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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늘을 나는 꽃’이 아닙니다”
[국내특집] 드레스코드에 갇힌 그들- ① 승무원들의 카톡 채팅
[99호] 2018년 07월 01일 (일) 김미영 kimmy@hani.co.kr

대한항공 승무원 5명 “‘라면 상무’ ‘땅콩 회황’ 논란도 여성성 강조하는 복장이 한 원인”

‘드레스코드’(Dress Cord)의 사전적 의미는 ‘모임 목적, 시간, 만나는 사람에 따라 갖추어야 할 옷차림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에티켓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드레스코드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승무원이 그렇다. 몸매를 강조하는 타이트한 치마 정장을 입은 용모 단정한 스튜어디스에게 받는 서비스를 미덕으로 여긴다.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업무 능력보다는 메이크업·헤어스타일·네일관리로 예쁘고 날씬하며 고상한 ‘하늘 위 꽃’이 될 것을 강요한다. 이런 규정에 갇힌 사람, 이를 깬 사람이 있다. _편집자
 
김미영 부편집장
 
   
 
승무원 업무는 남녀를 불문하고 동일하다. 승객 안전, 비상시 탈출, 화재 진압, 응급처치, 기내 고객 응대 등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돕는 전문직종인 승무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외국어능력, 고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스튜어디스는 ‘생산적 일을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스튜어드를 돕는 인형’으로 폄훼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시대와 사회가 변했지만, 여성 승무원을 보는 시각은 제자리다. ‘승객 보호 업무=스튜어드, 승객 편의 제공=스튜어디스’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이런 인식은 이들의 드레스코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이와 관련해 연차와 성별이 다른 대한항공 객실승무원 5명을 인터뷰했다. 개인 신상 노출을 원치 않는 이들을 위해 가명을 썼다. 인터뷰 내용도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나칠 정도로 여성성을 강조당하고, 지속적으로 외모 관리에 압박을 받는다. 여성 승무원의 용모나 복장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를 전문직업인으로 보지 않고 상품화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복장 규정이 엄격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2018년 6월14일 카카오톡 채팅창(가상)에서 만난 승무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이들 얘기를 들어보면, 대한항공 유니폼은 타이트한데다 밝은색 정장 차림이어서 활동성이 떨어지고 비상상황에 적극 대처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같은 여성이 보기에도 지나치게 선정적이다.
 
“매년 비상탈출에 대비해 안전훈련을 받을 때는 점프수트 차림의 훈련복을 입어. 그런데 정작 비상탈출 지휘나 기내 업무를 방해하는 난동 승객 제압시에는 이런 유니폼을 입을 수 없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박소라·40대)
 
“맞아, 팔만 올려도 블라우스가 밖으로 삐져나와. 처진 뱃살과 엉덩이살을 가리기 위해 꼭 끼는 보디셰이퍼나 코르셋을 입어야 해, 여간 불편한 게 아냐. 주변에 소화불량, 역류성 식도염 환자가 많아. 딱 달라붙는 유니폼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지.”(정은미·30대)
 
“하지정맥류, 근육통, 관절염은 어떻고.”(김가은·40대)
 
‘ㅠㅠ’ ‘ㅜ.ㅜ’ ‘-_-’ 등 슬픔을 상징하는 이모티콘이 연이어 올라왔다. 채팅방의 우울한 침묵을 깬 건 2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승무원’ 서주현(40대)씨다. “아시아나항공과 달리 모자 규정이 없고, 2006년 흰색 유니폼으로 바꾸면서 바지도 제작했어. 입사 때부터 치마와 바지 유니폼을 기본으로 받아 눈치를 보지 않는 건 그나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아?”
 
