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 Finance
     
오일 파워로 더 강력해진 미국 패권
[Finance] 셰일오일이 바꾸는 세계 질서
[101호] 2018년 09월 01일 (토)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미국 텍사스주 러프킨의 유전 지대에 설치된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채굴 장비. REUTERS
본격적으로 개발한 지 겨우 10년, 산업 발전 단계로 보면 ‘유아기’에 있는 셰일오일이 세계를 바꾸고 있다. 쇠퇴하는 듯했던 미국 패권을 재확인시키는 뒷배가 됐다. ‘셰일 혁명’으로 미국은 2019년에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될 전망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추월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이란 제재 등으로 국제 유가가 지속적 강세를 보이자 미국 에너지기업들이 셰일오일 생산을 늘렸기 때문이다.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보고서를 인용해, 2019년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하루 1180만 배럴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평균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1위가 되는 것이다. 2018년 2월 이후 미국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1천만 배럴 고지를 넘어섰고, 6월엔 1090만 배럴까지 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생산량은 1050만 배럴 수준이다.
 
산유량 세계 1위는 상징에 불과하다. 핵심은 미국이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복귀함에 따라 강력한 뒷배가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환경보호와 국가안보 등의 이유로 새 유전 개발을 억제했다. 산유량은 1970년 하루 960만 배럴 수준에서 정점을 찍은 뒤 줄었다. 2000년대 들어 첨단기술을 앞세운 셰일오일 혁명을 바탕으로 다시 원유 생산을 가속화하고 원유 수출국이 됐다. 이는 세계경제와 지정학적 질서에 중대한 의미다. 
 
셰일오일의 힘
2018년 8월9일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중국은 16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면서 원유는 제외했다. 핵심 부과 대상인 원유를 뺀 것은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중국의 후퇴에 해당한다. 중국이 무역전쟁의 한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할 수 있다.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6월 중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 규모가 1600만 배럴로 1996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에너지 수요의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중국은 미국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다. 일반적으로 공급자보다 구매자가 우위에 있지만, 필수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유는 국가 생명줄이어서 파는 쪽이 우위에 설 수 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값싼 셰일오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중국은 어떻게든 미국산 원유에 보복관세를 물리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먼저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이다. 중국 국영 석유회사 시노펙의 원유 수입 자회사 유니펙은 최근 가격 문제로 사우디와 갈등을 빚으면서 미국산 수입을 늘려왔다. 양쪽 갈등을 봉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2개월 뒤면 이란산 원유에 미국 제재가 발효된다. 수입 가능 여부가 불투명하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도 여의치 않다. 공급자가 제한된 상황에서 중국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 국제 원유 시장에서 강자로 떠올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2013년께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미국의 셰일오일은 세계 질서를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분산되는 듯하던 세계 패권이 다시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세계 오일 시장을 거의 독점하며 공급자 우위 질서를 유지해오던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와 세계 최대 오일 공급처였던 중동은 급속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셰일오일은 세계 질서의 파괴자이자, 미국의 힘을 재확인해주는 도구가 됐다.
 
달라진 중동 지정학
오펙 국가들은 셰일오일로 위기에 놓였다. 셰일오일 증산으로 국제 유가가 떨어져 재정 적자가 쌓일 뿐 아니라 중동의 지정학이 바뀌고 있다. 미국의 대중동 정책부터 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이전까지 미국은 최소한 중동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기류가 바뀌었다. 중동을 껴안기보다 배척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트럼프는 ‘이란 핵협정’ 탈퇴를 선언했고, 중동의 시한폭탄인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했다. 중동 이슬람 국가보다 이스라엘에 방점을 둔다는 명백한 신호다.
 
중동의 혼란은 대부분 유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오일쇼크 기폭제는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불안정이었다. 미국에 오일쇼크는 트라우마였고, 미국은 두려움을 느꼈다. 실물경제가 일시에 혼란에 빠질 수 있기에 미국은 중동을 조심스레 다뤄왔다. 중동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중동 정세의 안정이야말로 서방세계와 자국을 지키는 최우선 정책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었다. 자체 매장량이 많았지만 원유가 묻힌 알래스카와 연안에서 채굴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원유 수입이 많을수록 가격 안정이 국가 경제와 직결된다. 오일의 원활하고도 안정적인 수급에 더해 가격 안정은 미국 대통령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책무였다. 재집권을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였다.
 
이 상황은 중동 국가에 행운이었다. 원유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미국의 보호 아래 중동에서 맹주가 될 수 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 애썼다. 이스라엘 편에 서면 중동 질서가 무너져 유가가 폭등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유가가 올라도 미국으로선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다. 유가 상승이 반가울 수 있고, 트럼프로선 더욱 그렇다. 공화당의 돈줄이자 자신의 지지자인 석유업자들이 환호할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 경제의 호황에는 셰일산업에 대한 천문학적 투자가 한몫하고 있다. 미국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는 분야는 주로 에너지산업이다. 유가가 오를수록 셰일을 포함한 에너지 분야의 투자는 늘어난다.
 
이제 미국은 유가 상승을 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즐길 수도 있게 됐다. 이로써 중동 균형 정책이란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가능해졌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셰일 붐을 ‘트럼프의 복수’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국내적으로는 버락 오바마 정책에 대한 복수, 대외적으로는 원유를 볼모로 미국에 맞서던 나라에 노골적인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트럼프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셰일오일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복수
미국산 오일은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로 흘러간다. 유럽에선 오펙과 러시아산 오일로 빠르게 대체해간다. 국제 원자재 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원유 수출은 2015년 말 금수 조처 해제 뒤 빠른 증가세를 보인다. 2018년 1~5월 하루 평균 수출량은 167만 배럴을 넘었다. 2015년 대비 3.4배, 전년 동기 대비 1.8배 늘어난 수치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늘고,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로 북해산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의 가격 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WTI의 가격경쟁력이 생긴 것이다. 원유 생산 증가, 수출 인프라 확충 등으로 이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국가다. 이젠 세계 에너지 공급까지 주도하고 있다. 에너지는 곧 힘이다. 미국 패권은 당분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신화로 발전하고 있다. 트럼프가 아무리 막무가내라고 해도 실질적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트럼프는 에너지자원이란 엄청난 힘을 가졌다. 마음대로 세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것이다. 
 
미국은 자국이 만든 세계 질서를 거침없이 깨나가고 있다. 무역전쟁은 그 신호탄에 불과하다. 세계무역기구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만들고 키워온 질서였다. 그런데 미국이 그 질서를 부정한다. 이런 배짱은 에너지 독립에 따른 자신감에서 비롯한다. 가장 절실한 에너지마저 손아귀에 거머쥔 이상 더는 두려울 게 없다는 생각을 미국은 하고 있다.
 
전통 오일과 셰일오일의 대결은 국제 질서를 일시에 재편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다. 중동과 러시아를 포함한 산유국들의 입지는 한층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의 힘은 에너지를 지렛대로 한층 강해졌다. 에너지 수입국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전통 오일과 셰일오일이 가격경쟁을 하면서 오일 가격 상승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셰일오일이란 힘을 더한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21세기 미국의 패권은 더욱 강력해지고, 당분간 세계 질서는 그 힘에 의해 재편될 수밖에 없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절대 권력이 과연 어디로 향할지 걱정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9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