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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과 유니폼, 그리고 나비효과
[editor's letter]
[98호] 2018년 06월 01일 (금) 정혁준 june@hani.co.kr
정혁준 편집장
 
   
 
1990년대까지 현대·삼성·LG·포스코 같은 대기업에는 탈의실이 있었습니다. 출퇴근 때마다 여직원은 그곳을 들렀습니다. 사복을 유니폼으로, 유니폼을 사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분위기가 자유롭던 한국은행에서도 여직원은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당시 유니폼은 고졸 여성은 물론 대졸 여성도 입어야 했습니다. 그때 여직원은 회사에서 이름이 아닌 ‘미스 킴’ ‘미스 리’로 불렸습니다. 회사는 그들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지도 않았습니다. 차 심부름같은 하찮은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유니폼은 수동적이고 복종하는 여성을 상징했습니다.
시대는 흘렀고,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그때보다 더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많은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갔습니다. 전문직 여성 비율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 역시 많습니다. 금기 아닌 금기, 관행으로 굳어진 것들입니다. 금융회사는 유니폼을 입어야 고객이 신뢰한다, 여자 아나운서는 안경을 쓰면 안 된다. 이런 규정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본질이 아닌 비본질에 치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아나운서가 이런 관행을 깼습니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입니다.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해 우리 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뒤이어 제주항공은 여성 승무원의 안경 착용과 네일 케어를 허용하는 객실승무원 서비스규정을 수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러 곳에서 드레스코드를 강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은행권이 대표적입니다. 우리나라 은행은 직급이 낮은 여성에게만 유니폼을 입힙니다. 사원·계장·대리 여성은 유니폼을 입지만 과장 이상 관리직 여성은 입지 않습니다. 남성은 직급이 낮더라도 유니폼을 입지 않습니다. 금융회사인 은행은 고객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유니폼이 필요하다고 얘기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은행과 같은 금융권이지만 증권사나 보험사는 유니폼을 입지 않습니다. 두곳도 과거엔 여직원만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는 이유와 개인화되는 사회현상을 반영해 유니폼을 없앴습니다.
30대 여성 은행원의 얘기가 귓전에 맴돕니다. “두 딸에게 ‘차별의 유니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딸들이 어른이 됐을 때 유니폼은 여자가 입는 것, 직급이 낮은 사람이 입는 것이란 편견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임현주 아나운서는 “작은 날갯짓이지만, 이런 ‘작은 선택’이 모이면 좀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사회가 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가 말한 ‘작은 날갯짓’이 떠올랐습니다. 미세한 변화가 예상치 못한 큰 결과를 낳는 ‘나비효과’를 상상해봤습니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는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드레스코드에서 벗어나자’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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