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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도 흠뻑 매료된 ‘구찌’
[김미영의 브랜드 읽어주는 여자]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김미영 kimmy@hani.co.kr
김미영 부편집장
 
   
▲ 홍콩의 침사추이 쇼핑지구에 있는 구찌 매장. REUTERS
2018년 5월21일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뮤직 어워드’ 레드카펫에 섰을 때, 노래 못지않게 주목받은 건 패션이다. ‘이번에도 구찌일까?’
 
예상은 적중했다. 그린·레드·베이지 조합이 인상적인 셔츠를 입은 RM, 글렌체크 수트를 차려입은 정국과 진, 구찌의 독창적인 폴로 티셔츠와 블루 셔츠, 조깅 팬츠와 데님 팬츠에 야구모자, 로퍼, 스니커즈를 더한 뷔, 지민, 슈가, 제이홉까지. 멤버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골라 입은 구찌 옷으로 방탄소년단의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한껏 뽐냈다. 
 
방탄소년단은 1년 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도, 3집 <러브 유어셀프 전-티어>로 활동할 때도 구찌를 입었다. 종종 ‘구찌소년단’으로 불린다. 평소 뷔가 구찌를 즐겨 입었고, 그 영향으로 다른 멤버들이 관심을 가졌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탄생과 발전  
구찌(GUCCI)는 1921년 구초 구치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자신의 성을 딴 ‘구찌’라는 가죽제품 전문점을 연 것이 시초다. 이후 세 아들 알도 구치, 바스코 구치, 로돌프 구치가 경영에 참여했다. 구찌는 밀라노, 로마 등을 비롯해 영국 런던,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으로 매장 확장에 힘쓰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는 발판을 닦았다. 
 
초창기 구찌는 가죽으로 장갑이나 부츠 등 당시 귀족들이 즐겼던 승마 용품을 주로 생산했다. 호스빗(말 재갈), GRG(초록-빨강-초록) 라인 등 승마에서 영감을 받은 장식이 가방과 신발 등에 상징처럼 나온다. 핸드백, 트렁크, 신발, 벨트 등까지 생산 제품을 확대한 건 1937년부터다. 지금은 핸드백, 신발, 의류, 시계, 향수, 고가 보석 등으로 세계 고급 패션을 선도하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대표 상품 
대표 상품으로 뱀부백과 호스빗 로퍼, 재키백이 꼽힌다. 뱀부백은 1947년 ‘0633’이라는 모델 번호로 첫선을 보였다. 이탈리아가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물자 상황이 나빠지자 일반적인 가죽 대신 돼지 피혁으로 몸통을, 유일하게 수입이 가능했던 일본산 대나무를 손잡이로 활용하는 뱀부백을 탄생시켰다. 이후 대나무는 우산 손잡이, 시계, 벨트, 구두, 스카프 패턴에까지 다양한 제품에 응용된다.
 
뱀부백은 그레이스 켈리, 데버러 커 등 당시 유명 여배우가 애용하고 각종 영화에 나오며 주목받았다. 1954년 <이탈리아 여행>에서 잉그리드 버그먼이, 1958년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리즈 테일러가, 1966년 <욕망>에서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갖고 나왔다. 뱀부백은 영국의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특별히 아낀 가방이기도 하다. 
 
호스빗 로퍼는 1953년 출시한 구찌의 대표 신발이다. 클라크 케이블, 존 웨인, 프레드 아스테어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즐겨 신으며 유명해졌다. 1960년 알랭 들롱이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 신고 나오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최근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구찌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재키백은 1950년대 출시한 둥근 모서리의 숄더백을 말한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리타 헤이워드, 브릿 에클랜드 등 당대의 여배우뿐만 아니라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 등 남성도 즐겼다. 1960년대 재클린 오나시스가 애용한 것을 계기로 재키백이 탄생했다. 알파벳 ‘G’ 로고가 박힌 캔버스에 GRG 라인이 조화된 것이 특징이다. 
 
쇠락과 화려한 부활
구찌는 1950~60년대 최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1970~80년대에 위기를 맞는다. 1983년 셋째 아들 로돌프 구치의 아들 마우리초 구치가 경영권을 승계하자, 알도 구치의 아들 파울로가 크게 반발한 것이 한 원인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파울로 구치’라는 브랜드를 론칭하고, 구찌 자체적으로도 브랜드를 과도하게 라이선싱하면서 이미지가 추락했다. 당시 ‘구찌’ 이름의 제품이 2만 종이 넘었다고 한다.  
 
재기의 발판은 마우리초 구치가 전문 경영인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를 도입하면서 마련됐다. 1994년 디자이너 톰 포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하며 변화를 모색했다. 톰 포드는 구찌의 옛 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을 선보이며 새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95년 선보인 ‘젯셋 글래머’는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이어 2006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프리다 지아니니 역시 여세를 몰아 이미지 개선과 매출 신장에 일조했다. 구찌는 2007년 시장조사기관 닐슨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갖고 싶은 럭셔리 브랜드’로 선정됐다. 
 
밀레니얼 세대 공략 
현재 구찌는 발렌시아가, 보테가베네타, 푸마 등 뛰어난 럭셔리·스포츠·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를 보유한 프랑스 기업 케어링(Kering)그룹의 자회사다. 2014년 취임한 마르코 바자리 회장 겸 최고경영자는 다양한 사고와 도전, 변화와 혁신을 중시한다. 이후 환경과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하는 점이 주목할 만한 변화다.  2018년부터는 모피 제품 생산과 판매를 모두 중단하기로 선언했다. 이 밖에 환경오염을 줄이는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겠다는 ‘이퀄리브리엄 프로젝트’도 론칭했다.
 
구찌가 지닌 점잖고 고루한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2015년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된 뒤 두드러진 변화다. 미켈레는 전통적 디자인을 과감히 탈피해 화려한 꽃무늬와 뱀, 호랑이, 벌, 나비 등 신선한 동식물 모티프 자수와 장식을 활용해 대담하고 이색적인 색상과 디자인으로 재무장해 ‘젊은 구찌’를 재창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그나시 몬레알, 코코 카피탄, 언스킬드 워커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과의 협력도 눈에 띄는 변화다.
 
미켈레를 영입한 뒤 구찌는 연간 40~50%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2017년 매출은 2016년 대비 50% 늘어나 60억유로를 넘었다. 젊은 소비자를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 ‘94학번’으로 1990년대 중반 물질적 풍요 속에서 자유분방하고 개성을 추구하던 동시대의 문화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추구하던 ‘X세대’ 문화를 직접 겪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처럼 신세대의 마음가짐으로 젊고, 멋스럽게 나이 들기를 바란다. 뷰티와 패션에 관심이 많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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