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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대신 바지 입고 신세계를 경험했다
[국내특집] 드레스코드에 갇힌 그들- ② 관행을 깬 주인공 ‘권수정’
[99호] 2018년 07월 01일 (일) 김미영 kimmy@hani.co.kr

‘24년차 여성 승무원’ 권수정 의원 “예쁘고 날씬하고 용모 단정해야 한다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승무원은 선망의 직업 중 하나다. 전세계를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고, 승객과 교류해 식견도 넓힐 수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말 못할 ‘고충’이 있다. 고된 업무보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여성 승무원’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용모 단정을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여성성이 부각되는 유니폼을 입게 하는 것이다.
 
김미영 부편집장
 
   
▲ 아시아나항공 24년차 현직 승무원으로 ‘2018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의원에 당선된 권수정 의원은 “여성 승무원의 드레스코드가 바뀌려면 무조건 예쁘고 날씬하고 용모 단정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시각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화 기자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었다면?’ 2013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사고가 났다. 아시아나여객기(OZ214편)가 착륙하려다 방파제와 충돌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대형 참사가 우려됐지만, 승객과 승무원 307명 가운데 중국인 3명이 숨지고 187명이 다쳐 다른 비행기 사고보다 피해 규모는 크지 않았다. 그 이면엔 기장과 승무원들의 침착한 수습과 대응이 있었다. 여성 승무원들은 살신성인 정신으로 승객들을 구했다.
 
당시 사진 속 여성 승무원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치마와 구두차림이었다. 그럼에도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자신보다 몸집이 큰 남자 승객들을 구해 화제가 됐다. 다른 한편으로 씁쓸한 안타까움을 남겼다. “활동이 자유로운 바지와 운동화 차림이었다면 더 많은 승객을 구했을지 모른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최근 논란이 된 ‘승무원 복장 규정’에 경종을 울린 변곡점이 됐다. 여성 승무원은 ‘하늘을 나는 꽃’으로, 용모 단정이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져왔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승무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에서도 여성에게 치마 착용을 강요하는 전근대적인 문화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2013년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해 “바지 유니폼을 지급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아냈다. 그 주인공이 당시 노조위원장이던 권수정(44·정의당)씨다. 2018년 6·13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 최초로 서울시의원에 당선됐고, 현직 24년차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다. 그는 “승객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바지를 입어야 했기에 2년 동안 회사와 싸웠다”며 “6년이 지난 지금도 바지를 입는 스튜어디스가 손에 꼽힐 정도로 복장 규정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6월15일 서울 여의도 정의당 당사에서 그를 만났다.
 
아시아나항공의 승무원 복장 규정은 어떻게 되나.
과거엔 복장 지침이 세부적이었다. 귀고리 길이와 디자인, 반지 등 착용 가능한 보석 개수, 립스틱과 매니큐어 색상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때는 새빨간 립스팁과 매니큐어만 허용됐다는 거다. ‘크리스찬디오르 ○○번’ 이런 식으로까지 규정했다. 지금은 빨간색 절대 안 된다. 단정한 느낌을 주는 핑크·베이지 톤을 권장한다.
 
2013년 바지 착용을 허용해달라고 싸운 뒤로, 복장 규정 문구는 상당 부분 개선됐다. (원하는 이들에게) 바지도 지급하고, 보석이나 머리 모양 규정도 ‘안전을 해치지 않는 선’으로 완화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용모와 복장을 점검하는 ‘어피런스’ 승무원이 회사에 상주한다. 비행할 때마다 체크하고 점수화하는 관행도 여전하다. ‘회사가 허용하지 않는 수준’이면 벌점을 받는다. 다시 말해, 현장에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최근 아시아나는 모자 착용을 없애는 등 복장이 상당 부분 자율화됐다고 생각해 다행이다 싶었다.
완화됐다고 하나, ‘사문화’된 규정이다. 3천 명 넘는 여성 승무원 중에 바지를 입는 승무원이 10명도 안 된다. 일상적으로 자유복을 허용한 회사의 여성 복장은 어떤가. 항상 치마만 입겠는가? 현재 사내에서는 ‘노조 소속 스튜어디스만 바지를 입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규정이나 탄압이 없지만, ‘절대로 입으면 안 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 작동해 바지를 입고 싶어도 입을 수 없는 구조다. ‘바지를 신청하면 누구나 입을 수 있다’고 하나, 처음 입사한 여성 승무원에게 회사는 치마 유니폼만 지급한다. “바지가 필요하면 신청하라”는 팁도 알려주지 않는다. 연차가 낮은 이들 중에 회사나 고참 눈치 안 보고 바지 유니폼을 신청할 강단이 있는 승무원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처음부터 바지 유니폼을 지급하면 모를까.
 
