델스키 교수는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이코노미 인사이트>에 매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의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전망은?
주류 시장주의 경제학의 경우 자기네 기존 프레임으로 어떻게 새로운 대안을 만들 수 있겠는가? 물론 넓은 의미의 주류 경제학에 속하지만 시장의 불완전성을 얘기하는 스티글리츠의 정보경제학이라면 다를 수 있으나, 신고전파 시장주의 이론은 시장 효율성이란 가정 아래서 어떠한 대안도 만들어낼 수 없다(스티글리츠를 ‘친구이자 정신적 스승’이라고 부르는 장 교수는 <스티글리츠와 세계은행: 그 내부 반란자> (2001)라는 책을 엮은 바 있다). 주류 쪽에서는 여전히 ‘아직 (자유)시장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위기가 왔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이는  신앙심이 부족해서 시장의 실패와 위기가 초래됐다는 식으로 시장 광신도들이 하는 얘기일 뿐이다. 잘못되면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하는 광신도들 말이다(장 교수는 <그들이…>에서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는 ‘무슨 현상이든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널리 전파해왔다”(207쪽)고 말한다. 주류적 시각의 대다수 경제 분석은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고 균형을 달성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이런 결론의 메시지는 ‘언제든 어떤 사회든 현재 상태가 가장 효율적이고 모든 구성원에게 최적’이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함축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최근 새로 펴낸 책(한국어판).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는 어떻게 보는가?
G20 기구가 세계경제에서 의미를 갖고 있긴 하다. 서구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인도·아르헨티나·브라질 등이 끼어서 상당히 의미 있지만 이 국가들의 참여는 상징적 의미다. 워낙 세계경제 지형도가 많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G20 틀이 아니더라도 이런 국가들이 세계경제 질서 모색에 참여하게 돼 있다. 내용이 있는 세계경제와 관련된 결정은 세계은행(WB)·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 그리고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정해지고 있다. G20이 세계 정부인 것도 아니고, (기존 G7 틀에 비춰볼 때 ) 한 발 더 나아갔다고 하지만 목적지에 다가간 건 아니다. G20 틀에 못 들어간 나라들의 이해는 누가 대변해줄 것인가? G20이 작고 약한 나라들을 제대로 대변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누가 아는가, (중국·인도 등이) ‘우리도 이제 조폭에 편입됐으니 저놈들(약소국) 때리고 살자’는 식으로 나올지 모른다.
 
자유시장 신앙심이 부족해 금융위기 초래됐다?

시장과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은?
시장은 결코 민주주의적인 제도가 아니다. 19세기에 시장주의자들은 민주주의에 반대했다. (경제)민주주의를 도입하려면 세금을 더 많이 걷어 복지를 확충해야 하는데, 그러면 자본주의가 망하게 될 거라고 주장했다. 시장과 민주주의는 뿌리가 완전히 다른 아이디어다. 민주주의는 ‘1인1표’인 반면 시장은 ‘1원1표’다. 냉전 시절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모순 없이 서로 상승작용한다’고 자꾸 왜곡해 선전했다. 정치적 독재를 오랫동안 겪은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정부 개입은 독재, 시장은 민주주의’라고 인식해왔다. 그러나 민주적이지 않은 시장에 정부가 개입해 민주주의적 요소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번 새 책 제1장의 주장이 바로 ‘자유시장은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정치의 산물이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말하듯, 여기까지는 시장과 경제가 맡아서 해야 하고 저기서부터는 정치가 맡아야 한다는 식의 자유시장주의적 구분은 잘못된 것이다. 순수 경제이론에서 보면 노예 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즉, 인권·민주주의·사회 등의 측면은 무시된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에 개입해야 진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 안 그러면 뭐하러 민주주의를 하는가? 5년에 한 번씩 인기투표하는 데 불과하지. 더욱 중요한 건 경제가 곧 정치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경제 문제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발언이다.
