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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이 서비스 상징은 아니잖아요?”
[국내특집] 드레스코드에 갇힌 그들 - 고객 ‘갑질’ 유발자 복장 규정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김미영 kimmy@hani.co.kr

서울의 유명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정미라(33·가명·8년차)씨의 규정 근무시간은 오전 10시30분부터 저녁 8시까지다. 하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이보다 하루 평균 1~2시간씩 더 길다. 매장 문을 열고 고객을 맞기 전까지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있어서다. 회사에서 규정대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해야 한다. 정씨는 “스킨케어 브랜드면 색조화장까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색조 브랜드 매장은 메이크업에 공들여야 해 대체로 1시간 이상 일찍 출근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_편집자

김미영 부편집장

   
▲ 연합뉴스
2018년 7월12일, 정미라씨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가 조금 넘어 그가 일하는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 도착했다. 비가 그친 뒤 갠 날씨 탓일까. 아침부터 후텁지근한 기운이 몰려온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샌들 차림인데도 얼굴·목·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영업 시작 전, 불 꺼진 백화점 1층은 고즈넉함을 넘어 적막했다. “매장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 없어 라커룸까지 가야 해요. 출퇴근 때마다 라커룸을 오갈 때면, 등골이 오싹할 뿐 아니라 ‘왜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싶어요. 우리 직업이 상품을 잘 팔고 고객 서비스를 잘하면 되는데, 굳이 유니폼까지 맞춰 입을 필요가 있을까요?”
 
판매직 여성에게 강요되는 드레스코드
오전 10시30분, 백화점 개장 시각. 닫혀 있던 셔터가 올라가고 각 매장 앞에 선 직원들이 몰려드는 고객들을 향해 “어서 오십시오!” 배꼽 인사를 한다. 1층 화장품 매장. 대다수 점원이 유니폼을 입고 있다. 흰색 블라우스와 검정 바지, 분홍색 원피스, 파란색 치마 등 브랜드마다 특성과 개성을 살리려 유니폼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정씨 역시 아까와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매장 앞에 섰다.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회사에서 지급한 유니폼을 입었다. 신발도 샌들 대신 스타킹을 신고 구두로 갈아 신었다. 
얼굴도 좀전과 달리 화려하게 ‘풀메이크업’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기초화장품과 달리 색조화장품 판매사원은 아이라인, 아이라이너, 인조눈썹 부착 등까지 꼼꼼히 해야 한다”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10시간 가까이 짙은 화장을 해 피부 트러블을 항상 달고 산다”고 말했다. 
 
요즘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화장 시간이 덜 들고, 메이크업 규제도 덜한 편이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신제품이 출시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그 라인으로 반드시 화장해야 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이미지 변신을 위해 다시 화장을 고친다. 직원의 화장 여부가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매출을 높이기 위해 화장하는 것은 감수할 수 있어요. 그게 우리의 숙명이고, 취업할 때부터 알았으니까.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값비싼 화장품으로 다양한 변신을 할 수 있어 좋았고, 이 직업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정씨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브랜드 인지도나 이미지 제고가 중요하다지만, 유독 화장품업계에서 강요되는 드레스코드다. 백화점 내 의류, 스포츠, 액세서리, 신발, 아동복 등 다양한 브랜드 가운데 유니폼을 고수하는 건 화장품 매장뿐이다. “복장은 물론이고 모발 색깔과 스타일, 매니큐어의 색상과 액세서리까지 규제할 때가 많아 업무에 불편할 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상당합니다.”
 
물건 이동과 정리에 불편한 유니폼
판매직은 고객을 직접 상대하기에, 판매 직원의 건강이나 컨디션, 노동조건은 서비스뿐 아니라 매출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씨 역시 “복장 자체는 우리 일을 하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복장 때문에 고객이 우리를 하대하거나 업신여기는 풍토를 조장하는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의구심까지 생긴다. 
 
