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 시각
     
인도 경제 ‘주가드’를 알면 보인다
[세계는 지금] 인도의 문제 해결 비법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박영선 yspark@kotra.or.kr

인도인의 경제활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으로 ‘주가드’(Jugaad)가 있다. 주가드는 힌두어로 ‘기발한 아이디어로 맞닥뜨린 어려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 개념을 이해하려면 인도인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어려운 환경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발상의 전환, 지속가능하지는 않지만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대처법 등을 살펴봐야 한다.

박영선 KOTRA 인도 콜카타무역관 관장

   
▲ 인도 뭄바이 쇼룸에 전시돼 있는 타타자동차의 나노(Nano) 자동차. 한 대 가격이 2천달러에 불과하다. REUTERS
 
질문과 응답을 전문으로 하는 인터넷 사이트 쿼라(www.quora.com)에 최근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도 최고의 주가드 사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댓글과 사진이 수백 개 달렸는데, 이는 주가드가 인도인의 생활에 얼마나 깊이 자리잡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주가드 혁신 사례를 살펴보기에 앞서 인도에 주가드라는 삶의 방식이 고착된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인도는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 식민지 수탈 경제체제로 산업이 붕괴돼 대다수 국민이 가난에 허덕였다. 경제학자 앵거스 메디슨이 쓴 <세계경제>를 보면, 동인도회사의 인도 진출이 본격화되던 1700년 인도 경제는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4%를 차지했으나 독립 당시인 1950년에는 4.2%에 불과했다.
 
독립 뒤 인도 정부는 산업을 발전시키고 국민을 가난에서 구제하기 위해 러시아를 본뜬 사회주의적 계획경제 체제를 택했다. 그 여파로 민간기업 자리는 없어지고 공공기관에서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인도 정부는 과거 영국 동인도회사가 무역 목적으로 인도에 진출한 뒤 군대를 동원해 인도를 무력 점령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국제무역이 외세 침략과 연관된다고 보고 자유무역정책 대신 높은 관세장벽을 세우는 등 보호무역주의 전략을 폈다. 그 결과 인도인은 만성적 가난, 관료주의, 형편없는 제품과 서비스 소비에 익숙해졌다.
 
현재 인도인들은 1990년대 초반 시작한 경제개혁으로 과거에 비해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으나, 아직도 전체 인구의 약 20%가 세계은행이 정한 빈곤선인 하루 1.9달러(약 2100원) 미만으로 살아간다. 열악한 환경과 물질적 궁핍, 쉽게 고장 나는 제품을 사용하던 인도인이 스스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주가드가 나왔다.
 
   
▲ 인도 정부가 학생들에게 40달러에 공급한 태블릿 컴퓨터 아카시(Aakash)는 주가드의 대표적인 사례다. REUTERS
 
진흙으로 만든 냉장고
주가드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세 인도인이 2012년 출판한 <주가드 이노베이션>이었다. 나비 라드주 등 지은이들은 전기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진흙으로 만든 냉장고, 울퉁불퉁한 도로의 충격을 에너지로 전환해 속도를 높이는 자전거, 나무상자와 전구로 만든 저렴한 가격의 인큐베이터 등을 주가드 혁신 사례로 든다. 또한 지은이들은 주가드 혁신은 비단 인도만의 현상이 아니며 어려운 환경에서 기회를 찾고 변화를 추구하는 특성은 어느 나라에나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책에서 설명하는 주가드의 여섯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경에서 기회 찾기. 둘째, 적은 것으로 더 많이 하기. 셋째, 융통성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넷째, 단순함을 유지하기. 다섯째, 소외층을 포용하기. 여섯째,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하기.
 
요즘같이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세상에서 주가드 개념이 과연 범용적으로 쓰일 수 있을까. <주가드 이노베이션> 저자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세계적 기업들이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그에 상응하는 혁신을 창출하지 못하고, 그렇게 개발한 제품들이 더 비싼 가격에 소비자에게 팔리기 때문에 전세계 다수의 중산층과 빈곤층은 그 열매를 향유하지 못한다. 반면 주가드 혁신은 훨씬 더 저렴하게 꼭 필요한 기능만 갖춘 제품을 만들어 다수에게 공급해 혜택을 줄 수 있다.
 
주가드는 자원과 재정 등이 희소해 정상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 태도를 심어주는 유용한 방식인 것이다. 인도인들의 일상에서 주가드식 행동방식과 제품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가진 인도인이 자주 활용하는 ‘부재중 콜’(Missed Call)이 있다. 휴대전화 통신비를 낼 여력이 안 되는 경우 상대방에게 전화를 건 뒤 바로 끊는 것인데, 이는 상대방에게 전화를 걸어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타타자동차는 2천달러(약 220만원)에 판매하는 나노(Nano)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인도 정부는 40달러(약 4만5천원) 가격으로 학생에게 공급하는 아카시(Aakash) 태블릿을 제작했다.
 