경제학 유파 중에서 ‘제도학파’ 경제학자로 분류되곤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제도학파라고 말하는데, 사실 내가 무슨 학파에 속하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은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이다. 어떤 한 가지 이론만으로 경제와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 케인스주의 학파가 경제학 유파 중에서 설명력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지만, 케인스는 경제의 장기적 관점이나 기술혁신 등은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왼쪽 마르크스에서부터 오른쪽 하이에크까지 다 읽고 공부해봤는데, 나름대로 취할 점이 다 있다. 어떤 사회가 가장 훌륭한지는 그런 사회를 지향하는 정책 사안별로 판단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신자유주의 사상은 케인스주의 혹은 조합주의적 경제가 한계에 달하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측면도 있고, 노동자의 힘이 세지고 상대적으로 자본가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나온 측면도 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보니 결과가 안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1950∼60년대로 돌아가자는 뜻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규제방식이 달라져야 하지만 자본시장이 규제돼야 한다는 원칙은 확립돼야 한다. 1950∼60년대에는 이른바 ‘인내하는 자본’(Patient Capital)이 장기적 안목에서 투자를 많이 했으나, 경제·금융 구조가 바뀌면서 지금은 단기주의로 가버렸다. 어떤 식으로든 투자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한국 정치권에서 요즘 복지사회를 부쩍 언급하면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있는데.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를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지를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는 일단 비용이 싸다. 그러나 돈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빼앗아 거둬 저소득층에 나누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 세금을 내는 사람은 불만이 생기게 된다. 받는 사람 쪽에는 무능력자라는 낙인이 찍혀버리고. 선진국 중 복지비 지출이 가장 낮은 곳이 미국인데, 복지에 대한 반감도 매우 높다. 많은 사람들이 수혜를 못 보고 있기 때문이다(즉, 선별적 복지는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에게 반감을 초래한다). 누구든지 아프거나 실업자가 될 수 있고, 늙어서 일 못하게 된다. 그럴 때 갖다 쓰기 위한 것이 우리나라에서 옛날에 했던 공동체 보험인 ‘계’(契)다. 형편에 따라 세금을 조금 더 내고 덜 내는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나 복지 세금을 내도록 해야 국민이 받아들이기 쉽고, 부자들의 반감도 적다. 세금을 얼마나 내야 하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이 40% 정도 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금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내야 한다. 보편적 복지에서 자신이 낸 세금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꼭 나쁠 것도 없지 않은가. 높은 세금을 기반으로 한 복지국가 스웨덴은 사실 미국보다 소득세를 20년 더 늦게 도입했다. 지금 당장 스웨덴처럼 조세부담을 55%로 높이자는 건 안 먹힌다. 그러나 국민을 설득하면서 장기적 방향을 잡아놓고 조금씩 높여간다면 길게 봐서 50년, 70년 뒤에 한국도 스웨덴처럼 될 수 있다.
 
“경제는 곧 정치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는 어떻게 보는가?
부자감세는 ‘시장주의적 스탈린주의’다. 투자할 사람들(자본가·기업가)에게 돈을 몰아줘야 파이가 커진다고 하지만, 그런 정책을 쓴 뒤에 오히려 투자와 성장이 떨어졌다. 증명된 바 없는 정책을 우리 정부가 하면 안 된다. 미국 상류층 1%가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대 10% 정도였는데 지금은 23%다. 그런데 그동안 미국 경제는 투자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경제가 죽쑤고 있다. 투자도 안 하는데 고소득층에게 (부자감세를 통해) 돈을 몰아줄 이유가 없다. 사람들이 자유무역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복지’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복지병’ 어쩌고 하는데, 복지병에 시달렸다고 하는 영국의 1960∼70년대 경제성장률이 지난 20여 년간 성장률보다 높다. 스웨덴 등 북유럽 복지국가의 성장 속도도 매우 빠르다. ‘복지’와 ‘성장’은 상충된다는 기존 통념은 뒤집어봐야 한다. 복지라는 말만 나오면 실업수당 타 먹고 일 안 하려는 게으른 사람만 얘기하는데, 이는 18세기적 시야에 갇혀 있는 발상이다. 실업을 당해도 사업이 망해도 보편적 복지를 통해 일단 밥 먹고 살게 해주면 국민이 직업을 선택할 때 더 진취적이 된다. 고용이 불안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공무원시험 등 안전주의로 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직장을 잃으면 의료보험이 상실되는 등 굶어죽을 위협만 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일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이뤄지면 죽자사자 직장을 지킬 필요가 없어지고, 사람들이 더 진취적이 된다.