유니폼은 업무 효율을 높이지도 않는다. 매장 물건을 정리하거나, 매장에 온 제품을 나르고 옮기는 일, 창고에서 수시로 제품을 가져오는 일도 이들의 업무다. 하루에 수십 번씩 계단을 오르내리고, 선반에 상자를 올리거나, 쪼그리고 앉아 매대 아래 서랍에 제품을 옮겨놓는 일이 수시로 반복된다. 이때 몸에 딱 달라붙는 블라우스나 치마, 바지 등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단추나 지퍼가 떨어지지 않을까, 물건을 올릴 때 속옷이 드러나지 않을까 마음 졸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샤넬·엘카코리아 노조의 사복 투쟁
유니폼은 휴식뿐 아니라 점심시간조차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유니폼 입고 식당에 가면 국물이 옷에 튈까,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지는 않을까, 신경 쓰여 말과 행동에 늘 조심한다.” 그는 “마치 유니폼이 내 신분을 드러내는 듯 느껴지고, 주위 눈치를 보게 돼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점심시간 역시 근무시간의 연장일 뿐이다.
 
얼마 전 샤넬 화장품 노조와 에스티로더, 크리니크, 바비 브라운, 맥, 라메르 등의 화장품 브랜드를 보유한 엘카코리아 노조가 파업하면서 복장 투쟁을 벌였다. 하루 10시간 남짓 서서 일하지만 휴식권조차 보장받지 못할뿐더러 고통을 주는 ‘복장 규정’과 ‘그루밍 룰’(복장 규정) 완화를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판매직원의 서비스 정신이나 능력이 아니라 화장법, 머리 모양, 복장, 손톱, 액세서리 등을 집요하게 규정해 이를 업무의 하나로, 업무 능력으로 보는 시각을 개선해달라는 취지였다. 실제 백화(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를 연구한 심선희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박사의 논문 ‘미적 노동, 신체의 동원과 개발’(2013)을 보면 적잖은 브랜드가 직원의 복장, 머리색, 머리 스타일, 신발 굽 높이, 스타킹 색상, 손톱 길이와 색상, 액세서리뿐 아니라 안경 착용도 규제했다.
 
샤넬코리아 직원들은 매일 근무 시작 전에 색조화장과 매니큐어, 머리 모양 등을 철저히 다듬어야 했다. 엘카코리아의 경우 근무시간 전에 출근해 신제품으로 ‘풀메이크업’을 하고, 신제품 콘셉트에 맞는 머리 모양과 액세서리까지 착용한 뒤 본사에 사진을 전송하도록 요구받았다. 
 
손님이 없어도 구두를 신은 채 서 있어야 해서 무지외반증, 족저근막염은 물론 발 변형, 관절염 등 고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엘카코리아 노조가 조합원들의 발 사진을 모은 결과,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최선화(40·가명·13년차)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그는 무지외반증을 앓는 데다 시력도 좋지 않다. 휴일이나 근무하지 않을 때는 주로 안경을 쓰지만, 매장에 출근할 때는 꼭 렌즈를 낀다. “짙은 화장을 해야 하는 직업이라 안경을 쓸 수 없고, 실내에서 일해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건조해져 오후만 되면 눈이 따갑고 뻑뻑하다. 본사 허락을 받기도 귀찮고 눈치도 보여서 안경 끼는 걸 진작에 포기했다.”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들이 2014년 6월 서울 영등포구 한 백화점 인근에서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니폼, 판매직 무시하게 만드는 원인
판매직종에선 ‘외모’가 일종의 경쟁력으로 인식된다. 특히 화장품 판매직 사원은 그 정도가 심하다. 뚱뚱하거나 못생긴 여성이 화장품을 팔면 매출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팽배하다. “서비스 질을 논할 때도 ‘친절하다’ ‘싹싹하다’보다 ‘예쁘다’는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고객들 사이에 있는 것 같다”고 최씨는 말했다. 
 