최근까지 바지 유니폼을 입고 근무했나.
당연하다. 나는 바지를 입고 새 세상이 열렸다. 컴파트먼트에 승객 캐리어를 올릴 때, 카트를 끌거나 (식판을 넣거나 뺄 때) 앉았다 일어나는데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스타킹을 안 신으니, 무좀이나 여성질환 걱정을 안 해서 좋았다. 더 의욕적으로 일하게 되더라. 복장 규정과 다른 회사의 분위기(바지를 입어서는 안 되는)를 제대로 파악못한 후배들도 있었겠다.
 
물론이다. 비행 때마다 바지 입고 싶다고 하는 후배가 꽤 된다. 입으라고 하면 “제가 어떻게 입어요”라며 한숨을 쉰다. 바지 유니폼을 신청해 받아놓고 장롱에 처박아두고 입지 못하는 후배도 여럿이다. 과감하게 자신의 뜻대로 입었다가 회사에 반하는 아이로 찍혀버리니까.
 
노조위원장에 휴직 상태에서 진보정당 후보로 시의원에 출마했다. 회사에 단단히 찍히지 않았나.
글쎄, 표면적으로 크게 불이익을 당한 것은 없다. 회사 규정으로 공직 취임 휴직이 허용된다. 그럼에도 굳이 꼽자면 1994년 입사했으니, 올해로 24년차다. 근데 지금도 직급이 대리다. 입사하고 몇 년 있다가 승진한 뒤 지금까지 진급을 못했다. 내 연차면 차장급, 적어도 과장급은 되어야 한다.
 
권 의원의 머리모양은 커트다. 여성 승무원 중 짧은 머리는 드물다. 더구나 아시아나항공은 2018년 초 모자 착용 규정을 없애기 전까지 긴 머리를 권장했다. 모자를 썼을 때, 숏컷이나 짧은 단발은 ‘예쁜 그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짧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어도 모자를 고정해야 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모자 때문에 두피 질환에 시달리거나, 지독한 탈모로 가발을 쓰는 이들도 있었다. 권 의원은 “모자 규정을 없애면서 옷깃에 닿지 않는 숏컷이나 짧은 단발이 허용됐다”고 설명했다.
 
   
▲ 2013년 7월6일 아시아나항공 승무원들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서 214편이 추락한 뒤 구조된 승객들과 함께 활주로 근처에 서 있다. 이 사고는 여성 승무원 복장의 비효율성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REUTERS
스튜어디스 용모 규정의 가장 큰 문제점이 뭐라고 보나.
자율성이 없다는 거다. 굳이 규정을 엄격하게 하지 않아도 승무원 스스로 자신의 업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충분히 알고 있다. 과연 ‘업무에 지장을 주는’ 복장 착용을 할 이가 몇이나 되겠나. 본연의 업무에 불편하거나, 승객에게 혐오감이나 불쾌감을 줄 정도가 아니라면 ‘복장·용모 규정을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율성이 없어서, 나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없어서 불편함을 느끼는 스튜어디스가 꽤 된다. 우리 사회만 해도 개성과 다양성이 중시되는 분위기 아닌가. 승무원들의 다양성을 억누르는 건 시대 흐름에도 역행하는 거다.
 