   
2004년 5월 서울에서 장하준 교수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 컬럼비아대학)와 만나 대담을 하고 있다.

새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사람들이 경제학 하면 겁을 많이 먹는데, 경제학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95%는 상식 수준의 얘기인데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놓은 것일 뿐이다. 나머지 5%도 기본적으로 누구나 알아들을 만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이 ‘민주사회의 시민 되기’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의 요구 없이 제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경제학자든 토목공학자든 신경외과 의사든 누구든지 민주시민이 되려면 자기 분야 외에 알아야 할 것이 굉장히 많다. 핵발전소 문제, 고령화 대책 등 온갖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해 어렵게 얘기하면 난 잘 모르는 얘기니까, 하면 안 된다. 어렵게 말하니까 그렇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얘기도 아니다. 전문가 정도 돼야 무슨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꼭 생물학자가 아니라도 식당이나 음식물 공장은 위생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파생상품 전문가가 아니라도 경제학자가 아니라도 지나치게 복잡한 금융상품은 위험 역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위험을 줄여야 한다고, 너무 복잡한 건 규제하라는 정도만 민주시민으로서 얘기하면 된다. 뭐가 너무 복잡한지,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는 전문가에게 넘기면 된다. 그동안 금융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맡겨놓았다가 위기 터지고 망한 것 아닌가(비록 전문가 수준이 못 되더라도, 완벽하게 알지 못하더라도 “(사회와 사람들에게) 말을 계속 꺼내고 던져야 한다”는 것이 장 교수의 지론이다. 장 교수는 2004년 어느 자리에선가 그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1960년대 무궁화표 세탁비누의 상표 도용’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경제학뿐 아니라 과학·추리·소설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정사 같기도 하고, 야사 같기도 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자신의 여러 책에 풍부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들이…>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고 주장했는데.
앞으로 계속 그럴 거라는 건 아니고, 지금까지는 기술이 경제와 사람들의 노동패턴에 미친 영향 측면에서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더 컸다는 얘기다. 현재의 정보기술 발전과 비교해 과거의 기술 진보는 별것 아니라고 사람들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전보를 보자. 전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 속도에서 굉장히 혁명적이었다. 미국에서 영국에 배를 통해 편지를 보내려면 2주일 이상 걸리던 것이 19세기 말~20세기 초 전보의 등장으로 20분 정도로 대폭 단축됐다. 최근 인터넷은, 물론 사진도 보낼 수 있고 서치엔진도 있지만, 30초 정도 걸리던 전보를 3초 정도로 줄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전보가 확산되면서 무역, 이민 등에서 지금보다 더 세계화가 진행된 적도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갑자기 시장 세계화의 수준과 규모가 뚝 떨어졌다. 각국 정부가 시장규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즉, 기술이 국가 간 경제의 구획선을 결정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어느 수준으로 갈 것인지는 ‘정책’의 문제다.
 
‘민주사회의 시민되기’ 어렵지만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모든 경제부처가 ‘규제 완화’를 정책목표로 내걸고, 경제 단체들도 규제를 없애라고 외치고 있는데.
