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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찰’ IMF의 속살
‘은둔의 권력자’ 빗장 열고 세계 첫 10주간 밀착 취재
[7호] 2010년 11월 01일 (월) 클라우스 브링크바우머 외 economyinsight@hani.co.kr

외부 세계로 통하는 문에 빗장을 단단히 걸었던 IMF가 드디어 외부를 향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슈피겔>은 10주 동안 IMF 본부가 있는 미국 워싱턴 DC와 헝가리, 그리스, 노르웨이, 벨기에를 돌며 ‘은둔의 권력자’ IMF의 어제와 오늘을 밀착 취재했다.
 

클라우스 브링크바우머 Klaus Brinkbaumer 해외르포 전문기자
울리히 피히트너 Ullrich Fichtner <슈피겔> 기자
 
첫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 9월 어느 화요일 오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집무실을 찾은 기자의 눈에 커다란 사진 한 장이 들어왔다. 칸 총재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스포츠클럽의 동료처럼 친근한 포즈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칸 총재는 정치적 라이벌이던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 의해 IMF 총재 후보로 발탁된 뒤 2007년 IMF에 합류했다. IMF를 ‘미묘하게 독립적인’ 기관으로, 미국인 존 립스키 수석 부총재를 미 연방준비은행에서 파견한 감시자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자리잡게 한 것은 칸 총재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 2009년 G20 런던 정상회의에 참석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61). “차관 지원은 처방약입니다. 하지만 환자인 국가가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백약이 무효입니다.”

 칸 총재는 집무실에서 세계의 신경제질서를 구상하고 있다. 신경제질서는 이미 일부 존재해 있다. 2008년 9월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로 기존 세계경제 질서를 대체할 규칙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신경제질서는 과히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신경제질서는 제2의 경제위기를 견딜 만큼 충분히 견고한가? 최근 경제위기로 인해 세계는 사고 전환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만약 IMF가 세계의 기대에 부응한다면 IMF는 신경제질서의 경찰관으로 국제 무대에서 금융계를 감독하게 될 것이다.
칸 총재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따끔했다. “IMF는 일종의 ‘의사’입니다. 차관은 ‘처방약’인 셈입니다. 하지만 ‘환자’인 국가가 체질을 바꾸지 않는 한 절대로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IMF는 2008년의 경제위기를 경고했지만, 각국 정부는 부정적인 말은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2008년 가을 IMF의 예상대로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세계는 결국 늑장 대응을 하고 말았다. 유럽은 하나의 결정을 내리는 데 6개월이 걸렸다. 역설적으로 이때를 기점으로 세계는 신경제질서의 근간을 세우게 됐다.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강자로 등장한 것이다.
 
너무 이기적인 미국, 굼뜬 유럽
칸 총재는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가를 방문할 때마다 현지 국가의 정상들로부터 이구동성으로 “일단은 유럽은 제쳐놓았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아시아 국가 정상들은 더 강력한 유럽을 원합니다. 하지만 뒤처지는 국가는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과거에 아시아가 그랬다면, 이제는 유럽이 그런 존재로 전락했습니다. 유럽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유럽은 너무 굼뜨고 미국은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어서 신경제질서에서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칸 총재는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장기적 관점에서 대응하기는커녕, 투자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국 오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들의 모임인 주요 20개국(G20)이 신경제질서의 새로운 핵심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G20은 전세계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IMF에 8500억달러를 지원했다. 칸 총재는 이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 지구적 위기 대응”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이번 경제위기 극복을 통해 IMF는 최초의 세계경제 정부가 될 것인가? 칸 총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는 G20처럼 선택된 사람들로 구성돼야 합니다. 실제로 G20은 정부처럼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경제위기일 때 G20의 공동 대응 의지는 아주 강했습니다. 물론 그 의지가 시간이 지나면서 눈 녹듯이 사라진 것도 사실입니다. 각국 정상들이 자국 문제에 온통 정신이 쏠려 있어 전세계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과 합의는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입니다.” 그러면 칸 총재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IMF의 모습은 무엇일까? “IMF는 세계경제 정부가 아닌 G20의 사무국이자 에이전시로서, 국가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계획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단순히 세금정책이나 화폐정책의 도입을 뛰어넘어 경제안정을 통한 세계평화 달성에 이바지해야 합니다.”
칸 총재의 이런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IMF 비판가인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 이런 거창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기구가 왜 하필 IMF인가, 아니면 진작에 IMF가 맡았어야 할 미션을 이제야 겨우 찾은 것인가? 국제정치 무대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다자주의는 폐기 처분 대상이 됐다. 위기가 터진 한참 뒤에야 위기 해결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뒷북 치며 등장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때문에 다자주의는 용도 폐기돼버린 지 이미 오래다. 몇 년 전만 해도 IMF 또한 이런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가장 부적합한 기구라는 오명을 안고 있었다. IMF의 명성에 흠집이 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때부터였다. 그뒤 근속연수 1년당 1개월치 급여를 퇴직금으로 지급받고 직원 400여 명이 IMF를 떠나야 했다. 최근 브라질이 차관 금액을 최종 상환한 뒤 주변국들만 남으면서 IMF는 별 볼일 없는 기구로 전락했다.

