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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찍어내고 있어 인플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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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2010년 05월 03일 (월) 세일러 다음 아고라 논객 economyinsight@hani.co.kr

대한민국은 가히 ‘재테크 공화국’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에는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 넘쳐난다. 그런데 빨리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 소원인 한국인들이 정작 돈(통화)에 관한 지식은 매우 빈약하기 그지없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디까지나 ‘돈’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돈에 관한 지식은 여러 가지 경제지식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테크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정작 가장 중요한 돈에 관해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왜일까? 원래 사회는 돈에 대한 진짜 지식을 가르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돈에 대한 진짜 지식은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마주 대하기에는 거북한 구석이 있어서 회피하고 넘어가고 싶은 대상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느 사회에나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이 있게 마련인데,  피지배집단이 돈에 관한 진짜 지식을 잘 모르는 게 통치하기에 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역사적으로 어떤 사회, 어떤 지배계급도 돈에 관한 진짜 지식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를 원치 않았다.
평상시라면 돈에 대해 잘 몰라도 상관없기도 하다. 오히려 잘 모르기 때문에 용감한 사람들이 돈을 더 잘버는 경향마저 존재한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때는 돈에 관한 진짜 지식이 필수가 된다. 잘 모르면 생존 자체를 위협받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시기다.
경제위기가 현재 진행형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이제 위기가 다 지나갔다며 안도하고, 앞으로 닥쳐올 더 큰 위기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돈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통념 한 가지를 예로 들어보자. 요새 ‘중앙은행이 경제를 떠받치기 위해 통화를 대량으로 공급하고 있으니, 물가가 오르고 주식과 부동산도 결국 오를 수밖에 없다’ 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과연 이 말은 정확한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틀린 말이다. ‘중앙은행의 통화공급 →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사이에 있는 중간단계의 존재를 알지 못해서 생겨나는 오해일 뿐이다. 중앙은행이 ‘통화’를 공급한다고 두루뭉술하게 말할 때, 정확하게 따져보면 그것은 ‘본원통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본원통화’는 인플레이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는 시중에 공급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가계, 기업 중 그 누구도 한국은행으로부터 직접 돈을 공급받아본 사람은 없다.
 
본원통화 증가율에 속지마라

중앙은행의 본원통화는 오로지 시중은행에만 공급될 뿐이다. 시중은행은 중앙은행으로부터 공급받은 본원통화를 종자돈 삼아 시중의 경제주체들(가계, 기업)에게 돈을 대출해준다. 이때 비로소 시중 경제에 통화(신용통화)가 공급돼서 통화량이 증가하는 것이다(신용창조 활동). 그리고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통해 공급하는 통화량 증가에 의해 인플레이션이 결정되는 것이다. 중앙은행의 통화공급 → 시중은행의 신용창조 → 통화량 증가 →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이처럼 중간단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공급을 크게 늘려도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활동이 위축되면 통화량은 거꾸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확히 이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중이다.
2008년 9월 미국 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과 더불어 급작스레 세계경제위기가 터져나오면서 우리 귀에 익숙해진 단어 중 한 가지가 ‘신용경색’(credit crunch)이다. 신용경색이란 신용이 수축하고 있다는 뜻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기능이 위축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용경색과 신용창조 기능의 위축, 이 두 가지 개념을 서로 잘 연결시키지 못한다. 신용창조에 대해서는 경제학 교과서에서 배우긴 했지만, 그 기능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그 의미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각한 경제위기로 신용경색 현상이 빚어지면, 중앙은행이 본원통화 공급을 크게 늘리더라도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기능이 마비되기 때문에 통화량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 이와 같은 통화량 수축 현상이 정말 나타나고 있을까? 객관적인 경제 지표를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림 1>은 미국의 본원통화 증가추이를 보여준다. 차트를 보면,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8천억달러 수준에 머무르던 미국의 본원통화가, 그 이후 글자 그대로 ‘폭증’하고 있다. 현재는 2조달러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중이다. 이 차트는, 미국이 경제위기를 떠받치기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대고 있기 때문에 조만간 달러의 가치는 휴지조각이 되고, 그 결과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닥치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구사할 때 많이 원용되는 차트다. 하지만 이게 얘기의 전부는 아니다. 여기서 멈추는 사람들은 속는 것이다.
본원통화의 증가 추이만을 볼 것이 아니라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과정을 거친 통화량의 증가 추이까지 살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림 2>를 보면, 본원통화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정작 통화량 M3는 2009년 6월을 정점으로 해서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본원통화는 우축 기준이고, M3는 좌축 기준이라는 사실에 유의하자. M3는 14조달러를 넘는데 반해, 본원통화는 2조달러를 넘는 정도일 뿐이다. 이를 통해서도 인플레이션에 영향을 미치는 ‘돈’은 M3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은행(FRB) 제도가 리먼브라더스 파산사태로 닥친 심각한 금융위기를 극복하고자 본원통화를 대거 공급했지만,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기능 마비로 인해 통화량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통화량이 계속해서 줄어들게 되면 그 결과는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물가와 자산가격이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을 빚게 될 것이다. 이처럼 돈에 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 객관적인 경제 지표를 보면,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디플레이션이 심화되면 공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물론 이 그림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미국 경제의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경제는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미국 경제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다. 간혹 우리나라의 수출 대상 1위국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면서 미국 경제의 영향력 약화를 얘기하는 사람들도 보게 되는데, 이는 착각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가는 수출은, 결국 미국으로 가는 ‘중간수출’일 뿐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미국경제의 영향을 직접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거꾸로 디플레를 걱정할 때