기업 규제가 꼭 반기업 정책인 건 아니다. 유럽에서 아동노동 규제를 도입하던 당시 자본가들은 ‘정부는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고 반대했다. 그런데 저임금 아동노동을 마구 사용하면 아이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되고 건강도 나빠지고, 결국 경제 전체적으로 노동력 질이 떨어지게 된다. 아동노동을 아예 금지하면 나도 안 쓰고 남도 안 쓰게 되므로 경쟁 기업보다 임금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규제가 개별 기업에는 나쁠 수 있으나, 산업 또는 경제 전체적으로는 좋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독점·공해·외국인투자 규제 등이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규제는 나쁘다고 생각해 도입하지 않거나 없애려고 하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항공산업 규제를 완화하면 승객들이 가려는 목적지에 비해 운행 비행기 수가 모자라게 되고, 공항에서 ‘지금 비행기 한 대가 목적지 두 곳 가운데 한 곳을 정해 떠나려 한다. 손들어봐라. 더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곳을 목적지로 정하겠다’는 풍경이 벌어지지 말란 법 있나? 규제가 별로 없는 듯하지만, 사실 잘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을 뿐 우리 주변에는 규제가 엄청 많다. 주식시장도 규제가 별로 없는 것 같지만 기업을 공개하려면 기업 정보를 제출하고, 이익규모를 충족해야 하고,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등 엄격한 요건을 규제로 갖추고 있다. 어디부터 규제 대상이고 어디부터 아닌지도 애매하다. 아무튼, 기업에 너희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두는 것이 그 기업에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규제를 가하지 않으면 공부 안 하고 만날 게임만 할 것 아닌가? ‘탈규제’가 아이들에게도 좋은 게 결코 아니다.
<사다리 걷어차기>에서 선진국의 경제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들춰냈고, 여러 책을 통해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의 설교는 ‘깨어진 약속’이었다는 점을 역사적 사실을 통해 폭로해왔다. 주로 자본주의 경제 역사에 집중하고 있는데, 경제학은 ‘경제과학’이 아닌 것인가?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 가치관이 개입된 학문이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경제이론을 통해 다 밝혀지고 증명된 사실’이라고 말해온 많은 것들이 잘 들여다보면 사실이 아닌 게 많다. 논리적으로 또는 역사적 사실에서 왜곡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책을 통해 내 자리에서 잘못된 통념과 왜곡을 자꾸 깨는 도전을 하는 것이고, 독자들도 이른바 전문가들이 하는 얘기를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전문가들이 ‘한-미 FTA를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망한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이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해로운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따지고 들어야 한다. 경제학 교수가 말하는 것이니 맞겠지, 하면 안 된다(장 교수는 <그들은…> 맺음말에서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것들은 모두 지난 30년 동안의 경제적 통념들과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것들이다. 그래서 독자 여러분 중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고 말했다).
   
2008년 1월 미국 뉴욕의 뉴스쿨대학에서 장하준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물가관리를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이야 당연하지만 정부 경제정책 담당자들도 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데.
인플레이션은 1%만 올라가도 난리를 치는데, 실업률이나 비정규직 비율이 올라가는 건 일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국민의 삶이 얼마나 어려워졌는가.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뭔가 정책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인플레이션 대응 정책(금리 인상이나 재정지출 축소 등)은 흔히 월급쟁이들에게 안 좋은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전통적인 필립스 곡선은 물가와 실업률의 상충관계를 보여준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 인플레이션 잡는 것을 최우선 경제 과제로 삼았으나, 그동안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은 투자와 성장을 저해했다. 정책 담당자들은 ‘낮은 물가상승률로 세상이 더 안정적이 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 물가 안정은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제 안정의 지표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을 흔드는 가장 큰 사건은 일자리를 잃거나, 하는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 등이다. 물가상승률이 2%일 때와 4%일 때, 그 차이를 느낀다고 말할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겠는가?(장 교수는 <그들이…>에서 “낮은 인플레이션은 기본적으로 금융자산 보유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입안된 것이다. 금융자산의 수익은 대부분 명목상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르면 상대적으로 수익이 줄어들게 마련인데,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잊어버리자. 인플레이션은 금융자산 보유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려고 사용해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에 불과하다.”(93쪽)고 말했다).
 
“독자들이여,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글로벌 불균형’이 화두인데, 요즘의 환율전쟁은 어떻게 보는가?
