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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무역전쟁, 빛바랜 세계화
[Finance] 미국발 ‘관세폭탄’의 여파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윤석천 maporiver@gmail.com
윤석천 경제평론가
 
   
▲ 2017년 11월 중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인민대회당에서 연설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2천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혀 무역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REUTERS
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포문을 열었다. 화력은 중국에 집중하고 있다. 설마 했지만, 세계는 무역전쟁 한가운데 서게 됐다. 분석이 한창이다. 누가 더 손해를 볼지, 파급효과는 얼마나 될지. 1930년대 대공황에 비춰 세계경제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누구 말이 맞고 어떤 분석이 정확한지 현재 상황에선 섣불리 단언할 수 없다. 무역전쟁의 전개 양상은 멈춤과 진행의 문제가 아니다. 가능한 조합은 수없이 많다. 멈추는 듯하다 계속 진행하거나, 진행되다 어느 순간 속도를 늦출 수도 있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그 영향을 누구도 정확히 추산할 수 없다.
 
“누가 옳은가?”라는 질문 역시 어리석다. 무역전쟁 혹은 갈등은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단지 시대가 원했을 뿐이다. 도널드 트럼프 등장이 필연이었듯, 보호무역주의도 마찬가지다. 세계화 필요성이 줄어드는 현실을 반영한 것뿐이다. 너 없이도 충분히 생산할 수 있는, 또는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반영했다.
 
1930년대와 2018년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흔히 1930년대의 경험을 빌려와 오늘을 설명하려 한다. 미국은 1930년 6월 자국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스무트-홀리(Smoot-Hawley)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1929년 10월24일 뉴욕증시 대폭락에서 시작한 불황은 결국 국경을 닫게 했다. 법의 뼈대는 2만여 수입 공산품에 평균 59%, 최고 400%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것이었다. 이런 미국의 조처에 자극받은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수입관세를 높였다. 이 법으로 전세계에 보호무역주의 연쇄효과가 일어났고, 1929~32년 국제무역은 65%나 줄었다.
 
얼핏 현재 국면과 유사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우선, 현재 미국의 관세 부과는 무차별적이지 않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는 철강과 알루미늄 등 일부 공산품에만 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물론 앞으로 전선은 얼마든지 확대될 수 있다. 그럼에도 대공황 때처럼 관세법을 통과해 전면적 관세부과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이미 미국 의회는 보호무역 확대에 반대 의사를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힘만으로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한 전면전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경제 상황 역시 1930년대와는 다르다. 당시는 깊은 불황 한가운데 있었고, 지금은 경기회복세가 견고하다. 주식시장도 폭락과는 거리가 멀다. 국경을 전면적으로 닫을 이유와 명분이 없다. 무엇보다 국가 간 상호의존 정도에서 차이가 난다. 미국의 타국 의존이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1930년대 미국에선 제조업과 농업이 주력 산업이었다. 지금은 서비스 부문이 민간소득의 80% 이상을 담당한다. 관세가 서비스 부문에 끼치는 영향은 적다. 농부와 일부 제조업체는 손해를 피할 수 없겠지만, 미국 소비자들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이다. 관세는 세금이어서 소비자가격 인상을 피할 수 없다. 세탁기 가격이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오히려 자국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것이란 애초의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그렇지만 소비재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서 대공황 때처럼 미국 국민이 직격탄을 맞는 것은 아니다.
 
연습 아닌 실전
무역전쟁은 연습이 아니다. 실전 상황이다. 그로 인한 세계경제의 충격은 만만치 않다. 세계무역의 둔화 움직임이 역력하다. 무역전쟁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세계무역량이 2018년 3월 급속히 줄었다. 3월 말,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미국 관세 부과의 영향 때문이다.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는 교역 성장세 둔화 움직임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2012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JP모건 글로벌 구매관리자지수의 신규 수출 항목은 6월 50.5로 떨어졌다. 약 2년 만의 최저치다.
 
