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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색 주식회사’의 딜레마
[Business] 투자 꺼리는 기업들
[102호] 2018년 10월 01일 (월) 마르틴 헤세 economyinsight@hani.co.kr

독일 기업들은 수년째 투자비용보다 수입이 더 많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세계에서 채무가 가장 적은 기업으로 꼽힌다. 이들 기업의 절약이 복지를 위태롭게 만들어 사회 번영에 점점 위협이 되고 있다. 

마르틴 헤세 Martin Hesse <슈피겔> 기자
 
   
▲ 독일의 베어링 제조회사 셰플러는 2008년 독일 자동차부품회사 콘티넨탈을 인수하면서 고액의 채무를 진 뒤 투자보다는 잉여금을 저축하는 데 매진했다. REUTERS
저축만큼 독일 국민이 심취하는 일이 또 있을까.
 
2018년 봄 개각에서 재정장관에 입각한 올라프 숄츠(사회민주당)는 “전 국민이 힘을 합쳐 흑자가 시작되는 원년을 만들자”고 했다. 전임자인 볼프강 쇼이블레(기독교민주연합)도 일찍이 “절대로 국가 채무를 새롭게 늘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천명했다. 오래전부터 독일 가정에선 ‘지출이 수입보다 적어야 한다’고 당연하게 여겨왔다. 설령 저금리 시대에 저축만으로 많은 돈을 불릴 수 없다 해도, 이들은 ‘세계 저축 왕’이라는 칭호를 자랑스러워한다.
 
문제는 국가와 가정 외에 기업이 저축을 너무 열심히 한다는 데 있다. 2000년대 들어 대다수 독일 기업은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이 돈을 벌었다. 그 결과, 2017년 기준 기업 잉여금이 740억유로(약 96조4800억원)에 이르렀다. 독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업들이 ‘순수익 저축자’가 된 것은 여러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정에서 은행에 저축하면 은행이 그 돈을 기업에 대출해주는 게 경제에서 정설이다. 기업은 대출금으로 공장과 연구·개발 분야에 투자한다. 이 경제법칙이 더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요즘 회사들은 은행에서 대출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돈을 모으려 한다.  
 
   
▲ 독일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전기전자기업 지멘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유로화 하락에 힘입어 기록적 수익을 내고도, 투자와 혁신에 소극적이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REUTERS
저축을 ‘미덕’으로 여기는 기업들
이런 조심성 많은 태도는 칭찬할 만하다. 기업 저축열이 논란이 되는 두 가지 문제와 결부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첫째는 비난받는 독일 경제의 소극적 투자 성향이다. 둘째는 글로벌 경제 전쟁이다.
 
저축하려는 경향은 개별 기업 관점에서 이해된다. 기업이 반드시 저축해야 하는 해도 있다. 회사가 너무 많은 채무를 지는 경우다. 자동차부품을 조달하고 베어링을 생산하는 셰플러 역시 2008년부터 해마다 빚을 갚는 데 주력했다. 가족경영을 하는 셰플러는 경쟁업체인 콘티넨탈을 인수하면서 고액 채무를 졌다. 경영 위기까지 고조되면서 급기야 두 회사 모두 도산할 위험에 직면했다. 이처럼 기업이 재정 위기에 처해 반드시 저축해야 하는 사례는 독일에서 흔치 않다.
 