   
▲ 일본에서 시위 중인 IMF 반대 시위자. 과거 ‘공공의 적’이던 IMF는 이제 ‘공공의 인정’을 받는 기관으로 거듭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2007년만 해도 20억달러에 불과하던 IMF의 차관 지원액이 지금은 무려 1950억달러에 이르렀다. 또 2008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칸 총재가 전세계적인 경기부양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은 일대 충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IMF는 사전 대책을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전의 IMF 보유액은 250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천억달러에 이른다.
이제 중요한 것은 IMF가 세계경제 정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여부다. 실제로 IMF가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신호는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1944년 IMF 창립 뒤 발생한 금융위기는 122차례에 달한다. 수많은 경제위기에 대응한 경험을 통해 실물경제와 각종 세법, 그리고 최신 투자 기법을 구사하는 월가의 생산적이고도 파괴적인 행태를 IMF 직원만큼 제대로 꿰뚫어볼 수 있는 기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차관 지원과 저글링 묘기의 닮은 점 
칸 총재는 “차관국의 경제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그 나라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과거에 IMF가 ‘자본주의의 첨병’이었다면, 지금은 내부 직원들의 표현에 따르면 ‘소프트 파워’로 무장한 ‘싱크탱크’로 변모했다. 그런데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 문제는 IMF에는 국가에 제재를 가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또 경제위기 때마다 IMF의 권한과 영역만 단순히 늘리면 되는 걸까? 그리고 IMF에 주어진 새로운 권한과 관할 영역의 합법성은 과연 어떻게 부여할 것인가? 1944년 IMF 창립 당시 미국은 IMF 내부 규정을 일방적으로 신설해 다른 국가들이 서명하도록 했으며, IMF의 중요 사안에는 거부권도 있다. IMF가 G20을 대변해 세계 금융정책 조정기구 역할을 한다면 빈국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IMF는 차관을 지원받는 나라의 화폐정책과 이자정책, 조세체계, 고용, 국가 부채, 국제무역, 국민총생산(GNP)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차관지원협정서 서명 하나로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는 것이다. 하지만 실타래처럼 꼬인 국민경제의 각 부문이 서로 어떻게 연관됐는지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는 기구는 전세계에 단 하나도 없다. 결국 IMF는 불확실성을 토대로 차관 지원 계획을 수립하고, 차관국 정부가 준수할 규정 지침을 결정한다. 이는 온갖 사물을 공중에서 저글링해야 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잘 돌아가면 채무국은 위기 상황을 잘 극복할 것이고, 하나라도 땅에 떨어진다면 차관국에는 내전을 방불케 하는 혼란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경우 IMF는 기존 차관 지원 계획을 수정해 다시 수립해야 한다.
   
