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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난·장자 승계 ‘오십보백보’
[국내이슈] 한국 재벌의 전근대적 세습 행태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박중언 parkje@hani.co.kr
박중언 부편집장
 
   
▲ 그룹 경영권을 놓고 3년 넘게 치열한 ‘형제의 난’을 벌이고 있는 신격호 일가. 왼쪽부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격호 명예회장,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씨, 장녀인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2018년 6월29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에서 벌어진 경영권 다툼은 수감 중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형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다섯 번째 도전은 또다시 좌절됐다. 신동주는 신동빈의 구속을 틈타 상황을 반전시키려 했으나 신동빈 쪽의 총력 방어를 뚫지는 못했다. 신동빈의 부재에도 주총 표대결에서 이기지 못해 신동주가 총수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롯데의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신동주는 신동빈의 대법원 유죄 확정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고 있다.
 
재벌가 골육상쟁 
한국 재벌가에서 ‘형제의 난’은 전혀 낯설지 않다. 재벌 순위 1위인 삼성과 2위 현대차도 롯데 못지않은 흑역사가 있다. 창업주 이병철의 맏아들 이맹희는 후계 경쟁에서 동생 이건희에 밀려 오랜 기간 분루를 삼켜야 했다. 적통과 재산 분할, 차명재산을 둘러싼 갈등은 ‘이맹희-이건희’ 소송과 이맹희의 아들 이재현 씨제이(CJ) 부회장에 대한 삼성의 미행 사건 등으로 이어졌다.
 
현대그룹에선 ‘형제의 난’으로 그룹이 쪼개지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왕회장’으로 불리던 천하의 정주영도 늘그막에는 둘째아들 정몽구의 반란을 막지 못했다. 그룹은 몇 덩어리로 갈라졌고, 정몽헌의 비극적 투신과 가족 간의 치열한 현대건설 인수전을 불러왔다.
 
롯데에서는 신동주가 아흔을 훌쩍 넘겨 정신감정까지 받아야 했던 아버지(신격호)를 휠체어에 태운 채 경영권 쟁탈전에 앞세웠다. 온 가족이 양쪽으로 갈라져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진흙탕 싸움을 벌인 것이다.
 
평화를 위한 ‘묵계’
롯데에서 둘째아들 신동빈이 배다른 맏이 신동주의 다섯 번째 도전을 물리친 2018년 6월29일, 재계 4위 엘지(LG)그룹은 매우 ‘평화롭게’ 4세 총수 시대 출범을 알렸다. 구본무 회장이 숨진 지 40일 만에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그룹 지주회사 (주)LG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됐다. 동시에 병상의 구본무 회장을 대신했던 구본준 부회장은 곧바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LG의 이른바 ‘장자 승계’ 전통에 따른 것이다. 다른 재벌가에 비해 훨씬 순조롭고 신속한 교통정리다. 품격 있는 기업인으로 존경받은 구 회장을 향한 추모 분위기와 맞물려 LG의 경영권 승계는 별 잡음 없이 마무리됐다.
 
LG는 그동안 재벌그룹들 가운데 비교적 여론의 비판을 적게 받아왔다. 2003년 국내 재벌로는 처음 계열사 간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정도경영을 표방하고, 계열사 전문경영인 체제를 구축해 투명성을 높였다.
 
그러나 장자 승계 원칙으로 가문의 분란을 막으려는 LG의 노력도 적잖은 무리수를 동반했다. 조카인 구광모가 구본무 회장 양자로 입적한 것은 2004년이다. 당시 구 회장 외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다.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전통적 양자 제도가 21세기에 재벌 승계를 위해 동원된 것이다. 이제 마흔인 구광모가 상무 3년 만에 재계 4위 그룹 총수 자리를 전격적으로 물려받는 것이나 조카의 길을 터주기 위해 구본준 부회장이 곧바로 퇴진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LG에선 그룹 경영에 필요한 어떤 요소보다 경영권을 둘러싼 총수 일가의 내분을 막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는 얘기다.
 
구광모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LG 주식을 늘려온 과정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재벌의 불·편법 행태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이미 2018년 5월 구광모의 (주)LG 등기이사 선임 때 논평을 내 “전형적인 회사 기회 유용과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주식을 매입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구광모가 △지분 23%를 보유한 희성전자가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힘입어 매출이 10배 이상 늘어난 회사라는 점 △지분 7.72%를 사들인 물류기업 판토스는 그룹 내부거래 비중이 70%에 이르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후진적 세습 견제는? 
2014년 말부터 가시화한 롯데의 ‘형제의 난’은 벌써 3년6개월 넘게 지속하고 있다. 그동안 신격호 일가가 벌인 갖가지 추태로 이미지가 실추돼 롯데그룹이 입은 손실만 해도 엄청나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벌인 주총 표대결이나 이사 해임 공방, 소송전 등 양쪽의 사활을 건 내전에 동원된 그룹의 인적·물적 자원도 상당하다.
 
총수 일가의 다툼으로 이렇게 많은 기업의 자원이 낭비되는 것을 국민이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은 큰 문제다. 재벌 총수 일가가 가진 지분은 평균적으로 전체의 3%도 채 되지 않는다. 사실상 수많은 직원과 주주가 주인인 그룹을 일가족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잘못된 인식과 행태가 전근대적 경영권 다툼이 끊이지 않게 하는 원천이다. 
 
롯데 같은 ‘형제의 난’에 비하면 LG의 장자 승계가 훨씬 덜 소모적이다. 그렇다고 총수의 맏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총수 자리를 이어받는 것 또한 낡은 세습 행태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LG그룹은 혹시라도 생길지 모르는 경영권 분쟁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경영을 맡아오던 구본준 부회장의 즉각 퇴진 쪽을 선택했다. 하지만 회사 경영을 책임져본 경험이 없는 ‘마흔 살 상무’를 단번에 매출 160조 그룹의 사령탑에 올리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다.
 
경제개혁연대는 “경영 능력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총수 지위를 부여한 것은 근거가 희박할뿐더러 사회적으로도 용인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재벌그룹의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지배구조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채이배 의원도 논평에서 “경영 능력이 없는 자녀들에게 회사를 맡겼다가 쑥대밭이 되고 있는 한진그룹을 보고도 느끼는 바가 없었는지 의문이 든다”며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뤄지는 경영권 승계는 회사의 리스크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벌 체제의 인위적 해체는 가능하지 않아 총수 자녀가 손쉽게 경영권을 쥘 수는 있다. 그러나 기업과 직원, 주주 그리고 국민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을 고려해 이들의 경영 역량을 엄밀하게 검증하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또 이들이 자격 미달로 판정되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을 때는 언제든 퇴출시킬 수 있는 정도의 견제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 한진그룹 조중훈 일가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런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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