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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리스크’에도 굳건한 한진·금호
[국내이슈] 항공업계 내우외환
[101호] 2018년 09월 01일 (토) 권순우 soonwoo@mtn.co.kr
권순우 머니투데이방송 기자
 
   
▲ 2018년 7월14일 청와대 인근에서 아시아나와 대한항공 직원들이 총수와 경영진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은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물갈이를 한다. 혁신하지 않으면 후발 주자에게 밀려 퇴출된다. 경쟁이 거의 없고 면허로 보호되는 산업은 부조리가 누적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문 분야는 산업 생태계를 특정 기업이 장악해 서로 견제해야 할 관계자들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기도 한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지배해왔다. 최근 드러난 수많은 사건을 보면 누구도 견제하지 않는 봉건적 생태계 안에서 그들에게 법적 경계선 개념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국내 1위 국적 항공사를 거느린 한진그룹은 8월17일 국토교통부가 ‘항공 면허 유지’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진에어 면허 취소라는 위기에 봉착했다. 진에어가 면허 취소 위기까지 내몰린 이유는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 때문이다.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임원으로 있는 경우 국가 기간산업인 항공사 면허를 받을 수 없다. 조현민 부사장은 미국 하와이에서 태어났고, 성년이 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한 미국인이다. 진에어는 2010년부터 세 차례 면허 갱신을 신청하고 재발급을 받았지만, 정작 임원을 하겠다는 조씨 일가의 딸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담당 공무원 3명을 수사 의뢰했다.
 
   
▲ ‘땅콩 회항’ 피해자인 박창진 전 사무장과 가면을 쓴 대한항공 조종사가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 등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갑질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 오너 일가 갑질로 ‘휘청’
진에어 면허 취소까지 야기한 시발점은 ‘물병 갑질’ 사건이다. 2018년 4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 대행업체와의 회의 자리에서 대행사 직원에게 폭언과 함께 매실 음료수를 뿌리고 유리컵을 던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조현민 전무의 폭언과 욕설이 담긴 음성파일이 공개됐고, 조 전무의 물병 갑질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일상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조 전무는 자기 기분이 상하면 상대가 누구든 분노를 표출했다.
 
조 전무의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은 어머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었다. 이명희 이사장은 자택 공사를 하던 노동자에게 서류를 집어던지며 막말을 하는 장면이 공개됐다. 또 인천 하얏트호텔에서 한 직원이 이명희 이사장을 ‘할머니’라고 불렀다가 그날로 해고됐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경찰은 이명희 이사장을 운전기사 등 11명을 대상으로 24건의 특수상해, 특수폭행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조양호 회장 일가는 국경도 개의치 않았다. 공항은 국경을 넘어가는 중요 공간이다. 면세점에서 술 한 병, 화장품 하나를 살 때도 일일이 관세법에 따라 절차를 밟아야 한다. 조씨 일가는 명품 가방은 기본이고 가구, 식재료 등 마음에 드는 물건을 모두 사들여 대한항공을 통해 서울 평창동 자택으로 배달받았다. 물론 세금은 내지 않았다. ‘땅콩 회항’으로 악명 높은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6억여원 규모의 개인 물품을 외국에서 구매해 몰래 들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관세청이 압수한 밀수 의심 품목만 무려 2.5t이다. 
 
회삿돈과 개인 돈의 경계도 없었다. 조양호 회장과 이명희 이사장은 자기 집 인테리어 공사 대금을 그랜드하얏트인천 공사비에 더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또 정석인하학원이 보유한 인하대병원 근처, 한진그룹 계열사인 정석기업이 보유한 건물에서 약사 자격도 없이 ‘사무장 약국’을 한 혐의로 수사받고 있다. 18년 동안 사무장 약국을 경영하는데 이를 지적한 사람은 없었다. 법적으로 사회 소유인 학교도 이들 일가에게는 사유물이었다.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정석인하재단 소유의 인하대에 부정 편입했다가 교육부에 적발됐다. 기업도, 공항도, 학교도, 병원도 그들에게는 마음대로 해도 되는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조양호 한진그룹 총수 일가와 박삼구 금호아시나아그룹 회장의 각종 갑질과 기내식 논란 등이 있음에도 ‘항공 면허’ 덕분에 2018년 상반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아시아나항공, 총수 일가 ‘금고’ 전락
아시아나항공은 ‘한번 항공사 오너는 영원한 오너’라는 명제를 보여준다.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인 금호산업이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갖고 있던 모든 주식이 소각됐다. 또 3천억원의 사재를 회사 정상화에 투입하면서 재산 대부분을 잃었다.
 
지분도 자금도 없지만 박 회장은 ‘오너’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금호그룹 주인은 산업은행이었지만, 사람들은 박 회장을 금호그룹 주인으로 인식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금호그룹의 법률적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박 회장의 경영권을 보장했다. 자금이 생기면 다시 금호그룹을 되돌려받는 ‘우선매수권’도 인정했다. 
 
