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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정책 부재·무분별 투자 따른 ‘정부 실패’
[Business] 프랑스 대표 기업 알스톰의 몰락 원인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쥐스탱 들레핀 economyinsight@hani.co.kr
쥐스탱 들레핀 Justim Delépine <알테르나티브 에코노미크> 기자
 
   
▲ 알스톰과 GE의 노동자들이 프랑스 플라망빌 원자력발전소에서 3세대 원자로(EPR) 설치 작업을 하고 있다. REUTERS
한때 프랑스를 대표하던 세계적 기업 알스톰이 무너지고 있다. 알스톰은 발전소 설비와 고속철도 같은 핵심 전략 부문에서 세계 1위였다. 지금은 그나마 남아 있던 마지막 사업 부문까지 외국자본 손에 넘어갈 처지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일까? 프랑스 상·하원에 설치된 조사위원회는 알스톰의 몰락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하원 알스톰 조사위원회 위원장 올리비에 마를레 의원(공화당)의 설명이다. “정부가 핵심 이익 방어에 실패했다는 건 그만큼 무분별했고, 올바른 예측을 못했으며, 특권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다.” 최근 알스톰 역사를 상징하는 2대 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2014년 에너지사업 부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매각과 고속철도(TGV) 부문 독일 지멘스 매각이 그것이다. 두 차례 매각에서 정부는 전략 부재를 여실히 드러냈다.
 
이들 핵심 분야 매각은 이미 20년 전부터 시작된 일련의 과정에 마침표를 찍는 에필로그에 불과하다. 1960년대 알스톰과 CGE(엔지니어 출신 피에르 아자리가 설립한 전력회사 -편집자)의 합병으로 탄생한 알스톰그룹은 1998년 통신 부문의 알카텔과 에너지·운송 부문의 알스톰으로 분리됐다. 이후 알카텔은 세계 최대 통신업체 자리까지 올랐으나 잇따른 실패로 2015년 핀란드 노키아에 인수됐다. 알스톰도 2006년 조선업 부문 매각을 시작으로 실패로 점철된 역사를 써내려갔다. 이때 팔린 프랑스 최대 아틀랑티크 조선소의 현재 소유주는 이탈리아 최대 함선 제작사 핀칸티에리다(노르웨이 야커야즈와 STX를 거쳐 2017년 STX프랑스를 인수한 핀칸티에리에 소유권이 넘어갔다 -편집자).
 
예고된 종말
물론 역대 알스톰 경영진의 전략적 선택 전부를 정부가 부추겼다는 건 아니다. 실제 정부가 유도한 것도 전혀 아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정부가 보인 태도다. 정부는 각 계기에 직간접적으로 알스톰의 결정에 충분히 영향을 끼칠 만한 위치에 있었다. 알스톰은 에너지·조선·철도 등 주력 사업 특성에 비춰 정부 발주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두 번이나 알스톰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한 적도 있다. 정부가 알스톰 대주주였다는 뜻이다. 알카텔과 분리된 뒤 2004년 극심한 자금 부족으로 파산 직전까지 몰렸을 때 정부는 당시 알스톰 시가총액의 21%에 해당하는 7억2천만유로를 투입했다. 2014~2017년 말까지 정부가 알카텔의 대주주였다. 
 
2004년 알스톰은 하마터면 파산할 뻔했다. 당시 알스톰은 운송·에너지라는 사업 부문 특성과 관련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두 부문에선 고객사가 선금을 주면 생산이 시작된다. 선 생산, 후 결제의 일반적인 사업 방식과는 다르다. 생산에는 본질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다. 주문과 고객의 선금이 줄어도, 이전 주문의 생산에 비용이 계속 지출돼야 한다. 이것이 자금 사정을 악화한다. 유동성 부족은 신규 고객 확보를 어렵게 해 주문과 선금을 줄이는 악순환을 낳는다. 2003~2004년 알스톰은 바로 이 악순환에 빠졌고,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알스톰을 살렸다.
 
