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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정혁준의 비즈니스 글쓰기]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 이미지투데이
“나는 누이들에게 말한다고 가정하면서 버크셔해서웨이 연례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상상하면 아주 쉽다. 내 누이들은 대단히 명석하지만 재무나 회계 분야는 잘 알지 못한다. 쉽게 쓴 내용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문용어가 나오면 어리둥절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이들이 알고 싶어 할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보고서를 쓴다. 내게는 셰익스피어처럼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로지 상대방이 원하는 정보를 주고자 하는 진실한 열망만이 필요할 뿐이다.”
 
‘투자의 달인’이라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가 1998년 펴낸 <쉬운 영어 안내서>(A Plain English Handbook) 서문에 쓴 글이다.
 
그는 비즈니스 글이 어려운 이유를 4가지로 분석했다. 어렵고 복잡한 비즈니스 용어를 첫번째로 꼽았다. 글 쓰는 사람조차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비양심적인 이들이 법률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해하기 어렵게 글을 쓴다고도 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잘난 척하기 위해 전문용어를 쓰거나 복잡한 문장구조를 만든다고 했다.
 
비즈니스 글을 쓸 때마다 되새겨볼 말이다. 핵심은 ‘잘난 척하지 말고 상대방이 원하는 정보를 쉽게 보여주는 글을 써라’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바꾸면, 비즈니스 글쓰기는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다.
 
기획자가 중간간부에게, 기업이 주주에게, 금융사가 고객에게, 시민단체가 회원에게 글을 보낼 때 항상 사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받아보는 글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이런 경우다. ‘사전 사업성 조사 과정이 문서화 단계에 이르렀다.’ 왜 이런 문장을 쓸까? 어렵게 써야 잘 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이런 문장을 쓴다.
 
비즈니스 글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논리적인 글이 기계적인 글을 뜻하지는 않는다. 글의 온기를 살리려면, 내 글을 읽는 사람을 떠올려야 한다.
 
투자설명서나 시장운용보고서에서 낯선 경제용어를 흔히 본다. 증권사 조사 자료나 기업분석 리포트를 볼 때 외계어를 읽는 듯하다.

“신영증권은 에스엠코어에 대해 지난 1월 (주)SK에 피인수되면서 약점으로 지적돼오던 캡티브 마켓 수주를 안정적으로 확보 가능해져 턴어라운드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투자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이 문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확’ 와닿지 않는다. 비즈니스 용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을 읽는 사람 가운데는 비전문가도 있다. 글은 이런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 전문가의 기계적 내용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라는 말이다. 버핏이 그랬다.
 
비즈니스 용어를 안 쓰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해보자. 어려운 비즈니스 용어를 빼는 것이다. 없애면 중언부언하지 않을 수 있다.
 
‘턴어라운드’(Turn around)는 기업이 회생하는 것을 뜻하지만, 주식시장에선 실적이 개선되는 것을 말한다. ‘캡티브 마켓’(Captive Market)은 계열사 내부 시장을 말한다. A카드사가 계열사인 A주유소, A놀이공원에서 여러 혜택을 주는 경우다.

1. 신영증권은 에스엠코어가 지난 1월 (주)SK에 인수돼 캡티브 마켓(계열사 내부 시장) 수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턴어라운드(실적 개선)를 예상했다.
2. 신영증권은 에스엠코어가 지난 1월 (주)SK에 인수돼 계열사 내부 시장수주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실적 개선을 예상했다.
 
고치는 방법은 두 가지다. 1번처럼 어려운 용어를 괄호로 풀어주거나 아예 쉽게 쓰면 된다.
 
비즈니스 용어를 많이 쓰는 이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알고 있는 걸, 내 글을 읽는 사람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전에도 그렇게 썼는데’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즈니스 용어를 많이 써야 전문가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너무 쉽게 쓰면 동료한테 수준이 낮아 보일까 걱정하는 사람이다.
 
걱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다. 전문가의 허세가 아니다. 외계어 같은 말은 독자한테 공감받지 못하지만, 쉽게 정보를 보여주면 사람은 따라온다.
 
비즈니스 용어뿐만 아니라 어려운 한자어 역시 글을 외면하게 한다. 경제를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자어까지 쓰는 건 ‘내 글을 읽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주장을 펴려면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 하지만 문장이 어렵다면 누가 내 글을 읽겠는가. 아래는 한 석좌교수가 소득주도성장을 비판한 칼럼에 나오는 문장이다.
 
독일의 경우 최저임금으로 인한 소득 상승분은 근로시간 축소로 상쇄되기 때문에 소득 증대에 대한 최저임금의 효과는 결국 제로라고 한다.
⇒ 독일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득이 올랐지만 근로시간이 줄어,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증가에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승분’ ‘축소’ ‘상쇄’ 같은 어려운 한자어를 빼버리면 문장이 더 쉽게 다가온다.
 
지위가 올라갈수록 문장이 쉬우면 생각이 단순하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 그 반대다. 쉽고 단순한 문장은 고된 노력과 사고의 결과다. 그러니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라.
 
비즈니스 글을 쓸 때 꼭 기억하라!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먼저다!
 
* <한겨레> 사회부에서 1년 동안 같이 일한 기자이자 소설가인 김훈의 글을 보면서 글쓰기에 절망했다. 내 기사를 읽고 “일제강점기 때 많은 문인이 엄청난 비유로 당시의 시대를 말했던 그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아준 독자를 생각하며 지금도 글을 쓴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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