   
▲ 진에어 승무원들은 다른 항공사와 달리 스키니진을 입는다. 바지를 입긴 하나 몸에 딱 달라붙어 혈액순환이 안 되고 소화불량이나 방광염, 질염으로 고통받는다고 호소한다. 연합뉴스
10여 년차 승무원 정은미씨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복장 외의 청결, 머리 색상과 스타일, 액세서리, 화장과 매니큐어 등의 규정은 아시아나항공보다 우리가 더 엄격한 편이야. 매달 ‘이미지 메이킹 중점 점검 항목’이 친절하게(?) 배포되는 것만 봐도 그렇잖아.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는 없어. 힘이 없으니, 따를 수밖에.”
 
최근 몇 달 동안 승무원에게 배포된 ‘이미지 메이킹’ 규정을 봤다. 허용하는 것과 금지되는 것(○, ×)이 사진 예시와 함께 설명돼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매달 제시되는 규정은 유니폼 사이즈와 청결, 재킷·스카프·넥타이&명찰·윙(스카프), 블라우스·셔츠, 메이크업, 액세서리 등 다양하다. “시계는 반드시 착용(단순한 디자인의 정장용·화려한 디자인은 금함), 귀고리와 반지는 각각 폭 5mm, 10mm 이내로 1개만 허용(유색 보석류·흔들리는 디자인 금지), 입술은 풀립(투톤 금지)·눈은 짙은 언더라인과 과도한 속눈썹 연장 금지(펄 입자 큰 아이섀도 금지).”
 
최고참 격인 서주현씨가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우리는 염색과 파마 안 되잖아. 풀어 늘어뜨린 머리 안 되고. 앞머리 흘러내려도 안 되고. 앞머리 내리려면 눈썹까지 내려오지 않아야 해. 그나마 우리는 아시아나처럼 처음부터 모자를 안 쓴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봐야 하겠지?”
 
20여 년차 승무원 김가은씨가 맞장구를 쳤다. “화장, 헤어, 네일, 복장 등의 규정은 예나 지금이나 엄격하잖아. 항상 단정한 머리를 유지해야 하니까 염색이나 탈색도 안 되고. 모든 종류의 네일아트를 금지하고, 립스틱과 매니큐어는 색상도 정해졌잖아. 팔찌도 불가하고. ‘이미지 메이킹 리더’라고 팀 내에 지정된 1명이 팀원 복장 규정을 관리하는 제도도 활발히 시행 중이고. 비행근무 때마다 평가도 받아야 해. 머리카락을 꽉 묶은 상태에서 헤어스프레이로 고정하는 것도 문제야. 탈모, 두피 트러블을 유발하니까.”
 
“블라우스 얘기를 안 할 수 없어. 목 위로 단추가 세 단이 올라가잖아. 넥타이만으로 체감온도가 2℃ 올라가는데 오죽하겠어? 6~9월에 ‘노 타이’ 근무를 실시한다고 하지만, 남자 임직원만 수혜자야. 우리에겐 단추 자체를 풀 권리도 없어.”(박소라)
 
“블라우스 목깃이 높아 목통증과 목디스크,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나는 어떻겠어? 그나마 최근에 복장 규정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일부 저가항공사에서 복장 규정이 완화되는 것만 해도 고무적이지. 그렇지만 우리 가족인 진에어는 예외인 것 같아. 몸에 딱 붙는 스키니진을 못 벗어나니까. 혈액순환도 안 되고 소화불량이나 방광염, 질염으로 고통받는다고 하던데. 솔직히 스키니진은 승객들도 비행기 탈 때 피하는 옷차림이라더라.”(김가은)
 
“남자 승무원 중에서 탈모 증상을 겪는 이들이 있어. 가발 착용하라고 스트레스를 주거든.”(최영일·남·30대)
 
