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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국민 집사’로 거듭나려면
[국내이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의결
[101호] 2018년 09월 01일 (토) 백승엽 seoungyeob.paek@sustinvest.com
백승엽 서스틴베스트 부사장
 
   
▲ 국민연금이 2018년 7월30일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7월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 공청회’. 연합뉴스
“기업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영을 했을 때 주주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질문에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 이하 코드)는 출발한다. 이 경우 일반 소액주주들은 주식을 팔고 떠나면 되지만, 대규모 기관투자자들은 쉽게 주식을 매도하기 어렵다. 과도한 출구비용(Exit Cost)이 발생하고 동시에 증권시장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연금처럼 국내 자본시장의 거대 투자기관인 경우 전체 시장 움직임에 따라 수익률이 좌우되는 까닭에 단순 매매보다는 기업가치 제고와 국민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투자자를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라 한다.
 
코드란 집안 재산을 관리하는 집사(Steward)처럼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도 고객(주인)을 위해 ‘신의성실의 원칙’하에 고객 자산을 관리해야 하는데 이때 지켜야 할 관리 지침을 의미한다. 코드는 세계 금융위기 이후 그 보완책으로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뒤 현재 대부분 선진국을 포함해 전세계 20개국이 도입하고 있다. 주요 해외 연기금은 코드에 가입해 투자기업과의 적극적인 대화(Engagement) 등 다양한 주주 활동으로 장기 수익성 제고에 노력하고 있다. 코드 내용은 수탁자 책임 정책, 이해 상충 방지 정책, 주기적 점검,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의결권 행사 정책, 주기적 보고, 전문 역량 제고 등으로 구성됐다. 다만 코드는 강제로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니라, 기관이 자율적으로 참여를 결정해 행동 지침으로 삼는 연성 규범이다.
 
제한적 경영 참여 놓고 ‘갑론을박’
국내에선 취약한 지배구조에 따라 기업가치 훼손, 주가 하락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와 위상 저하 요인으로 작용(코리아 디스카운트)한다. 기관투자자의 코드 도입으로 이를 정상화할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요구돼왔다. 따라서 국내 코드는 2016년 12월 민간 주도(스튜어드십코드 제정위원회)로 도입돼 현재 58개 기관투자자가 도입한 상태다. 그 내용은 기관투자자가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7가지의 세부 원칙과 안내 지침으로 이뤄졌다.
 
국민연금이 1년여 연구용역을 토대로 지난 7월30일 코드 도입을 확정했다. 이를 둘러싸고 야당, 재계, 보수 학계에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관치금융 확대, 연금사회주의 등 다양한 비판 논거가 나온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자칫 정부가 기업을 압박하거나 조종하려는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드의 긍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재계나 보수 쪽 우려는 국민연금이 635조원의 운용 규모로서 국내 주식 투자분만 하더라도 전체 시가총액의 7%를 상회하는 거대 투자자라는 데 있다. 이제껏 국민연금은 재계의 우호적 주주나 최소한의 방관적 주주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코드를 도입한 뒤에는 정상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하니 대주주들로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보수에서 진보로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대기업 불공정 행위 등을 지적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코드는 수탁자 이익 최우선의 행동 원칙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가입자, 즉 국민이 주인이므로 다수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면 될 뿐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 방식이 바뀔 리 없다. 다만 과거 대한민국은 산업 우선 정책에 근거해 친기업 정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됐고, 이 과정에서 정권과 재계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결탁하는 문제가 종종 일어났다. 급기야 친기업이 아닌 친재벌적 사건이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같은 불미스러운 일까지 일어났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는 진정한 친기업, 즉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국민연금의 코드 도입은 이런 우려에 대비해 정부 입김이나 기금운용본부의 자의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결정이다. 우선, 이해 상충 방지 정책에 대한 분명한 명시가 담겼다. 국민연금 이해관계자는 정부, 사용자와 노동자 단체, 내·외부 담당자 등인데, 각자의 목적에 따라 의사결정이 왜곡되지 않도록 명시하기 위해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를 두기로 했다. 주주권 행사의 키를 쥔 수탁자책임 전문위는 정부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위원을 제외한 민간 전문가들로만 구성된다.
 
둘째, 국민연금 코드는 기업의 중·장기적 가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데 기업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을 전제로 한다. 주주권 행사는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경영권 참여에 해당하는 이사 해임 등의 조처는 충분한 여건을 갖춘 2020년 이후 시행된다. 단계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수탁자 활동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면 우려도 불식될 것이다.
 
셋째, 의결권의 위탁운용사 위임 계획이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위탁운용분에 대해서는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위임해 객관성을 제고할 방침이다.
 
일부에선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는다. 현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떼내어 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조직을 만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이 개혁을 놓고도 여당과 야당은 지난 십수 년간 극한 갈등과 대립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혁이 어려운 까닭에, 코드 도입은 독립성·투명성의 보완책으로서 현실적 최적안으로 봐야 한다.
 
향후 성공적인 코드 정착을 위해서는 수탁자책임 전문위의 전문성 강화와 상설화가 뒤따라야 한다. 학자와 더불어 실무적 전문성을 갖춘 인물들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경륜 있는 경영컨설턴트, 펀드매니저, 애널리스트, 전직 국민연금 기금본부장 등이 보강되면 좋을 듯싶다. 국내외 수백 개의 기업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 활동을 제대로 점검하려면 상설화는 필수다.
 
국민연금 코드 도입의 목적은 분명하게 “기금의 장기 수익 제고”라고 명시돼 있다. 균형 잡힌 시각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다면 코드가 단순히 주주 이익 향상을 뛰어넘어 장기 투자 관점에서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아우르는 책임투자 영역과 함께 갔으면 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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