최근에 복장 자체보다 색조화장, 매니큐어, 머리 색상, 액세서리 디자인 등을 규제하는 쪽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다. 내가 머리카락을 노랗게 염색했다면 벌써 불려갔을 것이다. 여성 승무원은 백발(그것이 새치라고 해도)도 허용이 안 된다. 관리 안 한다고 당장 찍힌다. 피어싱도 안 되고, 귀를 여러 개 뚫어 화려한 귀고리를 착용해도 안 된다. 매니큐어는 투명색이라도, 무조건 발라야 한다. 내 경우 ‘매니큐어 안 바를 권리’를 주장했다. 손톱이 워낙 약한데다, 매니큐어가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나. 요즘은 편의상 잘 지워지지 않는 젤네일을 많이 해 손톱이 더 상한다. 그런데도 매니큐어를 ‘거부할’ 자유가 없다. 그게 말이 되나. 본인이 좋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것이 매니큐어 아닌가. ‘여성 승무원 손톱엔 매니큐어가 발라져 있어야 한다’는 편견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게 문제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예쁘게 관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는지.
여성 승무원은 나이와 상관없이 예쁘고 젊고 인상이 좋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겉으로 연령이나 외모로 차별하지 않지만, 스스로 ‘잘 관리해서 예쁘게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시술이나 성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형성돼 있다.
 
남자 승무원의 복장 규정은 여성 승무원들과 비교해서 어떤 차이가 있나.
덜 엄격하다. 새치도, 안경 착용도 허용된다. 여성 승무원은 안경을 절대 쓸 수 없다. 눈병이나 눈에 염증이 났을 때만 가능하다. 업무적으로는 남녀 모두 전문성을 갖고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노동자인데, 성별에 따라 복장 규정이 다른 거다. 불공평할 뿐 아니라 명백한 차별이다.

승무원 복장은 몸에 착 달라붙는다. 업무 효율성은커녕 오히려 방해 요소가 될 텐데.
늘어나지 않아 불편할뿐더러 유니폼의 재질도 흡수성이나 통기성이 뛰어나지 않다. 캐리어를 선반에 올릴 때 셔츠 단추가 떨어지는 것이 다반사다. 셔츠가 치마 밖으로 나올까 항상 신경 써야 한다. 치마를 입으면 스타킹을 꼭 신어야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남자 승무원은 유니폼을 맞출 때 신체 치수를 잰다. 반면 여성 승무원은 55·66 사이즈로 제작된 기성복 중에서 맞는 것을 골라 입는다. 사람마다 팔 길이가 다르고, 엉덩이 크기가 다르다. 맞춤형 옷을 기본적으로 입을 수 없는 구조다. 나는 키가 큰 편이라 항상 팔이 짧은 재킷과 길이가 짧은 치마를 입어야 했다.
 
여성 승무원은 복장 때문에 여러 질병에 노출될 텐데.
업무적으로 무거운 짐을 들고 옮기거나,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서는 일을 하기 때문에 관절염 등 근골격계 질환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복장과 관련해서는 스타킹 착용으로 무좀과 피부염, 구두 때문에 무지외반증과 족저근막염에 걸릴 확률이 높다. 안경을 쓸 수 없기에 안구건조증, 결막염 등에도 자주 노출된다.
 
앞으로 여성 승무원의 복장 규정이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여성 승무원은 비행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승객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위급 상황에서 비상탈출을 돕고, 승객에게 심폐소생술도 해야 한다. 기내식 등 서비스도 하기 때문에 유니폼 자체가 활동에 방해되지 않는 스판덱스 소재여야 하며, 오염에도 강해야 한다. 흡수성과 통기성도 뛰어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지 않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머리모양과 색상, 색조화장, 매니큐어, 액세서리 규정은 과감하게 완화할 필요가 있다. 안전에 방해되지 않는 선이라면 승무원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최대한 허용해도 승무원 스스로 안전에 방해되는 액세서리는 본인 생명도 위협하는 것이어서 자제할 수밖에 없다. 자율에 맡기면 다 알아서 한다. 외모와 복장은 여성 승무원 업무와 아무 상관이 없다. 현장에서 여성에게만 요구되는 성차별적인 근무조건, 즉 여성 승무원은 무조건 예쁘고 날씬하고 용모 단정해야 한다는 우리 사회의 인식부터 바뀔 필요가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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