알스톰 에너지 부문 매각은 오랫동안 경영진의 배신 행위로 여겨졌다. 알스톰 경영진이 매각을 기정사실화하는 바람에 재정경제부가 뒤늦게 상황을 알게 돼 손쓸 수 없었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하원 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전혀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에너지 부문 매각을 알스톰 경영진이 아니라 정부, 좀더 정확히는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그는 바로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이다. 심지어 마크롱은 당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직속 상사인 피에르르네 르마 비서실장에게도 아무런 사전 보고 없이 매각을 지휘했다고 한다.
 
   
▲ 2017년 9월 알스톰과 지멘스의 최고경영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양쪽 철도사업 부문 합병을 발표했다. REUTERS
지키지 않은 약속
그나마 실제 매각 협상에서 경제부 장관이던 아르노 몽부르가 GE로부터 얼마간의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정부는 알스톰 지분 20%를 보유하게 됐다. 알스톰 최대주주인 통신업체 부이그로부터 알스톰 주식을 빌리고, 이들 주식의 콜옵션(정해진 가격으로 미래 특정 시점에 주식을 매입할 권리 -편집자)을 확보했다. 다음으로 GE와 알스톰에 출자해 기업 3곳을 신설했고, GE는 올해 말까지 프랑스에 일자리 1천 개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부-GE 합의문 유효기간이 다가오지만 제대로 지켜진 약속은 하나도 없다. 부이그는 2017년 말 알스톰 주식을 회수했고, 정부는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 알스톰은 2014년 합병으로 탄생한 3개 공동출자회사에서 2018년 가을부터 철수하기로 2017년 5월 GE와 합의했다. 일자리 1천 개 창출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GE의 알스톰 에너지 부문 인수 뒤 생긴 일자리는 2018년 4월 기준 323개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고용 상황은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GE는 20% 인원 감축을 내걸고 대대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유럽에서만 일자리 4500개가 사라질 예정이다. 지금 프랑스가 다른 유럽 국가보다 인원 감축 칼바람을 잘 피하는 것은 일정 부분 2014년 고용 창출에 합의한 덕분이기도 하다. 이 합의는 2018년 말까지만 유효하다.
 
몇몇 대기업이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정부가 강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해선 안 된다는 게 하원의원들 생각이다. 그들은 합의 만료를 특정 날짜로 못박기보다 합의 사항이 시간을 두고 차례로 이행되도록 협상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특히 약속을 어긴 기업에 징벌적 벌금을 부과하도록 요구한다. 정부도 이런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8년 6월 초 GE가 일자리 창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미창출 일자리 1개당 5만유로(약 65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멘스의 ‘무혈입성’
에너지 부문 매각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2018년 말 마무리될 예정인 알스톰과 지멘스의 철도사업 부문 매각 협상에도 우려가 크다. 지멘스의 알스톰 인수로 ‘철도 부문 에어버스(미국 보잉사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출자한 항공기 제작사 -편집자)’가 탄생할 것이라며 매각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지멘스와 알스톰의 철도사업 부문 합병은 에어버스 같은 정치·산업적 협력 프로젝트와는 거리가 멀다.
 
새 기업은 앞으로 프랑스에 본사를 두고, 프랑스인인 앙리 푸파르라파르주 현 알스톰 회장이 계속 경영을 맡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멘스가 50% 지분만으로 이사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그 지분이 계속 늘어나리라는 점도 사실이다. 사회당 상원의원 마시알 부르켕은 “지멘스는 단돈 1유로도 안 들이고 알스톰에 무혈입성한 셈”이라며 “알스톰은 지멘스에 엄청난 선물을 안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협상은 매각이 아니다. 지멘스가 알스톰을 인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쪽의 철도사업 부문 합병으로 탄생할 새 기업의 지배권이 지멘스에 넘어가는 것이다.
 
