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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변화에 대응하려면 미시변화를 읽어야 한다
[경제와 책]
[100호] 2018년 08월 01일 (수) 김고명 heygom@gmail.com
김고명 저자
 
<마이크로트렌드X>
마크 펜·메러디스 파인만 지음 |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펴냄 | 2만2천원
 
나는 번역가이면서 주부다. 집에서 일하며 틈틈이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공과금을 내고, 일과가 끝나면 저녁을 차려놓고 바깥양반 퇴근을 기다린다. 아, 오해 마시길. 나는 남자고 바깥양반은 아내다. 식사 뒤 설거지도 내가 얼른 해치워버린다. 대부분의 집안일이 내 선에서 끝난다. 이렇게 경이로운 가사 부담률에 내가 불만이 있느냐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왜냐하면 첫째는 아내가 진심으로 고마워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내가 밖에서 나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오기 때문이다. 나처럼 돈벌이는 아내에게 맡기고 집에서 살림을 챙기는 남자들이 있다. <마이크로트렌드X>에 실린 수십 가지 트렌드 중 당당히 첫 꼭지를 차지한 '이인자 남편’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 없는데 무슨 트렌드가 그래?”라고 의아해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트렌드가 아니라 마이크로트렌드, 즉 초미세트렌드다. 마이크로트렌드는 이제 막 사회의 한 부분에서 시작한 트렌드로, 우리 눈에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돋보기를 대야 비로소 보인다. 하지만 그 작은 트렌드가 모이면 돋보기에 응집된 햇빛처럼 불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2016년 미국 대선 결과다.
 
그 이야기를 하자면 마이크로트렌드를 규명해 책으로 엮은 저자 마크 펜의 약력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펜은 여론조사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1996년 빌 클린턴 캠프에 참여해 이전 정치권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교외 중산층 주부를 일명 '사커맘’으로 규정해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제시함으로써 클린턴 재선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는 힐러리 클린턴의 상원의원 당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3선에도 크게 기여했다. 이 정도면 시대 흐름을 읽는 데 일가견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도 성공만 한 것은 아니어서 2008년 대선에서는 그를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세운 힐러리가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패하는 고배를 마셨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최고전략책임자를 지낸 펜은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이유를 마이크로트렌드에서 찾는다.
 
그는 우선 ‘헛똑똑이 엘리트’의 패착을 지적한다. 미국 엘리트층, 특히 정계와 언론계 엘리트들은 자기의 아성에 갇혀 상식과 동떨어진 ‘먹물 논리’를 메아리처럼 확대재생산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 대척점에서 세계화와 신기술의 발전으로 설자리를 잃은 ‘구경제 유권자’를 대변하며 특유의 극단적 화법으로 그동안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주변부 유권자들, 곧 ‘집콕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불러들였다. 이런 마이크로트렌드가 서로 맞물린 결과로 엘리트 언론의 예측과 정반대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이것은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정치, 언론 엘리트에 대한 반감, 박탈감을 느끼는 집단의 세력화, 그들에 영합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극단적 발언이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우리 독자가 공감할 만한 트렌드가 여럿 실려 있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화장품이 프랑스 화장품을 제치고 선전 중인 현상을 이야기하는 <코리안 뷰티>는 반가운 트렌드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커지면서 결혼을 뒷전으로 하는 <비혼족>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개나 고양이와 함께 사는 <독신반려인>이 늘어나는 트렌드는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어떤 문화나 작품, 인물에 심취해 큰돈을 써가며 취미 생활을 하는 <돈 많은 덕후> 역시 이제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노년에 다시 연애 시장에 진출해 인기를 구가하는 <은발의 독신남>,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기 위해 풀타임을 마다하고 파트타임으로 <한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등장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만한 현상이다. 아울러 통번역 기술의 발달로 <실직하는 어학교사>가 늘어나는 것은 나 같은 번역가의 생계를 위협하는 미래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총 50가지 마이크로트렌드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를 그냥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큰 흐름을 본다. 10년 전에 전작 마이크로트렌드를 집필했을 때 그의 시각은 꽤 낙관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마이크로트렌드X에서 저자는 다분히 우려 섞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는 현재의 마이크로트렌드들로 인해 사람들이 파편화되고 민주주의가 파괴될 것을 염려한다. 인터넷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다양한 사람과 교류할 수 있게 되었으나, 오히려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와 사람만 취사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더욱이 인공지능의 발달로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을 기계가 알아서 권유해주니 그렇게 끼리끼리 모이는 파편화 현상이 날로 더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그렇게 파편화된 집단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극단적 발언을 일삼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정치 행태는 유권자를 양극화해서 민주주의가 국민을 분열시키는 체제로 작동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거시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미시적인 변화를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말한 <이인자 남편> 트렌드와 관련해 저자는 아직 그런 변화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한국 사회를 콕 집어 이대로 가면 한국인들은 제대로 된 대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불편한 진실에 눈을 뜨게 될 우려가 있다라고 경고한다. 이것이 비단 하나의 트렌드에만 국한된 경고는 아닐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극렬 유비무환족>처럼 파국을 기정사실화하고 현실을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까진 없을 것이고, 또 모든 현상을 거창하게 분석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현재 물밑에서 흐르고 있는 미세한 변화의 기류를 감지한다면 개인적으로, 사업적으로, 사회적으로 변화에 대비하고 유망한 기회를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사이트 책꽂이
 
   
 
블랙 에지
실라 코하카 지음 | 윤태경 옮김 | 캐피털북스 펴냄 | 2만3천원
월가 헤지펀드 트레이더를 추적하는 미국 연방검찰과 FBI의 수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2017 올해의 경제도서 6권’에 들어갔다. 스티븐 코언은 1992년 SAC캐피털을 설립해 주식 트레이딩으로 15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 제국을 세웠다. 코언이 합법과 불법의 경계가 모호한 회색지대에서 자행하는 월가의 비리를 조명한다.
 
 
 
 
   
 
한번은 경제 공부
로버트 하일브로너·레스터 서로 지음 | 조윤수 옮김 | 부키 펴냄 | 1만6천원
1천만 부 이상 팔린 경제학 책을 쓴 로버트 하일브로너와 ‘미래를 이끌어갈 200인의 지도자’로 꼽힌 레스터 서로가 쓴 쉽지만 깊이 있는 경제 공부 입문서다. 보통의 경제학 입문서와 달리 자본주의 역사에서 시작해 기업·가계·정부를 소개하며 경제의 큰 그림을 먼저 그린다. 그 뒤 시장이 어떤 식으로 자원을 배분하는지 설명하고 다양한 경제 현안을 다룬다.
 
 
 
 
   
 
2025 한반도 신 경제지도
소현철 지음 | 한스미디어 펴냄 | 1만6800원
남북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의 6·12 회담으로 한반도에 새 경제지도가 그려지고 있다. 책은 장막에 가린 북한 경제와 잠재력, 한눈에 보는 남북경제협력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개성공단이 첨단산업단지로 화려하게 변신하고, 원산-금강산국제관광단지 등 관광사업 확대도 전망한다. 마지막으로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역할과 기업·개인의 전략을 제시했다.
 
 
 
 
   
 
넥스트 머니
고란·이용재 지음 | 다산북스 펴냄 | 2만2천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을 균형 있게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저자들은 기존 금융 시스템에 질문을 던지며, 법정화폐의 한계를 지적하고, 새롭게 등장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의 가능성을 말한다. 더 나아가 전세계 주요 기업과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해 기존 화폐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한 사례를 전한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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