중국으로서는 기가 찰 것이다. 중국만 환율 조작하는가? 넓은 의미에서 모든 나라가 환율을 조정하고 있다. 미국이 양적 완화로 돈을 마구 푸는 것도 결국 환율이란 가격에 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내부적으로 정신분열증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월스트리트는 강한 달러를 외치는 반면, 한편에서는 달러를 펑펑 풀어 약한 달러를 만들고 있다. 통화팽창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월스트리트가 일단 양적 완화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다른 때 같으면 인플레이션이 걱정된다고 난리쳤을 것이다. 글로벌 불균형을 풀려면 중국이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수를 늘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소비도 하나의 문화라 돈을 쓰라고 해도 쉽게 못 쓴다. 옛날에 안 먹고 안 입으며 돈을 모은 구두쇠 영감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읍내 나가서 돈을 흥청망청 썼다고 한다. 영감은 유일한 사치가 콩자반 해놓고 한 숟가락씩 떠먹는 것이었는데, 아들의 행태를 보다 못해 화가 나서 자신도 마구 돈 쓰겠다며 한 행동이 콩자반 두 숟가락을 먹는 것이었다고 한다. 소비를 늘리려면 소득분배, 소비자 금융, 복지제도 등이 다 바뀌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FTA와 금융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경제의 금융화를 추구하면서 모델로 언급해온 아일랜드나 두바이는 지금 다 망하고 있다. 귀찮은 제조업은 이제 그만 버리고 금융 쪽으로 가자는 정부 정책을 국민이 앞장서 막고 제동을 걸어야 한다. ‘제조업은 중국이 쫓아오니까 더 이상 전망 없다, 고부가가치 금융으로 가자’ ‘세계화 시대에 문 걸어 잠그고 살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정부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데 돌려보고 뒤집어봐야 한다. 한-미 FTA는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할 때 이를 핑계로 안 하면 좋겠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타격을 입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최첨단 산업 개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한국 제조업 생산성은 미국에 비해 40∼50%에 불과하다. 과연 FTA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준 차이가 나는 국가 간에 자유무역을 하면 반드시 후진국이 손해를 보게 돼 있다. 반에서 5등 하는 학생을 1등만 있는 교실에 보내면 열심히 해서 1등을 할 수 있겠지만, 15등 하는 아이를 그곳에 갖다놓으면 주눅들어 성적이 더 떨어질 수 있다. 전자 분야 등은 1등을 하지만, 한국이 선진국에 비해 결코 5등짜리 국가는 아니다. 물론 경제 현실은 기득권 세력이 쥐고 있다. 기득세력이 판을 이미 다 짜놓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만 얘기하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람들이 정책입안자들을 향해 계속 외치고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그러면 안 바뀔 것 같은 것도 바뀌게 된다.
2004년에 펴낸 <주식회사 한국 구조조정>에서 한국 경제의 전통적인 모델로 ‘국가-재벌-은행’의 연계시스템를 꼽으며 이 강점을 유지·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에 대한 생각은?
기업의 주주라는 것이 단기 이익을 요구하고 배당금을 많이 달라고 하고, 안 그러면 해당 기업을 적대적 인수·합병을 해버리겠다고 위협하는 사람들이다. 법적으로는 기업의 주인인지 모르지만 주인의식이 거의 없다.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주주가 하는 일이 뭔가? 삼성전자는 외국인 주주 비중이 50%를 넘는다. 그런데 삼성전자 오너 경영과 관련해 주주의 소액주주권 운운하지만 주주총회에서 발언하는 건 기관투자자들이다. 무서운 사람들은 그들이다. 기관투자자는 이건희 일가에 비해 약자일 뿐, 실제로 가진 재산은 더 많을 수도 있다. 그런 주주들이 무슨 투사라고 소액주주 운동이니 주주 가치니 하면서 밀어주는가. 지금은 삼성전자가 잘나가니까 별 말이 없지만, 이재용이 경영권을 승계한 뒤 삐걱대면 이들이 즉각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을 제기할 수도 있다. 주주들이 적대적 인수·합병 위협 등을 앞세워 단기 실적을 요구하고 종업원을 자르고, 투자를 안 하면 장기적으로 기업은 골병들게 된다. 그래서 어느덧 망한 대표적인 기업이 GM이다. 단기 투기자본이 들어와 우리나라 어디에서 어떤 거품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다. 파생상품이 하도 많아 거품의 정확한 위치를 알기도 힘들다. 금융 자유화를 계속 밀어붙일 게 아니라 자본 통제를 해서 투기자본은 못 들어오게 하는 게 상책이다.