지분도 돈도 없고 경영권만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회삿돈을 쓰는 것뿐이었다. 최근 KBS는 연세대 캠퍼스 개선 공사에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들이 동원된 사실을 보도했다. 연대 총동문회장인 박 회장은 100억원을 기부하겠다며 동문 후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부자 명단에 박 회장의 이름은 없었다. 대신 아시아나항공 등 계열사 12곳이 30억원 남짓 기부했다. 박 회장이 ‘기부의 큰손’으로 추앙받고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지만, 정작 돈을 낸 것은 박 회장이 주식 한 주도 보유하지 않은 계열사들이었다.
 
박 회장 사익을 위해 계열사가 돈을 내는 일은 낯설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몸담았던 경제개혁연대도 여러 건을 고발했다. 2015년 박 회장은 금호그룹을 되찾기 위해 720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을 인수했다. 이때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이 박 회장을 위해 550억원을 출자했다. 금호산업 주식을 사는 것이 문화·교육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당시 김상조 소장이 금호재단, 죽호학원 이사 19명을 고발했지만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2017년에도 경제개혁연대는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금호홀딩스에 계열사가 특혜 대출을 해줬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다. 금호홀딩스는 금호그룹 계열사에서 966억원을 빌렸다. 금호홀딩스가 외부서 돈을 빌릴 때는 6% 넘는 이자를 지급했지만 금호 계열사들한테는 2~3.7%의 낮은 이자만 냈다. 
 
최근 100편 넘는 항공편이 무더기로 지연되고, 무리한 작업 지시로 협력업체 사장이 자살까지 했던 ‘기내식 대란’의 원인도 박 회장의 자금 조달 때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15년 동안 기내식을 공급해온 업체를 교체했다. 그러면서 새로 기내식을 공급하는 업체한테 박 회장의 개인 회사인 금호홀딩스가 1600억원의 무이자 특혜성 대출을 받았다. 그 대가로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권을 줬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이 건 역시 공정거래위원회가 조사 중이었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역시 박 회장 소유였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노래를 개사해 박 회장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안기는 직원, 손을 잡는 직원, 우는 직원 역할을 나눠 회장님에게 감동도 줘야 했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18년 7월4일 서울 금호아시아나 광화문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논란이 된 ‘기내식 대란'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한진·금호 ‘카르텔’ 정·재계 좌지우지 
두 항공사가 조양호, 박삼구 회장의 왕국으로 전락한 이유는 ‘기업’을 견제해야 할 이사회, 감독기관, 주주, 채권자 등이 전혀 제구실을 못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경영진을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 중에는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맡은 변호사 2명이 포함됐다. 조양호 회장의 고등학교, 경영대학원 MBA 동문도 3명이나 된다. 
 
인하대병원, 인하대학교 등을 거느린 공익법인 정석인하재단 이사회에는 등기이사 11명 중 9명이 한진그룹 내부, 학교법인 관계자다. 나머지 2명 중 한 명은 조양호 회장의 고교 동문이다. 항공산업은 진입 단계부터 한진그룹 손아귀에 있다. 우리나라 항공업계에 일하는 많은 인사가 한국항공대, 인하대, 정석항공고등학교, 인하공업전문대 출신이다. 모두 정석인하재단 산하에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조사했던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감독관 16명 중 14명이 대한항공 출신이었다. 항공안전감독관이 되려면 관련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최초 저비용항공사는 2005년 설립된 한성항공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 출신이 아니면 자격 요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아시아나항공 생태계는 박 회장을 중심으로 한 법조계, 금융권, 지역 정치권 인사로 가득하다. 아시아나항공 이사회에는 박 회장이 총동문회장을 맡은 연세대 전 총장, 전 금융감독원장, 박 회장의 고향인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이 포진하고 있다. 금호산업 이사회는 전남대 총장, 새누리당 부단장, 전 산업은행 본부장 등이 있다. 
 
산업은행이 금호타이어를 박 회장이 아닌 중국 더블스타에 매각하려 했을 때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 민주평화당 등 주요 정당들이 모두 논평을 내며 반대했다. 정치권이 주식을 팔아라 마라 간섭할 권한은 없다. 광주·전남 지역자치단체장과 시민단체, 대학생까지 나서 박 회장에게 힘을 보탰다. 대선 기간에 모든 대통령 후보가 금호타이어 매각 반대를 외쳤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자금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대한항공은 1969년 한진그룹이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며 발족했다. 아시아나항공은 1988년 제2의 민간정기항공운송사업자로 금호그룹이 선정되며 설립됐다. 우리나라 항공산업은 두 회사가 전부였다. 항공산업 생태계에 있는 법과 제도, 교육, 인프라, 인력 모두 두 회사에 맞춰져 있다. 항공업 관계자는 “회사가 마음에 안 들어 그만두려 해도 회사를 떠난다는 것은 항공업 자체를 떠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항공업은 면허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가 면허를 지켜주는 한 다른 사업자와의 경쟁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경영을 잘하든 못하든 대한민국에서 비행기를 이용해 국경을 넘으려는 모든 사람과 화물은 그들의 왕국을 이용해야 한다. 직원들이 나서 조양호·박삼구 회장의 퇴진을 외치는 2018년 상반기에도 대한한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각각 6조원, 3조원의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지만 바람은 지나가기 마련이고 그들의 왕국은 여전히 공고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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