   
 
신용경색 현상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단초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림 3>에서 Lf는,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M3로 불리우던 유동성 지표로 미국의 M3와 비슷한 수준의 유동성 지표이다. Lf의 증가율을 본원통화 증가율과 대비해서 살펴보자.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10월 이후 경제위기 국면이 빚어지자 한국은행은 이에 대처하고자 본원통화를 30%가 넘을 정도로 급격하게 증가시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하반기 이후 Lf의 증가율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물론 증가율이 떨어졌다고 해도 0% 이상이므로 미국처럼 Lf의 절대량이 줄어들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원통화의 급격한 증가율과 대비해서 살펴보면,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도 시중은행들의 신용창조 기능 위축(=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가 2009년 하반기부터 Lf의 증가율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당시 정부에서 아파트 담보대출에 가해지던 대출규제를 해제하자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얼어붙었던 부동산 시장이 다소 살아나면서 다시 시중은행들의 대출활동(=신용창조)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신용경색 현상이 완화된 것이다.
이 그래프는 2010년 2월말 현재의 상황이다.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은 다시 침체 국면을 보이고 있다. 이와 맞물려 향후 Lf의 증가율 추이를 계속 관찰하면 향후 경제동향에 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단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독립변수가 되지 못하고 미국 경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판단을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림 4>(앞페이지)는 한국, 미국, 중국의 M2 기준 통화량 증가율을 비교한 것이다. 미국의 통화량 증가율은 우리나라보다도 낮다. 중국의 통화량 증가율을 보면,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서 가장 우려스럽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화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인플레이션과 돈 가치의 하락을 우려할 것이라면, 미국이 아니라 중국에 대해 우려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미국의 부동산 버블은 붕괴한 반면, 중국에서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부동산가격이 전고점을 넘어 다시 폭등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들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의 경제상황을 살펴보면, 2008년 9월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초래된 패닉국면을 넘긴 것이 사실이고, 겉으로는 상당히 평온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의 주식과 부동산은 반등에 성공했고, 미국의 경우 부동산은 여전히 침체상태에 놓여 있지만 주식시장은 반등에 성공했다. 중앙은행과 정부의 노력으로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고, 이제 다시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쳐 흐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객관적인 유동성 지표들은 다른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통화주의 학파의 비조인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신자유주의 사조를 낳은 장본인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프리드먼이지만, 그에게서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통화량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중요한 힘이다. 