▲ IMF 비판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학 교수. “IMF의 차관 지원이 오히려 차관국의 모럴 헤저드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IMF의 전세계 직원은 24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대부분은 워싱턴 본부에서 일하며, 국가별로 직원 3~4명이 상주해 근무한다. IMF 본부와 국가별 현지 사무소의 업무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뤄진다. 아이슬란드가 지급불능 상태가 돼 차관을 신청하게 되면, IMF는 달러 등 국제 주요 화폐로(종종 5%의 낮은 이율로) 차관을 지원한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채무국가에 지원액을 보낸다. 채무국 현장팀이 워싱턴 본부로 현장보고서를 보내면 워싱턴 본부팀은 차관지원안을 수립하고, 아이슬란드는 IMF에서 받은 차관지원협정서에 서명한다. 이후 IMF 총회를 거쳐 차관지원안을 발효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면 마치 버튼이라도 누른 듯 1억6800만달러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수초 뒤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한다. 결정이 내려진 뒤 곧바로 차관국에 지원금이 지급되는 것이야말로 수많은 다자간 협의체와 IMF를 구분짓는 중요한 요인이다. 이후 워싱턴 본부팀은 아이슬란드를 방문해 정부에 조언하며 수개월간 예의주시한다. 이는 차관국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조처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막후에서 칸 총재에게 의견과 조언을 제시하는 ‘IMF의 브레인’으로 통한다. 그 역시 칸 총재처럼 프랑스인이다. 칸 총재와 차이점이 있다면 블랑샤르는 정계 출신이 아니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다는 것이다. 그는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지자 IMF 본부 직원들이 리먼브러더스를 비롯한 금융기관을 파산으로 몰아넣은 신종 금융기법을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하며 깜짝 놀란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IMF가 2008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IMF의 업적을 굳이 언급하자면, 전세계가 단순한 경기불황이 아닌 장기적이고도 복합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연쇄적으로 맞물린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일깨워줬다는 겁니다.”
 
적과의 동침, ILO와 콘퍼런스 공동 개최
IMF는 지난 9월2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성장, 고용 그리고 사회연대감에의 도전’이라는 제목의 콘퍼런스를 열어 주목받았다. 콘퍼런스 주제 때문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와 공동으로 개최했기 때문이다. 칸 총재는 이를 “개와 닭을 한 공간에 넣은 격”이라고 비유했다. IMF는 사회의 거센 저항에도 경제개혁을 밀어붙여야 하는 반면, ILO는 IMF에 저항하는 시민운동가들을 대변하는 기구다. 칸 총재는 “IMF는 단순히 거시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제에도 신경 쓴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어느 월요일 뉴욕, 칸 총재는 유엔에서 ‘일자리 창출 방안’에 대한 연설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경제위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진정으로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연료가 필요합니다. 성장만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은 전세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IMF가 ILO와 대화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IMF는 변했습니다. 노동조합도 달라졌습니다. 물론 IMF와 노동조합은 서로가 항상 마음에 들 수 없지만, 상대방에게서 배울 점은 배우고 함께 대화하려고 합니다.” 칸 총재는 전세계적으로 노동계가 힘든 상황에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에 이런 어조로 말하는 IMF 총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당시 벼랑 끝 위기에 몰린 국가들은 IMF의 차관을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IMF가 제시하는 로드맵을 그대로 실행해야 했다. 자국의 사회질서를 해치지 않으려고 IMF가 제시하는 조건을 거부하는 국가는 차관을 지원받을 수 없었다. 몇몇 아시아 국가는 IMF가 제시하는 조건을 수용하지 않고 차관 지원을 거부했다. 또한 중남미에서 ‘IMF 처방’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아르헨티나’라는 한마디로도 IMF는 비난을 듣기에 충분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IMF는 이미지와 정체성의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었다.
최근 칸 총재는 IMF 융자 지원 자격 요건에 경제개혁의 사회적 파장과 비용을 포함시키는 것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엘살바도르가 IMF에서 기금을 지원받을 때 이 비용이 고려됐다. 개별 국가의 특이사항을 무시한다고 과거에 끊임없이 비난받던 IMF는 칸 총재의 지휘하에 나라별 특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칸 총재는 “세제정책과 금리정책에 여유가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 등 상황은 천차만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자와 세금, 그리고 화폐의 각 단면만 보고 차관국의 개혁 프로그램을 수립하던 IMF를,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의 경제상황을 분석해 조언하고 차관을 지원하는 태스크포스팀으로 전환하는 대대적인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
칸 총재는 ‘신자유주의 첨병’이라는 IMF의 이미지와 이제 결별하려 한다. IMF의 대대적인 구조개혁 계획에 대해 질문하자 블랑샤르는 웃으며 “IMF를 둘러싼 음모론처럼 거창하게 들리는데, IMF에는 그런 계획이 없다. IMF는 주어진 업무에 매진할 따름이다. 물론 IMF에 새로운 노선은 제시돼 있다. 그에 따라 투명하고 정직하며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다”고 말했다.
블랑샤르는 그리스의 현 금융위기에도 정면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IMF는 곧 현장팀을 아테네로 파견해 그리스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을 모니터링할 계획이다. 만약 그리스에 가망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곤란할 수도 있는 질문에 블랑샤르는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런 경우 IMF는 있는 그대로를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을 겁니다. 모든 관련자와 재협의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찾아나설 것입니다.” 
 
