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이슈
     
런던의 집들이 죽어가고 있다
[Trend] 그렌펠타워 화재 1년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예르크 신들러 economyinsight@hani.co.kr

영국 런던의 고급 주거지역 켄싱턴에 위치한 그렌펠타워에 대형 화재가 일어난 지 1년여가 지났다. 72명의 목숨을 앗아간 그렌펠타워는 수도 런던을 분열시킨 실패한 주택정책을 상징한다.  

예르크 신들러 Jörg Schindler <슈피겔> 기자 
 
   
▲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에 난 대형 화재로 72명이 사망했다. REUTERS
영국 런던 서부 켄싱턴에는 천천히 사라지는 고층 빌딩이 있다. 공사장 인부들이 몇 주 전부터 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흉물스러운 콘크리트 건물에 흰색 가림막 천을 치고 있다. 한 층 작업이 끝나면 다음 층으로 올라가는 식이다. 마치 런던 상공에 67m 높이의 국기를 게양하는 것처럼 보인다. 1년 전인 2017년 6월14일 화염에 뒤덮인 그린펠타워다. 4층에 있던 냉장고에 전기 합선으로 불이 붙었고, 몇 분 뒤 고층 빌딩 전체가 화염에 휩싸였다. 그렌펠타워 방화벽은 화재를 견디지 못했고, 스프링클러와 엘리베이터는 비상상황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다. 그렌펠타워는 정치권의 탐욕, 무관심, 정책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켄싱턴과 첼시는 수년 동안 보유금 3억파운드(약 4433억원) 이상을 적립했다. 켄싱턴은 지금껏 세수가 남아돌았지만, 빈곤층 주민을 외면했다. 실제 그렌펠타워 곳곳에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입주민들의 경고는 철저히 무시됐다. 런던시 관계자들은 오히려 오페라 등에 투자했고, 부유층에 세금을 환급해줬다. 그렌펠타워는 이제 부유층이 아닌 국민의 안위에 아랑곳하지 않는 영국과 런던 정부의 상징이 됐다. 영국 정부조차 “주택시장이 이미 오래전에 고장났다”고 인정했다. 런던뿐만 아니라 독일 베를린, 스페인 바르셀로나, 미국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많은 사람이 주택정책 실패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선다. 시위대의 파괴력은 유럽 금융의 심장부인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부유층 사이에서 지하 주택 건설 ‘붐’
후덥지근한 어느 초여름 날, 마렉 크롤이 지하 5m ‘살아 숨 쉬는 벽’ 앞에 서 있다. 지하 공간임에도 수직으로 내려온 초록색 양탄자 덕분에 정글 분위기가 물씬 난다. 천장에 달린 3m 유리로 햇빛이 들어오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집주인은 최대한 지하에 녹지대를 조성하길 원했고, 그곳에 플라스틱 식물을 이식하고 있다. 크롤은 “고객이 돈을 내면 우리는 무엇이든 한다”고 했다.
 
캐나다 출신 억만장자인 집주인은 문화재로 등록된 이 고급 빌라를 몇 년 전 세컨드 하우스로 샀다. 빌라는 그렌펠타워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있다. 런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빌라의 면적은 230㎡다. 그럼에도 고객은 주택이 작다며 크롤을 찾았고, 그와 그의 팀은 2016년 초 중장비를 들고 와 10주에 걸쳐 정원 전체에서 약 500㎥의 흙을 파냈다. 지하 공간에 일본식 붙박이장과 화장실이 딸린 자녀용 방 3개, 널찍한 요가 공간, 게스트룸, 사우나 시설을 만들었다. 지하에 3개 층이 새롭게 생겼고, 주택 거주 면적이 2배 이상 늘었다. 새 집주인은 한 달에 한두 번 이곳에 들러 며칠씩 휴식을 취할 것이다. 
 
땅 위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이른바 ‘빙산 집’(물 위에선 작아 보이지만 수면 아래 거대한 얼음이 있는 빙산에 빗댄 말 -편집자) 붐은 10년 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시작됐다. 당시 전세계 부호들은 조세 규정이 느슨하고 익명성 보장에 관대한 런던으로 앞다퉈 자산을 옮겨왔다. 이후 런던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런던 주택에 투자하는 이가 점점 늘어났다. 문화재 보호 규정상 증축이 금지된 런던은 최고급 빌라조차 규모가 작다. 런던 부유층은 너도나도 지하로 눈을 돌렸다. 이후 런던 주택가 지하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화려한 세상이 펼쳐졌다. 크롤은 이 집에서 멀지 않은 또 다른 주택 공사에도 투입돼 12m의 땅을 파냈다. 실내수영장과 엘리베이터를 포함한 대형 지하 주차장을 만들었다.
 