   
▲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들은 “유니폼이 몸에 딱 달라붙고 밝은색 정장 차림이어서 활동성이 떨어져 비상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연합뉴스
최근 불거진 조현아(대한항공)·조현민(진에어) 등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항공사 승무원 복장 규정 완화의 기폭제가 되고 있다. 제주항공은 승무원 안경 착용을 허용하기로 했다. 손톱도 승객이 불편함을 느끼거나 스쳤을 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과한 큐빅이나 스톤아트를 제외한 모든 색상의 네일아트가 가능하도록 했다. 티웨이항공은 승무원 헤어스타일 규정을 폐지했다. 염색과 파마는 물론 반드시 머리를 묶거나 (옷깃에 안 닿는) 짧은 단발머리를 유지할 필요도 없어졌다. 여성 승무원의 복장도 치마 정장 외에 원피스나 바지를 입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 뭐 해? 대한항공 여성 승무원은 안경을 쓸 수 없으니 ‘그림의 떡’인걸. 콘택트렌즈를 껴야 하는 나로서는 야간비행 때 눈이 뻑뻑하고 건조해져서 참 힘들어. 인공눈물을 아무리 넣어도 그때뿐이야. 비행기 안에서는 2~3시간만 지나도 습도가 6%대로 떨어진다더라. 그래서 그런가? 눈이 충혈되는 건 기본이고, 안구건조증에다 자주 눈에 손이 가니 염증도 자주 생겨. 승객들도 기내에서는 안경을 선호하잖아.”(정은미)
 
“안경은 안전과 크게 관련 있는 것도 아닌데, 너무해. 남자 승무원은 안경이 허용되잖아? 렌즈를 낀 상태에서 면세품 판매를 하다보면, 뿌옇게 보일 때가 많아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어.”(서주현)
 
“나는 굽 있는 신발이 불편해. 발볼이 넓어서 그런가? 미국이나 유럽 노선을 타면 15~16시간 구두를 신어야 하잖아. 솔직히 도착지에 다다를 때면 발이 너무 아파 서 있기조차 힘들 때가 많아. 최근에는 무지외반증 조짐이 보여 불안하기도 하고.”(박소라)
 
“얼마 전 동료가 무지외반증이 심해 수술을 받았어. 한쪽은 잘됐는데 다른 쪽이 안 좋아 쉬어야 할 정도로 부작용을 호소해 마음이 아파. 근데 산업재해 처리도 안 되고, 휴직을 하자니 생계가 걸리고. 여하튼 안됐어. 굳은살이나 티눈, 족저근막염을 호소하는 이도 알게 모르게 꽤 되는 것 같더라고.”(서주현)
 
“대한항공도 전반적으로 복장 규정을 손본다고 들었어. 어쨌든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여성 동료들 고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어. 회사 쪽에서도 변화를 고려한다니, 고무적이야. 머리모양도 완화될 거라는 얘기가 들려. 그러나 지금도, 그리고 먼 미래에도 운동화를 신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최영일)
 
이들은 여성 승무원을 ‘여성’이 아니라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봐주길 희망했다. 이들은 몇 해 전 불거졌던 ‘라면 상무’ 사건이나 ‘땅콩 회항’ 논란도 결국 여성 승무원을 ‘전문직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 승무원을 향한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도 ‘용모 단정’을 강요하는 드레스코드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승무원 복장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최영일씨가 가장 먼저 대안을 제시했다. “복장 규정 완화보다는 근무할 때 불편한 유니폼 개선에 초첨을 맞추는 게 맞지 않을까. 남성도 정장 차림의 흰색 유니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거든. 항염·항균·발수가공 등의 처리도 되어야지. 개인적으로 유니폼 색상이 좀더 화사하게 바뀌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인체공학적 설계가 선행되어야 하겠지.”
 
“맞아, 우리 유니폼 자체가 일할 때 적합한 옷이 아냐. 오염과 화재에도 취약해. 무엇보다 사계절 내내 입잖아. 신축성은 물론이고 통기성과 흡수성도 좋아질 필요가 있어.”(서주현)
 
“다른 용모 단정 규정 같은 건 고사하고, 지금은 유니폼만이라도 ‘편안’했으면 좋겠어.”(박소라)
 
“용모 단정과 관련해서도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나아져야 한다고 봐. 가능하겠지?”(정은미)
 
“하하하, 물론이지.”(일동)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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