아시아가 유럽을 지원한 신경제질서 
IMF는 자금 지원이 실패하도록 내버려둘 만큼 사치를 부릴 여유가 없다. 그리스가 파산한다면 그리스는 ‘제2의 아르헨티나’가 될 것이고, IMF는 다시금 공공의 적으로 추락할 것이다. 독일 출신의 클라우스 슈타인 이사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경기 사이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요즘 지뢰밭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다니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그가 말하는 첫 번째 지뢰는 IMF, 두 번째 지뢰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세 번째 지뢰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 마지막 네 번째 지뢰는 악셀 베버 독일 연방은행 총재다. 슈타인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전자우편과 전화를 통해 메르켈 총리와 쇼이블레 재무장관, 그리고 베버 총재와 번갈아가며 입씨름을 벌인다. 메르켈 총리는 그때마다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IMF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 IMF의 긴축재정 요구에 반대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IMF의 자금 지원 요건이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채무불이행으로 국가가 지급불능 상태가 되고서야 IMF가 개입했다. IMF는 국가 위기는 현금 유동성 문제여서 현금과 긴축재정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차관 지원을 결정했다. 차관도 까다로운 조건 아래 지원됐다.
IMF 워싱턴 본부에 있는 독일인들은 최근 그리스 사태가 외환위기가 아닌 부패와 인재로 인한 국가 예산의 절대적 부족 때문에 일어났다고 여긴다. 또한 그리스는 유로존 소속이어서 국가부도의 낭떠러지로 몰렸을 때조차 IMF는 별다른 대응 방안을 취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해 슈타인 이사는 “국가 위기가 현금 유동성 문제라는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칸 총재는 IMF 회원국이 경제위기의 희생양이 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메르켈 총리와 독일연방은행도 IMF의 그리스 차관 지원에 손을 들어주었다. 그리스 지원을 계기로 IMF가 유럽연합을 비롯한 다른 기구와 공동협력을 맺는 신개념이 탄생했다.
IMF는 유럽에 2억5천만유로 지원금을 전달했다. 지원금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 국가들의 출자금에서 나왔다. 그리스 사태를 통해 ‘제3세계’가 ‘제1세계’를 지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경제질서다.
 