뉴캐슬대학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런던의 부유한 7개 자치구는 지난 10년간 5650건의 지하 증축을 승인했다. 이 중 800여 건은 최소 지하 2층 규모였다. 지하 피트니스센터 1천 건, 안방극장 456건, 실내수영장 376건, 사우나 241건, 직원 공간 115건, 주차장 115건 등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땅 아래에 3층짜리 폭포, 인공 해변, 버튼을 누르면 실내수영장으로 변하는 대리석 파티홀을 만들었다. 이렇게 증축된 지하층 총깊이는 무려 1만5289m에 이른다. 지하에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 138개를 쌓을 수 있는 깊이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은 재직 당시 활발한 지하 주택 건설 붐에 대해 “놀랍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다. 몇 년씩 지속되는 공사, 쓰레기, 좁은 도로에 화물차가 다니면서 야기하는 교통 문제 등은 첼시와 노팅힐 등에 거주하는 부유층의 원성을 샀다. 한 예로 다이애나 레이필드 구글 부사장이 에드워즈 스퀘어에 있는 자택에 드레스룸을 만들기 위해 지하 증축 공사를 하려 했을 때, 유명 아나운서를 포함한 이웃 주민 23명이 공사 반대 소송을 제기했다.
 
런던의 일부 자치구는 최근 관련 규정을 강화해 지하 1층에 국한한 증축 공사만 승인하고 있다. 하지만 법망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몇몇은 12m 깊이의 지하 증축 공사를 신청해놓고 이를 여러 ‘층’으로 쪼개는 편법을 쓴다.
 
   
▲ 런던 켄싱턴에 있는 주택. 빨간색과 흰색으로 외벽을 꾸민 주택 아래에 2층짜리 지하 주택이 있다. REUTERS
치솟는 집값에 빈집만 덩그러니 
첼시의 트리건터로드에 사는 조너선 코(55)는 “‘빙산 집’으로 증축하는 이들은 이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리건터로드는 빌라가 최대 2500만파운드(약 368억원)에 거래되는, 런던에서 최고가 주거지 가운데 하나다. 최근 고급 지하 시설이 가장 많이 생겨난 지역이다. 타이 대사 관저 주변에선 주택 3곳당 1곳꼴로 공사 중이다. 공사장 울타리 뒤로 전기톱의 굉음과 공기 해머 소리가 수시로 시끄럽게 울린다. 코는 “지하 증축 공사는 이 지역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빙산 집’에 관한 책 <넘버 11>에서 첼시 곳곳이 부유층 주민들의 주택 지하 증축으로 ‘유령도시’가 된 상황을 빗댔다.
 
코가 입주하던 1993년 트리건터로드에서 느꼈던 활기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텅 빈 수많은 ‘빙산 집’은 영혼 없는 ‘머니 머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도 ‘빙산 집’ 매매가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한다. 자산가들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뛰었다. “과거 이웃 주민과 지인들 다수가 이곳을 떠났다”고 코는 전했다. 
 
대낮에 트리건터로드를 오가는 사람은 건설 노동자와 정원사, 애완견 산책 전문가, 회색 유니폼을 입은 롤스로이스 운전사뿐이다. 저녁에는 이 인적마저 끊긴다. 수많은 집의 불이 꺼졌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지될 정도다.  
 
이는 ‘황금 우편번호’로 지칭되는 첼시, 켄싱턴, 하이게이트(세인트존스우드) 등 부동산 업체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 고급 주거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런던 전역에서 죽은 주거지가 속속 생겨난다. 부유층은 돈이 있어도 거주를 원치 않고, 서민들은 거주할 여력이 없어지면서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집값 고공행진에 그나마 제동을 걸었음에도 런던의 평균 집값은 55만파운드에 달한다. 금융위기 때 최고치의 두 배에 해당한다.  
 
런던의 월세도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다. 영국 부동산 중개 플랫폼 라이트무브(Rightmove)가 2018년 6월 초 발표한 월세 가격을 보면 최소 1만5천파운드(약 2200만원)에서 수십만파운드에 이르는 주택이 무려 1227채에 달했다. 불법 자산을 런던에 안전하게 투자하려는 부유층에게는 월세가 얼마든 상관없다.
 
