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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화·북중무역, 인민생활 향상 쌍끌이
[Cover Story] 북한 경제는 지금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양문수 msyang@kyungnam.ac.kr

김정은 시대 연평균 2~3% 경제성장 추정... 1990년대 최악 경제난으로 붕괴된 제조업 부활이 급선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격적으로 비핵화를 약속하고 남한·미국과 ‘통 큰 대화’에 나선 것은 경제개발의 절박함 때문이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2018년 4월20일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건설 집중’으로 전략 노선을 바꿨다. 북-미 관계 개선 이후 본격 개혁·개방 궤도에 오를 북한 경제 현황을 짚어본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2017년 12월20일 평양 교외 류경 김치공장 통제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제조 공정을 점검하는 직원. 북한 주민 생활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으나 제조업 복원이 쉽지 않아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AP 연합뉴스
북한은 오래전부터 자국 경제통계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의 북한 주요 경제지표 추정 결과가 가장 공신력 있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자료를 보면, 북한 경제는 2007~2016년 마이너스 성장과 플러스 성장을 반복하며 연평균 1.0% 성장률을 기록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성장률이 2012~2014년 1% 전후, 2015년 –1.1%, 2016년 3.9%다. 대체로 ‘아주 미약한 저성장세’ 또는 ‘사실상 정체 상태’인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에서는 2010년부터 시장화가 다시 크게 진전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성장률 추정 방법은 이런 시장화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북한 경제성장률이,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한국은행 추정치보다 적어도 1~2%포인트 높을 것이라고 여러 전문가가 지적해왔다. 연평균으로 보면 북한이 적어도 2~3% 성장률을 기록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적은 시간이 갈수록 힘을 얻어, 김정은 시대 북한 경제는 최소한 ‘상대적 회복’ 또는 ‘상대적 호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반적인 거시경제 지표뿐만 아니라 주민 생활도 어느 정도 개선된 것으로 추정된다. 탈북동포들에게 한 설문조사에서는 △하루 세끼 식사 △육류 등 단백질 섭취량 △주식 이외 간식 등 식생활 개선 추세가 뚜렷이 관찰된다. 주민 평균 소득과 소비 수준이 나아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정은 시대 들어 핵심 정책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인민생활 향상’이 어느 정도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시장화 묵인 넘어 적극 활용
북한 경제의 ’상대적 호전’을 가져온 핵심 동력은 시장화와 대외무역(특히 북-중 무역)이다. 2000년대 이후 북한 경제가 최악 상황에서 벗어나 정체 또는 소폭 회복된 배경에는 이 ’쌍두마차’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데 전문가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1990년대 초 경제난 이후 북한 경제가 겪은 구조적 변화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시장화 진전이다. 김정은 시대는 김정일 시대보다 시장화 수준이 높고, 확산 속도도 빨라졌다. 주민은 쌀을 국정가격으로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가격으로 장마당에서 팔고 산다. 주목할 것은 일반 주민뿐 아니라 국영기업과 국영무역회사 등 국영부문에도 시장화가 깊숙이 침투했다는 점이다. 북한 경제는 거칠게 보아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공존하는 이중경제 구조 성격을 띠게 되었다.
 
북한에서 시장화의 진전은 정부 정책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특히 김정은 시대 들어 시장화를 묵인하는 차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장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개혁 요소가 강한 경제정책을 실행하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직후인 2012년부터 시범운영 과정을 거쳐 2014년부터 ‘우리식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본격 실시가 대표적이다. 이들 정책은 중국·베트남 경제개혁과 비슷한 요소가 많다.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은 개혁 수준과 범위에서 김정일 시대 7·1 경제관리개선조치보다 훨씬 진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중앙에서 내려보내는 중앙지표를 줄이고 개별 기업과 농장에 ‘기업소지표’ ‘농장지표’ 등의 이름으로 스스로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자율성과 권한을 확대하고 경영권도 부여했다.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우리식경제관리방법과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자주 공개적으로 언급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경제개혁 핵심 축이 시장경제 요소의 도입을 확대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경제개혁 조치가 시장화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식경제관리방법은 중국·베트남 경제개혁 수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북한은 아직도 공개적 또는 공식적으로 ‘개혁·개방’ 용어를 쓰지 않는 등 개혁·개방 제도화 수준이 낮다. 경제개혁이 중국·베트남과 달리 중앙정부 의도에 따라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계획경제가 와해되고 시장화가 크게 진전된 현실을 사후적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차원일 뿐이다.
 