유동성 지표를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평온한 모습과 달리 물 밑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신용경색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림 2>를 통해 미국의 M3 동향을 시기별로 비교해보면, 최근에 이르러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음이 나타난다. 2009년 6월 이래로는 본원통화를 다시 급팽창시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신용경색의 심화로 미국 달러화의 통화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 달러화의 가치가 휴지조각처럼 떨어지고 그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럽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경제의 인플레와 달러의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 경제에 대해서는 찬양하고 위안화의 가치상승을 점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 통화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심연의 흐름은 조만간 겉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수밖에 없고 그 때쯤이면 사태를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좀 더 관찰을 요한다고 할 수 있지만, 미국경제의 영향과 부동산버블을 고려하면 심각하게 우려하고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2010년 4월 현재 어떤 이들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하고, 다른 이들은 인플레이션을 ‘기대’한다(주식과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대한다). 하지만 돈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지금은 섣부르게 자산에 투자해서 가격 상승을 기대할 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거꾸로 디플레이션(과 자산 가격의 하락)이 현실화할 것을 우려해야 한다고 가르쳐주고 있다.
환율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이 달러를 마구 찍어대고 있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것(원화의 가치 상승)이라는 생각이 절대 다수를 이룬다. 하지만 돈에 대한 지식은 상황이 정반대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Tip&Tap
M1(Narrow Money, 협의통화): 민간보유 현금 + 요구불예금 +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M2(Broad Money, 광의통화): M1 + 준결제성 예금(만기 2년 미만의 금융상품 등 이자소득을 포기하면 언제라도 현금화가 가능한 금융상품)
Lf(Liquidity Aggregates of Financial Institutions, 금융기관 유동성): 금융기관이 공급하는 유동성. 과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M3로 불리던 지표임. M2 + 만기 2년 이상의 정기예·적금 및 금융채 + 생명보험, 증권사의 예수금 등
L(Liquidity Aggregates, 광의유동성): 우리나라 경제에 풀려 있는 전체 유동성. Lf + 정부와 기업 등이 발행하는 유동성 금융상품(국채, 지방채, 회사채, 기업어음 등)

유동성 지표 왜 여러개인가
통화량은 어느 범위까지 측정하여 반영시킬 것인가에 따라 몇 가지 단계가 있다. M1, M2, M3 등으로 표기하는데,  숫자가 커질수록 더 넓은 범위까지 측정한 통화량임을 나타낸다. 각 통화량 단계마다 어느 범위까지 측정하여 포함시킬 것인지 그 구체적인 기준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데, 우리나라의 기준은 왼쪽 아래 ‘Tip & Tap’에 설명된 네 가지 지표 중 Lf가 M3에 해당하는 것이다(2006년 6월 이전에는 우리나라에서도 M3로 불리다 명칭이 변경됨).
왜 지표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인가 의문이 들 수도 있는데, 각 지표들이 모두 유용성 측면에서 일장일단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표의 범위가 더 넓을수록 실물경제를 제대로 반영하게 된다. 즉 인플레이션에 가장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범위가 가장 넓은 L이다. 하지만 고려 대상에 넣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그 측정과 관리가 쉽지 않고, 중앙은행이 통제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M2를 통화량 관리지표로 가장 많이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M2가 언론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되고 일반인들의 귀에도 가장 익숙하다.

* 필자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임원을 지냈다는 사실 말고는 일체 베일에 싸여있다. 2008년말부터 다음 아고라 경제토론방에 환율과 부동산에 대한 알기쉬운 분석 글을 올리며 단박에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sailer라는 필명에다 흐름도를 동원해 환율과 선물환 매도의 영향을 파헤친 명칼럼으로 조선업체 CEO 출신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저서로는 <경제독해> <불편한 경제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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