현재 템스강변에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인 고층 빌딩은 500채에 이른다. 상당수가 고급주택이다. 런던의 많은 사무실과 주거 공간이 비어 있는데도 부유층을 위한 공간만 점점 넓어지는 것이다. 애나 민턴은 자신의 책 <메트로폴리탄 런던은 누구를 위한 곳인가?>에서 “런던이 ‘불모의 도시’로 점점 전락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런던 중심부는 부유층을 위한 놀이터, 주변부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힙스터 주거지의 2중 구조로 양분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범한 봉급생활자와 빈곤층이 거주할 곳은 어디인가?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런던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외곽으로 밀려나는 중산층·서민·빈곤층 
런던 남부의 도서관 사서 주디 보스(49)는 런던 서더크 자치구 5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에 남은 마지막 주민이다. 그는 방이 무려 80개인 건물에 홀로 산다. 주택에 딸린 거대한 주차장도 혼자 사용한다. 문밖에선 야생 보리가 허리까지 무성하게 자랐고, 밤이면 짝짓기를 하는 여우들 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깰 뿐이다. “건설사는 내가 이 건물에서 나가는 것을 두고 더는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보스의 집을 방문하려면 초현실적 무늬의 핑크색 울타리를 지나야 한다. 울타리 위에는 르네 마그리트와 폴 고갱의 그림과 더불어 ‘모두를 위한 주거 공간’을 약속하는 홍보 포스터가 꽂혀 있다. 콘크리트 건물은 단 한 개의 입구를 제외하고 모두 막혀 있다. 환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준 그는 “마치 내가 세기말 영화의 등장인물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이곳의 환경을 설명했다. 
 
이 건물은 1960~70년대에 지어진 7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럽 지자체 차원의 최대 콘크리트 주거단지인 에일즈베리의 일부다. 주위는 놀랍게도 푸른 녹지대다. 과거 토니 블레어 전 총리는 이곳에서 대규모 연설을 했다. “영국의 극빈층은 정부에 의해 잊혔다”고 열변을 토한 그는 극빈층 구제책을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그로부터 20여 년이 흘렀다.  
 
주디 보스는 2001년 방 3개짜리 이 집을 8만9천파운드(약 1억3천만원)에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일즈베리 주거단지 재개발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어떤 조처도 없었다. 4년 뒤 갑작스레 에일즈베리 주거단지를 철거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건물 상태가 너무 나빠 거주하기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자치구와 한 민간 투자자가 이 자리에 5천 채 규모의 주거단지를 짓는다고 했다. 이 중 다수는 고가 주택이었다. 
 
살던 곳에서 떠나기를 원치 않는 세입자들은 괴롭힘을 당했다. 전기와 가스가 끊기거나, 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았다. 집주인들에게는 푼돈이 보상금 조로 지급됐다. 보스는 12만파운드를 제안받았으나, 결국 남기로 했다. “그 돈으로는 런던에서 차 한 대 주차할 공간도 못 구한다.” 이후 그는 외로운 투쟁을 이어나가야 했다. “사회적 추방이 이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에일즈베리 주거단지에서 벌어진 일이 최근 런던의 수많은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지자체 주거단지를 팔아치운 이래, 영국 전역에서 수백만 채의 임대주택이 사라졌다. 노동당 출신 토니 블레어 정부도 민영화 정책 기조를 계속 추진했다. 심지어 블레어 전 총리의 고문관은 런던 자치구들이 전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런던 자치구들은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자치구 내 부동산을 팔아치웠다.
 
지자체의 부동산 처분 원칙은 항상 동일했다. 지자체들이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재개발 잠재력’이 있는 주거지를 획정한다. 기존 입주민들은 쫓겨나고, 수많은 재개발 주택의 ‘저렴할 것’이라는 공허한 약속이 허공에 울려퍼진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저렴할 것’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많은 괴리가 있었다. 젊은 가족이 저렴한 소형 아파트를 사려면 45만파운드(약 6억7천만원)를 내야 한다. 하지만 영국의 젊은 세대의 연소득 중간지대는 3만파운드(약 4400만원)가 채 안 된다.  
 
일정 비율을 확보하겠다는 ‘누구에게나 저렴한 주택’ 역시 거짓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영국 정부는 건설업체에 서민 주거단지 건설 프로젝트 유인책으로 수익률 20%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건설기업들이 수익률 20%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하면, 저렴한 주택 수를 임의로 줄이는 편법을 쓸 수 있다. 아예 단 한 채도 짓지 않을 수 있다. 이 결과 영국 건설기업들은 주택 공사로 수익을 남긴다.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런던 지자체 내 80여 곳의 주거단지가 재개발 위험에 처했다. 마구잡이식 주택 재개발은 런던의 지형을 바꿀 뿐 아니라, 대형 건설업체들의 배만 불릴 것이다. 
 