이런 데이터는 우리가 심대한 무역갈등 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어떤 이들은 대공황 때와 같은 공멸이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러 정황에 비춰 과장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대중 압박에도 중국의 2018년 1분기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외려 커졌다. 중국의 2018년 상반기 미국 수출은 234조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보다 5.7% 늘어났다. 수입은 91조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4% 늘어나는 데 머물렀다. 물론 이들 수치는 미국의 대중 압박이 본격화하기 이전의 상황을 반영했다. 중국 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부과는 실제 7월부터 시작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하반기까지 2천억달러 상당의 추가 관세 부과도 추진중이다. 따라서 미-중 교역 규모가 얼마나 쪼그라들지는 하반기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 무역전쟁으로 인한 세계경제의 파급효과도 하반기가 돼야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무역전쟁이 과거처럼 세계경제에 메가톤급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스무트-홀리법보다 제한적인 범위에서 관세가 부과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무역전쟁 위기가 점차 약해지리라는 믿음 역시 한몫한다.
 
미국의 관세 부과에 다른 국가들이 보복하더라도 영향은 제한적이다. 오늘날 경제 상황에서 무역전쟁은 미국의 국민총소득을 3년 뒤 약 2% 줄이는 데 불과하리라는 전망이 있다. 1930년대 스무트-홀리법에 따른 미국 국민총소득 감소는 8%였다. 과거보다 거시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적으리라는 견해도 있다. 경제분석 모델에 따르면, 미국의 수입품 가격이 10% 오를 때 물가는 한 차례 최대 0.7% 오를 것이라고 한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입 비중은 15%로 낮은 편이다. 성장세가 둔화되면, 각국 중앙은행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통화정책을 시행해 충격을 줄이려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무역전쟁으로 세계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최소한 대공황이란 역사적 전례보다 나쁘진 않을 것이다.
 
소환되는 보호무역
이번 무역전쟁이 단기간에 그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일부에서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서서히 약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나, 미국의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명확한 목표를 가졌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공격은 단순히 무역 적자를 개선하는 데 있지 않다. 첨단산업 보호로 경제적·군사적 패권을 중국에 뺏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
 
미국의 기대와 달리 이 의도가 먹혀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관세부과는 중국 정부의 산업과 지식재산권 정책을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중국의 ‘기술굴기’는 일류 국가를 향한 꿈이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물러설 리도 없다. 패권 상실은 미국에는 악몽이다. 타협의 여지가 별로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역전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현재 미국의 성장세가 강하다. 관세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다. 보호무역의 부작용을 가릴 수 있기에 전쟁은 ‘지속가능’하다.
 
무역전쟁은 지루한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세계화는 점점 그 힘을 잃을 것이다. 트럼프가 어떤 행동을 하든, 무슨 정책을 시행하든 지난 50년 동안 진행된 세계화는 모멘텀을 잃을 것이다. 광범위한 추세가 자유무역을 밀어내고 보호무역주의를 불러내기 때문이다. 세계화를 촉진한 기술진보가 이제 탈세계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기술혁신으로 지역생산이 점점 활기를 띠고, 글로벌 생산의 필요성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타국의 생산에 의지해야 하는 필요성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다.
 
불평등 심화도 지역화를 부추긴다. 세계화로 유발된 불평등한 이익 배분은 대중의 불만을 낳아 총체적인 자유무역 반대로 이어진다. 급진 극우세력은 이를 이용해 세를 키운다. 이른바 경제적 민족주의가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원동력이다. 세계화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보호무역이란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막연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하나, 왜 보호무역이 되살아났는지에는 입을 닫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전개될지에도 눈감고 있다. 보호무역은 오늘의 세계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가 간 불균형, 사람들 간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그 양상은 깊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보호무역을 가능케 하는 기술이 나날이 진보하고 있다. 보호무역이란 현상이 아니라 그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보호무역 환경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보호무역은 우리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현재 팍스TV <이슈포커스>에 출연하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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