총재는 유럽인, 부총재는 미국인
하지만 IMF의 지배구조는 여전히 예전과 변함없다. 이에 대해 유럽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달갑지 않게 여긴다. IMF 이사회 회의는 본부 건물 12층에서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회의실에는 원형 회의 탁자와 의자 24개가 놓여 있다. 그 뒤로 어시스턴트 24명이 앉는다. 참석자들은 공식 언어인 영어로 국가·업무별 집중 토의를 한다. 유럽 국가는 미리 의견을 조율해 회의 전에 각국 성명서를 배포한다. 이렇게 해야 조금이나마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는 24명으로 구성되는데, 대부분은 선출직이고 각 그룹을 대표한다. 한 예로 브라질 출신의 이사는 자국 브라질을 비롯해 콜럼비아, 도미니크공화국, 에콰도르, 가이아나, 아이티, 파나마, 수리남 및 트리니다드토바고를 대표한다. 브라질이 대표하는 그룹에 배분된 의결권은 2.41%다.
이사 가운데 9명이 유럽인이다. 선출직이 아닌 5명은 각국 정부에서 파견됐는데, 의결권은 천차만별이다. 미국은 전체 의결권의 16.74%를, 이어 일본이 6.01%, 독일 5.87%, 프랑스와 영국이 각각 4.85%를 갖고 있다. 이런 지배구조가 과연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IMF 직원들은 묵묵부답으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이사회는 IMF 총재가 주재한다. 1950년에도, 그로부터 반세기가 훌쩍 지난 2010년에도 총재는 유럽인, 제1부총재는 미국인이다. 수석위원 30명이 IMF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칸 총재의 이너서클에는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 인도 출신 레자 로가담 국장, 중국 출신 주민(朱敏) 특별자문역과 캐롤린 애트킨슨 대변인이 있다. 본부 건물 12층에 있는 집무실은 모두 문이 열려 있다.
IMF 총재는 아침마다 이들과 자신의 집무실에서 크루아상을 먹으며 세계 문제를 논의한다. 애트킨슨 대변인은 2주에 한 번 목요일마다 본부 건물 1층의 작은 언론 브리핑실의 푸른색 벽 앞에서 전세계 경제위기 대처계획을 브리핑한다. 15분이면 전세계에 대한 경제위기 대처계획 발표가 끝난다. IMF의 공식 입장은 차관 지원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세계가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 중이라는 항상 대동소이한 내용이다.
IMF에서 사무총장 역할을 수행하는 로가담 국장의 주요 업무는, 차관 지원 프로그램을 기본 골격은 유지하면서 차관국의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이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IMF는 차관국의 이행 조건 충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즉, 차관 국가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지원 프로그램은 자동으로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구조 지침이 도입됐습니다. 차관국이 준수해야 하는 수치가 지침 형식으로 지속적으로 제시되지만, 이는 차관국의 자율적 의무로 설령 준수하지 못하더라도 지원 프로그램이 자동적으로 중단되는 일은 더 이상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차관국이 개혁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차관국 정부가 민심이 떠날 것을 우려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어떻게 되는가? 위기 극복의 힘겨운 사투를 몇 년째 벌인 나라의 사회가 결국 사분오열되면 어떻게 되는가? 인도네시아와 아르헨티나, 그리고 헝가리는 이미 이런 경험을 했다. IMF가 차관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헝가리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헝가리는 IMF의 오랜 회원국이다. 지난 7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헝가리 정부와 IMF의 추가 차관 지원 협상은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신임 총리는 IMF 협상단에게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자축연을 벌였다. 헝가리 정부 일각에서는 “경제적 자유투쟁”이나 “구걸의 종말” 등 과격한 표현이 흘러나왔다. 헝가리와 IMF 간 협상 결렬의 내막을 이해하려면 헝가리에서 3개월 뒤 지방선거가 열린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IMF의 차관 지원 과정에서 국내 정치도 무시 못할 변수로 작용한다. 부유하고 막강하며 게다가 자국에서 멀리 떨어진 IMF는, 헝가리 정치인들이 선거전에서 희생양으로 삼기에 가장 적합하다. 하지만 단순히 헝가리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고 보는 건 옳지 않다. 헝가리는 1982년 IMF에 가입했다. 차관을 지원받기 위해 일찍이 경제구조를 개혁하기 시작했다. IMF에 가입한 첫해에 5억2천만달러를 지원받았다. ‘시장경제의 모범생’으로 불리던 헝가리는 IMF의 요청과 집요한 독촉, 때론 일방적인 명령에 의해 1984년 수입 규제를 완화하고 관세를 내렸으며, 국가 보조금 지원을 철폐하고, 헝가리 화폐 ‘포린트’의 평가절하를 단행했다. 
 
헝가리 화폐가치가 오른 까닭  
1996년까지 헝가리는 차관을 총 여섯 차례 지원받았다. 차관을 지원받는 동안 헝가리는 완전히 다른 국가가 되었다. 헝가리 금융권은 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충실하게 개혁됐고 부가가치세가 도입됐다. 정부는 1990년에 외자 유치를 승인했으며, 관세장벽 철폐와 관세청 유관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했다. 그리고 가격과 임금을 시장에 맡겼다.