건설업체들은 건물을 지을 막대한 부동산을 보유하면서도, 정작 주택은 짓지 않는다. 시간을 끌수록 최대한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어서다. 건설업계 임원들은 이를 통해 보너스를 챙긴다. 건설업계 대표 주자인 퍼시몬(Persimmon)사의 제프 페어번 대표이사는 2017년 연봉 외에 1억1천만파운드(약 1620억원)의 보너스를 받았다. 엄청난 보너스에 여론이 악화되자, 그는 이 가운데 2500만파운드를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 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주택시장 과열에 대해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며 “정부가 수십 년간 필요한 곳에 필요한 주택을 충분히 짓는 것에 소홀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임대주택에 연간 200만파운드(약 30억원)를 추가 지원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이는 주택 5천 채에 맞먹는 금액이다. 문제는 런던에서만 무려 30만 가구가 임대주택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 2018년 6월14일 런던에서 열린 그렌펠타워 화재 1주기 추도식. REUTERS
주거지가 아닌 ‘머니 머신’으로 전락
런던 주택시장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아닌, 분쟁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상황으로까지 나빠졌다. 노숙자는 금융위기 이후 두 배로 급증했다. 런던 운하에는 하우스보트가 점점 늘고 있다. 관광객 눈에는 그림같이 아름다워 보이겠지만, 하우스보트는 런던의 심각한 주택난을 보여준다. 월세가 1천파운드인 주택이라 해도 대가족이 살기엔 비좁고, 곰팡이가 핀 반지하인 곳이 많다. 
 
런던 서부 외곽의 슬로주와 하운슬로주 등에는 임시 개조나 불법 임대된 주차장과 판잣집이 많다. 월섬스토에 있는 아시아 비비(39)의 단층 주택처럼 인권침해 수준의 좁고 어두운 방도 적지 않다. 도심과 가까운 해크니에 있는 집을 더는 유지할 여력이 없던 그는, 2017년 어린 자녀 3명을 데리고 이곳에 이사 왔다. 그는 검은 곰팡이가 핀 천장과 욕실, 수도관이 부서진 악몽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부서진 수도관에서 넉 달 전부터 물이 새고 있지만, 집주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비비가 이 집에 내는 월세는 무려 1550파운드(약 228만원)다. 잠을 자려면 네 가족이 8㎡의 좁은 방에 다닥다닥 붙어서 누워야 한다. 잘 때는 하나밖에 없는 방문을 꼭 닫는다. 3살 딸아이는 “밖에 쥐가 항상 돌아다니기 때문”이라며 “쥐들이 이만큼 크다”고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런던의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그림자처럼 살고 있는 계층은 극빈층만이 아니다. 대다수 중산층도 런던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더 멀리 튕겨나갈 때도 적지 않다. 수많은 영국인이 몇 시간의 출퇴근 거리를 감수한다. 런던 도심의 주택에 이어 직장마저 잃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하지만 적잖은 영국인이 직장마저 포기하고 결국 짐을 싸서 더 멀리 이사 간다. 
 
런던의 비즈니스·금융 지구에도 중산층이 거주할 공간이 없다. “이 도시는 이제 평범한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닌 부를 증식하는 ‘머니 머신’이 돼버렸다”고 버로스는 일갈한다.
 
런던 서부 그렌펠타워는 서민들의 거주지였다. 정치인과 집주인이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면, 입주자는 그렌펠타워에서 계속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메이 총리는 그렌펠타워 대형 화재에서 생존한 입주자들에게 3주 내에 인근에 새로운 집을 마련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입주자가 새집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1년 전까지 거주했던 그렌펠타워는 지상에 세워진 관이다. 그렌펠타워는 언젠가 철거될 것이다. 그 자리에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지만, 아직 최종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프로젝트 개발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기념관 설계를 마쳤을 것이다. 한 생존자는 전혀 다른 제안을 한다. “그곳에 임대주택을 만들어라. 임대주택이야말로 억울한 죽음을 제대로 애도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념비다.”  

*2018년 8월호 종이잡지 64쪽에 실렸습니다.
 
ⓒ Der Spiegel 2018년 24호
Die toten Häuser von London
번역 김태영 위원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예르크 신들러의 다른기사 보기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