김정은 정권은 개혁뿐 아니라 대외개방에서도 종전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라는 새로운 형태의 대외개방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기존 경제특구에 더해, 지방 각지에 경제개발구 22곳을 지정했다. 개방 지역이 대폭 늘어나고 투자 유치 경로가 다양해지는 등 기존 특구 정책보다 나아간 면이 있다. 하지만 북한 투자 유치 정책의 한계와 2016년부터 한층 강화된 대북제재 등으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경제 특구·개발구를 통한 외국자본 유치가 부진한 것과 대조적으로 대외무역은 급격히 늘고 있다. 북한 대외무역은 1991년부터 크게 줄어 1998년에는 14.4억달러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1999년부터 회복세로 돌아 2010년에는 41.7억달러에 이르렀다. 20년 만에 경제난 발생 이전(1990년) 수준을 회복했다. 증가세가 이어져 2016년에는 65.5억달러를 기록했다. 무역 증가가 경제성장에 적잖이 기여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중 무역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으로써 북한의 중국 무역 의존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추정을 보면, 1990년 북한 전체 무역(남북교역 제외)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2000년대에 크게 늘어나 2005년 50%를 넘어섰고, 2016년엔 92.5%에 이르렀다. 특히 2014~2016년 3년 연속 90%를 웃돌았고, 해마다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북한도 지나친 대중무역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정은 시대 북한이 지나친 중국 의존을 줄이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오히려 더욱 심화됐다는 점이다.
 
최근 북한 경제의 성장 구조가 상당한 취약성을 안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북한 경제성장은 제조업이 아니라 무역을 비롯한 서비스업이 주도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경제난으로 제조업, 특히 중화학공업 기반이 사실상 붕괴됐다. 전체 산업구조에서 중화학공업 비중이 경제난 직전인 1990년에는 25.6%였으나 1991년부터 급격히 하락했다. 2000년 11.2%까지 떨어진 뒤 조금 올랐으나 2016년 13.7% 수준에 그쳤다. 경제난을 거치며 산업구조가 중진국형에서 저소득 개도국형으로 후퇴한 것이다.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복원 노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제조업 부활 없이는 경제의 본격·지속적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북한 정부도 잘 안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 고민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2018년 5월16일(현지시각)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북한 노동당 친선참관단 일행을 만나고 있다. 참관단장인 박태성 당 부위원장은 이날 시 주석을 면담한 자리에서 “중국의 경제건설과 개혁개방 경험을 학습하기 위해 중국에 왔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대북제재의 여파
북한 경제 현황은 북한 핵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제재 효과나 영향은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다. 제재 목표 달성을 평가하는 객관적 기준과 척도 설정 또한 쉽지 않은 문제다. 북한처럼 자국 경제통계를 거의 발표하지 않고 해당 국가 경제통계에 외부 세계 접근이 매우 어려운 국가가 대상이라면 더욱 힘들다.
 
2017년 전체 북-중 교역 규모는 50.6억달러로 전년 대비 10.5% 줄었다. 이 가운데 북한의 대중 수출은 17.2억달러로 33%나 줄었다. 북한은 현재 주민 생계에 필요한 생활필수품과 소비재, 민간·국영 기업의 생산에 필수적인 설비와 원자재를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재 본격 실시 이후 국영경제와 시장화 모두 타격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북한 시장에서 쌀 가격은 대체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주민 소득이 줄어 쌀가격 하락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다소 의아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시장 환율이다. 2017년 한 해 동안 시장 환율은 달러당 8천원 수준에서 거의 변동이 없다. 이 기간 북한 대중무역 적자는 16.2억달러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이렇게 무역으로 외화 수급 불균형이 크게 늘어났지만 시장의 달러 환율에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충분하다.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 대북제재는 최근 몇 년간 시장화와 북-중 무역을 두 축으로 한 북한 경제의 상대적 회복세(특히 2016년 3.9% 성장)에 제동을 걸 수준이 될 것이다. 다만 2017년에는 그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대북제재 영향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할 때, 2018년 본격 영향권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2018년 북한 경제성장률을 -5%로 전망했다.
 
그렇더라도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 수준으로 북한 경제가 악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데 상당수 전문가가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그 정도로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데 북한이 경제제재를 견디다 못해 이번 핵협상 테이블로 나왔다는 주장에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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