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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전쟁을 선언하라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02호] 2018년 10월 01일 (월)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이미지투데이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은 친일파 이인직이 쓴 <혈의 누>다. 혈(血)은 몸에 흐르는 피, 누(淚)는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다. ‘혈의 누’는 일본어 ‘血の淚’를 번역했다. 일본어는 명사와 명사를 연결할 때 노(の)를 꼭 쓴다. 우리나라 문법으로는 ‘혈루’가 맞다. ‘피눈물’이 훨씬 간결하고 가슴에 와닿는다.
 
이렇게 일본 영향을 받은 ‘의’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3·1독립선언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새 문물을 받아들인 지식인이 일본글에 익숙하다보니 일본어투 표현을 많이 썼다. “오등(吾等)은 아(我) 조선의 자주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에서 ‘의’가 두 번씩이나 나온다.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이라는 표현도 어색하다. “우리는 조선이 자주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자주민이라고 선언하노라”가 어떤가? 훨씬 우리말다운 표현이 됐다.
 
사례 하나를 더 보자. 노래 <고향의 봄> 첫 부분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한다. 여기서도 ‘의’가 나온다. 우리말 표현은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다. 저항시인 이상화가 쓴 시 <나의 침실로> 역시 ‘내 침실’로 고쳐야 우리말답다.
 
우리는 ‘의’를 그리 많이 쓰지 않았다. 사람을 가리키는 ‘나, 너’에 주격조사 ‘가’나 보격조사 ‘가’가 붙을 때 모음 ‘ㅣ’가 붙어 ‘내, 네’로 썼다. ‘내 사랑 내 곁에’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처럼 말이다. 물론 ‘의’를 전혀 안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자주 쓰면 중독된다. 될 수 있는 대로 줄여 써야한다. 의‘ ’를 줄이는 방법을 알아보자.
 
‘의’를 줄이는 방법
첫째, 의‘ ’를 빼자. “도시문제의 해결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이 문장에도 ‘의’가 들어가 있다. 부담 느끼지 말고 빼보자. “도시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이전보다 자연스러워졌지만 조금 더 손볼 수 있다. ‘대해’를 조금 고쳐주자. “도시문제 해결 방법을 알아보자.” 문장이 훨씬 부드럽게 넘어간다.
 
둘째, 주‘ 어와 서술어’ 형식으로 바꿔놓자. “나의 사랑하는 그 사람”은 표현 자체가 어색하다. 어떻게 고치면 될까? ‘내가 살던 고향’처럼 고치면 된다. “내가 사랑한 그 사람”.
 
마지막 방법, ‘의’를 빼고 그 자리에 동사를 관형사로 변형해 넣자. 이렇게 바꾸는 이유는 있다. ‘의’는 앞에 나오는 명사와 뒤에 나오는 명사를 연결해주는 구실을 한다. “회장님의 글”이라는 표현을 보자. ‘회장님’과 ‘글’을 잇기 위해 ‘의’가 들어갔다. 두 명사를 연결하는 동사는 어떤게 있을까? 그렇다. ‘쓰다’가 있다. ‘쓰다’를 활용해 연결하면 된다. “회장님이 쓴 글”로 바꾸면 ‘의’를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
 
마지막 방법을 응용해보자. “정의와의 싸움에서 불의는 이길 수 없다.” 이 문장에서 일단 ‘의’를 빼라. 다음엔 ‘싸움’이라는 명사를 ‘싸우다’라는 동사로 고쳐보자. “정의와 싸워서 불의는 이길 수 없다.” 하나만 더 살펴보자. “통일의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여기서도 ‘의’를 먼저 없애보자. 다음에는 열기를 꾸며주는 동사를 떠올려보자. ‘향하다’는 어떤가? 이 동사를 관형사로 만들면 ‘향한’이 된다. 이렇게 고치자. “통일을 향한 열기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조사 다음에도 오는 ‘의’
우리말에는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헌법, 법률, 국어 교과서에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나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에의’ ‘에서의’ ‘과의’ ‘으로서의’는 일본어투다.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한국판 누아르 영화가 있다. 여기에는 조사(와) 뒤에 ‘의’가 붙었다. 일본어 ‘~와의’(~との)에서 왔다. 접속조사 ‘와’는 두 개를 이어주는 조사, ‘의’는 소유를 뜻하는 조사다. 우리말은 조사를 겹쳐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어 연구를 하는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쓴 칼럼 가운데 “쉬운 우리말 쓰기로서의 일본어 순화”가 있다. 일본어 순화를 한다면서 일본어투 제목을 달았다. ‘로서’라는 조사 다음에 의‘ ’라는 조사가 덧붙었다.
 
바르게 고쳐보자. “쉬운 우리말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일본어 순화” “쉬운 우리말을 쓰기 위한 일본어 순화”, 이렇게 고칠 수 있다. ‘위한’이나 ‘위해’가 거슬리면 “쉬운 우리말을 쓰려면 일본어투를 걸러내야 한다”로 고치면 된다.
 
‘조사+의’ 형태로 된 일본어투는 참 많다. ‘와의’ ‘에의’ ‘로의’ ‘에서의’ ‘로부터의’ ‘에로의’처럼 셀 수 없을 정도다. 왜 이런 표현을 막 쓰는 걸까? 친절하게 문장을 이어주기보다 급하게 문장을 연결하려다보니 그렇다. 쉽게 말해 명사가 이어지는 형태로 문장을 만들어서 그렇다.
 
‘있어서’ ‘에서’도 일본어투
“감독에 있어서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 문장에는 ‘~에 있어서’가 들어갔다. 이 표현을 쓰면 강조하는 뜻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렇지 않다. 문맥을 어색하게 만들거나 전달하려는 의미가 또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말을 해치는 쓸데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깔끔한 우리말로 바꿔 써보자. “감독에게 리더십이 가장 중요한 가치다.”
 
“다른 사람을 사랑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여기서 ‘있어서’는 군더더기다. ‘사랑함에 있어서’라는 표현이 멋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이렇게 얘기해주라. ‘일본식 번역투(있어서)에 영어식 번역투(사랑함)’라고. 조금만 손보면 간결한 우리말로 바꿀 수 있다. ‘사랑할 때’란 표현으로 바꿔보자.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이처럼 ‘에 있어서’를 쓰지 않으면간단하고 명료한 문장이 된다.
 
‘에서’도 마찬가지다. 괜히 글만 늘어진다. “이 연구보고서에서는 국제금융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문장에서 ‘에서’는 굳이 안 써도 된다. “이 연구보고서는 국제금융 문제를 다루고 있다.” 생략하니 훨씬 더 간결해졌다.
 
일본어투에서 벗어나라. ‘의’와 전쟁을 선포하라. 그래야 당신 글이 ‘살아있네’라는 평가를 받는다.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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