   
▲ 2009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의 여파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자동차 리스회사에 반품된 차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하지만 미국 정계·해외 투자가·금융시장의 구미에 들어맞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그늘은 짙다. 1989∼96년에 헝가리의 실질임금은 22% 감소했다. 그나마 임금을 받는 사람은 행운아에 속했다. 베를린장벽 붕괴와 세계시장 개방으로 헝가리의 산업생산량은 3분의 1 이상 줄었고,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인플레이션은 30%에 육박했다. 노동자와 연금생활자를 비롯한 대다수 헝가리인의 실질임금은 매년 감소했다. 헝가리인의 연금 수령 연령은 계속 늦춰지는 반면, 실질 연금 수령액은 기대치를 밑돌았다. 더군다나 국민이 사회보장제도에 의지해야 할 때 국가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못했다. 헝가리는 이미 완전히 다른 국가가 돼버린 뒤였다. 헝가리가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개혁의 회오리가 몰아쳤고, 2008년에는 세계경제 위기의 파고가 헝가리를 송두리째 덮쳤다. 결국 2008년 헝가리는 국가부도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IMF와 세계은행, 유럽연합이 함께 헝가리에 차관 250억달러를 지원했다. 이 중 IMF 지원금은 157억달러였다. IMF는 ‘연금 수령액 인하’와 ‘공무원 급여 동결’을 골자로 하는 차관 지원 조건을 내걸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헝가리는 화려한 비상을 꿈꾸던 신흥국가였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세계의 메트로폴리탄’으로 비상할 채비를 하던 휘황찬란한 도시였다. 그로부터 불과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부다페스트는 대다수 시민의 삶 수준이 크게 후퇴한 암울한 잿빛 도시로 변했다. 칸 총재의 IMF 내부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헝가리가 바라본 IMF는 관료주의적 규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국가 예산 수립을 둘러싸고 IMF와의 협상을 중단한 보수파 빅토르 총리는 IMF를 겨냥한 쿠데타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는지 모른다. 빅토르 총리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IMF와의 협상이 결렬된 지난 7월 이후 헝가리 화폐 포린트의 가치가 오르기 시작한 건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칸 총재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 것인가? 그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전에 IMF를 떠날 것인가? 칸 총재는 프랑스 대선이 열리는 2012년에 사르코지 대통령에 맞서 사회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할 것인가? 그는 이 질문에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막힘없이 대답했다. “저야 직업이 있지만, 제 임무는 직업이 없는 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IMF의 일부 관계자들은 칸 총재가 노동조합과 거리를 좁혀가는 것은 정치적 포석이라고 비판한다.
 
 중국과 인도 의식하는 IMF

 
   
▲ 1997년 한국은 IMF에서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대가로 구조조정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칸 총재가 프랑스 대선에 출마할 경우 그는 자신을 겨냥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IMF 전 직원인 헝가리 여성과의 스캔들로 인해 내부 조사가 진행되고, 세 번 결혼한 사실과 여성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던 사생활은 대선 후보로서 그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에 대한 질문에 칸 총재는 “명백히 제 실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저는 시간을 잃는 대가를 치렀습니다”라고 답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IMF 본부에서 여성과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 것을 칸 총재에게 경고했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칸 총재는 웃음기를 완전히 뺀 목소리로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고 말했다.
칸 총재는 이내 화제를 바꾸었다. 유럽의 암담한 미래에 대해 말했다. “과거에는 유럽의 각종 기구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여러 이유에서 실제로 유용했습니다. 이 기구들은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경제위기는 유럽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켰습니다. 유럽은 자국의 현상 유지에만 붙들려 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북미는 경제위기 이후 금방 정상으로 되돌아옵니다. 하지만 유럽은 위기를 맞아 통제력을 한번 상실하면 경제가 매우 더디게 회복합니다.” 칸 총재는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역동성과 속도를 높이 평가했다.
중국 출신의 주민은 최근 중국이 IMF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새로 신설된 총재 특별자문역을 맡고 있다. 주민은 칸 총재에게 아시아의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자신이 중국에서 연봉을 받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IMF맨’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외교적 발언에 불과하다. 실제 IMF에서 각 국가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자리는 단 하나도 없다. 주민은 “아시아의 신흥국가는 충분히 배울 점이 있으며, 유럽 국가와 비교해 거시경제 제반 조건이 훨씬 앞서 있고, 경제적으로 위기 상황에 봉착하더라도 정치적 여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과 비교해 아시아는 재정 적자폭은 물론이고 국가부채율이 낮으며, 인플레이션도 정상화한 지 오래다. 지난 50년간 전세계에서 가장 통제가 되지 않는 부문은 부동산 시장이라는 것을 미국보다 훨씬 일찍 깨달은 중국과 인도가 부동산 시장에 대한 엄중한 감시를 일찍 시작한 것은 이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 Der Spiegel
번역 김태영 위원
 