노동자총연맹(CGT) 알스톰노조 대표 보리스 아모로는 “지멘스가 땡전 한 푼 안 들이고 회사의 모든 걸 관리한다”며 한탄했다. 알스톰의 특허, 현금 자산, 주문 내용 등을 모두 지멘스가 통제한다는 것이다. 부르켕 의원은 공동 자회사나 경제이익단체(GIE·프랑스 상법상 회사와 조합의 중간 정도 기업 합병 형태, 이윤보다 경제활동 촉진을 위해 합치는 것 -편집자) 설립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좀더 공정하고 프랑스 국익에 부합하는 합병이 불가능했던 건 아니라고 말한다. 
 
프랑스 고용 위협
이제는 합병 뒤 알스톰의 프랑스 국내 13개 지사가 유지되고 8500명에 이르는 직원 일자리가 보장될지가 관건이다. 알스톰과 지멘스는 합병 뒤에도 인원을 감축하지 않겠다고 프랑스 정부에 약속했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적어도 2023년까지 양국에서 합병으로 인한 부당 해고나 공장 폐쇄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알스톰-지멘스와 프랑스 정부의 구체적 합의 내용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노조도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부르켕 의원은 “해당 문서를 확인해보니 진정한 보장과 약속 불이행에 대한 처벌 규정이 빠져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인원 감축 방법이 ‘부당 해고’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직원의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거나, 2017년 도입된 노동법 시행령에 따라 단체협약 중지로 얼마든지 인원을 줄일 수도 있다. 
 
두 기업과 프랑스 정부의 합의는 앞으로 4~5년까지 유효할 뿐이다. 어차피 알스톰의 수주 현황과 그에 따른 촘촘한 작업 일정을 고려하면 5년 안에 공장을 폐쇄하거나 인원을 줄일 일은 없을 것이다. 결국 2022년 이후를 우려하는 것이다. 민주노동연맹(CFDT) 알스톰노조 대표 파트리크 드카라는 “지멘스가 독일 금속노조와 독일 내 고용 유지에 대한 협약을 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노조는 알스톰이나 지멘스 경영진과 비슷한 협약을 맺은 게 없어 일자리가 독일에선 유지되고 프랑스에선 사라지는 상황을 우려한다.
 
알스톰-지멘스 철도사업 부문 합병의 1차 충격은 두 그룹 공급업체에 더 직접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합병기업이 공급처를 통일하려 한다면 알스톰의 4500개 하청업체와 직원 2만7천 명의 운명은 알 수 없다. 하청업체 부품이 지멘스가 결정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면 결국 지멘스 하청업체에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와 알스톰-지멘스의 합의가 목표도 불투명하고 무게중심도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프랑스의 4대 노조는 어떤 산업 전략도 없는, 순전히 정치적 금융 프로젝트에 불과하다며 반대한다. 부르켕 의원은 “유럽 차원의 철도회사가 탄생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적어도 지금 방식의 합병은 몸집 불리기에 지나지 않고 오직 자본에만 유리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승자는 부이그?
최근 반부패시민단체 앙티코르(Anticor)는 프랑스 정부가 2017년 말 부이그에 알스톰 주식을 돌려줄 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은 것을 비난하며 정부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콜옵션 행사 포기로 정부가 3억5천만유로(약 4616억9천만원)의 이익을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정부는 손해 본 반면 알스톰 지분 28%를 보유한 최대주주 부이그는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부이그는 지멘스에 지분을 넘기는 대가로 무려 5억유로에 이르는 특별 배당금과 프리미엄을 얻을 것이다.
 
부이그는 지금까지 알스톰이 사업 부문을 매각할 때마다 막대한 이득을 누려왔다. GE에 에너지사업 부문을 매각한 뒤 9억달러(약 1조163억7천만원)를 챙긴 바 있다. 부이그는 수년 전부터 알스톰 지분 매각 의사를 공공연히 밝힌 터라 알스톰과 지멘스의 철도사업 부문 합병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유리한 가격에 보유 주식을 매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합병 발표 이후 알스톰 주가는 30%나 올랐다. 정부는 무시든 방조든, 장기 산업 전략보다는 알스톰 최대주주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2018년 8월호 종이잡지 79쪽에 실렸습니다.
 
ⓒ Alternatives Economiques 2018년 7월호(제381호)
Alstom, ou les errances de l'Etat actionnaire
번역 박현준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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