중국 경제의 부상과 패권에 대한 전망은?
중국의 소득 불평등 지수가 남미 하위권 국가 정도까지 치고 올라왔다. 남미는 지난 500년간 불평등을 안고 살아온 나라들인데, 중국은 갑자기 불평등이 사회·경제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중국에서 상당수 사람들은 여전히 모택동복(공산당 복장)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반면, 어떤 부유층은 백악관을 베껴서 지은 호화주택에 살고 있다. 경제가 고성장하면서 일자리가 생기고 생활수준이 상대적으로 나아지면서 불평등이 어느 정도 납득되었지만, 성장률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특정 이슈가 터져 사회 낙오자들이 큰 불만을 제기하면 격동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어떤 자리에서 미래학적 공상으로 중국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중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고, 옛날에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환율을 한 번에 4배 대폭 평가절상하면서 경제에 큰 거품이 발생해 나중에 그 거품이 폭삭 꺼지면서 망하고, 결국 전세계가 공황에 빠져들면서 중국 내부에서 진짜 공산당이 나와 무장투쟁한다’는 소설 같은 얘기였다. (웃음) 지금 중국 경제의 미래는 얼마나 충분히, 그리고 빨리 불평등 문제를 치유하느냐가 관건이다. 중국은 굉장히 복잡하고, 내가 중국 중앙과 지방 정부의 상호작용 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중국 경제에 대해 별로 언급을 안 해온 편이다(갈수록 세계적 이름을 얻는 장 교수이지만, 국내 대학원 강의나 몇 번의 식사 자리 등에서 만나본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겸손’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사람이다. 장 교수는 “그건 나도 잘 모르는 영역인데… 정확한 수치 데이터는 생각나지 않는데” 하면서도, 그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내놓는다. “나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잘 알 순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얘기는 할 수 있다”면서).
 
한-미 FTA 하면 한국 경제 골병들 것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그동안 발언을 거의 하지 않은 것 같다.
통일 비용을 고려할 때 통일은 점진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한 다음에 해야 할 것 같은데…. 북한은 갑자기 통일하면 견딜 수 없는 사회다. 내부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할 동력은 없는 것 같고, 남한이 가서 해주면 식민지화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독일이 옛 동독 지역에 주는 보조금이 국민소득의 5% 정도 된다고 한다. 남북한은 동서독에 비해 소득 격차가 더욱 크고, 인구도 서독 대비 동독에 비해 남한 대비 북한이 더 많다. 북한의 생활수준을 남한과 비슷하게 맞추려면 남한 국민소득의 25% 정도를 북한에 줘야 하는데, 현재 남한 조세부담률은 25%가 채 안 된다. 너무 빨리 통일하려고 나서는 건 위험하다. 
한국에서 일반 대중은 물론 기업, 정부 관리, 언론이 ‘장하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단지 주류 경제학자들만이 유독 ‘경제학자 장하준’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모르겠다. 그에 대해 내 귀에 대고 직접 말한 사람이 거의 없어서. 하지만 (내 책을 보고) ‘이게 무슨 경제학이냐’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제학 교수가 꽤 있는 것으로 들었다. 나를 ‘이단자’라고 부른다는 얘기도 들었다.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으니 그들 눈에는 내 말이 경제학으로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교수들이야 은퇴할 때까지 30년 종신고용인데, 자신이 공부해온 주류 경제학에 위기가 온다 해도 변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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