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국내
     
안보 벗어나 새 가치로 승부해야
[윤희웅의 선거와 경제] 경제가 지방선거에 영향을 줄까
[99호] 2018년 07월 01일 (일) 윤휘웅 waymaker@opinionlive.co.kr
2018년 6·13 지방선거는 ‘보수야당 심판’으로 결론 났다. 대개 선거에서 유권자가 평가하는 대상은 정부와 여당이다. 그간 정부와 여당이 국정을 잘 운영해왔는지, 성과를 냈는지 등을 판단해 잘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지지하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야당에 표를 줌으로써 여당에 회초리를 든다. 이번엔 전혀 달랐다. 평가 대상이 정부와 여당이 아니라 야당이었고, 매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윤희웅 waymaker@opinionlive.co.kr
 
   
▲ 2018년 6월15일 6·13 지방선거 참패 뒤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연합뉴스
보수 진영의 대표 정당인 자유한국당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대구와 경북에 완전히 갇히고 말았다. 보수 영남 벨트에서 부산·울산·경남은 이탈했다. 일각에서는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뿐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 기초자치단체장에서 확실히 우세했기에 선방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겉보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대구·경북에서도 한국당의 위태로움이 확인된다.
 
대구에선 구청장이 한국당 차지였지만 몇 곳은 2위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도전이 거셌다. 놀라운 것은 대구의 각 구의원 선거 결과다. 기초의회 선거구가 102석인데 이 중 45석이 민주당 차지였다. 비례의원까지 합하면 대구 전체 기초의원 116명 중 50명이 민주당 후보자였다. 의석 비중이 무려 43.1%로 적어도 기초의회에서는 경쟁 구도가 만들어졌다. 4년 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간판 당선인이 고작 13명에 불과했다. 경북에서도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에 민주당 간판으로 모두 60명이나 진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에서는 민주당 시장이 탄생했다. 비록 공단이 있어 유권자 나이가 낮은 배경도 있지만, 구미라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부산에서는 16개 구청장 중 13곳을 민주당이 확보했다. 한국당은 2곳을 얻는 데 그쳤다. 이른바 서울의 강남 3구는 보수정당에 흔들림 없는 애정을 보여왔지만 서초를 제외한 강남과 송파에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과연 보수정당이 기존 핵심 지지 기반을 지켰고, 그나마 밑천을 남겼다고 위안 삼을 수 있을까. 이 정도면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반면 민주당은 지방선거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지역에서 성과를 거뒀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참패해 이번과 비교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는 여당이 국정의 한 축으로서 심판 대상이 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이번엔 국정을 담당하고 있지도 않은 야당에 국민의 심판 화살이 집중됐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사건이다.
 
박근혜 정권과 결별 못한 것이 패인
왜 한국당은 여당도 아닌데 심판받게 되었을까. 박근혜 정권과의 완전한 단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당이지만 평가 대상이 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진 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벚꽃 대선’이 있었다.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보수 정치세력은 나름 시련을 겪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민이 보기에 제대로 반성하지 않았고 변화하려 몸부림치지도 않았다. 과거와 철저히 결별하지 못함으로써 야당이 심판 대상이 되는 초유의 현상을 자초한 셈이다.
 
선거 과정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모습투성이였다. 정당은 민심 흐름에 민감해야 하는 집단이다. 국민의 호감을 얻어야 존재할 수 있기에 민심이 기침하더라도 태풍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게 정당이다. 지금 한국당은 대중의 기류를 체크하는 ‘민심 온도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절대다수의 국민이 한반도 정세 변화에 기대를 갖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위장 평화쇼’라며 비난 일색이었다. 과거엔 있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모습이 펼쳐지면서 국민은 전쟁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는데 한국당 지도부는 연일 평가절하하기 바빴다. 민심 흐름과 정당 방향을 일치하는 게 선거 과정인데 오히려 민심과 역행하고 괴리되는 시간이었다.
 
당 대변인의 특정 지역 비하 발언은 선거 역사상 가장 어처구니없는 일로 기록될 만하다. 유권자를 하늘처럼 떠받치는 모습을 보여도 모자란 게 선거인데 텔레비전에 출연해 유권자를 대놓고 모욕했다. 당시 인천과 경기도 부천 지역을 비하했는데 인천 투표율은 55.3%, 부천은 55.4%로 전국 최하위권이었다. 한국당 후보를 지지하던 유권자가 그 발언을 듣고 투표장을 찾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선거기간 내내 ‘샤이보수’의 존재를 얘기하며 마치 천군만마가 선거일에 나타나 보수정당을 구해줄 것이라며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샤이보수는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샤이층 논의는 선거가 끝난 뒤 예측과 선거 결과가 다를 때 사후 분석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다. 선거 전에 샤이층이 있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가 틀렸다고 말하는 데 쓰는 게 아니다. 설사 샤이층이 있더라도 어느 정당을 당당하게 지지한다고 표현하지 못하게 된 현상 자체를 중시해야 한다. 그런 현상이 나온 원인을 찾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지지의사를 표출하게 할 수 있을지 해법을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샤이층 얘기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 보수정당 문제만이 아니다. 만약 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문제가 있어 국민이 여론조사에서 부정적 평가를 하고 변화를 요구할 때, 대통령이 나서 ‘우리 진보정권의 숨은 지지층, 즉 샤이진보가 조사에 응답하지 않아 지금 여론조사는 정확하지 않고, 국정운영에 큰 잘못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정치 공세나 방어를 위해 샤이층 논의를 하는 것은 민심 표출로 정치 변화를 유도하는 민주주의의 작동 메커니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분별한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예고된 일이었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보수 재편 논의가 무성하다. 과연 지금의 보수정당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지도부가 사퇴해 새 지도부가 들어서는 것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것으로, 분열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것으로, ‘천막당사’로 이사하는 것으로 국민 마음을 다시 살 수 있을까.
 
성급한 변화 흉내와 단순 통합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할 것이다. 지금 상황은 한두 해 만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장 변화를 주도할 인물이나 그룹도 없다. 안보 이슈 제일주의로는 시대와 더욱 괴리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한국당은 북한을 적으로 상정하고,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에 강경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면서 존재감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 정세 변화가 후퇴하지 않는다면 이전처럼 북한이 우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고, 또 북한과 미국도 서로 적국이 아니게 된다. 그러면 ‘안보’를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는 것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게 된다. 새 보수의 가치를 찾고 정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길고도 깊은 계곡을 건너야 한다.
 
* 윤희웅은 오피니언라이브(OPINIONLIVE)에서 여론분석센터장으로 일한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과 민(MIN) 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을 거쳤다. 대중심리의 형성과 표출 과정 연구를 하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7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