유럽의 싱크탱크 브뢰겔연구소 군트람 볼프 소장은 “독일이 세계에서 기업 채무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말로 설명했다. “독일 기업의 과도한 저축 성향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한 가지는 독일 기업들이 수년간 막대한 흑자를 냈다는 사실이다. 기업들은 투자금 일부를 보유 자금만으로 충당할 수 있었기에 굳이 따로 대출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과거 몇 년 동안 디지털화 부문으로 투자가 집중됐다. 이 분야는 새 제품 개발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시설 장비 가격이 지속적으로 낮아진 것도 투자비 지출을 줄이는 데 일조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강화된 기업들의 외국 투자가 독일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외국 투자비 비중이 그리 높지 않고, 그런 직접투자가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일정한 편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인은, 기업 이사진이 노령화하면서 대규모 성장을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 규모 확대를 꺼리는 것이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주목받는 기업 이사진은 전망이 뚜렷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돈을 넣으려 하지 않는다. 단기 수익과 주식시세를 근거로 투자가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경제 전반을 고려할 때, 기업 저축열은 지금 독일에 위험 요소다. 볼프 소장은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10년 뒤 독일은 더 이상 세계 정상 자리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독일 기업이 수출에서 약진해 이런 문제가 아직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지멘스가 지난 몇 년 동안 기록적 수익을 낸 것은 유로화 하락 덕분이었다. 제품 가격이 실질적으로 내려감에 따라, 중국과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수요가 늘어났다. 호황으로 해당 기업이 쇄신 압박을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자동차 생산업체가 대표적이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이들 기업은 깨끗한(‘깨끗하다’고 잘못 알았던) 디젤엔진 자동차가 거둔 성공에 취해 안주했다. 그러다 차세대 유망 품목인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자동차로 전격 전환할 시기를 놓쳐버렸다. 자사에서 생산한 자동차 디젤엔진이 광고만큼 깨끗하지 않다는 소문이 퍼진 뒤에야 비로소 폴크스바겐, 다임러, 베엠베, 아우디, 포르셰 등이 미래형 자동차 개발에 수십억유로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 르완다 키갈리에 있는 폴크스바겐 신차 공장 외부. 폴크스바겐은 지난 몇 년 동안 기록적 수익을 냈지만, 미래형 전기자동차 등 투자에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REUTERS
개혁에 소극적인 독일 정부도 한몫
독일 기업이 투자와 혁신에서 경기 침체 때처럼 수세적으로 대처한 데는 개혁에 게으른 독일 정부 정책도 상당 부분 기여했다. 수년간 에너지 공급원 분산, 디지털 기간산업, 도시 개발 등의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거의 주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좀더 나은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정치가 힘을 기울여야 했다”고 지적한다. 독일의 경제5현(독일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고 자문하는 5인의 경제학자 그룹 -편집자) 역시 최근 발간한 경제 평가서에서 “정부 차원의 개혁으로 기업의 생산 잠재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과잉 흑자를 줄일 수 있었다”고 썼다.
 
경제학자들의 지적 이면에는 독일 기업 저축열이 일으키는 부차적 악영향이 자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다른 국가 사이에 불붙은 무역 논쟁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독일 흑자 규모는 최근 약 500억유로(약 65조2천억원)까지 늘었다. 2000년만 해도 잉여분이 150억유로 수준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몇 달 동안 불균형 현상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수시로 독일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했다. 관세를 높이 매기는 것만으로 문제가 반드시 해결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저명한 경제 전문가들조차 독일의 수출지향적 모델을 비난하는 트럼프 대통령 의견에 동의한다. 국가, 개인과 가정, 기업 모두가 동시에 저축을 하려면 다른 나라 국민이 이들 국가 기업의 상품·서비스·자본을 사야 한다. 좀더 과장한다면 ‘독일이 미국과 영국 국민에게 빌려준 돈으로 이들이 독일산 자동차와 기계, 화학 제품을 사게 한다’는 말이다. 
 