브레턴우즈 체제의 탕아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브레턴우즈 협정에 따라 IMF가 창설됐다. 같은 시기에 국제부흥개발은행(IBRD)도 창립됐다. IMF의 설립 목적은 세계무역의 안정적 확대를 통한 회원국의 고용 증대, 소득 증가 및 생산자원 개발에 기여하는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 이상의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미국 백악관과 연방준비위원회,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은 IMF를 미국 정치의 수단쯤으로 여겼다. 영국은 IMF 본부를 뉴욕에 두기를 원했지만, 미국은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 DC에 유치했다. 냉전시대 때 IMF는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규정을 순순히 따르는 국가에만 제한적으로 차관을 지원했다. 이런 IMF의 과거를 개혁한 인물이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IMF 내부에서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를 현지에서 직접 진두지휘한 인도 출신의 레자 로가담 국장이 IMF를 개혁한 인물로 꼽는다. 호르스트 쾰러 전 총재(전 독일연방 대통령)의 역할을 더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쾰러 전 총재가 차관을 지원받은 국가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맺도록 IMF에 주문했는데, 이때부터 각 국가의 상황에 맞는 완화된 조건으로 차관이 지원됐다는 것이다.

언론에 빗장 건 ‘은둔자’

IMF 직원 연봉은 4만달러(약 4500만원, 신입 직원)에서 40만달러(약 4억5천만원, 총재)에 이른다. 미국인을 제외한 타국 출신 직원들은 임금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매력적인 직장이다. 그래서인지 IMF의 이직률은 극히 낮다. 하지만 미국인 존 립스키 수석 부총재는 이직률이 낮은 이유에 대해 “IMF는 지금까지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IMF는 진정한 의미의 선구자들이 일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IMF는 부서별로 옷 입는 방식도 다르다. 독일팀은 양복 차림이 필수고,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올리비에 블랑샤르 팀은 셔츠면 충분하다. IMF 본부는 아침 7시면 업무가 시작되고, 밤늦게까지 사무실의 불이 꺼질 줄 모른다. 퇴근 후에도 직원들은 침대 옆에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맞춰놓고 잠자리에 든다. IMF는 그동안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거절의 답변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비밀주의를 고수했다. 하지만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총재 부임 이후 굳게 닫혀 있던 빗장을 외부 세계를 향해 활짝 열었다. 단, 비공식 인터뷰와 인용문은 IMF의 허가를 받아야만 공개할 수 있다.  

로고프 “IMF, 이번엔 다르다?”

케네스 로고프 미 하버드대학 교수는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쾰러 전 총재 시절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로고프 교수는 최근 카르멘 라인하르트 메릴랜드대학 교수와 함께 <이번은 예전과 다르다: 금융정책 오판의 8세기>를 발간했다. 금융위기의 세계사를 다룬 이 책은 경제학자, 금융인 및 정치인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로고프 교수는 IMF와 각국 정부가 서로의 경제위기 대응을 높이 평가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IMF와 전세계 각국 정부가 차관 지원은 서두르는 반면, 국가 파산은 주저합니다. G20과 IMF의 차관 지원이 오히려 차관국의 모럴 헤저드를 악화할 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차관 지원이 위기를 막기는커녕 되레 새로운 위기를 야기한다. “차관 지원을 받은 은행들이 결국에는 국민의 혈세로 투기를 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그는 인간은 위기 상황에서 다시 일상으로 회귀하는 본능이 있다는 걸 믿고 있다. 그는 “일상성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도 이미 과거에 국가파산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그리스는 지난 200년 동안 다섯 번이나 파산했다. 독일제국도 지급불능 상태가 돼 파산을 면치 못했다. 로고프 교수는 “위기는 위기일 뿐, 결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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