최씨가 최근 독하게 다이어트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얼굴이 통통하니, 화장해도 메이크업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얼굴 살을 빼면 고객과 매출이 더 늘 것 같았다.” 무지외반증도 체중을 줄인 이유였다. “구두를 오래 신어서인지 굳은살이 많아지고, 최근 2~3년간 무지외반증이 악화돼 통증이 심했어요.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데, 신발만이라도 규정이 완화됐으면 해요.”
 
판매직 종사자가 유니폼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유니폼이 조장하는 고객 ‘갑질’이다. 판매직 사원은 고객 평가에 목맬 수밖에 없다. 한때 애프터서비스 기사에게 넥타이와 정장, 구두 차림을 강요했던 이유다. 최씨는 “알게 모르게 유니폼 입은 이들한테는 막 대해도 된다는 인식이 있다”며 “직급 낮은 여성, 직업 선호도가 낮은 직군에 유니폼이 강요되니 조금은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는 편견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정미라씨 역시 유니폼이 판매직을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는 직업으로 인식되는 데 일조한다고 공감한다. “최근 경기도의 한 백화점 화장품 매장에서 고객이 판매직원에게 폭행 등 갑질을 하는 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잖아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원인도 ‘복장 규정’에서 파생한 ‘판매직 하대’ 문화가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당시 영상을 보면 40대 여성 고객이 “제품이 불량이라 자신의 피부에 문제가 생겼다”며 백화점 직원의 머리를 잡고 화장품을 던지는 행패를 부린다. 정씨는 “평소 매장에서 일하면 진상 손님을 하루에도 여러 명 만난다”며 “우리가 입는 유니폼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판매직 사원한테 ‘최고 등급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막 대해도 된다’고 고객이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정씨와 최씨에 따르면, 실제 매장에서 판매직 사원에게 ‘야’ ‘아가씨’라고 부르거나, ‘이것 좀 보여줘’ ‘이거 색상이 왜 이래?’ 등 아무렇지 않게 반말하는 고객이 꽤 된다. 반말쯤은 오히려 양반에 속한다. 정씨가 말했다. “우리를 앞에 두고 자녀한테 ‘너 공부 못하면 저런 일 해야 한다’고 거리낌 없이 얘기해요. 우리는 공부 못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잘하고 또 소질이 있기에 선택한 것인데 말이죠.”
 
드레스코드 없애고 전문성 살려야
최씨 역시 “유니폼을 입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소심해진다”며 “고객이 왕이고 우리는 왕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숙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한다”고 말했다. “종종 꿈에서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고객을 응대하는데, 더 환한 웃음과 자신감 있는 말투로 고객을 상대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실제 파업 때 사복을 입었는데, 위축되지 않고 화장품을 잘 팔아 매출이 조금 오르기도 했어요. 어찌 됐건 유니폼은 차별과 억압의 목적으로 잘못된 계급 인식을 반영한, 없어져야 할 유산입니다.”
 
정씨는 샤넬과 엘카코리아에서 일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전했다. “파업하면서 복장 투쟁을 했는데, 고객뿐 아니라 동료들의 반응이 더 좋았다고 해요. 매출이 줄지도 않고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고객을 대하는 듯해 한결 쇼핑하는 게 좋았다는 고객 반응도 많았다네요.”
 
정씨는 드레스코드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통제와 규율의 상징인 드레스코드를 과감하게 없애고 대신 제품을 판매하는 전문직으로서 인정받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씨도 “판매직은 물건을 판매하고 정리하기에 가장 편안한 옷을 입을 때, 능률도 올라가고 서비스도 좋아질 수 있다”며 “드레스코드로 몸과 마음에 골병이 들고 스트레스가 쌓여간다면, 판매 사원에게도 고객에게도 절대 좋은 일이 아니고 사기 진작이나 전문성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옷이나 외모, 인상으로 고객에게 평가받는 직업이 아니라 상품을 파는 전문 직종이니까요. 그렇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복장 규정이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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