독일이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데는 독일산 제품 품질만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어딘가에 독일의 경상 흑자에 글로벌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높은 적자, 즉 막대한 빚을 지는 나라가 있기 마련이다. 이 상황은 해당 국가에 모두 위험이다. 이자율이 급상승하면 채무가 많은 나라는 변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독일 기업도 이런 쇼크가 일으키는 문제를 언젠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독일 수출이 채무국 수요와 서로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채무는 오늘날 독일 경제를 따뜻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 땔감이 머잖은 미래에 독일 경제를 크게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기업이 돈을 저축하는 경향은 독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일본 기업은 지속적으로 돈을 쌓아둠으로써 사회의 경기 흐름을 마비시키기로 유명하다.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일하는 리처드 쿠는 이런 일본 경제를 ‘결산 불경기’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금융위기 이후 저축 경향 커져
1990년 일본에서 부동산·증권 시장의 거품이 다 빠지며 장기적 국가경제 정체기로 들어서자, 많은 기업과 가정이 심각한 고액 채무에 시달렸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각종 경기 부양 프로그램과 낮은 이자율로 경제를 다시 끌어올리려 애썼다. 하지만 두 방법 모두 실효성이 없었다. 일본 시중은행도 감가상각을 막기 위해 회생할 희망이 없는 기업까지 대출 상환 기간을 연장해줬다. 그러자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빚을 줄이기 위한 저축에 열을 올렸다. 엔화 가치 하락으로 수출이 촉진돼 매출이 늘어난 것도 기업 저축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본 기업의 저축열과 비슷한 모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몇몇 유럽 국가에서도 나타났다. 2009년까지 10년간 유럽 기업 채무율이 40%나 올랐다. 스페인, 포르투갈, 아일랜드 기업은 엄청난 채무에 신음했다. ‘건전하게’ 저축을 늘리려고 했다. 인건비를 압박해 일자리를 없애거나 신규 투자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 국가와 기업의 경기 침체는 더욱 심해졌다. 
 
유럽연합의 경제위기 극복 정책을 비판하는 리처드 쿠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정부까지 나서 기업에 저축을 강요한 것은 실책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지적은 일리가 있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같은 나라가 노동시장과 그 관리기관을 개혁함으로써 자국 기업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 반면 일본은 이런 기회를 놓쳤다. 
 
기업의 개혁과 중앙은행의 무이자 정책이 있었지만 오늘날까지 유럽 기업은 투자에 전력하지 못했다. 2017년 유럽 기업의 저축액은 투자액을 뚜렷이 넘어섰다. 저축액이 무려 1360억유로에 이른다. 투자도 하지 않는데 기업들은 이 많은 돈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첫째, 은행에 예치한다. 유럽중앙은행의 느슨한 자금정책 때문에 벌금 이자를 물어야 하는 일이 종종 생겨도 말이다. 또는 그 돈을 유가증권으로 바꿔놓는다. 둘째, 자사 소유의 자본을 늘린다. 실제 지난 몇 년 동안 기업 인수·합병이 늘었다.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이나 공장 건설 대신 기업을 매입해 몸을 불리는 성장을 꾀했다. 셋째, 주식배당이다. 상장기업들은 2018년에만 360억유로라는 기록적인 배당금을 주주에게 지급했다. 독일 기업은 2008년 이후 최대 금액을 주주에게 나눠줬다. 기업은 이 배당금으로 자사 주식을 대규모로 다시 사들였다. 
 
독일 기업 지갑 닫게 하는 트럼프 
더 놀라운 것은, 미국 기업들 행태다. 이들 기업은 2017년에만 5270억달러에 이르는 주식을 환매했다. 이 주식들 시가총액은 2018년 현재 유럽중앙은행 추산 8천억달러로 매입가를 훨씬 뛰어넘는다. 기업에 수십억달러 세제 혜택을 줘, 기업들의 활발한 투자 환경을 유도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의 본래 의도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결과다.
 
독일에서 이런 모습이 2018년에는 변할 거라는 조짐이다. 독일상공회의소는 기업이 투자를 현저히 늘릴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6개월 통계에서 그런 경향이 나타났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부터 독일 기업에 지갑을 닫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일으키는 무역전쟁이 전세계에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경기를 둔화시키고, 기업들의 투자 환경에 먹구름을 드리우기 때문이다. 
 
* 2018년 10월호 종이잡지 68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33호
Die Geiz AG
번역 장현숙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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