하지만 주가드는 인도에서조차 종종 부정적 이미지 또는 웃음거리 취급을 받는다. 우선 주가드가 당면한 문제의 근본적이고 영속적인 해결이기보다 그 순간 어려운 상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려는 단발적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브랜드 자동차의 수리센터가 있지만 운전자들이 자동차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길거리의 무허가 수리점에서 고치는 일이 많다. 저렴한 비용으로 그 순간의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심리 때문이다.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가 났을 때 저렴한 비정품 타이어를 사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인도의 의료시설도 주가드식 의료행위로 뉴스에 나왔다. 몇 년 전 우타르프라데시주의 한 병원에서 병원 청소부들이 환자의 상처를 꿰매고 주사를 놓는 모습이 텔레비전에 방송돼 국민의 공분을 샀다. 정식 의료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동안 의사 진료행위를 눈여겨본 청소부들이 진료행위를 한 것이다.
 
법적 규제를 피하기 위해 주가드식 발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2017년 인도 대법원은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모든 주점은 국도와 고속도로에서 500m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에 케랄라 지역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인도인이 자신의 주점에서 근처 도로까지 300m에 이르는 미로를 만들었다. 주점을 옮기는 대신 거미줄처럼 집을 여러 겹으로 도는 장거리 미로를 만들어 위법행위를 면한 것이다.
 
 
인도가 제조업 분야에서 취약한 이유로 주가드가 자리잡고 있다. 2014년 선거에서 압승해 정권을 잡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추진하는 대표적 경제정책 ‘메이크 인 인디아’다. 인도가 서비스업은 비교적 발달한 데 비해 제조업이 활성화되지 않았기에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외국 기업 유치 등을 통해 국내 제조업을 부흥하자는 정책이다. 인도에서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은 이유로 복잡한 규제 정책, 까다로운 노동법, 양질의 노동력 부족 등이 있는데 이에 덧붙여 주가드식 사고도 산업 활성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산업 활성화 발목 잡기도
대부분 인도 기업은 연구·개발로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기존 기술을 변형하고 간소화해 저렴한 가격에 국내시장에서 파는 방식을 추구한다. 거대한 인구의 국내시장이 있어 어쩌면 당연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으나, 훨씬 더 우수한 기술과 비슷한 가격의 외국 제품이 들어오면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불과 2~3년 전까지 저가 스마트폰으로 삼성과 함께 인도 휴대전화 시장을 양분하던 인도 자생기업 마이크로맥스(Micromax)는 에릭손에 지적재산권 8건 침해 소송을 당했고, 현재는 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샤오미·오포·비보·레노보 등 중국산 휴대전화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인도 주가드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혼합돼 있다. 인도인들의 문제 해결 비법인 주가드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몇 가지 시사점도 준다.
 
첫째, 아직까지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수준 높은 제품을 소비할 정도의 구매력이 없는 저개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주가드는 유용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인도에서는 글로벌 기업이 인도인의 소비력에 맞게 제품 기능 등을 조정해 생산, 판매하고 있다.
 
둘째, 주가드는 인도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인도에서 사업을 하거나 거주할 때, 인도 기업과 거래할 때 주가드 개념을 이해하면 실수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인도는 법률, 행정 절차 등이 복잡하고 이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에게 업무를 위임할 때 주가드식으로 정당한 절차를 생략하고 불법행위를 저지르거나 부당하게 일을 추진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주가드 외에 첨단기술도 의존해야
마지막으로, 저개발국에서 여러 문제 해결에 주가드식 단기 처방에만 의존하지 말고 근본적 해결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급속히 진전되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빅데이터, 로봇, 사물인터넷 등은 기술이 낙후한 국가에서 활용하면 빈곤 문제 등에서 근본적 해결이 가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도 스타트업 소셜캅스(SocialCops)는 인도 정부가 전국에 1만 개의 액화석유가스(LPG)센터를 설치하는 사업에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이 기업이 각종 데이터를 참고해 인도 전역의 적절한 위치에 LPG센터를 지정한 성공 사례는 ‘어떻게 빅데이터가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2017년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콘퍼런스에도 소개됐다. 요리에 필요한 LPG를 구하려면 20km 걸어가야 하던 시골 아낙네가 이 프로젝트로 손쉽게 쓸 수 있게 됐다. 첨단기술은 빈곤층 생활환경 개선에도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 대한무역투자진흥 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3개국에 121개의 해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해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6월호
 
 

 

정기구독자는 과거 기사 전체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온라인 회원은 과거 기사 일부와 2016년 6월 이후 온라인 기사 전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Economy Insight(http://www.economyinsight.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 기사의견(0)  
 
   * 3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600byte)
   *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
매체소개 구독신청 구독문의기사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 길
한겨레신문(주) | 제호 : 이코노미 인사이트 | 등록번호 : 서울 아 01706 | 등록일자 : 2011년 07월 19일 | 발행인 : 양상우 | 편집인 : 권태호
발행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효창목길 6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 한겨레 고객센터 1566-9595 | 청소년보호 책임자 : 장철규
Copyright 2010 Hankyoreh.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